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마을의 수호신, 장승 마을이나 절 들머리 길가에는 사람 머리 모양의 기둥을 세워 놓은 곳이 많습니다. 이 기둥은 ‘장승’이라고 하는데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습니다. 장승의 이름도 한자로는 '후(堠)', '장생(長栍)', '장승(長丞, 張丞,長承)' 등으로 썼고, 지방에 따라 장승, 장성, 벅수, 법수, 당산할아버지, 수살목 등으로 불렸지요. 장승은 지역 간 경계표, 이정표로도 쓰였지만 특히 마을의 수호신 구실을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서낭당, 산신당, 솟대처럼 제사도 지냈으며, 액운을 막거나 귀신을 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남자 모양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앞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새겨 있으며, 여자 상은 관이 없고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원대장군(下元大將軍)' 등의 글이 쓰여 있지요.
918. 발탈을 아십니까? 먼저, 잡이들이 풍물굿을 연주하여 구경꾼을 모으면 탈이 “어흠어흠” 큰기침을 하고는 “손님이 오셨냐?”라고 어릿광대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어릿광대가 “그 사이 손님이 많이 오셨으니 인사를 여쭈어라.”하고 능청을 떱니다. 이것은 탈놀이의 하나인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로 “발탈”의 시작입니다. 발탈은 얼굴 대신 발에 쓰는 것으로 저고리와 조끼를 입고 빨간 상투를 틀었으며, 발탈의 놀이판은 검은색 포장막의 앞과 옆을 막아놓은 것으로 ‘꼭두각시놀음’과 비슷합니다. 발탈꾼은 이 포장막 안에 누워 발목만을 포장 밖으로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발목을 전후좌우로 움직여 탈이 웃거나 화내는 표정 등을 연출하면서 포장 앞에 앉은 어릿광대와 재담을 나누는 놀이입니다. 이 발탈은 기능보유자인 화성 재인청 춤꾼 이동안이 죽은 뒤 박해일이 보유자로 있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쉽게 볼 수는 없습니다.
917. 성덕대왕신종, 그 한국 종과 서양 종의 차이 성탄절 카드에 보이는 서양 종은 위가 좁고 아래로 벌어진 비교적 작은 종입니다. 높은 곳에 매달아 놓고, 종 속의 쇠막대기로 종의 안쪽을 두드려 치기에 높은 소리가 가늘고 가볍게 납니다. 또 종신은 황동으로 만들어 누렇지요. 하지만, 한국 종은 서양종보다 큰데 몸통선이 부드럽게 내려오다 아래쪽이 약간 오므라져 있습니다. 또 커다란 나무막대로 종의 바깥쪽을 쳐서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종을 낮게 걸고 치기 때문에 종소리가 아래쪽으로 깔리면서 깊고 그윽한 그리고 은은한 소리가 납니다. 종의 재료는 청동이기에 대부분 푸른색을 띠지요. 그런데 한국 종의 으뜸은 1300년이나 된 경주박물관의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을 꼽습니다. 이 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종인데 높이 3.75m, 입지름 2.27m, 무게가 약 25톤에 달합니다. 이 종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꼭 차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916. 한방치료는 음양의 조화를 생각한다. 한방에서는 질병을 치료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음양의 조화입니다. 사람의 몸은 늘 일정한 상태 즉, 음양의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데 이것이 깨졌을 때를 질병이 온다고 봅니다. 