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9. 조선시대엔 안경을 아무나 끼지 못했다 “명 나라 장영이 지은《방주잡지(方洲雜志)》에는 '크기가 돈짝만 한 것 두 개가 있었는데, 흡사 돌비늘[雲母]과 같고 금으로 테를 둘렀으며 자루가 달렸다. 오므리면 하나가 되고 펴면 둘이 되었는데, 노인이 두 눈에 걸면 글자가 배나 크게 보인다.' 하였습니다.” 위는 조선 후기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 제19권》에 나오는 글인데 안경은 중국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눈에 구름 같은 것이 끼어 희미한 것을 밝게 보여준다고 뜻으로 한자 ‘애'’와 ‘체’를 붙여 애체(靉靆)' 라 불렀고, 왜납, 애희(愛希)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눈거울’이라는 뜻의 '안경'으로 굳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안경을 조선시대엔 귀한 사람만 쓰는 것으로 생각해 아무나 낄 수 없기에 정조임금도 안경 끼기를 고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238.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품을 만든 조선사람들 1909년부터 1928년까지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왔던 독일인 안드레 에카르트는 고국으로 돌아가 신부직을 버린 한해 뒤인 1929년 ≪조선미술사≫를 펴냈습니다. 독일어로 된 이 책은 8·15 광복 이전에 한국 미술을 일본어가 아닌 외국어로 맨 처음 소개한 책이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한국 미술의 특성을 서구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함으로써 해방 전까지 세계인들이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는 조선 미술을 다음처럼 평가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동양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고전적인 미술품을 만들었다.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과장하거나 왜곡된 것이 많은 중국의 미술이나, 감상으로 치닫거나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이는 일본 미술과는 다르다.”
1237. 조선시대 궁궐 부엌이야기 궁궐 안에는 임금, 왕비, 대왕대비, 세자가 각각 대전, 중궁전, 대비전, 세자궁의 전각에서 사는데 매끼 식사는 각 전에 딸린 주방에서 정해진 벼슬아치나 차비들이 만들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임금과 왕비가 먹는 밥은 수라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부르지요. 임금과 왕비의 이 수라를 만드는 곳을 수라간(水剌間) 또는 소주방(燒廚房)이라고 하며, 침전과는 별채로 떨어져 있습니다. 수라상을 올릴 때는 퇴선간(退膳間)에서 상을 차리고 물린 상을 정리하며, 후식은 생과방(生果房)에서 만들어 올립니다. 그밖에 궁중의 연회 때에는 임시로 지은 주원숙설소(廚院熟設所, 內熟說所), 또는 행주방(行廚房)에서 조리를 합니다. 궁중에서 평상시의 수라상에 올리는 음식을 조리하는 일은 주로 주방상궁들이 만들었으며, 궁중의 잔치인 진연, 진찬 때는 대령숙수라고 하는 남자조리사들 몫이었습니다.
1236. 양반 출신 명창 권삼득. 집안에서 쫓겨났다 조선 후기 판소리 8명창 중의 한 사람인 권삼득은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음악적인 재질이 뛰어나 어려서부터 글을 싫어하고 판소리만 배웠는데, 타고난 성대는 듣는 사람을 황홀하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덜렁제’로 불리는 소리제(음악적 특징)를 개발하였는데 특히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하지요. 광대 노릇이 용납되지 않는 양반신분의 권삼득을 집안에서는 멍석말이로 죽이려 했으나 마지막으로 춘향가 중 ‘십장가’를 부르자 그 비장한 소리에 집안 어른들이 감동하여 죽이는 대신 족보에서 빼고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그 뒤 권삼득은 산과 계곡 등을 떠돌며 소리를 익혀 득음을 함으로써 으뜸 명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지금 전북 완주군 용지면에 있는 그의 묘에는 ‘소리구멍’이 있어 비가 오는 밤이면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많은 소리꾼이 찾는다고 하지요.
1235. 조선시대의 여자경찰 다모 이야기 조선시대 포도청에는 ‘다모(茶母)'라는 비밀 여자 경찰이 있었습니다. 포도청에서 이 다모를 뽑을 때는 우선 키가 5척(151.5cm)을 넘어야 하고, 쌀 닷 말(40Kg)쯤을 가볍게 번쩍 들어야 하며, 막걸리를 먹더라도 세 사발은 숨도 안 쉬고 단번에 마셔야 할 정도의 실력을 요구했습니다. 다모는 내외를 엄격하게 따졌던 당시에 여자 죄수를 남자가 다룰 수 없었기에 꼭 필요했던 존재입니다. 다모는 대개 역적모의를 하는 집에 들어가는데 이럴 때, 다모는 치마 속에 두 자쯤 되는 쇠도리깨와 오랏줄을 감추고 정탐을 하다가 틀림없이 죄가 분명하다 하는 사람이면, 치마 속에 숨기고 있던 쇠도리깨로 들창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죄인을 잡아왔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선조 22년, 1589년 정여립의 난 때 억울하게 잡혀서 비명에 죽은 최영경을 다모가 잡아 왔다는 대목이 있는 등 관련 기록이 나옵니다.
