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9. 한복이 편한 옷이라고 하는 까닭 예부터 한복은 편한 옷의 대명사처럼 불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복은 불편하고, 청바지를 편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의생활에서 편함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입을 때 편한 것, 그리고 입으면서 구속감이 없이 편한 것입니다. 청바지가 편하다는 까닭은 쉽게 입을 수 있고, 아무 데나 앉을 만큼 질기다는데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몸을 조이기 때문에 가부좌 자세로 앉거나 운동을 할 때는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또 몸을 조인다는 것은 건강에 큰 해를 주게 됩니다. 반대로 한복은 처음 입을 땐 시간이 걸리고, 까다로운 점도 있지만 입는 동안 몸을 전혀 구속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운동을 하거나 가부좌를 하거나 전혀 문제가 없으며, 건강에 큰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에게 어떤 옷이 바람직한지 분명해질 것입니다.
748. 경복궁의 이름이 가진 뜻 이 태조는 조선을 세우고, 한양으로 천도한 뒤 궁궐을 지은 다음 정도전(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학자, 호는 삼봉)에게 이 궁궐의 이름을 짓기를 명했습니다. 정도전은 ‘시경’ 대아편에 있는 “술에 실컷 취하고, 덕(德)에 배가 불렀다. 훌륭한 사람, 만년 동안 큰 복(景福)을 누리리라.”하는 노래에서 “경복”이란 글자를 따와 궁궐의 이름으로 짓습니다. 그러면서 태조에게 이런 청을 잊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쓴 춘추(春秋)를 보면 백성의 힘을 중히 여겨 건축하는 일을 삼가라 하였습니다. 어찌 임금이 되어 백성의 노력을 빌려 자신의 안락만을 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하오니 앞으로 이 넓은 궁궐에 거처하실 때에는 가난하게 사는 선비들을 감싸주고 보호할 것을 생각하시고, 여름이 되어 집안에 서늘한 기운이 돌거든 어떻게 하면 온 백성에게 이 서늘한 기운을 골고루 베풀까를 생각하십시오.” -삼봉집(三峰集)에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글 백가지", 조면희, 현암사
오늘은 유두날입니다 명절의 유래와 세시풍속... 불편했던 이웃과 같이 웃는 날 ▲ 유두와 여름에 즐겼던 발담그기, 조선 중기의 화가 이경윤의 '고사 탁족도(濯足圖)'. ⓒ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겨레가 즐겼던 4대 명절은 설날, 단오, 한식, 한가위를 말한다. 이밖에도 정월대보름, 초파일, 유두, 백중, 동지도 명절로 지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은 유두(流頭 : 음력 6월 15일)와 백중(百中 : 음력 7월 15일)이 무엇인지도, 어느 날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오늘(10일) 음력 6월 15일은 '유두날'이지만 유두국수를 먹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유두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세시풍속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유두는 유두날이라고도 하는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다. 이것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풍속이며, 동방의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으로 보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다. 유두를 신라 때 이두로 '소두'(머리 빗다), '수두'라고도 썼다.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로 '물맞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요즘도 신라의 옛 땅인 경
오늘은 복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이다. 올해는 강원도를 비롯하여 온 나라에 큰 비가 내려 복날의 의미가 약해졌지만, 삼복의 유래와 세시풍속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데 하지 후 셋째 경일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 또는 삼복이라 한다.우리 조상은 해(년), 달(월), 날(일)에 모두 지지(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천간(자축인묘진사오미)을 조합하여 갑자·을축·병인 등으로 이름을 지었는데'경일'이란 지지의 '경' 자가 들어간 날을 가리킨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리는데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며, 이를 월복이라고 한다. 1614년(광해군 6년)에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다.'오행설'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의 기운, 가을철은 '금'의 기운이다. 그런데 가을의 '금' 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747. 근심가마리, 이런 사람이 되지 맙시다. 우리 토박이말에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껄떡쇠’는 ‘먹을 것을 몹시 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 잔소리를 귀찮게 잘 늘어놓는 사람이나 바가지를 자주 긁어대는 여자는 ‘긁쟁이’입니다. 나이는 많아도 실없고 쓰잘 데 없는 사람은 ‘곤쇠아비’이며, 저 혼자만 잘나고 영악한 체하는 사람은 ‘윤똑독이’, 근심거리가 되는 일 또는 사람을 ‘근심가마리’로 부릅니다. 이밖에 담배를 자주 피우는 사람은 ‘용고뚜리’, 담배를 연달아 피우는 사람은 ‘철록어미’입니다. 요즘 나라에는 세력 있는 사람의 주위에서 총기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많은데 그를 ‘해가림’으로 불러줍니다. 이런 사람은 더불어 사는 세상에 근심거리입니다. 우리 모두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공을 세우는 사람 ‘굄돌’이면 좋겠습니다. 또 곰과 같이 순하고 듬직한 사람, 즉 ‘곰손이’도 괜찮지 않을까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박남일, 서해문집
746. 세상 최초의 측우기, 문종이 만들었다. 최근 큰비가 내려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가 온 양을 재는 기구인 측우기는 맨 처음 누가 발명했을까요? 비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관측한 나라는 기원전 4세기의 인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규격화된 우량계를 만들어 우량을 과학적으로 관측한 것은 우리나라 측우기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알려집니다. 이 우리나라의 측우기는 보통 장영실이 만든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진짜 발명가는 세종의 맏아들이며, 훗날 문종이 된 이향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깊이 한 자 다섯 치(약 47센티미터), 지름 일곱 치(약 22센티미터) 크기의 쇠로 만든 원통형 그릇에는 ‘측우기(測雨器)’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비의 상태에 따라 미우, 세우, 소우, 하우, 여우, 취우, 대우, 폭우의 8단계로 나누어 나타내게 했습니다. 미우는 땅을 적실만한 정도의 아주 적은 비이며, 폭우는 아주 큰비이지요.