그래서 한방의 치료는 이렇게 음양이 불균형한 것을 바로 잡아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방은 이렇게 음양철학의 바탕 위에 성립된 것입니다. 또 한약을 복용하게 되면 인체의 면역체계가 강화되어 질병에 대한 자연치유력을 높여줍니다. 사람의 몸은 스스로 병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이러한 능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인체에 부작용 없는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또 한약재는 우리가 평소 생활주변에서 많이 접하는 자연 약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며, 화학약품보다 빠른 치료는 어렵지만 대신 몸 상태를 좋게 하고, 내성이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915. 트임 없이 두루 막힌 옷, 두루마기 두루마기는 한국 복식에서 외출할 때 가장 위에 입는 옷을 말하는데 주막의(周莫衣), 주차의(周遮衣), 주의(周衣)라고도 불렀습니다. 양쪽 어깨 밑이 터져 3폭이 따로 도는 창의(氅衣)와 달리, 옷 전체가 돌아가며 막혔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옷에 대한 허례허식이 많아지자 고종임금은 1884년 복제 개혁을 단행하고, 넓은 소매 옷들을 모조리 금지했는데 이후 신분과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남자용은 예복, 여자용은 방한용으로 입었고, 아이들은 까치두루마기를 입었지요. 종류는 박이두루마기(여름용), 홑단두루마기(봄가을용), 겹두루마기·솜두루마기(겨울용) 등이 있으며 겨울용 옷감으로는 명주, 모직, 무명, 옥양목, 부사견을 주로 쓰고, 봄·가을용으로는 명주, 항라, 옥양목을, 여름용으로는 모시, 생모시, 항라 등을 씁니다.
♣ 차의 종류 ♣ 1. 가공방법에 의한 구분 ① 덖음차 : 한국의 전통차, 솥에 열을 가하면서 비비듯이 한다. 중국에서는 초청차(炒靑茶), 일본에서는 부초차(釜炒茶)라고 한다. ② 찐차 : 녹차, 증제차라고도 하는데 잎을 쪄서 가공한다. 2. 마시는 방법에 따른 나눔 ① 잎차 : 잎을 우려낸 물을 먹는다. ② 가루차(말차:抹茶) : 가루를 만들어 거품을 내어 통째로 먹는다. 3. 발효정도에 따른 종류 ① 불발효차(비발효차) : 전통차와 녹차 ② 반발효차 : 포종차, 우롱차 ③ 발효차 : 홍차 ④ 후발효차 : 보이차(떡으로 만들어 오랫동안 발효시킨다. 20년 이상이면 명차)4. 찻잎을 따는 때에 따른 구분 전통차 : 명전차(청명 전), 봄차(춘차:春茶), 여름차(하차:夏茶), 가을차(추차:秋茶) 녹차 : 우전차(雨前茶, 곡우 전), 세작(細雀, 5월 초), 중작, 대작 (첫물차, 두물차 등으로도 나눈다)5. 생산지에 따른 구분 ① 보성, 해남, 화계차(한국) ② 육안, 용정, 무이차(중국) ③ 우지차(일본) 6. 기타 ① 작설차(雀舌茶) : 여린 찻잎이 참새의 혀와 닮았다는 뜻, ② 감로차(甘露茶) : 아침이슬이 가시기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 차 ③ 죽로차(竹
914. 우리말 이름 잘 짓는 방법 요즘은 예쁜 우리말 이름(토박이말 이름, 한말글 이름)을 많이 봅니다. 하지만, 일생동안 불릴 이름을 대충 지으면 안 됩니다. 특히 이름은 뜻이 좋고, 소리가 부드러우며 밝은 말을 쓰는 것이 좋은데, 느낌이 강하거나 놀림 받을 만한 말, 어른이 되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또 뜻은 좋지만 ‘박맑은누리’처럼 성과 어울리면 소리가 부드럽지 않은 것, 그리고 우리말 이름이라 해서 ‘아름’, ‘고운’처럼 흔한 이름은 피하며, 다섯 자 이상으로 지나치게 긴 이름도 안 좋습니다. 두 낱말을 다듬고 붙인 세네 음절이면 좋고, 오누이나 형제, 자매에겐 관계있는 말로 잇거나 돌림자를 붙입니다. 김슬옹 지은 ‘뜻깊은 큰소리 한글 이름’, 배우리 지은 '우리말 고운말 고운이름 한글이름' 같은 책이나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누리집(www.hanmal.pe.kr) ‘한말글 이름짓기’에서 도움을 받아도 됩니다.
