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 창덕궁 인정전 앞의 드므와 부간주 이야기 조선 궁궐 중 하나인 창덕궁의 중심건물은 인정전인데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그 인정전 앞에는 ‘드므’와 ‘부간주’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읽는 궁궐이야기’(윤돌, 이비락)에서는 ‘드므’와 ‘부간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부간주’는 액운을 막아준다 하여 상징적으로 놓아둔 것인데 동지에는 팥죽을 끓여 먹기도 한 것입니다. 또 ‘드므’는 화재를 막기 위해 물을 담아 상징적으로 놓아둔 것인데 화마가 왔다가 드므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람들은 대개 문화유적을 볼 때 그 주된 유적이나 유물만 봅니다. 하지만, 이런 주변의 물건들도 살펴보면 훨씬 재미도 있고, 그 유적과 유물의 의미를 더 깊이 알 수가 있습니다. 현재 창덕궁의 관람은 안내자와 정해진 길에 따라 안내를 받아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틈틈이 이런 것들도 살펴보면 좋을 것입니다.
604. 좋은 운동을 할 때는 열려있는 마음으로 어제 좋은 모임에서 뵈었던 분들을 또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생각만치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은 겨레문화에 대한 어설프고, 잘못된 지식을 진리처럼 고집했습니다. 한글날이 우리 겨레의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일본총독부가 만든 날이라는 등 한글을 낮추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녹차를 우리의 전통차로 생각하는 잘못된 지식을 신앙처럼 가지고 있어서 저를 놀라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민족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고집하고, 남에게 강요하는 모습은 그 운동의 본질을 의심케 하는 것이 아닐까요? 더구나 좋은 운동도 자기과시를 위한 운동으로 변질해서는 안 될 것이며, 더불어 산다는 철학으로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자세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운동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존경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603. 조선시대 여인의 필수품, 경대 경대는 조선시대 여인들이 화장하거나 머리를 빗을 때 쓰는 거울을 세우는 대(臺)입니다. 각종 화장품 및 빗, 비녀, 족집게, 장신구를 비롯하여 각종 화장도구와 손수건, 실 등을 담아두는 저장 용구이자 화장할 때 사용하는 화장구이지요. 보통 경대는 아래에 여닫이문이 있고, 문을 열면 서랍이 서너 개 있는 작은 직육면체로, 뒤에는 거울이 달려있어 뚜껑을 열어젖혀 비스듬히 세워 사용한 후 거울을 뒤집어 넣으면 작은 상자가 되는 구조입니다. 경대의 재질은 주로 느티나무와 먹감나무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나무에 생칠을 하여 나무결을 살린 것, 홍칠을 한 것, 나전무늬 놓은 것 따위가 있습니다. 무늬는 동그라미 안에 수(壽)라는 글자를 넣은 것, 당초 무늬, 수복 글자를 새긴 것, 쌍학 그림 따위를 즐겨 썼습니다. 조선시대 여인뿐 아니라 상투를 튼 남자들도 긴 머리를 다듬기 위해 경대를 쓰기도 했지요.
602. 사대부가 집에서도 예의로 입었던 두루마기 두루마기는 한복 중 외출할 때 겉에 입는 옷입니다. 두루막, 주막의(周莫衣), 주의(周衣)라고도 합니다. 옷 전체가 돌아가며 막혔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지요. 삼국시대의 기본포를 조선시대까지 입어오면서 완성된 것인데 1884년(고종 21) 복제 개혁에 따라 그동안 입어왔던 옷인 창의, 도포, 중치막 등이 폐지되자 모두 두루마기를 입게 되었습니다. 사대부는 집에 있을 때에도 두루마기나 창의를 입는 것을 예의로 삼았습니다. 아이들도 예를 갖추어야 할 때는 두루마기를 입는데, 모양은 어른용과 같으며 돌이나 명절에는 오색 옷감으로 지은 두루마기(까치설빔)를 입습니다. 속담에 “거지 옷 베 두루마기 해 입힌 셈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대가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은혜를 베풂 또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거나,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보았을 때 자기 위안 삼아 이르는 말입니다.
601. 훈민정음 원본은 간송미술관 소장본 하나뿐 훈민정음은 우리 겨레를 자랑스럽게 만든 세종임금의 위대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훈민정음 원본이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것 하나뿐입니다. 여러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이 소장본은 광산 김씨 안동 종가(긍구당가)의 종손 김응수의 사위 이용준에 의해 김응수의 집에서 유출되어 간송 전형필에게 넘어가게 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이 간송미술관 소장본은 첫 두 장이 찢겨 있습니다. 그 까닭으로 연산군의 언문 탄압을 피하기 위해 찢었다는 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건국대학교 박종덕 교수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장서인을 없애 긍구당가의 것임을 숨기려 찢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모든 백성이 편하게 글자생활을 하도록 만들었기에 많은 책을 만들었을 훈민정음 원본이 왜 간송미술관 소장본 밖에 없는지가 참 궁금합니다. 이는 앞으로 학자들의 연구 대상일 듯도 합니다.
