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3. 앉은뱅이 술 소곡주를 아십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한양에 과거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 지방을 지나다 인근 주막에 들러 미나리부침을 안주로 소곡주 한잔을 마셨습니다. 그 맛이 매우 좋아 취흥이 돋은 선비는 시를 읊고 즐기는 동안 결국 과거를 치르지 못했지요. 그래서 술맛에 취하면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모른다 하여 ‘앉은뱅이 술’이란 별명을 얻게 된 것이 바로 충남 한산의 명주 소곡주입니다. 이 소곡주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백제왕실에서 즐겼던 술로 기록에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 전통민속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이며, 독특한 감칠맛과 깊고 그윽한 향이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산 소곡주는 저온에서 100일 동안 발효, 숙성시켜 빚은 곡주로 피를 맑게 해주고 말초혈관을 확장, 혈관운동 중추를 억제하는 혈압강하 작용이 있어 고혈압 방지 효과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1272. 국악 가운데 정악은 무엇일까요? 국악은 크게 정악과 민속악 두 갈래로 나눕니다. 민속악은 물론 백성이 즐기던 음악 곧 민요, 판소리, 잡가, 산조, 풍물굿 따위를 말하는데 이에 대비해 정악은 궁중에서 연주하던 양반 음악입니다. 국악을 슬픈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특히 정악에는 슬픈 곡이 아예 없습니다. 애이불비한 음악, 곧 슬픔도 결코, 슬픔으로 표현하지 아니하는 음악이 바로 우리의 정악이어서 정악은 계면조로 된 곡조차도 꿋꿋하고 화평 정대한 느낌을 줍니다. 출판기념 공연 한마당에서 이삼스님은 정악대금(청성자진한잎)을 연주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악을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이날 청중들은 몰입해서 들었습니다. 이는 정악이 어려운 음악이 아니라 잘 들으면 마음의 평정을 만들어주는 훌륭한 음악이라는 증거가 아닐까요?
1271. 아이들 감기, 해열제 남용하면 안 돼 요즘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엄마들의 걱정은 큽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열만 조금 있어도 둘러업고 병원에 가거나 해열제를 먹이곤 합니다. 하지만, 해열제의 남용은 또 다른 병을 불러올 수 있다며 청담여성한의원 맹유숙 원장은 말립니다. 또 맹 원장은 갓난아이가 가볍게 열이 난 것을 보고 소화제를 먹여 열을 내리게 하기도 했다면서 보통은 한방감기약을 먹인 뒤 따뜻한 물이나 죽을 먹이고 머리에 찬 물수건을 대주면 가벼운 감기는 쉽게 낫는다고 말합니다. 한방의 감기 처방은 짧은 시간에 체온을 높여서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땀을 나게 해서 열을 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감기는 몸 안을 개혁시키려는 것이어서 오히려 감기를 잘 앓게 해야 한다는 전 경희대 한의과 대학 박찬국 교수의 말과 함께 새겨들어야 이야기입니다.
1270. 글쓰기는 스스로 사무친 바를 글로써 전달하는 것 항공대 구연상 교수는 “글쓰기의 목적과 사무침”이란 글에서 “글쓰기는 스스로 사무친 바를 글로써 드러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행위이다. 글쓰미가 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스스로 사무친바’라고 할 수 있다. 사무침 가운데 일어나는 말하기는 한낱 의사소통만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사무치는 말하기’는 ‘서로 함께 나누기’ 위한 것이다. 반면 먹먹한 말은 우리를 먹통으로 만든다. 먹먹함은 먹어 버린 상태, 또는 삼켜 버린 상태, 따라서 밖으로 나오지 않아 그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태, 그러므로 먹먹한 말은 그 뜻을 도무지 알아챌 수 없는 말을 들었을 때의 상태를 나타낸다. 먹먹한 말에 대해 응답해야 한다는 것은 막막하다. 곧 아득하다. “라고 말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꼭 마음속에 담아두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269. 출판기념 우리 문화 공연 한마당을 잘 끝냈습니다 어제는 제 책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출판 기념 우리 문화 공연 한마당을 성황리에 끝마쳤습니다. 그 자리엔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이사가 참석하여 축사를 해주시고, 무형문화재 이춘희 선생님, 연합뉴스 이종호 상무님을 비롯하여 많은 훌륭한 분들이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또 대금산조 3대 명인의 하나이신 원장현 선생님, 서도민요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 어울림 실내악단을 이끄시는 서원대 이병욱 교수님, 외팔로 정악대금을 연주하시는 이삼스님, 화성 재인청 마지막 도방 이동안 선생의 춤을 올곧게 이어받은 이승희 선생님 같은 분이 흔쾌히 출연해 주셨으며, 판소리꾼 조동언 명창과 해금실내악단 “이현의 농” 이유라 운영위원장 등이 혼신의 연주를 해주셨고, 이 시대 최고의 전통문화 해설가이신 동국대학교 최종민 선생님의 걸쭉한 해설이 곁들여져 청중이 감동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1268. 오늘은 경칩, 春·spring·봄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늘은 봄이 오는 소리 ‘경칩’입니다. 