913. 조선시대 비가 오면 신었던 나막신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신을 신었을까요? 일반적으론 짚신을 신었지만 양반들은 갖신 즉 태사혜, 당혜, 흑혜 등을 신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올 땐 나막신을 신었지요. 나막신은 통나무를 파서 만든 신으로 원래 '목혜(木鞋)'라고 불렀는데 조선 후기에 와서 토박이말로 나막신이라고 불렀습니다. 비나 눈이 와서 진창길을 갈 때 짚신과 가죽신을 대신하여 신었지요. 나막신은 원래 일본 '게다[下駄]'와 비슷했는데 임진왜란 이후엔 소나무나 오리나무를 파서 만들었으며, 코와 뒤축 등 신발의 형태를 모두 갖춘 모양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중 남자용은 좀 더 투박하였으며, 여자용은 옆에 여러 가지 무늬를 그리거나 코를 맵시 있게 팠습니다. 이러한 나막신은 갈라 터지는 단점이 있었는데, 성호 이익은 밀납(蠟)을 부어 만들면, 나무가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승무, 그 아름다움의 극치가 펼쳐지다 제4회 이승희 전통춤 공연 열려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를 추는 이승희 ⓒ 김영조 "나는 그날 난정 이승희님의 춤에서 깊은 연못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장중한 소리의 힘을 느낄 수 있었으니 무겁게 뿌리고 제치는 그녀의 흰 장삼소매가 만들어내는 곡선과 공간에서 나와 나의 카메라는 완전히 사로잡혀 한동안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위 글은 전문 사진작가인 전 명지대학교 이용남 교수가 이승희의 '승무'를 보고 가슴을 토해낸 글이다. 처음 본 춤에서 그는 전통춤의 진미를 짙게 맛보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12월 23일 늦은 4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이승희는 제4회 전통춤 공연을 열었다.이승희는 보통의 춤꾼과는 좀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조선조 재인청 출신의 마지막 광대로 지난 1995년 세상을 뜬 이동안 선생의 춤, 예술적 기교보다는 전통춤을 원형에 가깝게 후대에 전했다는 그 춤을 올곧게 계승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공연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이승희의 공연에 늘 함께해온 최종민 교수는 먼저 이승희를 소개한다. "옛날엔 기방춤이 아니라 재인춤, 즉 남자들만이
한쪽 팔의 대금연주, 청중은 숨을 멈췄다. 이삼 스님 광주문화원 초청공연 열려 ▲ 이삼 스님 광주문화원 초청공연 소책자 표지 ⓒ 광주시문화원 한쪽 팔만으로 부는 대금, 그 대금을 연주하는 이삼 스님을 아는가? 원래 대금이란 악기는 국악기 가운데서도 배우기가 어렵다는 악기이다. 그런데 이 어려운 악기를 한 손으로 불 수 있도록 새로 만들고, 이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이삼 스님의 초청연주가 지난 12월 8일 저녁 6시 경기도 광주시 노인복지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스님은 자신이 부는 대금에 '여음적(餘音笛)'이란 이름을 붙였다. 여음적은 기본 대금을 한쪽 팔로도 연주할 수 있게 개량한 것인데 왼쪽 팔의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게 서양 관악기들처럼 키(key)와 보조키를 붙여 만들어진 대금이다. '여음적', 넉넉한 소리라는 뜻일까?1980년 무형문화재 제20호 기능보유자 녹성 김성진 선생으로부터 대금을 배운 스님은 궁중 정악의 대가들에게 두루 공부하고, 85년 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해 금상을 타기도 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한 포교를 하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로 인해 오른팔은 마비되고, 대금 연주의 희망은 사라졌지만 이 비극적 삶에 마침표를 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