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이름에서 한자만 떼어냈다 "한자이름에서 한자 떼어내는 일 내 자존심이었다" [대담] 개명허가를 받은 이봉원 ▲ 대담을 하는 이봉원 ⓒ김영조 - 개명허가신청을 내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는가?"주민등록증에 이름이 한자로만 적히던 시절, 내 주민등록증에는 오랫동안 내 이름이 아닌 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가운데 이름이 '鳳'(봉)자가 아닌 '風'(풍) 자가 적힌 채 발급됐던 것이다. '鳳' 자를 어느 유식한(?) 동사무소 직원이 약자랍시고 '風' 자의 약자를 쓴 것인데 '几' 속에 '又'를 쓰면 그런대로 '鳳' 자의 간체자가 되지만, 획이 하나 없는 'X' 자를 썼기 때문에 '風'의 약자(간체자)가 돼 버렸다.물론 나는 잘못된 줄 모르고 오랫동안 그것을 사용했고, 그 뒤로 어느 정부 기관에서도 내 주민등록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적이 없었다. 그런 중에 중국에 가서 중국 간체자를 대면한 순간 이름이 잘못됐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이때부터 나는 이름에서 한자를 떼어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 그래도 세상엔 관습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혼란스러움을 만들지 않을까?"한자 이름은 전해 내려온 관습일 뿐이고, 현대 사회
1085. 복날은 더위를 정복하는 날 1614년에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적인 책 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음양오행’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火)'의 기운, 가을철은 '금(金)'의 기운인데 가을의 '금‘ 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초복, 중복, 말복'이라고 합니다. ,br>또 최남선의 에는 복날을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서기제복에서 ‘복(伏)’은 꺾는다는 뜻으로, 복날은 더위를 꺾는 날 즉, 더위를 피하는 피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더위에 지치기보다는 더위를 극복하는 옛 시림들의 슬기로움을 배워보면 좋겠습니다.
1084. 내일은 초복, 복날에 먹는 시절음식들 내일은 복더위의 시작인 초복(初伏)입니다. 옛 사람들은 삼복에 '북놀이’라는 것을 했는데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 모여서 술을 마시는 회음(會飮), 더위를 물리치려고 개고기국을 끓여먹는 복달임이 그것입니다. 복날의 시절음식으로 삼계탕도 즐겨 먹었고, 팥죽을 쑤어 초복에서 말복까지 먹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국수를 아욱과에 딸린 한해살이풀인 어저귀국에 말아먹거나 미역국에 익혀 먹기도 하고, 호박전을 부쳐 먹거나 호박과 돼지고기에다 흰떡을 썰어 넣어 볶아 먹기도 하는데, 모두 여름철의 시절음식으로 먹는 소박한 음식들입니다. 이밖에 닭죽, 육개장, 영계를 곤 국물인 임자수탕, 민어국, 염소탕, 장어백숙, 잉어, 오골계, 인삼 등으로 만든 용봉탕, 미꾸라지를 산 채로 뜨거운 물에 끓여 두부 속에 들어가게 한 도랑탕, 미역초무침, 메밀수제비, 죽순, 오골계와 뜸부기, 자라탕, 메기찜 등이 있습니다.
1083. 조선시대의 경로잔치, 기로연 조선시대에는 ‘기로소(耆老所)’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일정자격을 갖춘 국가 원로들을 대접하기 위해 설치한 것입니다. 특히 정2품 이상의 문관(文官) 벼슬을 지낸 사람 가운데 나이가 70살이 넘어야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기로소에 들어온 노인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잔치를 벌였으며, 이를 '기로연(耆老宴)’이라고 했습니다. 기로연은 임금이 직접 잔치를 벌여 위로하는 것으로 ‘기사계첩 경현당석연도’,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사사연(耆社私宴)‘을 통해 숙종 때의 기로연을 살펴보면 정재(呈才:대궐 안의 잔치 때에 벌이던 춤과 노래)와 음악을 베풀었습니다. 기(耆)는 ‘나이가 많고 덕이 두텁다’는 뜻으로 일흔 살이 넘는 노인을 가리켰고, 여든 살이 되는 것을 ‘노(老)’라고 했지요. 이로 미루어보면 70 살이 넘어야 노인이 되는 것이고, 노인은 나이가 많을 뿐 아니라 덕이 두터운 사람입니다.