745. 더위를 이기는 보양식, 임자수탕과 용봉탕 한여름 삼복더위를 이기는 보양식에는 삼계탕, 보신탕, 육계장 외에도 임자수탕, 용봉탕도 있습니다. 임자수탕의 '임자(荏子)'는 참깨를 가리키는 말로 이 음식은 깨를 불려 소화가 잘 안 되는 껍질은 벗겨내고 볶아서 곱게 갈아 체에 밭친 뽀얀 깻국물에 영계를 푹 삶아 고운 국물을 섞어 차게 먹는 냉탕입니다. 깨는 좋은 단백질이 들어 있으며, 50% 이상을 차지하는 지방은 등푸른 생선에 많이 들어있는 디에치에이(DHA)와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고열량 식품이며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함량이 높아 맛과 영양면에서 매우 훌륭한 음식입니다. 용봉탕의 '용봉(龍鳳)'은 상상의 동물인 용과 봉황을 말하는데, 실제는 용 대신 잉어나 자라를, 봉황 대신 닭을 씁니다. 주재료인 잉어와 닭은 각각 영양면에서 뛰어나고, 궁합이 매우 잘 맞는 음식입니다.
744. 내일은 초복, 목욕을 하지 않습니다. '오행설'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火)'의 기운, 가을철은 '금(金)'의 기운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복기간은 가을의 '금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초복, 중복, 말복'이라고 합니다. 옛사람들은 복중에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여름 과일을 즐기거나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산간계곡으로 들어가 탁족(濯足:발을 담금)을 하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하루를 즐겼습니다. 또 바닷가 모래밭에서 모래찜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복날과 관계있는 믿음으로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라는 것이 있지요. 그래서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지만 초복에 목욕을 했다면 중복과 말복에도 목욕을 해야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743. 큰비가 아닌 태종우이기를 요즈음 큰비가 내려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비가 큰비로 내리면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만 적당히 내리는 비는 농사에 큰 도움을 줍니다. 옛 사람들은 태종우(太宗雨: 태종 임금이 내리게 하는 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조선 3번째 임금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임금자리를 물려준 4년 뒤인 1422년 온 나라가 가뭄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병으로 누워있던 태종이 말했습니다. “가뭄이 심해 백성이 어찌 살아갈까? 내가 죽으면 하늘에 말해야 하겠다.” 그러자 그 때문인지 비가 내렸고, 온 나라엔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날이 5월 10일이었는데 그 뒤 해마다 그날이면 비가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5월 10일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했습니다. 임금이 백성을 끔찍이 사랑하면 하늘도 감복하는 모양입니다. 조선시대 가뭄이 들면 임금이 자신의 탓이라며 식음을 전폐했다는데 요즘 어디 그런 정치인은 없나요?
742. 서양의 현악기를 이끄는 우리의 악기, 해금 흔히 우리 악기는 음폭이 적어 서양악기와 협연하기 어렵다고들 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부쩍 는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협연에서 해금은 오히려 서양 현악기를 이끈다는 느낌까지 줍니다. 해금의 명인으로 불리는 김영재 선생을 비롯하여, 정수년, 강은일, 변종혁 등이 이름난 연주자들입니다. 해금(奚琴)은 사부(絲部:울림통에다 명주실로 꼰 줄을 얹어 만든 악기)에 속하는 찰현악기(활로 현을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해금은 작은 울림통에 세로로 대를 세우고 울림통과 대 사이에 두 개의 줄을 연결하여 만듭니다. 오른손은 활대로 줄을 마찰시키고, 왼손은 두 줄을 한꺼번에 감아 잡고 쥐거나 떼면서 음높이를 조절합니다. 해금은 흔히 깡깡이, 깡깽이라고도 하며, 혜금(嵆琴), 계금으로도 부릅니다. 고려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악기로, 중국 요하 상류 유목민족인 해족(奚族)의 현악기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