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6. 브라데이나 빼빼로데이말고 “뒷짐지고 걷는 날” 11월 8일은 브라데이라 하고,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라 해서 상술이 극성을 부렸습니다. 이“데이”는 원래 “밸런타인데이”로부터 시작한 것인데 이젠 1월 14일 ‘다이어리데이’를 시작으로 매달 14일이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로즈데이, 키스데이 등이 12월까지 계속되고, 할로윈데이, 애플데이들을 더하여 한해가 온통 ‘데이’로 시작되고 ’데이‘로 끝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기업이 매출을 늘리기 위해 만든 억지기념일로 그들의 상술에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빼빼로데이는 같은 11월 11일인 ‘농민의 날’을 묻어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정월대보름이나 경칩, 칠월칠석 가운데 하나를 상술의 날이 아닌 우리 토종 연인의 날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빨리빨리”란 잘못된 관습을 버리도록 “뒷짐지고 하늘 보는 날”을 만들어 ‘자연과 더불어 생각하는 날’을 만들면 어떨까요?
855. 우리 문화의 사랑은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국악을 서양음악에 접목시켜 연주한 기사에 한 독자가 발끈하며 쓰레기라고 합니다. 절대 옛것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런가요? 물론 요즘 퓨전이라고 표방하는 것들을 보면 어이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국악기로 서양음악을 연주한 음반에서 된장 냄새가 아닌 버터 냄새가 짙게 풍겼다면 그건 안 될 일입니다. 가야금과 해금을 연주하는데 앞에서 비보이가 춤을 춘다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옛것만 무조건 고수한다며 갓을 쓸 수 있습니까? 지금의 전통이란 것도 알고 보면 변화된 것입니다. 지금 여자 한복 저고리의 길이가 26센티미터 정도인데 조선 초기엔 무려 81센티미터나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저고리는 전통아 아닌가요? 박지원이 말한 옛것에 바탕을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새겨야 할 때입니다.
854. 고려나 조선시대엔 남자 춤꾼들이 있었다. 고려 초기부터 음력 섣달 그믐날에 묵은해의 귀신을 쫓아내려고 베풀던 의식인 “나례(儺禮)”라고 하는 성대한 의식이 있었는데 이때 노래와 춤 및 온갖 놀이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조선조 인조 때까지 “나례도감(儺禮都監)”을 두어 관장하고, 외국사신을 영접할 때도 쓰이며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이런 전통사회에서는 남자들이 노래와 춤을 주로 많이 했는데 궁궐에서 행해진 잔치에서는 ‘여령(女伶)’이라 하여 여자들뿐만 아니라 ‘무동(舞童)’이란 상당수의 남자 무용수들을 가르쳐 춤을 추도록 했는데 이런 무동의 춤추는 모습은 춤의 동작을 악보처럼 일정한 기호나 그림으로 기록한 책인 무보(舞譜)들 즉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와 “시용무보(時用舞譜)”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남자들이 춤을 춘 것은 정제되어 있는 가운데 힘이 있는 춤에 남성들이 잘 맞기 때문일 것입니다.
건강을 원한다면 한복을 입어라! 한복 속에 숨겨진 한방과학 ▲ 한복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부채춤 ⓒ 김영조 서양의학만을 과학적이라 여기고 우리의 전통 의학은 미신쯤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은 그 학문적 바탕이 전혀 다름에도 현대 과학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태도 때문에 한의학의 과학적 우수성이 가려지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와 같은 문화사대주의는 한의학만이 아니라 의복을 비롯한 우리 문화 전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향과 맛이 뛰어난 우리 차는 외면하면서 가짜인지도 모를 중국 보이차에 열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대한 발효 항암식품인 우리의 된장을 제치고,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일본의 미소된장을 사먹는 사람들이 그 예이다.또 지금 한국 사람들의 옷은 양복과 양장, 그리고 캐주얼 옷 일색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일상의 옷이 서양옷으로 바뀌어버렸을까? 한국전쟁 전만 해도 한국인들의 흰색 두루마기를 입는 것은 예사로 볼 수 있었고, 여자들이 치마, 저고리도 입는 것도 남의 눈길을 끄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연예인은 물론 지도급 인물들이 서양옷을 입으니 자연 모방으로 가게 되었다. 서양옷이 좋은 옷인지 분석해보고 입은 것이 아니란 얘
민간이 운영하는 세종국악관현악단을 지원하라! 처음 시도한 세종 칸타타 공연에 손뼉을 ▲ 국악칸타타 2006 “찬란한 빛, 아! 세종대왕”을 공연하는 세종국악관현악단 ⓒ 세종국악관현악단 지난 10월 2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세종국악관현악단 주최,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글날큰잔치조직위원회, 한글학회,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후원으로 국악칸타타 2006 “찬란한 빛, 아! 세종대왕”이 열렸다. 이 공연은 칸타타 형식의 창작국악관현악곡 연주였다. 칸타타란 무엇인가? 칸타타(cantata)는 이탈리아어로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바로크 시대에 발전한 성악곡의 한 형식인데 독창, 중창, 합창과 기악 반주로 이루어지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사의 내용에 따라 세속 칸타타와 교회 칸타타로 나눈다고 한다. 국악칸타타 2006 “찬란한 빛, 아! 세종대왕”을 작곡한 이병욱 교수는 작곡의 뜻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역사에서 세종임금만큼 선정을 베풀고, 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며, 나라와 형제와 백성 사랑이 끔찍한 분도 없을 것이다. 지금 세상은 온통 비인간적인 모습인데 세종임금을 오늘에 살리고 드러내면 모두가 함께하는 누리로 변할 것이란
