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 장인이 장이로 바뀐 결과 백제에서는 기와 장인을 ‘와박사(瓦博士)라고 불렀고, 6세기 후반 이들을 왜국에 파견하여 기와제작법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백제 때는 와박사를 비롯한 장인들이 높은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의 탈해왕은 자신을 본래 단야(鍛冶), 즉 대장장이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신라와 가야의 대형 고분들에서는 집게, 망치, 숫돌, 받침모루 따위의 대장간 도구들이 출토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루어 볼 때 대장장이 집단이 상당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우받던 장인들은 조선시대엔 장이로 전락합니다. 가죽공예의 장인을 ‘갖바치’라 하고, 대장아이, 옹기장이 따위로 불리며, 상민이나 천민 등 하층계급으로 천시를 받습니다. 장인들의 이런 신분추락은 결국 뛰어난 겨레문화가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맥이 끊기는 안타까움이 되었습니다.
679. 조선시대 백성들은 신문고를 두드릴 수 있었을까? 조선시대 백성들은 중앙정부나 지방 수령, 그리고 지방의 토호들에 의해 경제적인 수탈과 피해를 자주 당하였다고 하지요. 그래서 1401년, 태종은 중국의 제도를 본떠서 백성들이 임금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도록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 신문고를 억울한 백성들이 제대로 두드릴 수 있었을까요? 신문고는 아무 때나 칠 수 없었습니다. 먼저 자기 고을의 수령과 관찰사와 사헌부의 순서대로 호소하고, 사헌부의 처리에도 만족하지 못할 때만 신문고를 치도록 했습니다. 이때 각 단계별로 전 단계의 관원에게서 그 사안을 처리했다는 확인서를 받아 제출해야만 다음 단계에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이 전해진 절차에 거쳐 신문고를 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지금은 청와대 누리집에 직접 호소할 수 있지만 이후 처리 과정에 만족하는 국민은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678. 조선총독부가 풍물굿을 못하게 한 까닭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총독부는 삼천리 곳곳의 민속놀이를 조사하여 ‘조선의 향토오락’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 안에서 풍물을 비롯한 각종 민속놀이를 금지했지요. 조선시대 천 가지가 넘었던 우리의 민속놀이가 말살되고, 가장 인기 있었던 ‘쌍륙’의 맥이 끊기면서 오랫동안 풍물굿을 볼 수 없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총독부는 왜 우리의 민속놀이를 금했을까요? 그것은 문화를 지배해야 진짜 식민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일 것입니다. 또 풍물굿이 갖고 있는 즉, 모여서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공동체적 요소 때문에 식민통치를 하는 처지에서 보기에 자신들의 존재기반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않을까요? 하나 더하면 조선인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어줄 풍물굿이나 민속놀이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677. 우리말에 억지로 한자를 꿰맞추는 사전들 북한 에 ‘부실하다’를 우리말로 다루어 “①다부지지 못하다 ②정신이나 행동이 모자라다 ③실속이 없다 ④충분하지 못하다 ⑤넉넉지 못하다 ⑥미덥지 못하다”처럼 풀어 놓았는데 남한 사전들은 이 ‘부실하다’에 말밑으로 不實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부실하다’와 不實은 다른 말입니다. ‘부실하다’는 ‘튼실하다’의 상대말이고, ‘불실(不實)은 ‘결실(結實)‘의 상대말로 ’불실과(不實果)‘에나 쓰입니다. 국어 어원연구 전문가인 정재도 선생은 위와 같은 예를 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안타까움을 털어놓습니다. “우리 사전들에는 우리말에다가 당치도 않은 한자를 붙여 놓은 것이 많습니다. 우리말이 없었다는 생각에서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데 우리는 한자 없이도 우리말을 쓰는 겨레입니다. 우리말이 한자 때문에 없어진 것이 많은데 남아있는 우리말은 한자말로 둔갑시키고 있습니다.”
676. 8천 년 전 통나무배가 증거하는 배달나라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반만년이라고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군임금을 신화로 치부해버린 일본식민사학이 만들어낸 거짓입니다. 지난해 9월 초에 경북 창녕 부곡면에서 약 8,000년 전 통나무배가 나타났고, 1925년의 큰물로 불거진 약 6,000년 전 움막집 터가 한강 가 암사동에 복원되었습니다. 한말글연구회 정재도 회장은 이것들이 의 에 있는 약 9,000년 전 한인의 한나라와 한웅의 배달나라 역사를 증명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도, 사학계에서는 아직 한나라와 배달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충분한 연구와 고고학적 증거가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국수주의도 안 되지만 모든 것을 다른 나라의 눈 혹은 사대주의 시각으로 재는 모습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675. 회심곡을 불러보는 어버이날 “진자리는 인자하신 어머님이 누웁시고 / 마른자리는 아기를 뉘며, / 음식이라도 맛을 보고 / 쓰디 쓴것은 어머님이 잡수시고, / 달디 단 것은 아기를 먹여 / 오육월이라 짧은 밤에 모기 빈대 각다귀 뜯을 세라, / 곤곤하신 잠을 못다 주무시고” 이는 회심곡(回心曲)의 일부입니다. 회심곡은 조선시대 선조(宣祖) 때 서산대사 휴정이 지은 불교포교 가사(歌辭)인데 부모에게 효도하고, 욕심을 버리며,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염불하여 마음을 바르게 닦아 극락에 가서 태평가(太平歌)를 부르자는 내용입니다. 어버이날, ‘효도’하면 떠올리는 노래가 바로 이 회심곡입니다. 해마다 이 때 김영임 명창은 회심곡으로 효공연을 합니다. 철이 들어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하면 이미 부모님은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라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이 회심곡을 불러보면 어떨까요?
