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3. 첫눈으로 장난을 친 왕실의 상왕들 “상왕(태종)이 첫눈을 봉하여 약이 되는 음식이라 말하며, 승지 최유(崔游)를 보내 장난삼아 노상왕(정종)전에 올리니, 노상왕은 미리 알고 사람을 시켜 최유를 쫓아가 잡으라고 하였으나, 미처 잡지 못하였다. 고려 풍습에 첫눈을 봉하여 서로 보내는데,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한턱을 내게 되며, 만약 먼저 그것을 알고 그 심부름 온 사람을 잡으면, 보낸 사람이 도리어 한턱을 내게 되어, 서로 장난한다고 하였다.” 위 내용은 세종대왕실록 1권 즉위년 10월 27일 기록인데 형제간인 상왕과 노상왕 사이에 첫눈으로 장난하는 풍습이 나옵니다. 세종임금 즉위 당시 조선 두 번째 임금 정종은 노상왕(老上王), 아버지인 태종은 상왕(上王)으로 임금자리에서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엄한 왕실에서도 이렇게 장난을 하기도 했었나 봅니다. 역시 예전에도 첫눈은 사람들을 즐겁게 했었군요.
892. 옛 선비들은 시서화와 음악을 모두 잘했다. 드라마 황진이를 보면 벽계수 대감이 거문고를 탑니다. 그런데 거문고를 타는 벽계수 대감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옛 선비들은 집에 거문고 하나쯤 있고, 그것을 탈 줄 아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정철처럼 특별히 시에 능한 사람도, 안평대군처럼 글씨에 뛰어난 사람도, 윤두서처럼 그림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도, 대원군처럼 난을 잘 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서화와 음악을 두루 섭렵했습니다. 안평대군도 백과사전에 보면 “시문(詩文), 그림, 가야금 등에 능하고 특히 글씨에 뛰어났다.”라고 소개합니다. 또 선비의 집을 '난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의 ‘난형지실(蘭馨之室)’로 불렀으며, 선비들은 예로부터 운치 있는 4가지 일(四藝)로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고, 꽃을 꽂았습니다. 이렇게 옛 선비들은 부단히 자신을 닦고, 예술을 즐길 줄 알았습니다.
891. 한국 전통춤, 그 정중동의 아름다움 우리 문화는 일제강점기 때 총독부의 말살기도로 맥이 끊기거나 왜곡됐습니다. 심지어 종묘제례까지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 가운데 춤도 전통방식이 아닌 일본춤의 교태가 많이 섞였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래의 한국의 전통춤은 자연사상을 바탕으로 음양오행에 기초해 인간심성의 깊이에서 우러나와 움직임을 이루는 내재적인 율동미를 그 특징으로 한다고 합니다. 멈춘 듯 추고, 춤추는 듯 멈추는 춤사위는 한중일 세 나라 가운데 손짓, 발짓의 기교와 모양에 치중한 중국, 일본춤에 비해 춤사위에 멋과 기품이 서려 있어 그 아름다움이 더없이 빼어납니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이백은 고구려춤을 보고 다음과 같이 노래했나 봅니다. “금화 절풍모(折風帽)를 쓰고 / 백마타고 더디 도는 듯 / 펄럭이며 춤추는 널따란 소매는 / 해동에서 날아오르는 새와 같구나” 참고 : ‘화성의 춤명인 운학 이동안’(이승희, 화성시사)
890. 조선시대의 술 마시는 예법 세밑이 다가오면서 술을 마실 기회가 많습니다. 이때 조선시대의 술 마시는 예법을 알아봅니다. 조선 실학자 이덕무는 선비들을 위하여 만든 수양서 ‘사소절’에서 “술이 아무리 독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려서는 안 된다. 또 술은 빨리 마셔도 안 되고, 혀로 입술을 빨아서도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실학자 박지원의 ‘양반전’에는 ”술을 마셔 얼굴이 붉게 해서도 안 되며, 손으로 찌꺼기를 긁어먹지 말고 혀로 술사발을 핥아서도 안 된다. 남에게 술을 굳이 권하지 말며, 어른이 나에게 굳이 권할 때는 아무리 사양해도 안 되거든 입술만 적시는 것이 좋다."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훌륭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착한 마음을 드러내고, 조급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사나운 기운을 나타낸다."라고 말합니다. 술을 마시더라도 사나운 기운을 드러내지 않는 세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89. 우리 겨레의 음식금기 우리 겨레에겐 음식금기가 있었습니다. 조선말기 1809년 빙허각 이씨가 엮은 일종의 여성생활백과인 ‘규합총서’에는 “돼지는 머리골을 버리고, 꿩의 꼬리가 손에 쥐지 않을 정도이거든 먹지 말며, 닭의 간을 먹지 말 것” 등이 보입니다. 같은 책에 음주금기도 있는데 막걸리를 먹고 국수를 먹으면 기운 구멍이 막히고, 술을 먹은 뒤 찬물을 마시면 찬 기운이 방광에 들어가 치질, 당뇨 등의 병이 생긴다고 쓰여 있습니다. 또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가 펴낸 ‘내훈’에 보면 임신부가 밥상을 받으면 밥상의 모서리에 앉지 않고, 한가운데에 앉아 몸가짐을 단정히 하며, 꾸부려서 먹지 않는다. 또 반듯하게 썰지 않은 것은 먹지 않는다. “라는 기록들이 보입니다. 약 먹을 때의 금기도 있는데 고려시대의 ‘향약구급방’에 보면 약을 먹을 때 익히지 않은 것, 찬 성질의 것,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금하라고 합니다.
