1352. 삼한시대 때부터 문신하는 풍속 있었다 위지동이전에 보면 삼한 시대 때부터 우리 겨레는 문신했음을 알 수 있는데 당시는 용이나 물짐승으로부터 해를 입지 않으려고 문신을 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도둑 오른 팔뚝에 도둑질 '도(盜)'자 새기는 형벌수단으로 널리 쓰였고, 도망쳤다 잡혀온 노비의 팔뚝이나 얼굴에 문신을 해서 도망치지 못하게 했지요.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장길산’에는 장길산이 연인 묘옥의 가슴에 문신을 새기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뒤 묘옥은 다른 사람의 여인이 되었으면서도 장길산을 잊지 못하지요.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성이 많이 사는 곳에는 방탕한 사람들은 뜻을 정하여 바늘로 서로 팔뚝을 찌른 다음 먹칠을 하여 색을 넣는다. 그러면 멍든 것처럼 푸른데 그것을 연비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연비로 평생 잊지 말자고 약속한다.”
1351. 조선시대 피타고라스정리 설명한 책 조선시대에는 세계 최고 여행기라고 평가되는 열하일기를 비롯한 여행기는 물론 천문, 요리서, 백과사전 등 다양한 책들이 발행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학 책도 나왔는데 그것은 조선 후기의 천문학자 남병길(南秉吉)의 책 ≪유씨구고술요도해(劉氏勾股術要圖解)≫입니다. 이 책은 직사각형에 관한 244개의 문제와 풀이를 수록한 것으로 특히 피타고라스 정리를 설명해놓았습니다. 지은이 남병길은 유씨(劉氏)란 사람이 쓴 ≪구고술요(勾股術要)≫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비록 계산 중심으로 되어 있지만 유럽계의 기하학적 방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그림풀이까지 붙여 놓은 점에서 당시 수학자들의 관심이 기하학 쪽에까지 쏠리고 있었음을 말해준다고 합니다. 남병길은 이밖에 측량도해(測量圖解), 무이해(無異解), 산학정의(算學正義), 성경(星鏡) 등의 책도 써냈습니다.
1350. 쥐띠해의 세시풍속, “쥐바람쐬기”와 “쥔쥐새끼놀이” 올해는 무자년(戊子年) 쥐띠 해입니다. 쥐는 다산ㆍ풍요를 상징하는 부지런한 동물로 봅니다. 그 쥐와 관련된 세시풍속에 “쥐바람쐬기”와 “쥔쥐새끼놀이”가 있습니다. 이중 “쥐바람쐬기”는 집안에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어른들에게 인사드리게 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집안 사정을 알게 되어 잘 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쥔쥐새끼놀이”는 한 줄로 논밭 둑을 기어가는 들쥐 행렬의 맨 끝 쥐를 잡아떼는 행위를 묘사한 놀이로서 꼬리따기놀이와 연결된 놀이로 쥔쥐란 들쥐의 전라도 사투리입니다. 들쥐들은 논두렁을 기어갈 때 반드시 어미쥐가 앞에 서고, 새끼쥐들은 그 뒤에 꼬리를 문 듯 일렬로 뒤따른다고 합니다. 쥔쥐새끼놀이를 ‘꼬리따기’라고 부르는 곳도 있고, 또 살쾡이가 닭을 잡아먹는 모습과 같다 해서 ‘닭살이’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1349. 일본 나라의 금동석가삼존불, 원자폭탄 세례 면하다 일본 교토와 나라는 한국서 건너왔거나 한국인의 후예가 창작한 뛰어난 미술품이 많이 있는 유서깊은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교토와 나라는 2차대전 말 히로시마 다음으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에 쑥대밭이 될 뻔했습니다. 바로 이곳에 많은 군수공장이 있었기에 미군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이때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자 랭돈 워너 교수가 교토에 원자폭탄 투하를 막기 위한 탄원서를 돌렸고, 이 덕분으로 다행히 교토는 원자폭탄의 세례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워너 교수는 당시 이 미술품들이 한국 것이 아닌 중국 것으로 알았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미술품을 건져낸 것입니다. 특히 나라의 호류지 절에는 백제조각의 진수인 몽전의 구세관음도, 목조 구다라 관음, 일본 미술사의 보물 금동석가삼존불, 7세기 목조사천왕상 등이 있습니다. 참고 :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글을읽다
1348. 우리말, 어버이에게 버림받은 신세 되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이며 우리말대학원장이신 김수업 선생님은 “사람 치고 저를 낳아 길러주던 어버이가 난데없이 이웃집 아이를 데려다 금이야 옥이야 사랑을 쏟으면서 저를 못난이라며 버린다면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의 신세가 어버이에게 버림받은 아이와 같다.”라고 안타까워하십니다. 그것은 신라부터 시작하여 고구려, 조선까지 지배층이 우리말을 홀대한 대신 중국 글말을 사랑했고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는 아예 조선어말살에 광분했으며, 그에 더하여 지금은 우리말에 미국말의 열병이 덮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말을 버림받은 아이로 전락시킨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김 선생님은 “끔찍해서 입에 담을 수 없지만 하늘이 돕지 않으면 겨레의 뿌리를 뽑아내고야 말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달려든다.”라고 고통스러워 합니다.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1347. 일본 신토이즘은 독자적인 문화, 한국의 굿은 샤머니즘 아류? 신라 금관의 기원을 대부분 학자는 19세기 시베리아 무당 모자에서 찾고 있습니다. 