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8. 이번 설에는 “인간윷놀이”를 해봅시다. 우리 겨레의 큰 명절 설날이 다가옵니다. 설날엔 온 식구가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때 많은 집에선 고스톱을 칩니다. 이 화투놀이는 일본이 조선의 문화식민지를 위해 들여보낸 것으로 의심받으며, 건강에 아주 좋지 않고, 어린이와 같이할 수 없습니다. 이 화투보다는 아이들과 같이할 수 있는 우리의 민속놀이를 하면 좋을 것입니다. 특히 “인간윷놀이”를 해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양편에서 두 사람씩 나와 윷이 됩니다. 이 사람들이 엎어지거나 누워 도나 모를 결정합니다. 서로 눈치를 보며 동작을 취하는데 이때 배꼽을 잡습니다. 또 말판에 ‘임신’, ‘풍덩’ 자리를 만듭니다. ‘임신’에 말이 들어가면 한 동을 더 얹어주고, ‘풍덩’에 들어가면 처음부터 다시 하도록 합니다. 실제 모임에서 인간윷놀이를 해보았더니 모두가 놀이에 속 빠지고,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즐겼습니다.
947. 해지킴과 야광귀, 설날의 세시풍속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믿었는데, 아이들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잠들면 아이들의 눈썹에 떡가루를 발라주어 놀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설맞이 준비가 바쁘니 이 한밤은 잠자지 말고 일해야 한다는 데서 생긴 말로 보입니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은 자지 않고 설을 지킨다는 뜻으로 ‘해지킴’ 즉 '수세(守歲)한다'고 하였습니다. 야광(앙괭이)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그 신의 주인에게는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이 무서워 모두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 놓은 다음 잠을 잡니다. 그리고 채를 마루 벽이나 뜰의 장대 위에다 걸어 두었습니다. 그것은 야광귀가 와서 채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이야기입니다.
946. 문안비와 원일소발, 설날의 세시풍속 설 전날 밤부터 집집이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의 복조리를 사는데, 한 해의 행복을 조리와 같이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이 풍속이 생겼습니다.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하녀를 서로 보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라 합니다.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설날 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쳤는데, 이것은 '청참'입니다. 나무에 오행인 금, 목, 수, 화, 토를 새겨 장기쪽 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나온 것으로 새해의 신수를 점치는 것은 '오행점'이라 했습니다. 또 ‘원일소발’이란 것도 있는데 지난 한해 동안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상자 안에 넣어 둔 것을 설날 저녁에 문밖에서 태우는 풍습입니다. 머리카락을 태울 때 나는 냄새로 악귀나 나쁜 병을 물리친다는 믿음이지요.
945. 용비어천가에 정종이 빠진 까닭 세종임금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정인지, 안지, 권제 등에 명하여 훈민정음으로 지은 첫 작품 용비어천가를 펴냈습니다. 용비어천가의 펴냄은 훈민정음의 빠른 정착을 위한 것이 첫째 목적이었는데 그 구성을 보면 태조 이전의 조상인 목조 3장, 익조 9장, 도조 6장, 환조 2장이고, 태조가 80장, 태종이 21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선 2대 임금인 정종이 빠졌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태종은 태조의 다섯째 아들인데 무력으로 임금이 되었고, 세종임금은 태종의 셋째아들입니다. 그래서 큰아들이 임금자리를 잇는다는 정통성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 까닭으로 세종임금은 건국의 정당성, 조선의 정체성 확보와 왕권의 확립을 위해 용비어천가를 지은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걸림돌로 생각된 정종을 일부러 뺏을 것이라고 역사학자 이희근 박사는 말합니다. 참고 : “한국사 그 끝나지 않는 의문” (이희근, 다우)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대숲의 소리, 대금 대금의 유래와 그 종류 이야기 ▲ 바위 위에서 정악대금을 부는 부여 고란사의 무공 스님 ⓒ 김영조 '어떤 가슴이 저 소리로 울려나는 것일까 저리고 시린 가슴 눌리고 맺힌 가슴 썩고 문드러진 가슴이 삭고 삭아서 몇천 년을 또 그런 가슴 만나 울려나는 것일까 깊은 만큼 높고 흐린 만큼 맑게 이제야 흘러흘러 울려나는 것일까'백우선은 '저리 높고 맑은 대금산조'라는 시에서 대금을 이렇게 노래한다. 만파식적, 그 속엔 자연의 숨소리와 가슴 속의 혼 예로부터 우리 음악에 쓰이는 악기들 중 가로 부는 관악기를 가리켜 '적(笛)'이라고 쓰고 우리말로 '저'라고 부른다. 또 가로로 부는 악기들 중 대금은 가장 큰 까닭에 '큰저' 또는 '젓대'라고도 말한다. 대금은 살이 두껍고 단단하며, 양쪽 줄기에 홈이 깊이 팬 병든 대나무인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 것이 가장 좋다. 대금에는 부는 구멍인 취구(吹口)와 갈대청을 발라 맑은 떨림소리를 내게 한 청공(淸孔) 하나, 손가락을 막고 떼면서 음정을 변화시키는 지공(指孔) 여섯 그리고 높은 음을 조절할 때 쓰는 칠성공(七星孔)이 있다. 국악의 기본음계는 중임무황태(仲林無潢汰)인데 대금의 음역(
