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조선시대 임금들, 조와 종은 어떻게 나뉘었을까? 우리는 예전 공부할 때 조선의 임금들을 “태정태세문단세...”하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그 조선 27대 임금들 중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만이 ‘조’가 붙고 나머지 임금은 ‘종’이 붙었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이를 엄밀히 나누기는 어렵지만 나라를 세우거나 반정을 통해서 임금이 되었거나, 큰 국난을 극복하였거나 하는 임금에게만 ‘조’를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순조’같은 임금이 ‘조’가 붙은 대신 조선 최고의 임금으로 꼽히는 세종이 ‘조’가 붙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입니다. 즉 “‘조’와 ‘종’의 나눔은 어정쩡한 것이다.”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와 ‘종’ 외에 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은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해 ‘군’으로 남았습니다. 특히 광해군은 개혁정치를 실천한 임금이었지만 패자가 부정되는 역사처럼 철저히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614. 씀바귀는 사람에게 정말 좋은 것 예부터 우리 겨레는 이른 봄에 달래, 냉이, 두릅, 취나물, 씀바귀 따위의 나물을 즐겨 먹었습니다. 봄나물들은 겨우내 얼었던 땅에서 싹을 틔우기 때문에 봄의 기운을 담은 봄나물들을 먹으면 몸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중 고채(苦菜), 씸배나물이라고도 하는 씀바귀는 오장의 나쁜 기운과 열기를 없애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잠을 쫓는 효과가 있어 춘곤증에 좋다고 합니다. 또 기침이나 식욕이 없을 때도 좋다고 하여 나물 자체로도 먹지만 전을 부쳐 먹고, 샐러드로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특히 씀바귀는 항암 효과도 있고, 면역력을 높여준다고 하여 요즘 인기가 높습니다. 씀바귀는 맛이 써서 토끼 외의 다른 짐승은 먹지 않지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깁니다. 단맛이 아닌 쓴맛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고통도 인생의 한 과정이고, 필요한 것임을 아는 것이지요.
613. 우리 문화의 가치는 경쟁력이고 삶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이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마을에서 서양 사람들의 그 흔한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지방의 관습대로 사람들이 각기 악기 하나씩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람에게도 한 가지 연주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민하기 전 대금을 초보 수준으로 배운 것뿐이었기에 자신이 없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독촉 끝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대금 연주를 했습니다. 결과는 큰 손뼉을 받았습니다. 그 뒤 길에서 만난 파티에 같이 참석했던 한 미국인은 그를 보자 반가워하면서 자기 친구에게 대단한 대금 연주자로 소개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처음보는 신기한 악기 연주에 그들은 감동한 것입니다. 그는 그 뒤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대금, 즉 우리 문화는 미국에 정착한 그에게 경쟁력이었고, 삶이었습니다.
612. 경칩은 토종 연인의 날입니다. 내일은 24절기의 세 번째인 경칩(驚蟄)입니다. 봄이 되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고 하여 ‘계칩(啓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풀과 나무에 물이 오르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 벌레들도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흙일(토역:土役)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이날 담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쌉니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고 하지요. 경칩에 보리 싹의 자람을 보아 그해 농사가 풍년일지 흉년일지를 점치기도 합니다. 경칩날 젊은 남녀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표시로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밀히 은행을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 나무 암 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지는 풍습도 있었답니다. 대보름, 칠석과 함께 토종 연인의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611. 노래로도 항일한 우리 겨레 최근 일제강점기 때의 항일가사집이 발굴되었습니다. 1920년대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엔 ‘국가’(1907년 이전에 불렸던 애국가의 가사)와 ‘아르랑타령’ 등이 있는데 대부분 항일의 뜻이 담긴 노래들입니다. 이 가사집은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에 의해 발굴되었습니다. 이중 앞 부분엔 "적들을 물리치고, 역신들을 잡은 뒤에"라는 가사가 있는데 왜놈과 을사오적을 물리치자고 외칩니다. 또 뒷부분에 보면 "독립기를 높이 들고, 일본 굴네 밧게나서"가 있는데 이는 일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하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는 "일진회의 활갯짓, 이를 갈고 피를 빠는 저 독물의 행위들은"라는 가사처럼 친일파인 일진회를 비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겨레는 일반 백성들까지도 노래라는 도구를 써서 항일을 했습니다.
