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5. 백제시대에도 좌변기가 있었다(?) 1959년 3월 부여 군수리에서 오늘날 좌변기 같이 길쭉하게 생긴 변기로 짐작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조선시대 임금이 쓰던 매우틀과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아마도 방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볼 수 있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일을 본 뒤 변기를 들어 올려 내용물을 버렸지 않을까요? 궁궐이나 절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썼을 가능성이 있는 것인데 남성 휴대용 변기로 짐작되는 호자와는 달리 어쩌면 이것은 여성용 변기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앉는 윗부분이 폭이 좁아 그대로 앉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저 쪼그리고 앉아서 누었지 않을까요? 어쨌든 현대의 변기들도 그 원조는 백제였을지도 모릅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신발의 주위에 못을 촘촘하게 달았던 것이 오늘날의 스파이크신의 원조로 보는 것과 같은 이야기지요.
1094. 조선시대 노비를 사랑한 양녀, 처벌받다. 세종실록 41권, 10년 9월 3일자 기록입니다. “양녀 가이는 노비 부금과 간통하여 자식까지 낳았는데, 관에서 양민이 천인과 서로 혼인했다 하여 이혼시켜 왜놈 손다에게 시집보냈습니다. 그 뒤에 가이가 부금과 이웃 사람 이내근내와 함께 손다를 죽였사오니, 가이는 율에 의하여 능지처참해야 할 것이오나, 관의 처분에 따라 남편을 떠나 왜놈에게 시집간 것이어서, 음란하고 방자해서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오니, 청컨대 교형에 처하고, 부금은 참형에 처하고, 내근내는 교형에 처하소서.” 가이는 어려서 부모가 죽자 집안의 노비인 부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이 들어 혼인하여 자식까지 낳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철저한 신분사회로 신분이 다른 사람과는 혼인을 할 수 없었는데 양반인 남자가 천민을 첩으로 들일 수는 있지만 그 반대는 안 되었습니다. 가이는 신분제 사회에 산 까닭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가 없었습니다. 참고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이수광, 다산초당
1093. 여름나기의 하나 탁족, 발을 세탁한다? “복날 더위가 더욱 심하온데 형체 어떠하오시니잇가. 제(弟)는 서증(暑症)으로 앓고 지내옵다가 요사이야 적이 낫사오나 더위가 너무 괴롭사오이다. 마침 주효(酒肴, 술과 안주)가 있삽기 통(通)하오니 산수 좋은 곳에 가 탁족(濯足)이나 하오면 어떠하리잇가.” 위는 ‘언간독(諺簡牘)’이라는 조선시대 한글로 편지 쓰는 법이 제시된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복날을 맞아 아우가 형에게 안부를 묻고, 술과 안주를 가지고 경치 좋은 곳에 가 탁족을 하자고 청합니다. 탁족은 언간독에도 있을 정도로 옛 사람들의 여름나기의 한 방법입니다. ‘탁족’은 언뜻 들으면 ‘발을 세탁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조선시대 점잖은 사대부들은 옷을 훌렁 벗지 못하고, 물에 발만 담그고 더위를 쫓았습니다. 여러분도 더운 여름날 혹시 탁족 한번 해보셨나요?
1092. 술을 좋아했던 조선시대의 화가들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들은 대부분 술을 즐겼다고 합니다. 조선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는 술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섭섭해 할 정도였는데 ‘취화사(醉畵史)’란 호를 붙이고 살았습니다. 특히 친구 이인문이 그린 ‘송하담소도’에 천하의 단원이 글을 썼는데 ‘종남별업’이란 시 3ㆍ4행과 5ㆍ6행을 바꿔 써넣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달마도’를 그린 김명국은 못 말리는 ‘주당’이었는데 호를 취옹(醉翁, 술 취한 늙은이)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의 그림은 술냄새가 진동합니다. 권력자가 그림을 그리라고 강요하자 송곳으로 눈을 찔러버려 애꾸가 되어버린 최북은 결국 눈밭에서 술에 취해 얼어 죽었습니다. 탁족도를 그린 이경윤은 ‘수하취면도’에서 술에 취한 채 바위에 기대 낮잠을 즐기는 선비를 그렸고, 김후신은 만취한 선비가 흐느적거리면서 ‘갈 지’자로 걷고 친구들이 부축하는 그림 ‘대쾌도’을 그렸습니다.
1091. 한글로 만든 중국어 자판, '중국 표준' 될까? 안마태 신부님은 한글을 활용한 중국어 자판 “안음 3.0”을 개발했습니다. 지난 7월 3일 중국 연길에서 열린 '07 다종언어 정보처리 국제학술대회'에서 안음 3.0을 시연하여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현재 '중국의 역사를 바꿔놓을 작품'이라는 표현과 함께 중국어 표준자판 이야기도 나온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등소평'이라는 이름을 자판에 치면 '鄧小平'이라는 글자 하나하나를 차례로 찾아내 치는 대신 그것의 중국식 발음인 '덩샤오핑'을 한글로 치는데 그러면 '鄧小平'이라는 이름이 한자로 뜨면서 스피커로 소리가 납니다. 소리글자인 한글이 뜻글자인 한자의 발음기호 역할을 해주며, 또 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 속에 '鄧小平'이라는 낱말이 입력돼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기존 방식에 비해 3배 정도 빠르다고 합니다. 이제 중국인들이 한글로 컴퓨터를 치고 휴대폰을 두들길 날도 멀지 않을 듯합니다.
