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5. 오늘은 춘분, 피안의 시기입니다. 오늘은 춘분으로 해의 중심이 춘분점 위에 왔을 때인데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가 진 뒤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집니다. 또 “2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춘분께인 음력 2월 바람은 동짓달처럼 매섭고 찹니다. 이는 ‘바람신’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꽃샘’이라고 하는데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길 가는 배도 타지 않습니다. 춘분을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준비에 바쁜데 농사의 시작인 애벌갈이(논밭을 첫 번째 가는 일)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 또는 '피안(彼岸)의 시기'라 하여 극락왕생의 때로 봅니다.
984. 일본에 단군을 모신 신사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조선 백성이 일본에 끌려갔는데 가고시마 지역에만 3만 700명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가사키는 일본과 유럽의 교역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많은 조선인이 여기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조선인 노예가 얼마나 많았던지 국제 노예값이 폭락했을 정도입니다. 또 이 가운데는 이탈리아 피렌체까지 팔려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의 삶은 당시의 호적대장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일부 도자기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빼고는 대부분 비참하게 살았고, 결국은 다시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400년 전 그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강제로 창씨개명을 당하기까지 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조선인 집단 주거지가 있었던 나에시로가와에 단군을 모신 ‘다마야마 신사’를 세울 정도였습니다. 참고 : 에이치디 역사스페셜 5 “실리인가 이상인가, 근대를 향한 역사의 선택”, 효형출판
983. 오늘은 영등할매가 오시는 날 음력 2월 초하루는 ‘영등일‘ 또는 ’영등할매날‘이라고 하는데 하늘에 있는 영등할매가 이날 땅에 내려왔다가 스무날(20일)이면 다시 올라간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영등신앙은 주로 영남과 제주도 지방에 전승되었는데 영등할매가 비바람을 몰고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날 바람이 불면 딸을 데리고 오는 것으로 딸이 차려입은 치마가 나풀대어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바람을 불게 하며, 흉년이 든다고 믿습니다. 만일 비가 오면 며느리가 곱게 차려입은 명주치마를 얼룩지게 하기 위하여 비를 오도록 하는 것으로 풍년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며느리를 데리고 오게 하기 위하여 초하룻날 부엌에 떡을 쪄서 먹는 등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빌었습니다. 또 초하룻날 첫 새벽에 세 곳의 샘물을 떠서 장독대에 짚을 깔고 상위에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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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2.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남자들이 귀걸이를 하다. 엄격한 유교적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도 몸치장에 유행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자가 귀걸이를 하는 풍조입니다. 선조실록 6권, 5년(1572) 9월 28일조에 보면 젊은 사내들이 귀를 뚫고 귀걸이 하는 풍조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비망기(備忘記)로 승정원에 임금이 명을 내렸다. “몸과 머리털 그리고 피부 모두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효(孝)의 시초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젊은 사내아이들이 귀를 뚫고 귀걸이를 달아 중국 사람에게 비웃음을 사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후로는 오랑캐의 풍속을 일체 고치도록 안과 밖에 깨달아 알아듣도록 타일러라.” 지금이야 젊은 남자들이 귀걸이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당시엔 귀를 뚫고 귀걸이를 하는 것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로 벌까지 받았던 모양입니다.
981.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집, 한옥 목조건물인 한옥은 깊은 처마가 차양 역할을 해 마루나 방으로 들어오는 직사광선을 막아줍니다. 이 때문에 한여름에는 그늘진 집 안과 햇빛으로 달궈진 마당의 온도차로 인해 공기의 대류현상이 일어나 시원한 바람을 얻게 되며, 겨울에는 해의 위치가 낮아 집안 깊숙이 햇볕이 들어오게 되어 집안 공기를 따뜻하게 합니다. 또 황토로 지은 한옥은 단열성이 좋아 여름에는 열을 막아 시원하며 겨울에는 우수한 보온효과가 있습니다. 황토는 그 자체로 습기와 열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눈, 비가 올 때는 수분을 흡수하고 반대로 건조할 때는 습기를 내뿜어 집안의 습도를 조절합니다. 여기에 한옥은 다른 나라의 집들과 달리 높은 기단으로 되어 있어 지표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막아 고온다습한 여름에도 쾌적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런 까닭에 한옥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집이라고 합니다.