1234.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한국이 망한다 《월간조선》 1998년 10월호에서 박경범 씨는 “한글(전용)이 망하지 않으면 한국이 망한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에 중국에서 15년 동안이나 한국어를 가르쳐온 포스코 중국법인 ZPSS 교육고문 강효성 씨는 이 박경범 씨의 주장을 “망언적인 예언”이라고 합니다. 그는 중국이 뜻글자를 포기하고, ‘간체자’와 로마자를 빌려와 소릿값을 익히는 ‘한어 병음 자모’를 펴 80%였던 문맹률을 40%까지 낮췄다며, 중국은 오히려 뜻글자인 한자를 버려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큐정전》을 쓴 문학가이며, 사상가로 중국이 낳은 으뜸 지성 루쉰(魯迅)은 《루쉰전서》 제6권에서 “한자는 고생하는 중국 대중의 몸에 있는 결핵이다. 몸속에 잠복하고 있어서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결국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며,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한국이 망한다.”라고 외칩니다. 참고 : 《한글새소식》 2007년 12월호
1233. 마이크를 쓰지 않고 청중과 가까이 한 전통 공연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은 무대가 아닌 마당에서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풍물굿에서 구경하던 청중이 징을 치고 징을 치던 징잽이가 대신 춤을 추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판소리, 민요 따위에서 고수와 청중의 추임새는 중요한 구성요소입니다. 연주자의 기량도 중요하겠지만 청중과 하나 되는 모습은 우리 문화에서 아주 종요롭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 문화의 공연은 큰 공연장을 좋아하여 음향시설을 쓸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소리가 왜곡된다는 지적도 받고 있으며, 때에 따라 음향시설에 문제가 생겨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실패한 공연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 서도민요 소리극 “채봉전‘은 작은 공연장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고 청중과 가까이 한 공연을 했습니다. 물론 공연자는 그에 다른 어려움도 있었지만 청중은 큰 만족을 얻었습니다.
1232. 복원된 자격루, 일제의 왜곡 바로 잡았다 지난해 11월 말 국립고궁박물관은 573년 만에 물시계 원래 모습을 구현하고 특히 자동시보장치를 원형 그대로 복원 제작한 자격루를 공개전시했습니다. 이번에 복원된 자격루는 대파수호에서 중파수호 중파수호에서 소파수호로 물을 내려보내는 것을 용의 입을 통해 연잎으로 가도록 했으며, 물이 흘러넘쳐 일정한 흐름을 방해할 것을 방지하는 별도의 흐름장치(오버플로어)를 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에 전시된 국보 제229호 자격루의 물시계 항아리 배열방식은 큰 파수호 1개를 윗단에 파수호 2개를 아래 같은 평면에 설치하는 2단 방식인데, 이는 일본인 학자들이 경복궁에서 창경궁으로 이전하면서 저지른 잘못으로 이번 복원 자격루는 파수호를 대파수호, 중파수호, 소파수호 차례로 1열 3단으로 배치하여 왜곡을 바로잡았습니다. 자격루에도 일제의 왜곡은 있었습니다. 참고 : “장영실 자격루 완전 복원 기념 세미나와 답사” 참가하기
1231. 궁궐이나 절의 아름다운 단청이야기 궁궐이나 절에 가보면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려서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한 단청(丹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건축물에 단청을 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 까닭은 맨 먼저 울퉁불퉁한 소나무를 감추는 것입니다. 우리 건축물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휘어진 소나무 기둥이 많은데 단청을 함으로써 감쪽같이 숨기는 것이지요. 둘째는 단청은 벌레나 해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나무가 썩는 것도 방지합니다. 그리고 건축물의 기능에 맞게 건물의 위용과 장엄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청은 건축물에 따라 다르게 칠합니다. 사당이나 능묘에는 한 가지 빛깔만 칠하는 가칠단청(假漆丹靑)을 하며, 임금이 일하는 정전이나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에는 화려한 금모로단청(錦毛老丹靑)을 했고 그밖에 긋기단청, 얼금단청 따위도 있습니다.
1230. 아토피에는 신토불이 자연을 담은 밥상이 좋아 요즘 아토피를 앓는 아이들이 참 많은데 일단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아 부모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한의사들은 아토피가 생기는 까닭을 부모의 섭생에 있다고 하지요. 아빠의 평소 건강 상태와 엄마가 임신 당시 음주 또는 피로, 과식 등은 물론 임신 중 엄마의 입덧과 불규칙한 식습관, 밀가루 음식과 튀김류 등 간편식 먹기, 과도한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몸에 맞지 않는 먹거리와 환경이 아토피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지요. 이 아토피를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밥상 위에 ‘신토불이 자연’을 담아내는 것입니다. 갖가지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을 내 아이가 먹지 않도록 하고, 김치, 된장, 두부, 미역, 우엉, 미나리, 마늘, 도토리, 검정콩 등과 같이 몸의 독성을 내려주는 전통 먹거리를 먹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