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인사 온 겨레의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보름달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바라볼 때 더 크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늘 보름달 같은 나날 되기를 비손합니다. = 그림 이무성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1142. 한가위의 시절음식 송편이야기 '설에는 옷을 얻어 입고, 한가위에는 먹을 것을 얻어먹는다'라는 우리나라 옛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가위는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이므로 여러 가지 시절 음식이 있습니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 시루떡, 인절미, 밤단자를 시절 음식으로 꼽았는데, 송편에 꿀송편, 밤송편, 깨송편, 콩송편, 대추송편 따위가 있지요. 또 경상도 지방에서는 모시잎을 삶아 넣어 빛깔을 낸 모시잎 송편, 강원도 지방에는 감자송편이 있고 또 쑥송편, 치자송편, 호박송편, 사과송편, 녹차송편 등도 별미입니다. 송편에는 솔잎을 깔아 맛뿐 아니라 향과 시각적인 멋도 즐겼는데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가 다른 식물보다 10배 정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 등에 좋다고 합니다.
1141. 보름달에는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보름달을 보고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는 방아 찧는 상상만 해도 풍요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인도,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달에서 토끼를 보았고, 유럽에서는 보석 목걸이를 한 여인의 옆얼굴, 책 또는 거울을 들고 있은 여인을 상상했다고 합니다. 두꺼비, 당나귀, 사자의 모습을 생각한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보름달이 뜨는 날은 정월대보름과 한가위처럼 풍요로운 큰 명절이지만 서양에서 달은 주로 마귀할멈이나 늑대인간 등 무시무시한 악령과 연관된 핼러윈데위 등 귀신의 날입니다. 서양에서는 달의 영기를 받으면 미친다고 여겨 미친 사람을 '달의 영기를 받은 사람(lunatic)'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똑같은 사물을 놓고도 다른 전혀 문화가 생깁니다. 그래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불어 사는 평화를 얻습니다.
1140. 친구는 벗, 너나들이, 옴살로 바꿔쓰자! 피붙이는 아니지만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예전엔 벗, 동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흔히 한자말 ‘친구’라고 합니다. ‘친구(親舊)’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친구’의 두 번째 풀이는 ‘나이 비슷한 사람이나 별로 달갑지 않은 상대방을 가볍게 또는 비하(卑下)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친구는 별로 좋지 않은 말이 아닐까요? 그보다는 ‘비슷한 나이에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의 ‘벗’이나, 어떤 일에 짝이 되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동무’가 더 좋을지 모릅니다. 옛날엔 또 붕우(朋友), 우인(友人), 친고(親故)라는 말도 썼습니다. 토박이말로 이와 비슷한 것에 나이 차가 조금 나지만 서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인 ‘자치동갑’, 서로 ‘너’, ‘나’하고 부르며,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인 ‘너나들이’, 마치 한 몸같이 친하고 가까운 사이인 ‘옴살’도 써보면 좋은 말들입니다.
1139. 전래놀이들, 겨레의 슬기로움이 녹아있어 조선시대엔 가장 인기있었던 ‘쌍륙놀이’를 비롯한 민속놀이가 천 가지도 넘었다는데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빠진 나머지 예부터 전해오던 우리의 전래놀이를 거의 잊어갑니다. 그것은 결국 아이들에게서 건강성을 빼앗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라는 전래놀이 책을 쓴 김종만 선생은 “우리의 전래놀이들은 우리 겨레의 삶과 슬기로움이 무르녹아 있다”고 하며 그 전래놀이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래놀이 가운데 ‘공기놀이’를 보면 던지고 받을 때 판단력과 민첩성을 기르며, 땅바닥에 손바닥을 비비는 것은 흙과 친숙한 자연의 삶을 가르치는 것이고, 손등과 손바닥은 돌과 흙에 닿으면서 경락을 자극하여 건강한 몸을 지켜줍니다. 또 던지고 받고 꺾으면서 수 개념과 공간 지각력이 저절로 생기고, 손재주를 키우는 종합적이고 전인적인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참고 : ≪잘 놀아야 철이 들지≫, 김종만 지음․이태수 그림, 바보새
1138. 콩나물 한 움큼, 고사리 한 모숨 손으로 양을 재는 말들이 있습니다. 먼저 두 손가락으로 조금 쥐면 ‘한 자밤’입니다. 또 콩이나 좁쌀처럼 매끄러운 알갱이를 손으로 가득 쥐면 ‘한 줌’, 길고 가는 고사리는 ‘한 모숨’씩 쥡니다. 그리고 무말랭이나 콩나물을 덥석 쥐면 ‘한 움큼’이지요. 그런데 큰 손으로 쥐면 '움큼‘, 작은 손으로 쥐면 ’옴큼’입니다. 이 말은 ‘물렁거리다’와 ‘말랑거리다’처럼 큰말, 작은말 차이입니다. 지금이야 계량기나 저울을 많이 쓰지만 예전 어머니들은 요리를 하실 때 손을 계량기로 쓰셨지요. 식품들 세는 단위도 알아볼까요? 김은 ‘한 톳, 두 톳’, 굴비는 ‘한 두름, 두 두름’, 북어는 ‘한 쾌, 두 쾌, 고등어나 명태는 두 마리씩 짝을 지어 ’한 손, 두 손‘입니다. 참 ’쾌’는 엽전 열 냥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괘‘는 한자로 ’관(貫)‘을 말하는데 북어도 엽전 꾸러미처럼 꿴다는 뜻이겠지요. 참고 : ≪재고 세고!≫, 박남일, 길벗어린이
1137.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 황정승이 말렸다 조선시대 성균관은 최고 교육기관이었는데 500년 조선 역사를 통해 이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가 96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위는 우선 편전 앞에서 “아이고” 상소를 합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으면 수업을 거부하고 밥을 먹지 않는 권당(捲堂)을 합니다. 이래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이젠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공관(空館)입니다. 이러면 임금의 통치력에 커다란 결함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일이 됩니다. 세종 때 임금이 대궐 안에 불당을 세우자 성균관 유생들이 공관을 감행했습니다. 그러자조정에서 이들에게 갖은 압력과 회유를 했지만 공관을 풀지 않자 나이가 여든이 넘은 황희 정승이 유생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한 끝에 겨우 해결했습니다. 시위를 한 유생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세종임금의 너그러움과 노정승의 노력으로 해결했습니다.
