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1. 장영실이 살아야 한국이 산다 최근 고액권 지폐의 도안에 김구 선생과 신사임당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같이 다투었던 우리 역사상 최고의 과학기술자인 장영실은 빠졌네요. 지난 10월 26일 장영실의 날에도 장영실은 없었고, 출생지인 부산 동래에도, 장영실을 시 인물로 정했던 아산시에도 장영실은 없었습니다. 지금 세계와 경쟁하려면 기업이 앞장서야 하고 기업의 발전엔 과학기술이 그 바탕이 되는데도 조선의 과학을 이끌었던 장영실은 예나 지금이나 관노의 자손임이 천형으로 남나 봅니다. 지금 곳곳에 복원된 장영실의 발명품이 많이 있지만 자동시보장치 달린 자격루는 자동시보장치가 없고, 오목해시계(앙부일구)는 글자 모르는 백성을 위해 그렸다는 12지신 그림이 없이 엉터리로 복원이 되었습니다. 또 천안아산역 앞에 있는 장영실 동상은 공사장 안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제발 위대한 선조를 못 본채 외면하는 후손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1179. 왕조실록, 임금도 보지 못하고 사관만 볼 수 있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이 된 “조선왕조실록”은 궤짝에 담아 보관해왔습니다. 그리고 실록이 서로 닿는 것을 막도록 사이에 초주지를 끼워 넣고 악귀를 쫓는 붉은 보자기로 쌌지요. 또 그 보자기에는 벌레와 습기를 막으려는 청궁, 창포 등의 한약재 가루를 담았습니다. 한 궤짝에는 15~20책을 담아 철저하게 봉인하고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이렇게 자물쇠를 채운 왕조실록은 처음엔 서울의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사고에 보관했지만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를 뺀 나머지 사고가 모두 불타자 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 등의 산속 사고에 보관했습니다. 그리고 실록은 임금도 볼 수 없었으며, 실록을 관리하는 사람조차도 함부로 열지 못하게 했지요. 오직 임금 명을 받은 사관만 궤짝을 열게 했고. 그 사관은 임금의 명을 받아 사고에 가는 것을 커다란 명예로 생각했습니다.
1177. 돌로 만든 악기 편경을 아십니까? 조선시대에는 역관이라는 일종의 외교관이 있어서 외국과 교역하고 소통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사역원(司譯院)에서는 4대 외국어인 중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를 가르쳤고 외국어 학습교재도 있었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외국어였던 중국어 교재는 노걸대(老乞大)와 박통사(朴通事)가 있고, 일본어는 첩해신어(捷解新語), 몽골어는 첩해몽어(捷解蒙語),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노걸대의 ‘노’는 우리말의 ‘씨’, 영어로 하면 ‘미스터’ 쯤 되는 말이고 ‘걸대’는 몽골인이 중국인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세 명의 고려 상인이 말과 인삼, 모시를 팔고자 중국에 다녀오는 과정을 담은 중국어 학습책입니다. 그런가 하면 박통사는 ‘박씨 성을 가진 역관’이란 뜻이지요. 첩해신어는 새로운 말인 ‘일본어를 빨리 해독하는 책’이란 뜻이 있는데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 10년 만에 돌아온 강우성이 지은 책입니다.
1177. 돌로 만든 악기 편경을 아십니까? 세상의 악기들은 금속, 나무, 가죽 따위의 재료를 써서 만듭니다. 그런데 그런 재료가 아닌 돌을 써서 만든 악기가 있는데 바로 편경(編磬)입니다. 편경은 석회암과 대리석이 섞인 돌을 갈아 “ㄱ”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6개씩 두 줄(12율), 또는 8개씩 두 줄(12율 4청성)로 매달아 쇠뿔로 된 각퇴로 쳐서 소리를 냅니다. 돌로 만든 편경은 다른 악기와 달리 온도와 습도 등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음이 변하지 않아 조율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편경은 아악에서 표준악기의 구실을 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악사들은 전쟁이 나면 우물에 숨겨 놓고 피난을 갔습니다. 다른 악기가 파괴돼 없어져도 편경만 있으면 이로부터 여러 악기를 복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종임금은 박연도 확인하지 못한 편경의 잘못된 음을 잡아내어 절대음감의 소유자임이 밝혀졌습니다. 그 절대음감이 훈민정음 창제에 큰 몫을 했다고 학자들은 얘기합니다.
