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는 당연히 훈민정음으로 바꿔야 [주장] 남대문은 국보 1호로 상징성 약해 ▲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임금 동상 ⓒ2005 김영조 이순우 시민기자는 "국보 제1호 변경 논란 쓸데없다"며 "차라리 '서열화' 오해 없게 지정 번호 없애야 된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 주장이 설득력 있는 것일까? 우선 에서 남대문을 설명한 것을 찾아보자."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 중층(重層)의 우진각지붕 다포(多包)집이다.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이라서 통칭 남대문(南大門)이라고 불린다. 1394년(태조 4) 창건되었으나 지금의 건물은 1447년(세종 29)에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1961∼1963년에 있었던 해체, 수리에 의한 조사에서 1479년(성종 10)에도 비교적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이 문은 중앙부에 홍예문(虹蜺門)을 낸 거대한 석축기단 위에 섰으며, 현존하는 한국 성문 건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석축 윗면에는 주위에 높이 1.17m의 벽돌로 된 여장(女墻)을 돌려 동·서 양쪽에 협문(夾門)을 열었고, 건물의 외주(外周) 바닥에는 판석(板石)을 깔았다."이런 설명을 듣지
518. 한지가 천년을 썩지 않는 까닭 1966년 불국사의 석가탑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사리함에는 닥종이로 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들어 있었는데 1200년 동안 썩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이 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고, 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1200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요?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종이로 목재 펄프를 원료로 하여 서양식으로 만든 양지는 산성도(PH) 4.0 이하의 산성지로서 수명이 대개 50년에서 길어야 100년 정도가 되면 누렇게 변하는 황화 현상을 일으키면서 삭아 버립니다. 하지만, 한지는 산성도 7.0 이상의 알칼리성 종이로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결이 고와지고, 수명이 천년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래서 다라니경이 1200년 동안 썩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이 스며있는 한지만으로도 우리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517. 차의 구분은 어떻게 할까? 우리가 즐겨 마시는 차중 녹차는 흔히 말하는 차의 일종인데 보통 차는 발효정도와 가공방법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 찻잎을 따는 때에 따라 구분하기도 합니다. 발효정도의 구분은 전통차, 녹차 등의 비발효차(불발효차), 우롱차 따위의 반발효차, 홍차 등의 발효차, 보이차 등의 후발효차로 나눕니다. 이중 비발효차는 한방에서 몸이 차거나 혈압이 낮은 사람은 많이 마시면 좋지 않다고 합니다. 몸이 찬 사람은 발효차가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가공방법은 솥에 불을 때면서 비비듯이 하는 덖음차(전통차), 쪄서 가공하는 녹차가 있구요. 따는 시기에 따른 구분으로 녹차는 곡우 전에 따는 우전차를 가장 좋은 차라고 하며, 이후 때에 따라 세작, 중작, 대작 등으로 나누고, 좀 늦은 차는 엽차처럼 차가 아닌 물 대신으로 마시지만 전통차는 여름차도 좋은 차로 치기 때문에 좀 다릅니다.
516. 조선시대, 목숨 걸고 인삼을 팔다. 조선시대 인삼은 현대의 반도체에 비할 만큼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고, 나라의 재정에 커다란 보탬이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는데 서양에도 신비의 영약으로 알려질 정도였지요. 옥순종씨가 쓴 ‘교양으로 읽는 인삼이야기’(이가서)에 보면 이를 '견리망사(見利忘死)'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 말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죽을 수 있음도 잊는다는 뜻으로, 사람을 살리는 인삼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1828년 동지사로 북경에 다녀온 박사호의 기행문인 '심전고(心田稿)'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경에 가지고 가는 것이 금지된 물건은 금, 인삼, 담비가죽인데 홍삼은 그중에서도 가장 엄격했다. 연경 사람들이 그 값의 10배를 주고 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몰래 거래하므로 그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515. 세계 최강의 정예부대, 고구려 군대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넓은 영토의 동아시아를 호령했는데 이는 막강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방송의 ‘에이취디 역사스페셜’과 이를 토대로 나온 책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에서는 당시의 군대 모습을 분석하여 동시대에 서양에 있었던 막강 로마 보병과 비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고구려의 갑옷은 철 조각들을 촘촘히 이어 만든 철갑으로 유연성이 높은 데 비해 로마 병사들은 대부분 판갑을 입었는데 판갑은 무거운데다가 병사가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가 없는 비효율적인 것이었습니다. 또 고구려 기병의 병사는 물론 말도 갑옷을 입히고 있습니다. 또 고구려 기병에는 말을 탈 때 두 발을 고정하는 ‘등자(鐙子)’라는 장치가 있었는데 로마 기병에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광개토대왕 당시의 고구려 군대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였을 거라고 합니다. 참고 :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 한국방송 ‘에이취디 역사스페셜’ 원작, 표정훈 해저, 효형출판
514. 언문은 조선시대에 한문 못지않게 쓰였다. 우리는 흔히 훈민정음이 창제 이후 사대부들의 배척을 받아 거의 쓰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언문, 암클 따위로 천대하여 불렸으며, 그저 부녀자들에 한해서 쓰였다고 알아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싸이버대학교 김슬옹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그것이 잘못 알려진 것임을 밝혀냈습니다. 그는 1967권 948책 분량의 조선왕조실록 시디본과 문서본을 철저히 비교 검증하였는데 언문 즉 훈민정음은 주로 왕조의 정통성과 정체성 홍보와 유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사용했고, 그밖에 왕실의 행정 문서나 외교 문서로도 쓰였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왕실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공식 문서에서는 언문이 주된 글자였다는 것과 조선 후기로 오면 언문은 일반 백성들에게 한문 이상으로 쓰였다고 밝힙니다. 조선시대에 언문은 한문이라는 공식 문자에 대한 부차적 쓰임새가 아닌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공식 글자였다는 것입니다.