스스로 민족문화의 자존심을 저버리는 것이지요. 그와 함께 우리 굿은 시베리아 샤머니즘과 상당히 대조적인 민족신앙으로서 독창성을 지녔는데도 샤머니즘의 하나로 해석할 뿐 아니라, 국제학계에 굿을 “korean shamanism”으로 소개하며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부정하는 바람에 외국학계에서는 한국문화의 독자성이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아 민족의 무속신앙 곧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을 비롯하여 인도의 힌두이즘과 부디즘, 중국의 콘퓨시어니즘과 타오이즘은 물론 일본의 신토이즘까지도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문화로 인정되는 것과 달리, 한국의 굿은 한갓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아류로 간주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는 이를 빨리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346. 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 “생황”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인 생황(笙簧·笙篁)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든 봉덕사, 상원사, 경북 문경 봉암사의 범종과 경북 문경의 지증대사 적조탑신 등에 새겨져 있습니다. 중국 묘족(苗族)이 만들었다는 악기로, 김을 불어넣는 통은 옛날에는 박통[匏]을 썼으나 뒤에 나무통으로 바꾸어 쓰게 되었으며 이 통의 위쪽 둘레에 돌아가며 구멍을 뚫고, 거기에 죽관(竹管)을 돌려 꽂았지요. 그리고 죽관 위쪽 안에는 길쭉한 구멍을 뚫어 그것을 막으면 소리가 나고, 열면 소리가 나지 않게 하였습니다. 요즘에는 독주악기로 사용되지 못하고 단소와의 2중주에 많이 쓰이는데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과 기생이 단소와 생황을 함께 연주(생소병주)하여 아름다운 음악 “수룡음”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이 생황은 생산이 끊겼다가 지난해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가 악학궤범을 바탕으로 복원 제작했지요.
1345. 조선시대 핼리혜성 관측 기록 보셨나요? 연세대 연세·삼성 학술정보관’에서는 오는 6월 28일까지 ‘개관 기념 고문헌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선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천문도 등 천문자료와 피타고라스정리를 설명한 ‘유씨구고술요도해(劉氏勾股述要圖解)’등 수학 관련 책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성변등록(星變騰錄)”입니다. 다시 말하면 관상감에서 혜성, 객성 등 천체의 이상 현상을 관측 기록한 문헌이지요. 특히 1759년 3월에 핼리혜성을 관측한 기록은 현재 전하는 기록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혜성을 기록한 것은 많지만 그림으로 자세히 그린 것은 세계에서 단 하나뿐이기에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국제천문연맹 천문학사위원회 위원장인 연세대 나일성 명예교수는 강조했습니다.결국, 이 “성변등록”은 머지않아 국보로 지정될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344. 겸재의 진경산수화가 이 시대에 주는 의미 겸재 정선이 있기 전의 조선 산수화들은 조선의 산과 강과 사람 대신 온통 중국 사람과 중국의 산과 강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겸재는 깨닫습니다. 중국의 그림을 베끼는 것은 진정 조선의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겸재 그림에는 금강산이 거기 있었고 인왕산도 그림 속에서 살아 있었습니다. 또 갓을 쓴 양반과 서민의 모습도 있었고 조선의 산하, 17세기 조선이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금강산도는 그 구도와 색의 대비, 원근법 등이 21세기 현대의 산수화보다 앞서 있는 느낌이었다. 먹으로 그린 박연폭포도 폭포의 상단과 하단의 그래픽적인, 의도적으로 그린 검은 바위는 채색화보다 폭포수의 강렬함을 더욱 느끼게 해준다.” 겸재는 알았습니다. 다른 민족의 것을 흉내 내는 것이 그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만의 차별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일 것입니다.
1343. 돈과 곡식으로 벼슬을 산 멍첨지와 보리동지 속담에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란 것이 있습니다. ‘첨지(僉知)’는 원래 ‘첨지중추부사’의 준말로 조선시대 정3품 벼슬입니다. 그런데 관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행태를 보면서 백성이 이를 비꼬는 말로 ‘멍첨지’라 한 것이지요. 그 비슷한 말로 ‘보리동지’가 있습니다. 역시 보리동지는 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얻은 사람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그밖에 곡식, 옷감, 은, 돈 등으로 공명장을 사서 얻은 벼슬은 ‘빠꿈벼슬’이며, 자격 없는 사람이 갑자기 얻어 하게 된 관직을 ‘벼락감투’라고 하지요. 이런 사람일수록 별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면서 큰소리치며 거들먹거리는데 이를 ‘거통’이라고 합니다. 또 거통은 건방진 태도를 뜻하기도 하고, ‘지위는 높으나 아무런 실권이 없는 처지’를 말하기도 하지요. 사실 이런 말들은 요즘도 여전히 쓰일 수 있어서 아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