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1돌 한글날, 영어에 숨 막혀 “나라말지키기서명운동” 시작 ▲ 우리에게 위대한 한글을 만들어주신 세종임금의 동상 ⓒ 김영조우리나라는 지금 누구나 정보통신(IT)강국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것은 한글이 으뜸으로 큰 몫을 했다고들 말한다. 한글이 그 어떤 글자보다 정보통신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특히 휴대전화와 컴퓨터 자판에는 알파벳보다 한글이 훨씬 잘 맞는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영자 자판과 비교할 때 그 운용체계가 훨씬 합리적인 까닭이다. 예를 들면 '널 사랑해'와 'I love you'를 견주어보면 자모음의 자소 자체는 한글은 10자, 영어는 8자로 영어가 적다. 그러나 실제 휴대전화 자판 누르는 횟수를 보면 한글은 18번, 영문은 커서를 옆으로 옮기는 것을 제외하고도 26번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컴퓨터에서 한글 자판은 왼쪽은 자음, 오른쪽은 모음으로 확연히 갈라져 배우기 쉽고 치기 쉬운데 영어는 모음 글쇠 위치가 일정한 규칙이 없고 실제 칠 때도 ‘read'처럼 오로지 왼손으로만 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영문 자판을 쓰면 한글로 쓸 때보다 컴퓨터 증후군, 곧 어깨가 결리는 일이 잦다고 알려졌다. ▲ 컴퓨터와 휴대전화 자판에 한글은 가장
1161. 단풍에 못지않은 억새의 아름다움 10월을 맞아 온 산은 단풍으로 물듭니다. 하지만 단풍의 아름다움에 못지않은 가을 정취가 억새에도 있습니다. 억새는 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산과 들에 1~2미터 크기로 자랍니다. 물가에 자라는 갈대와는 같은 벼과지만 다른 식물이며, 억새는 잎 가운데에는 길게 흰빛의 줄이 있습니다. 포천 명성산, 정선 민둥산, 울산 울주군의 신불산, 경남 창녕의 화왕산, 전남 장흥의 천관산 따위의 억새밭이 유명하지만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옆의 하늘공원은 2002년부터 억새축제를 합니다. 억새의 잎 가에는 날카로운 톱니가 있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손을 벤다고 하여 “억새에 손가락 베었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대수롭지 않은 상대에게 손해를 보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가을 억새를 보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1160. 고구려 벽화에 있는 다양한 악기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다양한 악기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삼실총의 완함(阮咸), 5회분 4호묘의 녹고(腰鼓), 무용총의 횡적(橫笛:젓대), 강서대묘의 대각(大角:쌍나팔), 집안 17호묘의 각(角:나팔)과 현금(玄琴), 장천 1호묘의 횡취(橫吹)·비파·거문고(玄琴)·완함·대각·장소(長簫) 등이 보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악기의 모습에서 고구려 귀족의 멋과 사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악기의 그림을 놓고 고구려 벽화가 전기에는 '인간의 향락'을 후기에는 '천당을 갈망'하고 있다는 얘기도 합니다. 더욱이 탄쟁(彈箏)·와공후·비파·적·녹고 등이 서역이나 중앙아시아계통의 악기라는 사실에서 당시의 활발한 동서문물 교류현상을 확인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겨레가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儛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등 예부터 악가무와 함께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악기가 벽화에 등장하는 것은 그 증거의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말 지킴이에 ‘김텃골돌샘터’, 헤살꾼에 제주지원위원회 '2007년 우리말 지킴이와 헤살꾼' 발표 ▲ 지난해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말 지킴이와 헤살꾼을 발표하는 운영위원들 ⓒ 김영조 충남 태안에서는 “뜰에새봄결”이란 약국이 있다. 그 약국은 ‘김텃골돌샘터’ 씨가 아내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그는 대만과 중국에서 유학을 했을 때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쓰니까 중국 사람들이 중국식으로 발음하여 다른 이름이 되는 것에 놀라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온 식구 이름을 토박이말로 지었는데, 남편은 ‘김텃골돌샘터’, 아내는 ‘강뜰에새봄결’, 아들은 ‘김빛솔여울에든가오름’, 딸은 ‘김온누리빛모아사름한가하’다. 그는 자그마치 여섯 차례나 재판을 해서 식구들의 긴 이름을 정당하게 쓸 수 있게 하였고, 여권, 주민등록증, 그리고 학교의 출석부에도 물론 이렇게 긴 이름들이 올라 있다. 알면 알수록 한글에 매력을 느낀다는 그는 이웃에 아이들 이름, 상호 등을 종종 지어줬다고 한다. 그런 뜻을 높이 사서 (공동대표 김경희 김수업 김정섭 이대로, 이하 모임)은 올해의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았다.▲ 2007 우리말 으뜸 지킴이에 뽑힌 김텃골돌샘터 씨 가족 ⓒ 김텃골
1159. 우리 겨레의 색 흰빛은 좋은 상징 서양에서는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흰색을 미개하고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고, 흰빛을 더럽히는 것을 싫어할 만큼 흰색을 정말 좋아했지요. 일제강점기 때는 장터 들머리에 먹물을 담은 솥을 걸어놓고 흰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끼얹기도 했지만 흰옷을 입으려는 배달겨레의 생각은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속담에서도 흰색은 좋은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흰 사슴이 나타나면 상서로운 일이 생긴다.”, “아침에 흰 말을 보면 그날 돈이 생긴다.”, “흰 꿩이 나타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 “꿈에 백발이 되면 그 해에 근심없이 생활한다.”, “흰 옷을 입으면 남의 초대를 받는다.”, “손톱에 흰 점이 생기면 재수가 좋다.” 등이 있지요. 물론 흰색과 함께 파랑, 빨강, 검정, 노랑의 오방색도 즐겨 썼지만 이처럼 흰색은 우리 겨레의 기질과 심성을 그대로 담은 민족의 빛깔이라 할 수 있습니다.
