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 개밥바라기가 무엇일까요? 별에도 우리의 아름다운 토박이말 이름이 있습니다. 북극성은 위치를 바꾸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빛난다고 하여 ‘붙박이별’이라고 합니다. 또 궂은 날에 잠깐 나왔다가 숨는 별은 ‘여우별’이라고 부르며, 북극성, 북두칠성 따위처럼 어두운 밤에 방향을 알려 주는 별은 ‘길잡이별’이라 부릅니다. 은하수는 ‘미리내’, 초승달이나 그믐달은 ‘손톱달’이란 예쁜 이름이 있지요. 그런가 하면 지구의 바로 안쪽에서 태양의 주의를 도는 행성은 금성(金星)인데 이별의 별명은 참 많습니다. 초저녁 하늘에 비치면 장경성(長庚星), 태백성(太白星), 개밥바라기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새벽 하늘에 보이면 샛별, 명성(明星) 또는 계명성(啓明星)입니다. 특히 ‘개밥바라기’라는 재미있는 이름은 저녁에 개가 배가 고파서 저녁밥을 바랄 무렵에 서쪽 하늘에서 뜬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지요.
1311. 아이들에게 추임새 교육을 우리 판소리의 중요 구성요소에는 ‘추임새’가 있습니다. '추임새'는 소리 도중에 고수와 청중이 하는 '얼씨구', '좋다!', '으이!', '그렇지!', '아먼' 등의 감탄사를 가리키는데, 소리꾼과 청중의 흥을 돋우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추임새라는 말은 '추어주다' 에서 나온 것으로 ‘칭찬해주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요. 이 추임새는 판소리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철학일 것입니다. 최근 우리 문화 강연할 때 끊임없이 질문을 한 뒤 비슷한 대답을 하면 칭찬하고 손뼉을 쳐주도록 했더니 청중들이 모두 즐거워했고 ‘추임새 강연’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철학이 아이들의 교육에 정말 종요롭습니다. 아이들에게 못하는 것을 나무라지 말고 잘하는 것을 찾아내 그렇지, 잘한다 따위의 칭찬 곧 추임새를 하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날, 아이들 교육에서도 추임새 문화는 필요합니다.
1310. 옛날 밤똥 누는 아이, 오줌싸개 고치기 예전엔 밤에 똥을 누고 잠자다 이불에 오줌을 싸는 아이들이 흔했습니다. 밤똥이야 낮에 과식을 한 탓이 클 것이지만 오줌싸개는 물을 많이 먹어도 그럴 수 있으며, 콩팥(신장) 계통에 문제가 있거나 정신적인 면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밤에 똥을 누는 아이와 오줌싸게 아이를 둔 어머니는 걱정이 컸습니다. 그래서 밤똥 누는 아이에게는 횃대에 앉은 닭에게 절을 해서 팔도록 했습니다. 밤에 똥을 누는 것은 닭보다 못하다는 얘기로 그러면 밤똥을 누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또 오줌싸개에게는 키를 쓰고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보냈습니다. 그러면 이웃집 아주머니는 “다시는 오줌을 싸지 마라.”는 말과 함께 소금을 냅다 키에 뿌리며 놀라게 합니다. 키는 곡식의 불순물을 골라내는 도구로 아이의 오줌싸는 버릇을 그처럼 날려보낸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 우리 옛날 세시풍속이 그립습니다.
1309. 마을숲은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삶과 관련하여 숲을 만들거나 또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져 온 숲을 보호 유지하여 온 “마을숲”이란 것이 있습니다. 마을숲은 마을 사람들의 정서적 안정은 물론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고, 바람을 막아주며, 홍수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하는 구실을 해왔지요. 아직도 남아있는 마을숲은 300~500개가 있다고 합니다. 전통 마을숲은 마을 들머리와 좌우 산줄기, 하천가, 바닷가 등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경기도 이천시 송말리에 있는 마을숲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를 보면 마을숲 때문에 풍속이 줄어들고, 숲 바깥과 안 사이에 겨울철엔 최고 3도, 여름철엔 1~2도의 체감온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을숲 덕분에 이 마을 사람들은 겨울철에는 따뜻하고 여름철에는 시원하게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을숲을 가꾸는 것은 지구온난화를 막는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입니다.
1308. 《열하일기》는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 《연암집》, 《허생전》 등을 쓴 조선후기 실학자 겸 소설가입니다. 최근 고미숙 씨 등이 연암의 책 중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도서출판 그린비를 통해서 국역해서 펴냈는데 거기엔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는 훈장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연암은 6달 동안 긴 여행, 목숨을 건 고행길에 남들보다 하나를 더 보고, 꼼꼼하게 살펴보고, 다양한 사람을 사귀는 창조의 여행을 했고 그를 꼼꼼히 기록한 때문입니다. 또 연암은 늘 새벽에 일어나서 일행보다 먼저 떠나 더 많은 견문을 시도합니다. 말도 통하지 않은 청나라 사람들을 향해 수없이 필담을 던지고, 밤새 만남의 향연을 펼치는 그는 그저 부지런한 사람일 뿐이 아니라 없는 공간을 새롭게 만들고 그 공간을 채워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최고”라는 꾸밈을 붙여도 되지 않을까요?