980. 팔진미의 주인, 된장의 5덕 예부터 우리 겨레는 된장의 맛을 극찬하여 5가지 덕으로 비유했습니다. 먼저, 단심(丹心)은 나물을 무치거나, 국을 끓일 때도 그 맛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항심(恒心)으로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된장은 묵을수록 좋다는 말도 같은 것이지요. 세 번째는 불심(佛心)은 기름진 냄새를 없애주는 성질이며, 네 번째는 선심(善心)으로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또 다섯 번째 화심(和心)은 어떤 음식과도 잘 조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된장을 가리켜 음식 맛을 낼 때 가장 으뜸이 되는 팔진미(八珍味)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사람과 비유하면 단심은 인간의 본성, 항심은 진정한 우정, 불심은 예의와 도덕을 갖춘 마음씨, 선심은 남을 교화하는 것, 화심은 적이 없고 남에게 미움을 사지 않은 인간관계를 뜻한다고 합니다.
979. 서각, 측간, 해우소, 뒷간의 또 다른 이름들 예전 우리네 화장실은 뒷간이었습니다. 뒷간은 “뒷물을 하기 위하여 만든 공간”이라는 뜻인데 사람이 바라보는 쪽을 앞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편은 뒤라고 부르며, 항문이 뒤에 있기에 뒷일을 보는 곳을 뒷간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동안 썼던 변소라는 말은 일정강점기 때 쓰기 시작하여 몇십 년 전까지 써왔던 말이며, 세수간과 화장실은 뒷간을 나타내는 영어 “A water-Room” 또는 “A dressing-room” 따위를 한자로 바꿔 표현한 것입니다. 그밖에 서각(西閣)은 우리나라 집들이 남향이기 때문에 뒷간이 통풍이 잘되는 서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측간, 측소, 측옥처럼 뒷간에 곁 ‘측(厠)’자를 붙인 것은 집에서 보았을 때 한쪽 편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고, 절에서 쓰는 “해우소(解憂所)"는 근심을 푸는 곳이란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작은 집’ ‘급한 데’ ‘일보는 데’라고도 했습니다.
978. 촌지 대신 ‘꾹돈’이란 말을 쓰면 어떨까요? 우리는 가끔 공무원이나 교사, 기자 등이 촌지를 받아서 말썽이 난 소식을 듣습니다. 이 ‘촌지(寸志)’란 말은 ‘마음속에 지닌 자그마한 뜻’으로 ‘촌심(寸心)’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촌지는 뇌물성 돈봉투를 가리키는 말로 변해 버렸습니다. 자그마한 뜻을 주고받는다는 좋은 뜻의 촌지가 안 좋은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특히 학부모가 자기 자식 잘 봐달라고, 납품업자가 공무원에게 납품을 잘 받아 달라고 주는 촌지는 뇌물로 사회를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옳지 않은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검은 돈을 촌지라고 하는 것은 말글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요? 차라리 마음속의 자그마한 뜻이란 촌지 대신에 ‘꾹 찔러준 돈’이란 뜻으로 토박이말 ‘꾹돈’을 쓰면 어떨까요? 삶 속에서 올바른 말, 토박이말을 쓰려는 노력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
977. 새해 초 십이지날의 금기들 올해는 돼지해인데 이렇게 해처럼 달과 날도 십이지(十二支)달과 십이지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십이지날 가운데 새해 초에 처음 오는 날들엔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금기가 있었지요. 소날엔 소가 사람의 조상으로 생각하여 조상날에 작두나 칼 따위의 연장을 만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용날에도 연장을 만지지 않는데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의 운을 조정하는 용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토끼날에는 여자가 남의 집 특히 새벽 밥 먹기 전에 갈 수 없으며, 동쪽으로 향해 오줌 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닭날 밤에 여자들이 일찍 잠자리에 들면 그 해 닭이 잘 안된다고 하여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돼지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며, 쥐날에는 바느질을 하면 손이 찔린다고 생각했고, 방아도 찧지 않습니다. 참고 : “경상북도의 세시풍속과 민속문화”, 경상북도,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