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6. 우리말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낱말은 무엇일까? 예전 한겨레신문에 연재됐던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에는 서울대 권재일 교수의 ‘우리말 사용 빈도’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거기엔 국립국어원에서 1990년대 현대소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소설은 그 시대의 현실 언어를 가장 잘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료입니다. 이 보고서에 재미있는 사실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가장 많이 쓰인 낱말은 ‘이다’로서 전체의 3.34%를 차지하고, 그 뒤를 대명사 ‘나’, 의존명사 ‘것, 수’, 용언 ‘있다, 하다, 없다, 되다’ 등이 많이 쓰였습니다. 대체로 뜻과 기능의 폭이 넓은 낱말들입니다. 토박이말과 한자어를 살펴보면, 50위 안에 든 한자말은 33위에 ‘여자’란 한 낱말이 있을 뿐이며, 100위 안에도 여덟 단어 정도입니다. 이것은 사전에 실린 한자어가 우리말 전체의 70%나 된다고 하지만, 실제 말글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낮음을 말해줍니다..
785. 중국에 있는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흔적들 중국에는 우리 겨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시안 남쪽 종남산(終南山)의 자오곡(子午谷)에 있는 김가기의 마애석각입니다. 기록과 전설에 따르면, 김가기(金可紀)는 8세기 말 당나라에 유학을 와 과거에 급제하고, 학식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 그는 잠시 신라에 다녀 온 뒤 도술을 닦았고, 종남산 자오곡에 터를 잡았습니다. 이곳에서 화초를 키우며, 은둔생활을 하다가, 859년 옥상황제의 부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김가기는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중국인들한테서 도를 성취한 신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또 싼시성 선유사라는 절에는 혜초스님이 황제의 요청에 의해 기우제를 드린 곳이 있습니다. 임시정부가 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 배경인 소설 를 쓴 이봉원씨는 중국에 여행을 가면 중국의 유적지만이 아닌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흔적을 찾아보길 권합니다.
784. 조선시대 유생들의 ‘아이고!“ 상소 조선 중종 때 성균관의 1백 50여 명의 유생들이 대궐문을 밀고 뛰어들어 편전 문 밖에서 통곡하니, ‘아이고’ 소리가 궐내에 진동하였습니다. 승지가 상소문을 가지고 들어가니, 임금이 누가 곡하는지 묻습니다. 이에 승지가 개혁정치가 조광조를 처벌하지 말라는 유생들임을 말하자 임금은 “상소는 할 수 있지만, 어찌 함부로 들어와 통곡할 수 있는가? 유학자의 사리와 체면이 이러한가? 이제 곡성을 들으니 매우 놀랍다. 낱낱이 죄를 다스릴 수는 없으니 그 중에서 앞장선 자 5∼6명을 가두어 죄주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신들이 아뢰기를, “젊은 유생들이 잠시 정신이 흐려 이렇게 된 것이니 반드시 죄줄 것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조선시대는 시위도 “아이고”로 하고, 이에 임금은 그저 주동자 몇 사람만 옥에 가두는 정도였습니다. 요즘과 비교하면 조선시대는 시위도 처벌도 점잖습니다.
783. 조선의 골프, 장치기를 아십니까? 요즘 우리의 낭자들은 운동에서 세계적인 기량을 보입니다. 특히 세계 골프대회를 석권한 낭자들은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장치기라는 골프 또는 하키와 비슷한 놀이가 있음을 아시나요? 장치기는 다른 말로 타구(打毬), 격구(擊毬), 포구(抛毬), 장구(杖毬), 봉구(棒毬)라고 하는데 1미터 정도의 단단한 나무를 끝이 구부러지게 하여 공을 치기 편리하게 만든 놀이채로 소나무의 옹이가 있는 부분이나 고양 나무, 박달나무와 같이 굳은 나무를 둥글게 깎아서 만든 공을 쳐서 구멍에 넣는 놀이입니다. 삼국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행해진 전통 민속놀이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장치기는 군사들의 훈련과 조정 대신들의 여가 선용을 위한 사교용 놀이였다가 일반 백성에게 널리 퍼졌으며 또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했음이 기록에 있습니다.
782. 보이차는 후발효차이고 흑차입니다. 보이차는 중국 윈난성, 시쐉빤나, 시마오 등지에서 생산되는 중국의 명차인데 보이현에서 모아서 출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보이차는 제조과정에서 오래 묵힐수록 고급차가 되며, 대체로 20년 이상이면 최고품으로 칩니다. 보이차는 가공한 뒤 미생물에 의한 발효를 거치기 때문에 후발효차(後醱酵茶)입니다. 차잎을 우려내는 도중엔 녹물같이 진한 적갈색을 띄다가 완전히 우려지면 홍차와 비슷한 색을 됩니다. 보이차는 '흑차(黑茶)'의 일종입니다. 호남성, 운남성 등의 산간지방에서 자란 찻잎은 너무 떫어 어쩔 수 없이 묵혀서 발효시켜야 마실 수 있었고, 오래 묵힌 탓으로 찻잎이 검게 변해서 흑차라 부르게 된 것이지요. 중국에서는 보이차를 야만인들이 마시는 품질이 낮고, 보잘 것 없는 차로 생각해 오다가 청나라 때 황실이 좋아하면서 이름이 나기 시작한 차로 우리가 열광할 까닭은 없습니다.