1136. 물봉선, 고마리, 미나리, 아름다운 들꽃 사적 제194호 헌인릉은 조선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인 헌릉과 순조와 그의 비인 순원왕후 김씨의 능인 인릉을 같이 부르는 말입니다. 그곳에는 오리나무 숲으로 된 생태보전지구인 습지가 있고, 그 습지엔 물봉선, 고마리, 미나리 따위의 들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이 꽃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토종 들꽃입니다. 물봉선은 물봉숭아. 물봉숭, 털물봉숭. 등으로도 불리며, 물가 습지에서 자라고, 8~9월에 꽃이 핍니다. 노랑물봉선은 노랑물봉숭. 수금봉이라고도 하며, 물가 습지에서 자라고, 6~9월에 꽃이 핍니다. 또 고마리는 고만, 조선고마리. 고만잇대. 고맹이풀이라고도 하며, 양지바른 곳이나 물가 습지에 자라는데 8~10월에 꽃이 피는 한해살이 덩굴풀입니다. 그리고 미나리꽃은 먹거리로 많이 쓰지만 습지에서 자라고, 키는 20~50센티미터이며, 7~9월에 흰색 꽃이 핍니다. 들꽃 사진 모두 보기 ▶ [사진] 물봉선·고마리, 헌인릉 습지에 피었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12706&PAGE_CD=
1135. 옛날엔 긴급상황을 어떻게 알렸을까? 봉수는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 불을 올려서 변경의 긴급한 정황을 알리는 옛 신호방법입니다. 우리나라 봉수제도(烽燧制度)의 기원은 가락국 수로왕(首露王)이 그 왕비를 맞아들일 때 봉화를 쓴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방상 필요에 의해서 봉수대를 쌓고 군사를 배치하여 조직적으로 운영한 것은 고려 의종 3년(1149) 때부터입니다. 봉수는 동북쪽은 경흥, 동남쪽은 동래, 서북쪽은 강계와 의주, 서남쪽은 순천 등 5군데를 기점으로 서울의 남산에 집결되었습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조선시대 온 나라의 봉수대 수는 650여 곳이고, 각 봉수대에는 40∼50명의 군사가 지킵니다. 또 봉수대 가까이 사는 백성은 봉수 재료인 싸리나무를 베어 껍질을 벗긴 다음 햇볕에 말려 두었다가 바쳤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엔 보부상이 봉수를 보조했는데 그들은 봇짐과 등짐으로 이 시장에서 저 시장으로 옮겨가며 장사를 하면서 문서나 말로 통신을 전하였습니다.
1134. 한지로 만든 장미등 꽃밭 지난 토요일엔 에 다녀왔습니다. 이 는 정부 차원이 아니라 원주시민연대가 주관하는 것으로 시민들이 준비하고 진행하며, 마무리까지 합니다. 하지만, 어떤 축전보다도 알찼습니다. 전시장엔 한지로 만든 양복과 드레스, 팬티와 넥타이, 양말까지 있었습니다. 한지로 만든 섬유제품은 일반 옷감에 견주어 내구성도 떨어지지 않고, 여러 가지 기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화살도 뚫지 못한다는 한지의 대단함입니다. 체험마당에서는 한지뜨기를 보여주고, 한지뜨기와 각종 한지공예를 직접 해볼 수 있게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한지체험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외국인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고,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5천여 개의 화려한 한지등이 뽐내고 있었고, 장미등 꽃밭도 있었습니다. 한지는 우리 겨레의 위대한 발명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