610. 어린이 두루마기, 사규삼을 아십니까? 예전엔 어린 아이들도 두루마기로 화려하고 예쁜 색동두루마기를 많이 입었습니다. 색동두루마기는 다른 말로 까치두루마기, 오방장두루마기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돌옷으로 특별히 입혔던 사규삼이란 두루마기도 있습니다. 사규삼은 원래 왕세자의 예복이었지만. 공주의 예복인 활옷이 백성들의 혼례복으로 쓰였듯이, 이 사규삼도 관례(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상투를 틀고 갓을 쓰게 하던 예식) 때 입었으며, 뒤에 남자 아이의 돌 옷으로 입기도 했습니다. 소매가 넓고, 맞깃이며, 양옆은 겨드랑이까지 트였고, 소매, 깃, 도련(맨 아래 가로부분), 겨드랑이 부분에 검정 선(縇)을 대고 그 위의 깃은 국화무늬를, 나머지는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의 글씨를 금박으로 놓았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도 돌 때 사규삼을 입히면 좋지 않을까요?
609. 김슬옹 박사가 정리한 훈민정음 창제 동기와 과정 ‘훈민정음 언해(사진, 보물 제745호, 서강대 도서관 소장)’ 앞 부분을 풀이하면 “(우리)나라말은 중국말과 달라, (우리말은)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우매한 백성들은 끝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능히 (한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누구든 쉽게 익혀 날마다 편하게 사용하게 할 따름이다.”가 됩니다. 김슬옹 박사는 이를 통해서 ‘훈민정음 창제 동기와 창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교화의 필요성(교화주의) → 한문과 이두의 불편함(자주정신) → 하층민 언어생활 주목(민본주의) → 가장 쉬운 문자로 창제(언어의 과학성) →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쓰게 함(언어의 실용성)” 이는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왜 만들었는지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608. 북관대첩비, 고향으로 돌아간다. 북관대첩비는 정문부 장군이 3천 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왜병 2만 8천을 무찌른 전공비입니다. 이 북관대첩비가 일본 야스쿠니 신사 뒤편에 있다가 100년 만에 돌려받은 뒤 오늘(3월 1일) 북한으로 넘겨줍니다. 어제 의정부 정문부 장군의 묘소 앞 충덕사에서 묘전고유제를 열었고, 오늘은 개성에서 인도인수식을 갖습니다. 북관대첩비의 비문에 있는 글처럼 정문부 장군은 이순신이나 권율처럼 정규군으로 나라의 지원을 받아 싸운 것이 아닌 훈련도 되지 않은 비정규군으로 이룬 전공이라 더욱 빛이 납니다. 또 이 비는 수십만의 일본 군신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나라를 지킨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480kg인 비에 무려 1톤의 머릿돌을 얹어놓은 일본인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이제 북관대첩비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고향에서도 우리 겨레를 든든하게 지켜주실 것입습니다.
607. 김치에 들어있는 고춧가루는 보물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의 부재료 중 중요한 것에 고춧가루가 있습니다. 고춧가루를 만드는 고추의 원산지는 멕시코입니다. 이 고추가 유럽에 전해졌지만 주로 육류소비를 하는 유럽 사람들에게는 육류가 썩는 것을 막아주는 후추보다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고추는 김치에 쓰였고, 독창적 음식, 고추장도 만들어냈지요. 이 고춧가루의 김치 속 역할을 보면 젖산균의 성장을 도와 김치를 맛있게 발효시키며, 잡균을 억제합니다. 또 고추의 성분 중 "캡사이틴"은 미생물 발육을 억제해 김치의 저장성을 높이는 일을 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또 동물실험을 해본 결과 "캡사이틴"을 넣은 혈액암세포는 세포벽이 굳어지면서 성장을 멈췄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염없는 건강한 식생활을 한다면 붉은 김치만으로도 돌연변이 암세포의 공격을 예방할 수 있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606. 전통악기 ‘박’을 아십니까? 수제천, 보허자, 여민락 따위의 궁중음악이나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등의 대편성 음악에서 쓰는 ‘박’이란 타악기가 있습니다. 박은 여섯 개의 단단한 나무조각을 엮어서 만들었는데 한쪽 끝을 가죽 끈으로 묶여 놓고, 반대쪽을 잡고 부채를 펴는 것처럼 벌렸다가 닫으면서 치는 악기입니다. 이 악기는 음악의 시작과 끝, 그리고 음악상의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 치는데 음악을 시작할 때나 중요한 변화를 알릴 때는 한번, 끝날 때는 세 번 칩니다. 궁중음악의 연주에서 지휘자를 '집박'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집박이 박을 잡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보통 음악의 내용과 진행을 잘 아는 원로악사가 맡게 되며, 음악연주에서 실질적인 지휘와 감독의 임무를 맡습니다. 박을 치는 집박의 옷은 초록색으로 일반 연주자의 붉은색 홍주의(紅紬衣)와 다르며, 무대 한쪽에 서서 박을 손에 들고 지휘를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