경칩은 얼음이 녹아 깨져나가는 소리에 놀라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깨어 뛰쳐나온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경칩은 얼음을 녹일 봄비가 내린다는 뜻의 ‘우수(雨水)’와 함께 대표적인 봄 절기입니다. 여기서 최창렬 님의 '꽃샘과 봄의 의미'란 글을 읽고 ‘봄’과 중국의 ‘춘(春)’ 그리고 서양의 ’spring' 사이에 담긴 차이를 알아봅니다. 최창렬님은 글에서 뽕나무 새순이 돋는다는 뜻의 한자 '춘(春)'이나, 삼라만상의 생기가 새로 솟아올라 온다는 뜻을 담은 영어의 'Spring'이 모두 자연이 주체가 되어 솟아오른다는 자연 중심의 이름임에 비하여, 우리말 '봄'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대자연의 움 돋는 생기를 새롭게 본다는 사람 중심의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보면 우리말은 아름답고도 깊이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말나눔 잔치”에서 박영식 전 교육부장관은 “우리말로 학문하기 필요성과 영어의 쓰임 범위”란 제목의 특별강연을 했습니다. 박 전 장관은 자신이 미국에서 유학했던 사람이지만 영어를 잘 못한다고 실토합니다. 박 전 장관은 특히 “iBT 영어시험에서, 영어 사교육비 15조 원을 쏟아붓는 한국이147 나라 가운데 111위를 차지했다. 인도유로피언 어족에 속한 영어를 그 어족에 속하지 않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숙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죽기살기로 해야만 가능한 일을 국민 모두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덧붙여 서구문명의 언어인 영어는 세계 인구의 9.8%(가장 높을 때인 1958년 추정)만 쓰는 말이며, 서구문명의 종교인 기독교는 세계 인구의 29.9%만 믿기 때문에 서구문명이 보편 문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1266. 우리 음악으로 된 종묘제례, 세종과 세조의 합작품 세종실록 7년(1425년) 10월 15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본디 향악(鄕樂)에 익숙한데, 종묘의 제사에 당악(唐樂)을 먼저 연주하고 삼헌(三獻)할 때에 이르러서야 겨우 향악을 연주하니, 조상 어른들의 평시에 들으시던 음악을 쓰는 것이 어떨지, 그것을 맹사성과 더불어 상의하라.” 그런데 세종이 뽑았음은 물론, 당대 최고의 음악가인 박연과 유생들이 반대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이를 무릎 쓰고, 스스로 작곡을 강행하여 마침내 10년 뒤인 1435년 우리 향악으로 된 “보태평(保太平)” 11곡과 “정대업(定大業)” 15곡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물론 이 음악은 곧바로 종묘제례에 쓰지 못하고 궁중 연회 때에만 연주했으며, 세조 때에 와서야 겨우 종묘제례에 쓰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 음악으로 된 진정한 종묘제례는 세종과 세조의 합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참고 : “찔레꽃과 된장”, 이동식
1265. 한복은 무척 편한 옷입니다 최근 얼레빗을 받는 한 분은 “한복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어 현대인에게는 좀 거리가 있다.”라는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과연 한복이 불편할까요? 지금의 한복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고구려 때에도 바지의 폭이 넓어 “큰 입의 바지”라는 뜻의 ‘대구고(大口袴)’를 입었습니다. 바지 폭이 넓은 바지가 정말 불편하다면 말을 타고 사냥을 하며 활동적으로 살았던 고구려 사람들이 즐겨 입었을 리가 없지요. 더구나 요즘도 전통무예를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복을 입고 운동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날마다 전통한복을 입고 등산하는 할머니는 한복 차림 등산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옷이란 오랫동안 입어온 것이 편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16년을 한복만 입은 저는 이제 서양옷은 불편할 것 같아 입을 수 없습니다.
1264. 선비들이 좋아했던 홍매화, 순천 금둔사에 피어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은 “오동나무는 천 년이 되어도 늘 곡조를 간직하고 있고 / 매화는 일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梅一生寒不賣香)”라고 노래합니다. 그런가 하면 퇴계가 즐긴 풍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매화에 대한 사랑입니다. 퇴계는 매화를 ‘매형(梅兄)’이라고 부르며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도산서원에 심어진 매화가 꽃이 피면 달이 차도록 꽃나무 곁을 빙빙 돌며 시간을 보냈으며, 병이 깊었을 때는 깨끗하지 못한 모습을 매화에 보일 수 없다며 매화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했다고 합니다. 눈을 뚫고 꽃을 피우는 매화를 선비들은 그림 그리고 시 쓰고 거문고를 타며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지금 저 아랫녘 순천 금둔사에는 붉은 홍매화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답니다. 몇 해 전에 보았던 금둔사 홍매화를 다시 보러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