600. 향원지로 들어가는 물과 삶의 여유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안에는 ‘향원지’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못의 물은 어디서 흘러들까요? 연못의 물은 북쪽 언덕 밑에서 솟아나는 샘인 ‘열상진원(洌上眞源:차고 맑은 물의 근원이란 뜻)’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지하통로를 통하여 향원지로 흘러들어 갑니다. 그런데 이 열상진원에서 솟은 물은 곧바로 연못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름 41cm, 깊이 15cm의 오목한 웅덩이에서 한 바퀴 돌아 방향을 바꿔 널돌(널판같이 뜬 돌) 밑으로 해서 연못으로 흐릅니다. 이는 서쪽에서 흘러 동쪽으로 들어온다는 명당수의 개념인 서류동입(西流東入)이기도 하지만 샘에서 솟은 차가운 물이 바로 연못으로 들어가지 않아 물이 급하거나 차갑지 않게 하여 물고기들을 배려합니다. 이 뜻은 또 서두르지 않고, 한번쯤 돌아가 삶의 여유를 갖는 겨레의 슬기로움일 것입니다.
599. 고려청자의 대표, 청자운학문매병 한국을 상징하는 것 중에는 고려청자도 있습니다. 그중 국보 68호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고려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은 고려청자의 대표격입니다. 이 이름은 고려청자로 상감(象嵌:칼을 써서 그림을 음각으로 새기고, 그 파진 곳에 도자기용 흙으로 메워 넣어 무늬를 새김)이란 기법으로 구름과 학 그림을 넣은 매병(梅甁:아가리가 좁고 어깨는 넓으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병)이라는 뜻으로 붙였습니다. 고려 매병은 고려만의 풍만하면서도 유연한 선의 아름다움이 나타나며,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학은 고려인의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 매병의 쓰임새는 이름처럼 매화를 꽃은 꽃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연구에 의하면 술항아리였다고 합니다.
598. 벌레와 새가 더불어 사는 농사 충남 아산에서 유기농으로 배농사를 짓는 한 농부는 말합니다. "그동안 농민들은 풀이 우거지면 병충해도 많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충들이 나뭇잎보다는 풀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풀이 나무 밑에 우거지면 응애나 진딧물 등 1차 해충들이 풀에서 머물고 나무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농약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또 새들도 과일보다는 벌레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벌레가 적당히 있으면 새는 과일 대신 벌레를 잡아먹게 됩니다. 이런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유기농이며, 자연과 모두가 더불어 사는 길이 아닐까요? 새도 싫다, 벌레도 싫다, 나만 배불리 먹겠다는 욕심이 사람까지도 죽인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조상이 콩 심을 때 한 구멍에 세 알씩 심었다는 것처럼 새나 벌레도 같이 산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세상이 더불어 같이 사는 슬기로운 삶이 되는 것이겠지요.
컴퓨터가 없던 옛날,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서평] 세시풍속 의미 되짚어 보는 ▲ 책 표지 ⓒ 디딤돌 옛날엔 컴퓨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 아이들은 무척 심심하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들은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어린이책 '다달이 철철이 우리 조상들의 한해살이'란 책이 도서출판 디딤돌에서 나왔다. 청동말굽(김경화)이 쓰고, 김동원이 그림을 그렸다.사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옛사람들의 생활방식, 세시풍속을 다 잊었다. 내가 몇 년 전 '기독교라디오방송'에 출연하여 설날의 세시풍속 5~6가지를 얘기하는데 프로듀서도, 아나운서도, 작가도 모두가 눈썹 하얘지는 것 말고는 모르겠다고 했다. 영어 배우기엔 혈안이 되어도 우리의 세시풍속은 소중한 줄은 모르니 당연한 일일 터이다.이 책은 명절과 24절기를 줄기로 이에 따르는 세시풍속과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그저 단순히 이러저러한 풍속이 있었다가 아닌 풍속 하나하나에 담긴 우리 조상의 철학은 무엇인지를 짚어내면서 아이들의 이해를 돋운다. 또 친절하게 그림을 덧붙여 흥미를 더하고 있음이다.먼저, 12달을 사철로 나누고, 그 철의 들머리엔 계절을 나타내는 그림과 함께
가야금 연주가 천익창씨,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재현 ▲ 재현된 신석기 시대 현악기를 연주하는 천새빛군 ⓒ 김영조 우리 전통 현악기의 대표격이며 '가얏고'라고도 하는 '가야금'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가야금에는 익숙하지만 실제로 가야금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먼저 가야금은 좁고 긴 장방형의 오동나무 공명판 위에 명주실로 꼰 12개의 줄을 걸고, 줄마다 그 줄을 받치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작은 안족(雁足: 기러기 발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을 세워 놓았다. 연주자는 공명판의 오른쪽 끝을 무릎 위에 놓고 왼쪽을 방바닥에 뻗쳐 놓고 타는데, 오른손으로 줄을 뜯고 퉁기면서 왼손으로는 줄을 떨거나 눌러서 그 소리를 준다. 음색이 맑고 우아하며, 연주 기교가 다양하여 정악과 민속악에 두루 사용된다. 정악에 사용되는 가야금을 법금(法琴) 또는 풍류가야금이라 하며, 민속악 특히 산조에서 사용되는 것을 산조가야금이라 한다. 산조가야금은 19세기 말경 산조음악의 출현과 함께 생긴 것으로 법금보다 작다.김부식의 에 의하면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6세기에 당나라의 쟁(箏)을 보고 만들었다. 이후 우륵을 시켜 12곡을 지었는데, 가야국이 어지러워지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