우리말이 보낸 연애편지 받으실래요? [서평]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 ▲ "성제훈의 우리말 편지", 뿌리와이파리 ⓒ 뿌리와이파리 “딩동~ 오늘도 한통” 무엇이 왔을까? 우리말이 보낸 연애편지가 오늘도 하루를 환하게 만든다. 그 속엔 이런 말이 있다. “다비하면 도복한다.” 무슨 말일까? ‘다비(多肥)’ 즉, ‘거름을 많이 주면, ’도복(倒伏)‘ 즉 ’작물이 쓰러진다‘는 말이다. 이 “다비하면 도복한다.”란 말을 그동안 우리 농민들에게 써왔단다. 보통의 농민들이 설명하기 전에 그 뜻을 알 수 있을까?굳이 그렇게 어렵게 쓰는 까닭이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말을 어렵게 하고, 글을 어렵게 쓰면서 으스댄다. 그게 으스댈 일인가? 말과 글은 의사소통인데도 그저 어렵게 쓰고, 그뿐만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말도 쓴다. 토씨와 문법이 틀리고, 일본말 찌꺼기를 쓰고, 번역투와 엉터리 말들을 쓴다. 어렵게 쓰는 것은 결국 의사소통을 막기에 그런 사람들은 사실 무식쟁이이다.그런데 그것을 지적하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말 책이 많이 나왔어도 역시 어렵거나 따분하다. 독자들은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 이때 이런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이 나왔
944.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는 당당했다. 고려시대에 여성지위가 어땠을까요? ‘고려사’에 따르면 충렬왕 때의 재상 박유가 나라에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다며, 고위 관료들에게 첩을 두도록 하자고 상소하였습니다. 또 고위직에서 백성으로 내려갈수록 첩의 수를 줄이고, 백성들은 1처 1첩을 두도록 하자고 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당시의 부녀자들이 그를 비난하였습니다. 어느 날 박유가 연등회에 참석하여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한 할머니가 그를 가리키며, “첩을 두자고 한 사람이 저 늙은이다.”라고 하니 모든 여인들이 손가락질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고위 관료들이 부인들을 두려워하여 그에 대해 논의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하면 처가살이를 했고,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웠으며, 재산상속엔 아들딸 차별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고려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당당했고, 조선 중기까지는 이대로 유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943. 가야금 속에 숨어 있는 과학 서울대 뉴미디어 통신공동연구소가 얼마 전 가야금에 대해 실험을 했습니다. 울림통 위에 가루를 뿌린 뒤 주파수를 달리해 진동을 가하는 ‘클라드니 도형’ 실험입니다. 그 결과, 현에서 생기는 주파수인 10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떨렸지만 현이 만들지 않는 주파수인 80헤르츠에서는 울림통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이 떨릴 때 울림통도 같이 떨려야 한다는 '고운 소리의 비결'을 눈으로 입증한 것이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울림통 재료로 쓰는 오동나무의 상피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세포의 벽이 얇고 유연하며, 비중도 0.35에 불과합니다. 이에 비해 바이올린의 재료인 가문비나무는 규칙적이며 촘촘한 세포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현악기는 바이올린에 비해 음색이 부드럽다고 합니다. 가야금에도 우리 겨레의 과학이 숨어 있었습니다.
942. 진주성 전쟁에서 하늘을 날았던 “날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진주대첩에는 “날틀”이 활약했었다고 합니다. 날틀은 한자말로 ‘비거(飛車)’라고 하여 하늘을 나르는 차입니다. 일본 쪽 역사서인 ‘왜사기’에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거를 발명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썼는데 왜군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비거는 포위된 진주성과 외부와의 연락을 담당하였는데 마치 해일처럼 밀려오는 10만의 왜적 앞에서 진주성 사람들에게 이 ‘날틀’은 희망 그것이었을 것이라고 장편역사소설 “진주성전쟁기”를 쓴 박상하 작가는 말합니다. 18세기 후반에 쓴 신경준의 문집 ‘여암전서’와 19세기 중반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비거'가 등장하지만 정확한 모양이나 어떤 쓰임새였는지는 확실하게 나와 있지 않지요. 만일 이것이 비행기처럼 날았다면 라이트 형제를 앞선 세계 최초의 발명일 것입니다. 참고 : ‘진주성전쟁기“, 박상하, 어문학사 “조선시대에도 비행기가 있었다?” (오마이뉴스), 최형국
941. ‘갈매기살’이란 말이 어디서 왔을까요? 돼지고기를 파는 음식점에 가면 ‘갈매기살’이란 것이 있습니다. 누구나 처음 들으면 돼지고기가 아니고 웬 갈매기 고기일까 하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다 위를 나르는 갈매기 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의 하나입니다. 돼지 몸속에는 사람처럼 횡경막이 있습니다. ‘횡격막’은 폐가 숨 쉬는 것을 돕는 막인데 우리말로는 뱃속을 가로로 막고 있다고 해서 ‘가로막’이라고 합니다. 이 ‘가로막’에 붙어 있는 살을 ‘갈매기살’이라고 하지요. 갈매기살은 원래 ‘가로막살’로 부르다가 가로마기살 → 가로매기살 → 갈매기살로 바뀌어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가로막살’이 얇은 껍질로 덮여있는 근육질의 힘살이어서 질기기 때문에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가로막살’의 껍질을 벗긴 뒤 팔기 시작했고, 그 담백한 맛과 싼값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갈매기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