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아요', '파이팅', '애매하다' 쓰지 마세요 당당한 말글생활을 위한 제언 ▲ 세종임금 영정(김학수 그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얼마 전 서평을 쓰기 위해 글쓴이와 대담을 하던 중이었다. 글쓴이는 "아이들이 이젠 스스로 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같아요'는 잘못된 말이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글쓴이는 "제가 논술교사여서 학부모들에게 '~같아요'라는 말투를 쓰지 말라고 하면서도 제가 써버렸네요. 조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텔레비전에서 한 출연자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역시 잘못된 말이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인데도 '~같아요'를 쓰는 것이 어찌 올바른 말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의 뜻을 분명히 하지 않고 나중에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일 뿐이다. 더구나 능동형인 '효도해야 할'로 할 것을 입음꼴(피동)인 '될'을 쓰는 것도 잘못이다.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름씨(명사)에 '적'자를 붙이는 일도 흔하다. 어떤 연예인은 "마음적으로 괴로웠다"라고 말한다. '~적(的)'은 '그 성격을 띠는', '그에 관계된', '그 상태로 된'을 뜻하는 한자어 뒷가지
670. 애매하다는 일본식 한자말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많은 출연자들이 ‘애매하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애매(曖昧, あいまい)’는 일본에서 쓰는 한자말이고, 우리는 ‘흐리멍텅하다, 흐리터분하다, 어정쩡하다’라거나 ‘모호(模糊)’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게다가 ‘애매모호’는 중복된 말이어서 더욱 써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말에도 ‘애매하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뜻은 ‘억울하다’로 전혀 다른 것이지요. 그밖에 흔히 쓰는 일본식 한자말은 곤색(紺色, こんいれ→진남색)은 물론 노가다(どかた→막노동꾼), 기스(きず→흠, 상처), 다대기(たたき→다진 양념), 축제(祝祭, まつり→잔치, 축전) 따위가 있습니다. 여태까지 잘 써왔는데 왜 시비냐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지만 굳이 우리말을 죽여가면서 일본식 한자말을 써야할 까닭은 없습니다. 또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때 일본말 찌꺼기를 쓰기는 삼가야 할 것입니다.
669. 진달래와 철쭉을 구별할 수 있나요? 봄이 되면 우리는 흐드러지게 피어 꽃보라를 일으키는 꽃들과 함께 보내게 됩니다. 특히 눈 속에서 맨 처음 봄을 알리는 매화나 두견새가 피를 토한 자국에서 꽃이 피었다고 하여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는 진달래는 우리 겨레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한창 피는 꽃이 진달래일까요 아니면 철쭉일까요? 거의 비슷하기도 합니다만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은 나중에 나오지만 철쭉은 꽃과 잎이 같이 나옵니다. 진달래는 볕이 잘 드는 양지에서 자라는데 키가 2~3미터 정도이나 철쭉은 응달에서 자라며 키가 3~5미터 정도로 큽니다. 또 진달래는 4월에 철쭉은 주로 5월에 핍니다. 특히 옛 사람들은 화전을 부치거나 술을 담가먹는 ‘진달래’는 ‘참꽃’, 먹을 수 없는 꽃인 철쭉은 ‘개꽃’이라고 하여 이 두 가지를 구별했습니다.
668. 이차돈의 목에선 정말 젖빛 피가 솟았을까?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백률사 석당기’에는 이차돈의 순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차돈은 불교의 전파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머리가 잘려나간 목 한가운데서 젖빛 피가 수십 장(丈)이나 솟구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며 땅이 흔들렸습니다. 또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잘린 머리가 경주시 동천동의 소금강산 정상에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차돈이 죽기 80년 전인 445년 중국 위나라에서 발간된 불교 경전 ‘현우경'과 472년 역시 위나라에서 나온 ’부법장인연전‘에도 거의 흡사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적은 실제의 일이 아닌 꾸민 이야기라고 봅니다. 법흥왕이 불교를 탄압한 것이 아닌 귀족들의 세력을 누르고 왕권의 강화를 위해 측근인 이차돈을 죽였다는 것이지요. 권력 기반의 강화를 위해서 종교를 이용한 세계의 역사와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참고 : ‘HD역사스페셜 2’ , 한국방송 HD역사스페셜, 효형출판
667. 코믹한 사랑이야기, 남북한 모두 인기 북한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좋아할까요? 창간 5주년을 맞은 통일 전문잡지 5월호에는 “코믹한 사랑이야기는 남북 모두에게 인기”라는 영화평론가 이명자씨의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남한의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북한의 “옥류풍경”을 비교합니다. “옥류풍경”은 2000년에 나온 북한 영화로 빙상 무용선수와 옥류관 요리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입니다. 북한에서 빙상 무용선수는 예술가로서 존경을 받는 직업이지만 남자요리사는 ‘국수총각’이니 ‘국수쟁이’니 하는 말로 보듯이 별 볼일 없는 직업으로 인식됩니다. 이 직업에 관련된 갈등과 순애 작은아버지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는 사랑이야기라고 합니다. 이명자씨는 “옥류풍경”이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는 다른 감정구조를 가지지만 남북한 모두 코믹한 사랑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예라고 말합니다.