674. 감기는 몸이 스스로 개혁하는 것 “감기는 담이 많이 쌓이고 이 담을 인체의 힘만으로 처리하기 어려울 때 스스로를 개혁하기 위하여 바이러스의 힘을 빌려 대청소를 하고 스스로 인체의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기란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지만 보통 사회에서 개혁을 달가워하지 않듯 몸에 감기가 생기는 것도 환영할 까닭이 없다. 개혁을 하려면 기존의 세력이나 사물이 그냥 사라져 주는 것이 아니라 저항을 하기 때문에 언제나 다툼이 일어나며, 소란스럽고 고통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위 이야기는 전 경희대 한의대 교수인 박찬국씨의 말입니다. 열이 나고 땀을 흘려서 감기가 낫는 것이 바로 인체의 개혁인데 감기가 마치 원수나 되는 것처럼 항생제나 해열진통제를 마구 쓰는 것은 감기가 진행되지 못하게 하여 잠복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673. 오늘은 여름에 드는 입하(立夏)입니다. 오늘은 '여름(夏)에 든다(入)'는 뜻으로 초여름의 날씨를 보이게 되는 입하입니다. 푸르름이 온통 산과 강을 뒤덮어 여름이 다가온 것을 알리는 절기이지요. 이맘때면 곡우 때 마련한 못자리도 자리를 잡아 농사일이 좀 더 바빠집니다. 서울 송파지역에서는 세시풍습의 하나로 쑥무리를 시절음식으로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또 이 때쯤이면 햇차가 나올 때입니다. 흔히 우려마시는 녹차에서는 곡우 전에 딴 우전차를 최상품으로 치지만,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艸衣)선사는 '우리의 차(茶)는 곡우 전후보다는 입하(立夏) 전후가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즉 전통차에서는 완숙하면서 깊은 여름차가 더 잘 맞는다는 말입니다. 전통차는 덖음차로서 된장찌개와 숭늉의 깊고, 구수하며, 담백한 맛을 닮은 차를 만드는데 이에는 여름차가 더욱 가깝다는 뜻이겠지요.
672. 허리가 아름다운 옷, 철릭 허리가 아름다운 옷, 철릭(첩리)을 아십니까? 철릭은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 전기에 거쳐 임금부터 여러 계층에서 입은 겉옷의 하나로 단령 밑에 입는 받침옷입니다. 위아래가 붙은 구조로 허리에 주름을 잡아 활동하기 편리하게 만든, 독특하고 아름다운 형태이지요. 철릭은 몽고의 질손으로부터 유래한다고 하는데, 원대의 군병복에서 쓰였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정착되었다고 봅니다. 철릭의 기본 형태는 서양옷의 원피스처럼 웃옷과 아래옷이 연결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다른데, 유물에서 보면 웃옷과 아래옷의 비율은 1:1에서부터 1: 3까지 있습니다. 좁은 소매(착수)도 있고, 폭이 넓은 광수포까지 보이는데, 소매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허리에 잡은 주름은 대체로 0.1 ~ 0.2센티미터이지만,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요.
671. 차의 종류에 대해 알아봅니다. 요즘은 참살이를 위해 전통차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차의 종류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차는 먼저 발효 정도에 따라 비발효차(전통차, 녹차), 반발효차(우롱차), 발효차(홍차), 후발효차(보이차)가 있으며, 가공방법에 따라 덖음차(전통차), 찐차(증제차:녹차), 묵힌차(보이차)로 나누기도 합니다. 또 차잎을 딴 때에 따라 춘설차(春雪茶:봄눈이 채 녹기 전에 돋아난 여린 잎으로 만든 차), 봄차(春茶), 여름차(夏茶), 가을차(秋茶)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밖에 화차(花茶:꽃잎을 섞어 향기를 더한 차), 감로차(甘露茶:아침이슬이 가시기 전에 차잎을 따서 만든 차), 죽로차(竹露茶:대나무숲에서 이슬을 먹고 자란 차) 따위가 있으며, 모양에 따라 작설차(雀舌茶:차의 술이 참새의 혀와 닮음), 응조차(鷹爪茶:매의 손탑과 닮음), 맥과차(麥顆茶:보리의 알을 닮음)들처럼 또 다른 이름들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