1307. 우리 전통 정원에는 과일나무가 많았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문에는 바람과 햇빛이 드나드는 한지를 썼고, 집을 지을 때도 휘어진 목재를 그대로 기둥에 쓰기도 했으며, 정원을 만들 때도 멀리 보이는 산과 건물까지도 생각해서 꾸몄습니다. 그래서 강난숙이 쓰고 청년사에서 펴낸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지혜롭게 살았을까?≫라는 책에서는 우리 전통 정원을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적이라는 뜻으로 “절로정원”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우리 정원에는 둥글게 가다듬은 향나무처럼 사람이 인공적으로 꾸민 나무는 없었고, 동서남북 각 방향의 기운에 따라 나무를 심었는데 복숭아나무, 매화나무, 대추나무, 살구나무, 사과나무 따위의 과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보다는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요?
1306. 일제가 망가뜨린 조선 궁궐 경희궁 조선 5대 궁궐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입니다. 이 궁궐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제의 파괴가 있었습니다. 창경궁은 동물원·식물원을 만들어 사람들의 놀이터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잊힐 정도 망가뜨려진 곳은 경희궁입니다. 맨 먼저 조선총독부는 1910년경 경희궁 터에 중학교를 지었고, 1922년에는 25,500평을 떼어 경희궁 동쪽에 전매국 관사를 지었으며, 1927~1928년에는 경희궁 남쪽 도로를 넓히면서 경희궁 터 일부는 도로가 되었습니다. 또 중학교 교실로 쓰던 경희궁 정전 숭정전은 1926년 조계사에 팔았으며, 회상전은 중학교 부설 임시소학교 교원양성소의 교실·기숙사로 쓰다가 역시 조계사에 팔아버렸고, 편전 흥정당은 소학교 교실로 쓰다가 1928년 광운사라는 절에 팔았습니다. 결국, 1920년대를 지나면서 경희궁은 일부 회랑을 빼고는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1305. 꽃보라 맞고 꽃멀미 해보셨어요? 눈 속을 뚫고 나와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던 매화는 지고, 대신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가 흐드러집니다. 또 들꽃글방 카페에는 우리의 토종 들꽃인 뽀리뱅이, 개불알풀꽃, 줄딸기꽃, 양지꽃, 대극들이 이름만큼이나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꽃들이 흐드러진 봄날 “꽃보라 맞고 꽃멀미 해보셨어요?”란 인사를 많이 합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그렇게 예쁜 말이 있었느냐며, 자신도 당장 써먹겠다고 합니다. ‘눈보라’처럼 꽃이 휘날리는 모습을 ‘꽃보라’가 인다고 하며, 꽃의 아름다움이나 향기에 취하여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을 ‘꽃멀미’라고 하지요. 또 ‘꽃보라’ 비슷한 말로 ‘꽃눈깨비’도 있는데 이는 흰 눈같이 떨어지는 꽃잎을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 토박이말에는 아름답고 정감이 가는 말들이 많습니다. 하나둘씩 익혀 쓰면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맛깔스러운 말글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304. 맺고 푸는 끈, 매듭 이야기 우리 겨레는 먼 옛날부터 장식수단으로 독자적인 맺는 기법을 익혀 왔는데 이 맺는 기법은 전통매듭으로 민속공예의 한 분야를 이루게 되었고, 궁중예식·실내장식·국악기 장식·노리개 ·유소(깃발이나 가마에 달던 장식) 따위의 생활 전반에 걸쳐 장식 매듭으로 즐겨 써왔습니다. 고종 때 펴낸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전통매듭의 끈을 치는 장인(匠人)을 ‘다회장(多繪匠)’이라고 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매듭은 끈목으로 국화무늬·매화무늬·당초무늬·완자무늬 등 전통 무늬를 본떠 평면적인 무늬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전통매듭에는 연봉매듭·생쪽매듭·석씨매듭·안경매듭·난간매듭·국화매듭·가락지매듭 따위가 있습니다. 그 특징은 완성된 매듭 모양이 앞면과 뒷면이 똑같고, 좌우는 대칭이 되며, 아무리 복잡한 매듭이라도 가운데에서 시작하여 가운데에서 끝나게 되어 있지요.
1303. 조선시대 중국인들에게 인기있었던 조선의 우황청심환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은 소의 쓸개에 병으로 생긴 덩어리인 우황과 인삼, 산약 따위를 비롯한 30여 가지의 약재로 만든 알약인데 중풍으로 졸도하고 팔다리가 뻣뻣해지는 데나 간질, 경풍 따위에 씁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보면 “청심환 한 알을 건네 주었더니 주인은 거듭 감사를 표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책 곳곳에 중국인들이 청심환을 얻으려고 별짓을 다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황청심환은 원래 1107년 중국 송나라 태평혜민화제국방이라는 의서에 처음 등장합니다만 오히려 중국에 가짜 우황청심환이 많아 나라에서 관리하던 조선 청심환을 진환이라 하여 진짜 우황청심환이란 의미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중국에 가는 사신단은 청심환 200알 정도는 챙겨갔습니다. 중국인들이 아주 좋아하여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귀한 뇌물로 썼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