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 이익이 괴상하다고 비꼰 ‘당코깃저고리’ “부녀의 짧은 저고리와 소매는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모르지만 귀천이 같이 입으니 매우 한심하다. 더구나 여름 홑적삼은 위로 돌돌 걷어 말려서 치마허리도 감추지 못하니 더욱 괴상하다.” 이 대목은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권16 인사문(人事門)에 나오는 것으로 당시 유행했던 ‘당코깃저고리’를 비꼰 말입니다. 조선 중기 이후 부녀자의 옷으로 유행했던 이 ‘당코깃저고리’는 앞 부분의 깃머리가 제비부리 모양으로 각이 지고, 소매 배래도 매우 좁으며, 등길이가 짧아 치마허리가 모두 보였습니다. 이 당코깃저고리를 입으면 대신 치마는 폭이 넓고 길며 풍성하게 입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양의 저고리와 치마를 위는 담박하다 또는 가볍다, 천하다는 뜻, 그리고 치마는 ‘둥둥 뜨다.’라는 뜻의 ‘상박하부(上薄下浮)’라고 했지요. 한복은 이익은 당코깃이 아닌 저고리가 지나치게 짧음을 나무란 것입니다.
901. 외씨버선이 살짝 내민 승무의 아름다움 지난 12월 23일 고 이동안 선생의 수원 재인청 춤을 올곧게 계승한 이승희의 전통춤 공연이 국립국악원에서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살풀이춤, 태평무, 엇중모리신칼대신무를 비롯하여 승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제자들의 전통기본무와 검무 공연도 있었지요. 재인청 춤은 기방춤과는 달리 춤추는 듯 멈추고, 멈춘 듯 춤추는 전통춤의 원형이 발 보존되었다고도 합니다. 이날의 압권은 역시 승무였습니다. 조지훈은 ‘승무를 쓰면서 이승희를 상상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살짝살짝 내비치는 외씨버선은 그의 내면을 수줍은 듯 보여주었습니다. 또 휘날리는 장삼소매와 고깔은 이승희 내면의 신비 속으로 청중을 몰고 갑니다. 아하! ‘승무’는 진정 이런 것인가요? 어쩌면 온 세상을 저 가냘픈 한 몸에 껴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무의 아름다움을 여러분께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 드립니다.
900. 드라마 ‘주몽“에 큰 잘못이 있어요. 요즘 문화방송 드라마 “주몽”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주몽이 한나라를 물리치고, 옛 조선을 이어받아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엔 역사 기록과는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허구를 바탕으로 하고, 시청자에게 재미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책의 지은이인 이덕일 선생은 “주몽”의 중대한 잘못을 꼬집습니다. 주몽에선 한나라의 발달한 철기문화를 부여에서 들어오려고 애쓰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게 아니라 동이족 즉, 고조선이 먼저 철기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입니다. 그 철기문화 때문에 대륙을 지배한 것이죠. 따라서 이런 “주몽”의 표현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돕는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생강 명인, 청중을 압도하다. 해설이 있는 대금산조 원형발표회 열어 ▲ 죽향 이생강 대금산조 원형 발표회 소책자 표지 ⓒ (사)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 “대금은 어떻게 연주하며, 대금산조는 어떤 계기로 대중 앞에 서게 되었을까?” 이는 대금에 관심을 두는 이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쉽게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시대 최고의 대금 명인 이생강 선생이 “해설이 있는 대금 연주”를 한다고 해서 좇아갔다. 11월 30일 삼성동의 ‘한국문화의 집(코우스)’에서 저녁 7시에 ‘(사)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 주최, ’국악신문사‘ 주관으로 있었다.대금은 국악기 중 대나무로 만들어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 내는 악기인 공명악기(共鳴樂器)이며, ‘저’ 또는 ‘젓대’라고도 한다. 정악만을 연주하는 정악대금(正樂大笒:풍류대금)과 민속악인 산조만을 연주하는 산조대금(散調大笒:시나위젓대)의 두 종류가 있고, 살이 두껍고 단단하며, 양쪽 줄기에 홈이 깊이 팬 병든 대나무인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 것이 가장 좋다. 삼국유사에 이것을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바람과 파도가 자는 등 만 가지의 모든 나쁜 일이 물러난다고 하여 '만파식적(萬
899. 엉덩이나 성기를 과장한 신라의 토용 옛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사후세계를 믿었기에 껴묻거리 즉, 부장품이 필요했습니다. 이 껴묻거리 중에 흙으로 사람 모습을 만들어 묻는 것을 토용(土俑)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물론 하인들을 산 채로 묻었는데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하기에 나중엔 산 사람 대신 토용을 묻었던 것인데 우리나라 것으로는 신라토용이 있습니다. 토용은 옷과 모자, 그리고 악기나 물건 등을 같이 표현했기 때문에 당시의 생활상을 미루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의 토용 가운데는 젖가슴이나 엉덩이 그리고 성기 등을 과장하거나 임신한 여성을 표현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는 아이를 많이 낳기 바라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 나라의 백성은 큰 자산이기 때문에 다산은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인형 말고는 장식항아리, 집 모양, ‘뱀과 개구리’들도 있습니다.