888. 울 엄니 눈물 속 골무 “길가에 핀 보라색 골무꽃 / 울 엄니 눈물 속 골무만 할까” 조희범 님의 ‘두줄시’ ‘골무와 어머니’입니다. 골무는 예전 바느질할 때 바늘을 눌러 밀어 넣기 위하여 흔히 집게손가락에 끼는 바느질 도구입니다. 바늘로 인해 손가락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요. 골무는 조선 후기의 작품 '규중칠우쟁론기'에서 '감투할미'로 묘사될 만큼 규중부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바늘, 자, 가위, 인두들과 함께 침선의 필수품이었습니다. 골무에 놓는 수의 무늬는 사군자와 모란, 나비, 박쥐, 태극무늬 등이며, 골무상자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골무 백 개를 채웠습니다. 골무는 가죽, 금속, 셀룰로이드로도 만들지만 보통은 헝겊 또는 종이를 여러 겹 배접하여 만듭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쓰시던 골무가 그립습니다. 아니 골무를 끼시던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887. 황토목욕을 아시나요? 고은 시인은 “우리는 유사 이래 / 하늘보다 / 황토 위에서 참되었습니다.”라고 노래합니다. 그 황토를 활용한 ‘황토목욕’이란 게 있습니다. 황토목욕은 야산의 경사지에서 흙을 1미터 정도 파고 들어가 목만 내놓은 채 흙으로 온몸을 덮은 뒤 휴식을 취하면 됩니다. 황토욕을 하기에는 여름철이 좋으며, 일 년에 단 한 번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황토목욕은 집 목욕탕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무명자루에 황토 한두 되 정도를 담아서 묶어 이 자루를 섭씨 38~40도 정도의 물이 담긴 욕조에 넣으면 물에 황토가 옅은 노란색으로 퍼지는데 이때 욕조에 들어가면 됩니다. 욕조에 몸을 담근 뒤 15분 정도 지나면 몸속의 노폐물이 제거되고 피부미용효과가 있다고 전합니다. 발효식품인 김치와 된장은 황토 흙에서 자란 배추와 콩으로 해야 발효가 잘 된답니다.
886. 정악대금 연주회를 연 작은 도시, 광주 지난 12월 8일엔 경기도 광주에서 정악대금 독주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선 한쪽 팔로만 연주하는 이삼스님의 대금독주와 또 가야금과의 병주, 그리고 전통가곡 남녀창이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민속악이 아닌 정악만의 연주인데 광주문화원 이상복 원장이 광주의 전통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광주에 사는 이삼스님과 동국대 예술대학원 최종민 교수와 같이 대도시에서도 하기 어려운 정악 연주회를 연 것입니다. 이날 작지 않은 연주회장엔 청중들로 가득 찼고, 마지막까지 숨을 죽이며,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그 어려운 정악을 청중들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대도시에서 외면한 정악을 작은 도시 광주시민들은 애정으로 감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음향과 조명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것은 광주시민의 애정이 식지 않는 이상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885. 대화나 글은 잘난 체가 아닌 의사소통입니다. 사람들의 말글생활을 보면 자신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목적을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말과 글은 의사소통입니다. 어려운 말을 쓰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쓰면 상대와의 의사소통은 어렵게 됩니다. 어려운 말을 쓰면 그 사람이 유식한 것이 아니라 잘난 체를 하는 것이거나 기득권자끼리만을 위한 것입니다. ‘빚 갚음’ 대신 ‘변제(辨濟)’를 쓰고,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선비(先妣)’, ‘높임’ 대신 ‘제고(提高)’, ‘밑그림’ 대신 ‘로드맵’, ‘덤’ 대신 프리미엄, ‘잔치’ 대신 ‘Festival’를 쓰면 유식한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이란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한자말이나 영어를 써야 느낌이 잘 전달되고, 우리말을 쓰면 어색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습관일 뿐입니다. 가장 잘 팔리는 책은 어려운 전문용어를 남발하는 것이 아닌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었습니다.
884. 이도령이 춘향을 만나려고 안달하는 아니리 “아이고 내 못 살것다. 이애 방자야 너와 나와 우리 결의 형제허자. 야 방자 형님아 사람 좀 살려라. / “도련님 대관절 어쩌란 말씀이오. / 여보게 방자형님. 편지나 한 장 전하여 주게. / 존귀허신 도련님이 형님이라고까지 허여놓니 방자놈이 조가 살짝 났든 것이였다. / “도련님 처분이 정 그러시면 편지나 한 장 써 줘보시오. 일되고 안되기는 도련님 연분이옵고 말 듣고 안 듣기는 춘향의 마음이옵고 편지 전하고 안전하기는 소인 놈 생각이오니 편지나 써 줘보시오.” 위는 춘향가 중에서 이도령이 춘향이를 만나고 싶어 방자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며 안달을 하는 걸쭉한 ‘아니리’입니다. '아니리'는 소리를 하는 도중에 소리가 아닌 말로 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판소리는 아니리만 잘 들어도 참 재미있습니다. 특히 흥부가와 수궁가의 웬만한 대목은 다 웃음보를 터트릴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