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6. 얼레빗과 함께 쓰던 참빗이야기 우리 겨레의 머릿결을 빗어주던 것으로 얼레빗과 함께 참빗이 있습니다. 참빗이란 빗살이 굵고 성긴 반원형의 큰 빗인 얼레빗과 달리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빗입니다. 얼레빗으로 머리를 대강 정리한 뒤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쓰는 것으로 때로는 머리카락의 때나 이, 서캐 따위를 없애기 위해 쓰기도 했습니다. 대개 대나무로 빗살을 촘촘히 박아 만드는데 빗살도 성긴 것과 촘촘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참빗의 형태는 직사각형이 대부분입니다. 참빗은 예로부터 영암, 담양, 나주, 남원 등에서 만들었으나 현재는 오직 영암과 담양에서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 5대째 참빗을 만들고 있는 영암의 이식우씨와 담양의 고행주씨가 참빗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예전엔 아침마다 어머니가 얼레빗과 참빗으로 딸의 머리를 곱게 빗어 주곤 했지요.
1044. 임금이 농사짓던 창덕궁 연못의 모내기 행사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는 청의정 근처 연못에서 오는 6월 1일 모내기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동궐(東闕, 창덕궁과 창경궁) 내에 백성의 수고로움과 농민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왕이 직접 농사를 주관했던 근농장(勤農場)이라는 곳이 있었지만 현재는 없어졌습니다. 이를 대신하여 언제부터인가 궁궐 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초가지붕 정자인 청의정 근처의 작은 연못에 논을 만들고 임금의 어진 마음을 되새겨 왔다고 합니다. 모내기 행사에 직접 참여하고픈 시민은 창덕궁관리소(☎ 02-3676-3408)로 지원하면 그 중 5명을 선정하여 참여케 할 예정이며, 당일 이른 10시에 옥류천 특별관람을 하면 이 행사를 참관할 수 있습니다. 행사에는 공연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농요와 함께 모내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1043. 사대부들이 갓을 보관했던 갓집이야기 1866년 한국에서 순교한 프랑스인 드브뤼 신부의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조선사람 방에 들어가면 윗자리와 아랫자리가 있는데 처음에는 이것을 구분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비결은 갓을 넣어둔 갓집이 걸린 쪽을 윗자리라고 생각하면 큰 실수가 없다. 조선 사람은 자기가 가진 어떤 것보다도 모자를 가장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항상 윗자리의 가장 높은 곳에 갓집을 매어 두게 마련이다" 이렇게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양반의 표시이기도 했던 갓을 소중히 생각하여 쓰지 않을 때에는 갓집에 고이 모셔놓았지요. 갓집의 형태는 보통 두 가지인데 하나는 겉모습이 갓과 비슷한 형태로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추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진에 보이는 갓집은 덮개가 갓과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밑바닥은 원, 사각, 팔각, 12각형 등입니다.
1042. 이덕무가 맹자를 팔자 유득공은 좌씨춘추를 팔았다. 정조임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는 식구들의 배고픔을 보지 못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던 ‘맹자’ 한 질을 돈 이백 전을 받고 팔아 양식을 구합니다. 하지만, 이덕무는 책을 팔아 양식을 샀다는 허허로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벗 유득공을 찾아갑니다. 일곱 살 어린 나이지만 유득공은 마음속의 모든 걸 털어놓을 때 받아주는 벗이었습니다. 이덕무가 맹자를 팔아 양식을 샀다는 말을 하자 유득공은 "그래요? 그러면 나도 좌씨에게 술이나 한 잔 얻어먹으렵니다."라며 책장에서 ‘좌씨춘추(左氏春秋:공자의 ’춘추‘를 노나라 좌구명이 해석한 책)’를 뽑아 아이에게 술을 사오게 했습니다. 물론 유득공은 책을 팔아 술을 사먹을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유득공은 벗의 마음을 헤아린 것입니다. 이런 벗이 있다면 정말 살만한 값어치가 있는 세상입니다.