1090. 한여름 밤의 또 다른 부인 '죽부인‘ 옛 사람들의 여름나기에는 탁족, 모시옷, 이열치열 등 다양했으며, ‘죽부인’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죽부인은 대를 쪼개어 매끈하게 다듬어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침구의 하나입니다. 무더운 여름밤, 안고 자기에 알맞아서 죽부인이라고 했는데 죽부인을 가슴에 품고 자면 대나무의 차가운 감촉뿐만 아니라 솔솔 스며드는 시원한 바람에 저절로 깊은 잠에 들 수 있습니다. 품었을 때 찔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끈이나 못, 철사 따위를 전혀 쓰지 않고 만듭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의 글 '임하필기'에 보면 "무더운 여름 평상에서 죽부인을 두고 수족을 쉰다. 그 가볍고 시원함을 취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죽부인은 어머니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의 것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예의였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관속에 합장하거나 불에 태웠다고 합니다.
1089. 조선시대에도 유행이 있었다. “몸과 머리털 그리고 피부 모두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효의 시초이다. 우리나라의 젊은 사내들이 귀를 뚫고 귀걸이를 달아 중국 사람에게 비웃음을 사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후로는 오랑캐의 풍속을 일체 고치도록 안과 밖에 타일러라. 서울은 이달을 기한으로 하되 혹 따르지 않는 자는 헌부가 엄하게 벌을 주어라.” 선조실록 6권, 5년(1572년) 9월 28일자의 기록입니다. 젊은 사내들이 귀걸이 하는 풍조가 얼마나 심했으면 어명으로 금하도록 했을까요? 이것이 사내들의 대표적인 유행이었다면 아녀자들은 조선 초 저고리가 엉덩이를 덮을 만큼 길었다가 조선 말기로 가면서 극도로 작고 짧으면서 치마는 풍성한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또 소매가 너무 좁아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지고, 길이가 너무 짧아 가슴을 가리기조차 힘든 것은 물론 혼자는 입을 수도 없었습니다.
1088. 세종은 어떻게 양녕대군을 제치고 임금이 되었나? 과연 세종은 밤낮으로 책만 읽은 공부벌레였는지, 태종이 그를 세자로 선택하면서 “정치를 안다”고 했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지,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허다한 대선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는 요즘,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뽑아야 할지를 알고 싶지 않은가요? “제왕학은 왕위 된 후의 통치술에 관한 것이지, 왕위에 오르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세종이 양녕대군을 제치고 임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그 ‘까닭’과 ‘기술’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에서는 이런 내용으로 2007년 세종실록학교를 오는 7월 19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엽니다. 강의는 박현모 교수 등 세종시대를 전공한 5명의 학자들에 의해 매주 목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5시 30까지 6주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1087. 소나무 베는 것을 금하지 말라. 성종실록 6권, 1470년 6월 5일자 기록에는 “흉년에 가난한 사람을 구하는 채식으로는 소나무 껍질만한 것이 없는데, 소나무를 베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이제 그것을 각 지방에 알려 금하지 말도록 하라.”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그만큼 소나무는 껍질로 가난한 사람도 구제하는 귀중한 나무였습니다. 예전엔 우리 겨레는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고, 태어난 아기를 위해 솔가지를 매단 금줄을 쳤으며, 소나무 장작불로 밥을 해 먹었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잠을 잤습니다. 가구를 만들고, 송편을 해 먹었으며, 솔잎주와 송화주, 송순주를 빚었지요.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어 먹고,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茯笭)은 약제로 쓰이며, 송이버섯은 좋은 음식재료입니다. 그리고 죽을 때는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나무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1086. 더위를 극복하는 슬기로움, 이열치열 무더운 여름날 우리 겨레는 더위를 극복하는 데 ‘이열치열(以熱治熱)’을 더 많이 활용했습니다. 복날이면 뜨거운 삼계탕 등으로 몸보신을 했고, 양반들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김매기를 도왔지요.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여름철이면 사람 몸은 외부의 높은 기온 때문에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피부 근처에 다른 계절보다 20∼30% 많은 양의 피가 모이게 됩니다. 이에 따라 체내의 위장을 비롯하여 여러 장기는 피가 부족하게 되고 몸 안의 온도가 떨어지는데, 이렇게 되면 식욕이 떨어지면서 만성피로 등 여름 타는 증세가 나타나기 쉽습니다. 이때 차가운 음식만 먹게 되면 배나 장기가 더욱 차가워져 건강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따뜻한 음식으로 장기를 보호해 주는 것이 ‘이열치열’이라는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