853. 우리나라 국악기 가운데 관악기들 우리나라 국악기들 가운데 불어서 연주하는 관악기(공명악기)에는 소라의 뾰족한 끝에 구멍을 뚫고 입김을 불어 연주하는 ‘나각’과 우리나라의 유일한 금속관악기로 한 음만을 길게 불어 낼뿐이고, 선율은 없는 ‘나발’이 있습니다. 또 불면 모든 근심걱정이 없어진다고 한 신라시대의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여겨지며, 관악기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대금과 단소, 소금, 당피리, 향피리, 세피리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호적(胡笛, 號笛), 쇄납, 소이나, 쇄나, 철적, 날라리라고도 하며, 종묘제례악과 대취타, 풍물굿, 범패 등에 사용되고, 국악기 중 가장 음량이 큰 선율악기로 장쾌하면서도 애처로운 소리를 내는 태평소가 있지요. 요즘 잘 연주되지 않는 생황도 관악기의 하나입니다. 서양의 플루트나 클라리넷, 오보에 등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만 우리 악기들은 차원이 다른 훌륭한 매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852. 나이 드신 노인들에게 선물하는 입동 어제(11월 7일)는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인 입동으로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겨울이 시작하는 날 눈이 온 곳들이 많았습니다. 입동은 천지만물이 양에서 음으로 변하는 시기입니다. 이제 길고, 고통스러운 겨울의 시작인 셈이지요. 겨울을 맞아 주위에 어려운 이웃은 없는지 살펴 볼 때입니다. 많이 베풀수록 모두 다시 내게 돌아온다는 ‘보시의 정신’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시대의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약’을 보면 봄가을로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 동지, 섣달 그믐날 밤에 나이가 드신 노인들에게는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논밭 한 뙈기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한 해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기꺼이 금품을 내놓았지요.
851. 당나라 사람들은 고구려 춤을 잘 추었다. 중국 송나라 때에 구양수, 송기 등이 편찬한 당나라의 역사서 “신당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당나라 측전무후 때의 재상인 양재사는 고구려 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잔치에 가서 사람들이 그에게 고구려사람 같다고 하자 달갑게 여기며, 명주를 베어 건을 달고 자포를 뒤집어쓰고 고구려 춤을 추었는데 몸의 움직임이 박자에 맞았다.” 재상이란 높은 관리와 귀족들이 고구려 춤을 잘 추었고, 관원들이 고구려 춤을 알고 있었으며, 고구려 춤이 독특한 복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고구려 춤이 당나라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유행했던 가를 알게 해줍니다. 이와 함께 고구려 음악은 당나라에서 8세기 말까지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당나라는 비록 당태종이 고구려를 치기도 했지만 고구려의 문화를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참고 : “길이 멀어 못갈 곳 없네“ 이동식, 어진소리
850. 고려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었다. 송나라의 서긍(徐兢, 1091~1153)이 고려 송도에 사신으로 와서 보고 들은 것을 쓴 ‘고려도경」(高麗圖經) 제23권 잡속2에는 고려 백성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륙에 사는 사람이어서인지 고려 백성이 즐기는 해산물을 싫어하는데 가난한 백성도 굴이나 전복 등 귀한 해산물도 먹는다고 썼습니다. “고려 풍속에 양과 돼지가 있지만 임금이나 귀족이 아니면 먹지 못하며,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 전복, 조개, 진주조개, 왕새우, 문합(文蛤, 백합과의 조개), 붉은게, 굴, 거북이다리, 해조, 다시마는 귀천 없이 잘 먹는데, 구미는 돋우어 주나 냄새가 나고 비리고 맛이 짜 싫다. 고기잡이는 썰물 때에 배를 섬에 대고 고기를 잡되, 그물대신 성긴 천으로 고기를 잡기에 애쓰는 것에 비하면 소득은 적다. 다만 굴과 조개는 썰물 때 쉽게 줍는데 아무리 주워도 없어지지 않는다.”
849. 이런 사람은 되지 맙시다.(토박이말 이야기) 우리 토박이말 가운데 '고드름장아찌'라는 말도 있는데 말과 행동이 싱거운 사람을 말합니다. 장아찌는 간장에 절이거나 담근 것인데 고드름을 간장에 절였다는 것으로 비유하여 맹물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검정새치'는 새치이면서 마치 검은 머리카락인 척하는 것처럼 같은 편인 체하면서 남의 염탐꾼 노릇을 하는 사람이지요. ,br>또 '윤똑똑이'란 말이 있는데 음력의 윤달처럼 가짜로 만들어진 것을 빗댄 것으로 저 혼자만 잘난 체하는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것입니다. '치마양반'도 있는데 이는 출신이나 능력이 별로인 남자가 지체 높은 집안과 혼인하여 덩달아 행세하는 사람이고, 담배를 많이 피우는 골초는 '용고뚜리', '철록어미', 거리낌 없이 상말을 마구 하는 입이 더러운 사람은 '사복개천'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