1176. 표절∙복제의 토박이말 “등글기” 가수가 노래를 표절하고, 학자가 논문을 베끼고, 남의 그림을 흉내 내 그리고 기술을 훔쳐 특허를 냅니다. 또 최근엔 동물을 복제하고, 사람의 장기를 복제하려 합니다. 이 표절과 복제의 토박이말은 “둥글기”입니다. “둥글기”는 그림을 새로 그리지 않고 이미 그려진 그림을 그대로 본뜨는 일, 또는 그렇게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특히 초보 화원이 그림공부를 위해 그림을 흉내 내는 것도 “등글기”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인 것처럼 베끼는 것을 통해 여러 가지 그리는 기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창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그런 “등글기”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남의 그림이나 글, 기술을 훔쳐 베껴서 자신의 것인 양 세상에 내보이며 자랑하고 이익을 챙기는 “등글기”는 큰 잘못입니다. 또 복제하여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에 쓴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장담할 수 없으니 문제이지요. 참고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박남일, 서해문집
1175. 이론논쟁에 빠지지 말고 실천하라 조선 중기 학자 남영 조식은 퇴계 이황에 견줄만한 대학자였습니다. 그는 벼슬을 거부하고 평생 처사로 지냈지만 명종임금과 대비 문정왕후 비판 상소를 올리고 대학자 퇴계를 비판할 정도로 꿋꿋한 인물이었습니다. 실천하는 선비정신을 가르쳐 제자 중에는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많았습니다. 그는 지리산 기슭으로 들어가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강학(講學)에 힘썼지요. 조식은 “요즘 학자들이 인성과 천명을 말하나 실행이 부족한데 이것은 마치 시장을 지날 때 진기한 보물을 보고 비싼 값만 따지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를 버리고 천지자연의 이치를 논하는 것은 한갓 입에 발린 이치이며, 자신을 반성하여 실천에 힘쓰지 않고 견문과 지식이 많은 것은 바로 입과 귀로만 하는 학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에 그의 가르침은 두고두고 새겨야 할 덕목입니다.
1174. 17~18세기 조선 도자기는 어떤 수준이었나? 며칠 전 얼레빗에서 박제가의 북학의에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지극히 거칠다. 주둥이가 비틀어지고 추하여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당시 조선 도자기가 어떤 수준인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최근 문화재청이 국보 지정 예고를 한 달항아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짐작합니다. 이 달항아리는 "크기가 대형인 탓에 한 번에 물레로 올리지 못하고 위아래 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인 것으로 만들고 굽는 것이 매우 어렵다. 순백의 미와 균형감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백자의 독특하고 대표적인 형식이다."라고 평가 됩니다. 예술품은 크거나 화려하다고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도자기들은 비교적 작고 어떻게 보면 못생겼지만 그것이 더 큰 예술적 가치로 인정받습니다. 달항아리는 약간 찌그러진 듯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아름다움의극치라는 것입니다.
1173. 성호사설을 쓴 이익이 본 담배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백과사전류의 책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쓴 실학파의 중심인물 이익은 그 책에서 담배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말합니다. 책에는 “담배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광해군 말년부터였는데, 세상에 전하기는 남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 담파국(湛巴國)이란 나라에서 들어온 까닭에 담파라 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기서 담파는 담배의 포르투갈어 ‘타바코(tabacco)’의 음역이라고 합니다. 이익은 담배가 가래침이 목구멍에 붙어 뱉어도 나오지 않을 때, 구역질이 나면서 침이 뒤끓을 때, 먹은 것이 소화되지 않을 때 등에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으로는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 듣고 보는 것까지 헤쳐서 머리가 희어지고 얼굴이 늙어지며, 이가 일찍 빠지는 등 해로움이 훨씬 많다고 말했습니다. 또 냄새가 고약한 점, 재물을 없애는 점, 담배 구하기에 급급한 세태 등은 더욱 문제라고 말합니다.
♣ 책 이름 공모잔치 ♣그동안 써왔던 전통문화 관련 글들을 모아 책을 내려고 현재 편집 중입니다.2000년부터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560여 편의 글 중일반 대중에게 흥미롭고 유익한 것들을 골라 단행본에 맞게 고쳐 책을 내는 것입니다.그런데 책은 내용 못지않게 이름도 중요합니다.하지만 적당한 책 이름을 고르지 못해 고심하고 있습니다.이에 책 이름을 공모합니다.잔치 이름 : 전통문화 책 이름 짓기 제시된 머리말과 차례를 참고하여 책 내용에 맞게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잔치 기간 : 2007년 11월 1일 ~ 2007년 11월 15일응모할 곳 : sol119@empal.com발 표 : 2007년 12월 1일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누리집(www.solsol21.org)에 발표 상을 받을 분들에게는 별도로 알려 드림시상 내용 : 으뜸상(1명) 푸른솔생활한복(20만원 상당) 1벌 버금상(3명) 5인다기 각 1벌 딸림상(10명) 펴낼 책 각 1권▶ 참고할 머리말과 차례 보기(http://www.solsol21.com/bbs/view.php?id=article&no=99) 푸 른 솔 겨 레 문 화 연 구 소
1172. 세종영릉의 능역 정화비의 엉터리 글 여주의 세종영릉에 가면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데 그 아래에 “세종대왕 능역 정화비”가 있습니다. 그것을 잘 읽어보면 “나라에 독특한 글자 없음을 한탄하시어”라는 부분이 보입니다. 하지만 세종임금은 독특한 글자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백성이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것을 개탄하시어 만든 글자입니다. 그런데 세종이 잠들어 계신 영릉의 능역 정화비에 이렇게 새기다니 한심한 일입니다. 그 정화비에는 그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 분부를 내리셨다. ~ 이 뜻을 받들어”라는 글귀도 보입니다. 아무리 군사독재 시절의 작품이라 하지만 아부의 정도가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1975년”을 “一九七五년”이라고 한자를 쓴 것도 눈에 거슬립니다. 세종영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잠들어 계신 곳인데 이런 잘못이 방치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