781. 흙으로 만든 국악기, 부 국악기 중 ‘체명악기(體鳴樂器)’는 쇠, 돌, 나무, 흙으로 만든 타악기를 말합니다. 체명악기는 꽹과리, 징, 편경, 편종, 축, 방향, 자바라, 박, 어, 부 등이 있습니다. 이중 ‘부(缶)’라는 악기는 점토로 화로같이 만들어 구은 것인데 우리말로는 ‘질장구’라고 합니다. 부는 아홉 갈래로 쪼개진 대나무 채를 써서 부의 위쪽 가장자리를 쳐 소리를 내는데 소리는 두꺼우면 높고 얇으면 낮아지며 잘 구워야 좋은 소리를 얻습니다. 중국 고대 아악기의 하나이지만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기록에 의하면 세종임금 때 당시에 연주하던 부가 좋지 않아 박연이 마포 강가에서 완전한 부 10개를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전합니다. 부는 문묘제례악에 쓰이는데, 치는 방법은 한 음이 규칙적으로 4박씩 계속되는 경우 제 1박에서는 쉬고, 제 2박에서는 한번, 제 3박에서는 두 번, 제 4박에서는 굴려서 칩니다.
780. 한복은 관절을 편하게 하는 옷 우리 국민 중 많은 이가 아직 한의학을 미신이라고 하는 것처럼 과학적인 한복을 미개한 옷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주 경희한의원 문찬기 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한복의 가장 큰 특징은 넉넉함인데 이는 건강에 아주 좋은 형태이다. 옷이 관절을 구속하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한복은 평면재단을 하여 내 관절 모양에 옷을 맞추는 형태여서 관절이 자유로워지도록 한다. 평면재단의 넉넉함은 어깨관절을 편하게 하며, 다리 관절을 굽히고 펴기가 자유롭도록 하고 대님은 발목이 삐기 쉬운 겨울철에 부목 구실을 하는 것과 함께 아주 좋은 형태이다.” 한복바지가 고관절을 편하게 한다는 것은 자동차 운전을 해본 사람이면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체를 조이지 않음으로 운전할 때 편한 자세를 만들어 주지요. 이는 전통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한복을 입는다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779. 임금이 먹으면 수라, 하인이 먹으면 입시 밥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임금이 밥을 드시면 ‘수라’, 어른이 드시면 ‘진지’, 보통 사람이 먹으면 ‘밥’, 하인이 먹으면 ‘입시’이고, 죽은 사람에게 제사지내는 밥은 ‘젯메’입니다. 밥도 수라가 되면 영광스럽고, 입시가 되면 천해질까요? 예전 농부들은 그릇 위까지 수북이 담은 ‘감투밥’을 먹었습니다. 감투밥은 고봉밥이라고도 합니다. 하인이나 천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소금엣밥’, ‘강밥’도 먹습니다. ‘소금엣밥’은 소금으로 반찬을 차린 밥, 즉 변변치 못하게 차린 밥을 말합니다. 또 ‘강밥’은 국이나 반찬도 없이 강다짐으로 먹는 밥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는 마땅한 값을 치르지 않거나 당연히 할 일을 하지 않고 ‘공밥’을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쐐기밥’이란 것도 있는데 이는 속에 반찬감을 넣어 손에 들고 먹을 수 있게 쐐기를 지은 밥을 말합니다. 김밥이나 햄버거가 바로 ‘쐐기밥‘의 하나가 아닐까요?
778. 오늘은 처서, 곡식을, 옷을, 책을 말립니다. 오늘은 처서(處暑)로 '더위를 처분한다'는 날입니다. 김현승 시인은 “가을의 기도”라는 시에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라고 노래합니다. 이때는 포쇄(曝:쬘 ‘포’, 曬:쬘 ‘쇄’)를 하는데 “농부는 곡식을 말리고, 부녀자는 옷을 말리고, 선비는 책을 말린다”라고 하여 가을맞이 준비를 합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파리 모기의 성화도 줄어가는 무렵입니다. 명절의 하나인 백중날(음력 7월 보름)의 호미씻이(농가에서 마지막 논매기를 끝낸 음력 7월에 노는 놀이)도 끝나는 무렵이라 그야말로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농촌은 한가한 한 때를 맞이합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거나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고 하여 곡식이 흉작을 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요.
777. 성군 세종임금은 온갖 병의 집합체였다. 세종임금은 젊어서부터 한쪽 다리가 아팠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종실록 21년 6월 21일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많은 업적을 이룬 세종은 온갖 병의 집합체였습니다. 특히 눈에 병이 나 잘 보이지 않는데도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은 성군입니다. “등에 부종으로 아픈 적이 오래다. 아플 때에는 마음대로 돌아눕지도 못하여 그 고통을 참을 수가 없다. 지난 계축년 봄에 온천에서 목욕하였더니 효험이 있었다. (중략) 또 당뇨병이 있어 열 서너 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나았다. 지난해 여름에 또 임질을 앓아 오래 정사를 보지 못하다가 가을 겨울에 이르러 조금 나았다. 지난봄 왼쪽 눈이 병이 나 눈을 가렸는데, 오른쪽 눈도 어두워서 한 걸음 사이에서도 사람이 있는 것만 알겠으나 누구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겠다. 내가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이제 많이 늙고 소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