1082. 미국의 잉여농산물에 밀려난 밀과 목화 6ㆍ25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이때 미국은 밀가루, 면섬유 등 자신들이 먹거나 쓰고 남은 농산물을 우리에게 공짜로 원조해 주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이 구세주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때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준 것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뒤꼍엔 우리의 오랜 문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운도 따랐습니다. 미국의 밀가루가 밀려들어 오자 오랫동안 재배되어 오던 우리밀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우리 체질과 맞지 않는 것은 물론 농약에 범벅이 된 서양밀에 밀려난 것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밀려든 면섬유에 우리의 목화 재배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때부터 목화를 심어 당시만 해도 동아시아 최고의 직조술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1081. 온갖 상징적인 물건이 되는 부채 “하로동선(夏爐冬扇)” 곧, “여름에 난로, 겨울에 부채‘란 말처럼 부채는 겨울에는 쓸모가 없지만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 사람들은 겨울에도 부채를 갖고 다닌다.”라는 구절이 있을 만큼 우리에게는 부채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단오 명절을 맞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부채를 선물하는 것이 세시풍속이기도 했구요. 그러나 부채는 더운 여름 시원한 바람을 얻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부채는 그림을 그려서 감상하기도 하고, 얼굴 가리개로도 씁니다. 특히 판소리에서는 부채는 중요한 소도구입니다. 부채는 활짝 폈다가 접기도 하면서 분위기를 이끄는 용도로 쓰이는데 편지 읽는 대목에서는 편지가 되고, 노를 젓는 대목에서는 노가 되며, 톱질하는 대목에서는 톱이 됩니다. 심봉사가 어린 심청이를 안고 다닐 때는 심청이 이기도 하는 고도의 상징성을 띠는 물건이지요.
1080. 세종이 명나라에 지성으로 사대했다(?) 지난 5월14일 세종학술대회에서 한 발표자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임금이 명나라에 지성사대를 했다고 발표하여 여러 사람의 반박을 받았습니다. 그 발표자가 말한 내용을 보면 세종은 중국 황제가 죽었을 때 사흘만 입어도 되는 복을 27일 동안이나 입었습니다. 또 신하들의 반대에도 명나라의 요구에 응해 중요한 군수물자인 말 3만 마리를 보내고 농사에 지장을 줄까봐 걱정하면서도 소 1만 마리를 보내 겉으로만 보면 분명 사대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발표자는 세종임금의 사대가 훈민정음 창제를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음을 주장합니다. 훈민정음 창제 사실을 명에서 알게 되면 어떻게든 방해를 할 것임을 생각하여 명에 끔찍이 사대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지요. 우리의 세종임금은 백성을 위해 많은 고민 속에서 명나라에 지성으로 사대한 것입니다.
1079. 연길 조선족 동포들의 민족정신 ▲ 중국 연길, 시청 민원실 직원(위)과 호텔 종업원들이 한복을 입고 있다. 지난주에는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분명 중국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호텔의 계산대(프런트)와 손님의 짐을 들어주는 등의 봉사를 하는 직원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연길시는 호텔 종업원뿐이 아니라 시청의 민원실 공무원들도 한복을 입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또 길거리의 도로표지판, 상점의 간판 등에는 모두 한글로 먼저 쓰고 한자를 달고 있었으며,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3세만 되면 우리말을 잊어버리는 데 비해 조선족은 4세까지도 여전히 우리말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족 정체성을 잊으면 한족에 동화되는 것은 물론 그들에게 무시당하는 삶을 산다며, 민족정신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조선족에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1078. 백범의 외침, 문화강국이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위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우리에게 주는 말입니다. 지난 6월 26일은 백범 선생님이 안두희의 흉탄에 돌아가신지 58돌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피눈물 나는 고통 속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선생님이 원하셨던 건 바로 문화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문화정신이 없는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나라를 강하게 하는 것은 군사, 정치, 경제 등 어느 것보다 문화의 힘입니다.
1077. 장대 끝에 앉아 있는 솟대이야기 “높다란 장대 끝에 새가 앉아 있다. 바람은 늘 장대에 닿고, 가녀린 장대를 스쳐 지나면서 잠든 새를 일깨운다. 나무로 만든 새가 하늘로 비상한다. 겨레의 꿈을 안고 날아오를 것만 같다. 도대체 어디서 온 새일까. 어디로 가는 새일까.” 어느 솟대에 대한 글의 일부입니다. 우리나라 마을마다 곳곳에 장대나 돌기둥 위에 올라앉은 나무새나 돌새가 있는데, 이를 솟대라고 불렀습니다. 솟대는 다른 이름으로 전라도에서는 '소주', '소줏대', 함흥 지방에서는 '솔대', 황해도·평안도에서는 '솟댁', 강원도에서는 '솔대', 경상도 해안 지방에서는 '별신대' 등으로 부르며, 짐대, 오릿대, 수살이, 거릿대, 액맥이대 따위로도 부릅니다. 새는 예부터 하늘과 사람과를 소통시켜주는 영령한 짐승으로 믿었기에, 솟대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거나 풍년을 빌며, 경축의 의미로도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