1158. 서양 것을 일방적으로 들여온 발색꾼 근대 이후 우리나라 학문은 서양 것의 일방적인 수입만 있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이기상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서양이 중심이 되어 획책하는 합리성 일변도의, 존재 일변도의, 과학기술 일변도의 생활태도와 사유방식의 강요는 종말을 고해야 한다. 이제는 모든 민족, 모든 나라의 문화가 저마다 독특한 향기와 빛깔을 지닌 꽃들을 활짝 피워 하나뿐인 지구를 아름답게 수놓고 문화 다양성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잃어버린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또 세종대학교 정현기 교수는 서양 지식을 무조건 한국에 퍼붓는 학자나 예술인들은 “발색꾼”이라고 꼬집습니다. “발색꾼”은 토박이말로 “검정새치”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발색꾼 곧 검정새치를 솎아내고 우리의 뿌리를 확고히 해야 할 때입니다. 이기상 교수와 정현기 교수는 그것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지적합니다.
1157. 자연∙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야말로 풍요로운 삶 경남 산청군에 사는 전통 집짓기 목수 박충수 씨 부부는 큰 욕심이 없습니다. 이들 부부에게는 감나무가 17그루나 있어서 많은 곶감을 만들 수 있지만 부부가 딴 감은 50 접이 채 안 될 정도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떨어지면 그대로 두고 높은 데 것은 굳이 따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은 까치가 겨울을 날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감나무는 일곱 가지 덕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약을 치니 감나무에 병충해가 생기고 이를 막으려 또 약을 칩니다. 사람의 욕심이 감나무와 사람의 생명을 훼손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강조하는 이 말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욕심은 결국 자신의 삶을 앗아갈 것입니다. 자연과 이웃이 더불어 사는 삶일 때 오히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산다는 것을 깨달아 합니다.
1156. 조선시대 종로에 있던 육의전을 아십니까? 조선시대 한성 종로를 중심으로 중앙 간선도로 좌 ·우에 가게를 지어 상인들에게 빌려주고, 그들로부터 세금을 받던 여섯 종류의 큰 상점 육의전(六矣廛)이 있었는데 육주비전 ·육부전 ·육분전 ·육장전 ·육조비전 ·육주부전으로도 불렀습니다. 이들에게 일종의 노점상인 난전(亂廛)을 단속하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는 독점적 상업권을 주는 대신, 궁중 ·관청의 수요품, 특히 중국으로 보내는 진헌품(進獻品) 조달도 부담시켰지요. 현재 탑골공원 삼일문 왼쪽에 육의전 터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육의전에는 비단가게인 선전(線廛), 무명가게인 면포전(綿布廛), 명주가게인 면주전(綿紬廛), 종이가게인 지전(紙廛), 모시·베 가게인 저포전(苧布廛;), 생선가게인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의 6가지가 있었지요. 육의전이 가진 특권은 1890년(고종 27) 청나라와 일본 상인들의 침투로 상품독점권을 완전히 잃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값싼 상품이의 밀려와 몰락했습니다.
1155. 훈민정음은 가림토문을 베낀 것? 한글과 세종에 관해 잘못된 지식을 사실인 양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훈민정음이 세종의 작품이 아니라 가림토문을 베낀 것이라든지, 세종은 지시만 내리고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훈민정음을 오래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그런 말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세종은 어떤 신하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언어지식으로 정의공주와 왕자들만 도우미로 참가시킨 비밀프로젝트였습니다. 집현전 학자 중에도 부제학 최만리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으며, 협력한 학자라 해도 반포 이후의 작업에 한정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분명히 반대에 부딪혀 창제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종은 당시 전해오던 가림토문이나 산스크리트어, 한자 등 다른 언어를 집중 분석하여 우리에게 맞는 글자를 창제한 것입니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한글과 세종을 깎아내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1154. 한글날에 생각해본 가슴 아픈 이야기 최근 대학에서는 영어와 관계없는 학과도 영어로 강의하는 데가 생깁니다. 그런가 하면 국어국문학과 교수 임용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 나라의 언어정책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에서 학예연구사를 뽑았는데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언어 철학자인 박영식 전 문교부장관은 “한 명문대 교수가 일본 유명대학에 가서 우리 학교는 영어강의가 30%인데 앞으로 50%까지 늘일 예정이라고 했더니 일본인 교수는 우리는 별로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세계화 바람 속에 살아남으려면 우리 것, 우리말을 명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글날을 맞아 온종일 “나라말지키기서명운운동”을 하면서 격려를 주시는 시민들에게 용기를 얻기도 했지만 영어 때문에 짓밟히는 우리말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