666. 다문화, 다민족의 고구려,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고구려 장수왕 때는 고구려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고, 최전성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고구려 안에는 부여계, 한족(漢族), 낙랑과 대방의 유민, 사라무렌 강 유역의 거란계, 라오허강 유역의 북방 민족들, 내몽골 지역 유목민, 연해주 지역의 말갈계 등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을 껴안는 국제성과 복합성을 지닌 제국의 성격을 띠었다고 합니다. 이 다채로운 민족 구성은 복합문화의 형성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강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넓혔다는 특징보다는 다문화와 다민족을 껴안으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데에 큰 장점이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그 정신은 어쩌면 고구려 이후 수많은 외침을 받고, 한동안 식민지가 된 시절이 있었으면서도 분명한 정체성을 잃지 않은 대한민국의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까요?
665. 추사 김정희는 한여름 왜 북한산에 올랐을까? 추사(완당)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서화가, 문신, 문인, 금석학자입니다. 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했고, 서예에서는 조선 최고의 명필로 칭송받습니다. 특히 그는 1816년 그동안 북한산 비봉에 있는 석비가 조선 건국 때 무학대사가 세운 것이라는 그동안의 이론을 뒤엎습니다. 7월 무더위 속을 뚫고 비봉에 올라 그곳에 있던 비의 탁본을 합니다. 그 뒤 그는 침식을 잊은 채 비문을 판독한 다음 그 비가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실제로 확인해보고 철저히 조사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그렇게 확인하고, 조사하여 따져 물은 뒤에 얻은 지식이어야 진리라 할 수 있다.” 대학자 추사의 진면목이 보이는 말입니다. 대학자 추사는 그저 탄생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664. 생활한복? 개량한복? 민복? 90년대 후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생활한복을 개량한복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고, 민복, 겨레옷, 우리옷 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도 있습니다. 도대체 이 이름들은 무엇이 다를까요? ‘생활한복’은 생활 속에서 편히 입는 옷이란 뜻으로 1996년 문화관광부에서 한복입기를 지원하면서 공식용어로 정했습니다. 생활한복 못지않게 개량한복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는 전통한복이 좋지 않은 옷이어서 개량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 전통한복점에서 비단(실크)로 짓는 약간 다른 종류의 옷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민복은 백성 ‘민(民)’자를 쓰는 것으로 어쩌면 서민만 입는 옷으로 낮춘다는 생각을 줍니다. 겨레옷, 우리옷은 우리말이어서 좋기는 하지만 전통한복과 차별이 되지 않아 곤란합니다. 생활한복의 다른 이름도 쓸 수는 있겠지만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663. 쇠고기만 말고 돼지고기를 먹자 요즘은 황사가 바깥나들이도 못하게 합니다. 그런 때는 돼지고기 그것도 삽겹살이 좋다고 소비량이 부쩍 는다지요? 돼지고기 수입량(중량기준)은 2003년까지 쇠고기의 약 1/3 정도였는데 지난해는 쇠고기 수입의 1.5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 18세기엔 쇠고기 소비량이 어찌나 늘어났는지 실학자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소 도살을 너무 많이 한다. 조선 전역에서 날마다 500마리가 죽어간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 당시 도성 안에는 고깃간이 24개, 전국적으로는 300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중국 청나라 황성 안에 단 3개뿐이었던 것에 비교되는 숫자입니다. 평생 쇠고기를 먹지 않았던 율곡 이이는 “돼지나 염소 고기는 우리나라 사람 식성에 맞지 않아서 병이 날까 걱정하지만, 돼지나 양을 주로 먹는 중국 사람은 왜 병들어 죽지 않는가?”라며 돼지고기를 먹자고 합니다.
662. 곰보, 검버섯까지 죽기살기로 그린 조선의 초상화 조선시대의 초상화를 보면 세밀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조 때 문신인 이채의 초상이 그걸 잘 보여줍니다. 먼저 눈매를 보면 홍채까지 정밀하게 묘사되어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며, 왼쪽 눈썹 아래에는 노인성 검버섯이 선명하게 보이고, 눈꼬리 아래에는 노인성 지방종까지 드러나 있습니다. 살을 파고 나온 수염과 오방색 술띠를 한 올 한 올까지 거의 ‘죽기살기’라고 할 만큼 정확하게 그리는 사실주의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실주의는 심지어 영의정 체제공의 초상화에도 나타납니다. 한 나라의 최고 벼슬을 한 영의정인데도 곰보임을 감추지 않은 것입니다. 요즘 사진관에서 찍는 사진에 예쁘게 한다고 지워버리는 것들을 이때의 초상화에는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에는 정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