898. 오늘은 성탄절, 구세주와 미륵 이야기 오늘은 구세주 예수가 오신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구세주 사상과 비슷한 ‘미륵사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미륵(彌勒)은 석가모니의 뒤를 이어 57억 년 뒤에 세상에 나타나 석가모니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입니다. 현재는 윤회의 마지막 일생을 도솔천에서 설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미륵신앙은 중국을 거쳐 불교가 들어오면서 함께 전래하였습니다. 이러한 미륵신앙은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구세주가 이 땅에 오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고, 불교가 오로지 개인이 부처가 되려는 정진에만 치중하여 ‘중생구제와는 동떨어졌다.’라는 한계성을 극복하려 했던 구체적 신앙 형태였습니다. 구세주나 미륵사상을 보면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나, 예나 지금이나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달래야할 희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897. 술에 빠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근심거리 인조실록 24권 9년 6월 1일의 기록입니다. “부제학 최명길이 아뢰기를, ‘술에 빠지는 일은 고금의 공통된 근심거리인데, 근래 사대부들 사이에 이런 습성이 있으니 어찌 염려되지 않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덕을 잃고 품위를 손상할 뿐만 아니라 끝내는 그 몸을 망치는 데 이른다. 그런데 심한 자는 가는 곳마다 술을 찾으면서 구차한 것도 따지지 않으니 어찌 염치에 손상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손님을 접대하고 제사를 지내는 데 술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화가 매우 크다.’ 하였다.“ 물론 장승업, 최북 등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들처럼 술을 마셔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술로 인해 생기는 폐단은 큽니다. 술은 잘 마시면 좋은 음식인데 이렇게 몸과 마음을 망치니 큰일입니다. 연말이 되면서 술자리가 잦아지는데 스스로 몸가짐을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896. ‘양거지’를 하는 사람들 많아지겠네요. "‘왜 두근거려? 분명히 아들일 꺼야. 난 요즘 밤마다 빨간 고추 꿈을 꾸려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렁주렁 매달린 녹색의 고추밭만을 생각한다고.’ 남편은 양거지하면서까지 의기양양했었다고 덧붙였다.“ 이 글은 김동권님의 짧은소설 "첫 대면"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양거지’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이 주변 남자들에게 한턱 내는 일이지요. 대신 무턱대고 한턱 낸 뒤 아들을 낳으면 남편이 한턱 낸 것으로 하고, 딸이면 남편이 서운할 것을 염려하여 나머지 사람들이 먹은 비용을 추렴합니다.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생긴 풍습이지요. 내년엔 ‘황금돼지해’라고 하여 아직 새해가 되지 않았는데도 내년에 아이를 낳으려고 난리라면서요? 그러면 이제 ‘양거지’를 하는 남편들이 부쩍 늘어나겠습니다. 또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신에게 소원을 비는 일 즉, ‘비손’하는 사람도 많겠습니다.
895. 동지에 팥죽을 쑤는 유래와 풍속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의 이야기입니다.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귀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염병귀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하고, 고려와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왕실에서는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었는데 이러한 풍속은 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것과 같이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지요. 또 제주목사는 귤을 임금에게 진상하였고, 이 귤을 종묘에 올린 다음 나누어주었고, 이를 기쁘게 여겨 임시로 ‘황감제’란 과거를 실시했습니다.
894. 내일은 동지, ‘작은설’입니다. 내일은 24절기의 스물두 번째인 동지(冬至)이며, 명절로도 지내는데 팥죽을 쑤어 먹고 달력을 나눠 가집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을 보면 동짓날을 ’작은 설‘, 즉 다음해가 되는 날이란 의미로 ‘아세 (亞歲)’라고 합니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있지요.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낸 다음 방과 장독, 헛간 등에 한 그릇씩 떠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립니다. 붉은 팥죽은 양(陽)의 색으로써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습니다. 올해는 동지는 음력으로 11월 3일이어서 애동지(아기동지/오동지)입니다. 음력으로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老)동지'라고 하는데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습니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어먹으면 아이들이 병이 나는 등 안 좋다고 생각하여 팥죽 대신 시루떡을 해먹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