513. 건강에 좋은 ‘황토목욕’ 황토는 여러 가지로 활용합니다. 특히 ‘황토목욕’은 건강에 참 좋은데 야산의 경사지에서 흙을 1미터 정도 파고 들어가 목만 내놓은 채 흙으로 온몸을 덮은 뒤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황토목욕’은 여름철이 좋으며, 일 년에 한 번만 해도 충분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황토목욕’은 집에서도 하는데 무명자루에 황토 한두 되 정도를 담아서 묶어 섭씨 38~40도 정도의 물이 담긴 욕조에 담그면 황토가 옅은 노란색으로 물에 퍼지는데 이때 욕조에 들어가 15분 정도 지나면 몸속의 노폐물이 제거되고 피부미용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 황토를 무명자루에 5킬로그램 정도 넣어 아랫목에 놔둬 자루가 뜨거워지면 꺼내서 아픈 곳에 갖다 대거나 베고 누워도 좋습니다. 한번 만든 황토자루는 1주일 정도 쓸 수 있으며, 감기에는 황토자루를 만들어 등에 대고 자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다고 합니다.
512 남자 한복에 대님이 꼭 필요한 까닭 남자 한복바지에 대님은 왜 있을까요? 그것은 대님에 건강과 아름다움 그리고 철학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음양철학으로 양인인 남자가 음인 땅 위를 걸을 때 대님은 음기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아줍니다. 또 대님은 가슴 위는 차게 하고 배꼽 아래는 따뜻하게 해야 건강하다는 한방의 원리(두한족열:頭寒足熱)에 맞도록 찬바람을 막아주고, 대님을 매는 자리에 ‘삼음교(三陰交)’란 경혈자리가 있어 그것을 자극해줌으로 간장과 비뇨기 쪽을 좋게 합니다. 살아있는 차의 성인 지허스님은 말의 허벅지가 아주 굵은 대신 발목은 가늘어서 잘 달리고 건강한 것처럼 대님을 묶어 발목을 날씬하게 할 것을 권합니다. 그런가 하면 대님을 묶고 바지단을 내렸을 때 맵시가 훨씬 좋습니다. 여기에 덧붙일 것은 바빠서 생각할 겨를이 없는 현대인들이 대님을 묶고 풀 때 하루를 계획하고, 반성하는 귀중한 시간을 갖게 해줍니다.
511.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 오늘은 24절기의 하나인 소설(小雪)입니다. 이때부터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작은 봄(소춘:小春)’이라고도 부릅니다. 옛 사람들은 소설기간 중 초후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중후에는 천기가 올라가고 지기가 내리며, 말후에는 천지가 얼어붙어 겨울이 된다고 합니다. 소설은 눈이 적게, 대설은 많이 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첫얼음이 얼며, 첫눈이 오기 때문에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 호박오가리, 곶감 말리기 등 대대적인 월동 준비에 들어갑니다. 음력 시월은 농사일이 끝나는 달인데 추수를 끝내고 아무 걱정이 없이 놀 수 있는 달이라 하여 '상달'이라 했고, 일하지 않고 놀고먹을 수 있어 '공달'이라고도 합니다.
510. 국보 1호 훈민정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최근 국보 1호 바꾸기 논쟁이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한 시민기자는 국보 1호 바꾸기 논쟁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 전 네이버의 뉴스폴에서 '현재 숭례문으로 되어 있는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교체하는 방안이 추진 중입니다'는 제목으로 투표를 했는데 11월 11일 새벽 1시 현재 총 7729 명이 참여하여 찬성 5744명(74.71%), 반대 1663명(21.63%), 모르겠다 281명(3.66%)으로 훈민정음으로 바꾸는데 압도적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남대문은 일본총독부의 흉계로 지정되었을 가능성과 1호는 대한민국을 상징하여야 하는데 남대문으로서는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국보의 순서는 서열이 아니다는 반론도 있지만 사실 국보, 보물, 지방문화재로 나눈 것은 이미 서열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문화재위원들은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