1041. 김산의 아리랑을 아십니까? 일제강점기 때 혁명가 김산이 있었습니다. 김산은 체포되어 6달 동안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이 때 김산은 감방 벽과 기둥에 손톱으로 ‘옥중가 아리랑’을 새겼습니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 그대 열두 굽이에서 멈추지 않으리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열두 고개를 넘어간다.” 이런 사실은 김산과 님 웨일즈의 공저로 뉴욕 존데이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산의 아리랑(Song of Arirang)”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김산 뿐만이 아니라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고려인들,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해 죽어간 사람들, 정신대 할머니들, 독립군을 돕다가 일본군에 의해 사살 당한 만주 동포들, 2차 대전의 미일전쟁 때 자살특공대(가미가제)로 출격에 앞서 아리랑을 불렀던 탁경현 등은 아리랑이 희망의 끈이었다고 합니다. 참고 :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 이정면, 이지출판
세종대왕은 서울시의 자랑, 생가터 복원은 당연 세종대왕 생가터 복원 건의문 전달식 열려 ▲ 세종대왕 생가터 표지석과 표지석이 있는 곳의 지도 ⓒ 김영조 오는 5월 15일은 세종임금이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지 610돌이 되는 해이다. 세종임금은 우리 겨레의 으뜸가는 지도자요 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 인물이다. 또 세종임금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 한글을 만들었음은 물론 정치, 과학,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기셨고 이 모든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자랑스러운 분이다. 특히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우리나라를 정보통신 강국으로 만들어주는 밑바탕이 됨으로써 더욱 빛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고맙고 자랑스러운 분이 태어난 곳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근처에 조그만 표지석만 하나 만들어 놓고 있을 뿐이어서 후손으로서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다. 이에 한글단체 대표들은 세종대왕생가터복원준비위원회(대표 이대로, 이하 준비위)를 만들고, 이를 적극 실천하기로 결의를 모았다. 오늘(5월 14일) 이른 10시 30분 세종대왕 생가터 표지석이 있는 경복궁 역 근처 효자동 길가에서 준비위 이대로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서울특별시 시의회 박주웅의
키르키즈스탄에는 언어보급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립국어원, 키르키즈스탄 비쉬켁인문대학교와 세종학당 협약식 맺어 ▲ 키르키즈스탄 비쉬켁인문대학교에서 세종학당 개설을 위한 협약서를 교환하는 국립국어원 이상규 원장과 무사에프 압딜다 총장 ⓒ 김영조 이상규 국립국어원 원장은 몽골과 중국에 이어 지난 2일 오후 4시 키르키즈 비쉬켁인문대학교에서 이 학교 무사에프 압딜다 총장과 세종학당 개설하기 위한 협약식을 거행했다. 이상규 국립국어원 원장은 지난 3월 19일에 몽골 울란바토르 대학, 3월 20일에는 몽골 국립사범대학의 세종학당 개교식에 참석했으며, 3월 21일에는 중국 중앙민족대학의 어이타이(鄂義太) 총장과 북경에서 업무협정 체결식을 거행한 바 있다. 세종학당은 외국인이나 재외 교포의 한국어 학습 수요에 따라 단계적으로 전 세계에 개설하려는 개방형 한국어 교육 시스템을 말한다. 올해부터 2011년까지 제1단계로 아시아 지역 100곳에 열릴 세종학당의 근본 취지는 아시아의 문화 연대와 현지 노동 인력의 고용 창출을 위한 한국어·한국 문화 교육이며, 지식인 중심의 한국어 교육을 극복한 대중적 한국어 교육이다. ▲ 세종학당 설립과 한국학과의 미래를 위해 협의하고 있다.
신문 사설 평가, 조선일보 3달 연속 꼴찌 국어문화운동본부, 3월 신문 사설평가 결과 발표 ▲ 3월 신문 사설 종합 평가 ⓒ 국어문화운동본부 조선일보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눈감는 신문일까? 국어문화운동본부가 지난 1월부터 평가한 신문 사설부분에서 조선일보는 연속 3달째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에서 더욱 아쉬운 것은 한자의 남용이 여전하고, 자의적 근거에 의하거나 추측, 억지 또는 논리 비약 부분의 점수가 높다는 점이다.독자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선 올바른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한자를 남발하거나 억지를 들이대는 것은 독자의 호응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평가이다. 이번 달 평가에서 또 눈에 띄는 부분은 2달 연속 가장 잘못이 적은 으뜸 신문으로 꼽혔던 중앙일보가 조선일보에 이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한겨레신문에 으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특히 중앙일보의 논술 성적이 평소에 비해서 무척 낮아졌는데 민감한 내용의 사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는 분석이다. 한겨레신문은 국어 부문과 논술 부문에서 두루 좋은 성적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에도 환산 점수에서는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바가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올린 성
1040. 노비들에게까지 출산휴가를 준 개혁군주 세종 백성을 끔찍이 사랑했던 세종임금은 출산 뒤 7일 동안 아이를 돌보도록 한 노비의 휴가기간을 100일까지 늘리도록 했습니다. 또 출산 1달 전부터 산모를 쉬도록 해주었습니다. 게다가 세종은 “그 남편에게는 휴가를 주지 않고, 일을 시켜 산모를 돌볼 수 없게 하고 있으니, 이는 부부로 하여금 서로 보살피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간혹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었다.”라며 노비의 남편에게도 출산휴가를 주었습니다. 세종은 금주령을 내릴 때도 힘이 없는 백성 편을 듭니다. “술을 못 마시게 할 때마다 청주를 마신 사람이 벌을 받은 적이 없고, 막걸리를 마시거나 혹은 술을 판 사람만 법에 걸리니 사정이 딱하다.”라며 금주기간이라도 집안행사를 위해서나, 늙고 병든 사람이 약으로 마시는 경우는 처벌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종임금의 백성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1037. 오늘은 소만 , ‘대나무 가을’을 아시나요? 오늘은 24절기의 여덟 번째인 소만(小滿)입니다. 소만은 만물이 점차 자라서 가득 찬다(滿)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여름 기운이 들기 시작하는데 가을보리를 거두고, 이른 모내기를 하며, 밭농사의 김매기 등을 하게 됩니다. 이때 즐겨 먹는 냉잇국은 시절음식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또 죽순(竹筍)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묻혀 먹는가 하면 씀바귀는 꽃상추과에 속하는 다년초로서 뿌리나 줄기, 잎은 이 시기에 식용으로 쓰입니다. 온 천지가 푸르름으로 뒤덮였지만 대나무만큼은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합니다. 이는 새롭게 탄생하는 죽순에 자기의 영양분을 공급해주었기 때문이지요. 마치 어미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에게 정성을 다하여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봄의 누래진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 곧 ‘대나무 가을’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