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 일제가 왜곡한 종묘제례악의 원형을 되찾자! 얼마 전 국립국악원에서는 종묘제례악 고증 복식 시연회가 있었습니다. 그를 취재하여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렸는데 종묘제례악에 대한 논문을 쓴 한 학자가 현행 종묘제례악은 일제에 의해 상당히 왜곡되었다는 의견을 주셔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관련자료를 살펴본 결과 그분의 주장은 믿음이 갔습니다. 주장의 대표적인 것 중에는 현행 종묘제례악의 악기 편성에선 조선의 기본향악기로 ‘대한예전(大韓禮典)’ 따위의 고문서 기록에 있는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가 빠져있었습니다. 또 보태평 일무 악공 복식 중 겉옷인 남주의가 홍주의로 바뀌고, 안에 입는 옷인 창의를 입지 않는 것 등 많은 왜곡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조선총독부의 흉계라는 주장인데 그렇다면 조선 왕조의 뿌리인 종묘제례악은 원형을 하루빨리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431. 김치를 오랫동안 맛있게 먹는 비결, 옹기 우리는 예부터 초겨울에 김장을 하여 다음해 봄까지 두고두고 맛있는 김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맛있게 저장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먼저, 김치는 김치 위에 덮어두어 밖의 차가움과 잡균을 막는 역할을 하는 시래기와 소금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옹기입니다. 옹기를 플라스틱, 유리와 비교한 국립중앙과학관의 에스이엠(SEM)현미경 촬영사진을 보면 플라스틱은 물결 모양의 치밀한 조직을 가졌고, 유리는 표면조직이 빈틈없이 매끄럽지만, 옹기는 곳곳에 동그란 조직이 보였습니다. 김치의 상큼한 맛은 젖산과 탄산의 역할이며, 이것을 적당히 억제해야 김치를 오래 저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숨구멍 역할을 하는 옹기의 이 동그란 조직이 공기의 젖산균이나 대장균을 억제하는 기공을 끌어들여 시지 않게 오래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과학 작품인가요?
430. 주걱을 ‘周巪’, 치마를 ‘赤亇’로 쓰는 한자 숭배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영재어린이 송유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송유근의 아버지를 말하는 자막이 “송유근의 不”로 쓰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냥 ‘송유근의 아버지’하면 될 것을 잘난 채 하는 사람이 ‘父’로 쓴다는 것이 잘못된 모양입니다. 한글학회 창립기념식에서 특별발표를 한 이강로 선생은 “특권을 뺏기기 싫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기득권층들이 밥 푸는 ‘주걱’을 ‘周巪(두루 ‘주’, 사람이름 ‘걱’)‘ ’치마‘를 ’赤亇(붉을 ‘적’, 망치 ‘마’)란 어처구니없는 한자까지 만들어 쓰기도 했다.”며, 한자를 숭상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나무랍니다. “빚을 갚다‘하면 좋을 것을 ”辨濟하다“라고 쓰는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꼭 필요한 데에 쓰는 한자야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말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굳이 한자말로, 또 한자로 쓰는 것은 문화사대주의입니다.
429. 골고루 먹는 식사가 최고의 비타민제이다 요즘 네트워크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부분의 네트워크마케팅에는 건강보조식품이 중요 상품이고, 그 판매가는 온 식구가 먹기엔 무리한 정도입니다. 그런가 하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 유명한 의료인은 집에서 비타민제를 10 여알 씩 먹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게 건강보조식품이나 비타민제가 꼭 필요할까요? 그것을 먹지 않는 사람들은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인가요?하지만 주변에는 그런 건강보조식품이나 비타민제를 먹지 않고도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 의사들은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 건강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자본주의의 전위대인 기업의 주술에 걸린 탓이라 생각합니다. 기업은 어떻게든 수익을 올려야 합니다. 그것에 빠지면 안 됩니다. 좋은 음식물을 찾아 골고루 먹는 것이 최고의 비타민제인 것입니다.
428. 한복은 제대로 입어야 맵시가 살아난다 며칠 전 국립국악원에서는 “종묘제례악 복식고증 시연회”가 있었습니다. 종묘제례악 때 악사들이 입는 복식들을 원형에 맞게 고증 제작해서 발표한 행사입니다. 국립국악원이 주최하고, 복식제작은 '한국복식문화연구원'이 맡았습니다. 여기에서 눈길을 끈 것은 겉옷 안에 중간 속옷 격인 창의(氅衣:벼슬아치가 평상시에 입던 웃옷, 중단)와 상(裳:예복용 치마)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복식은 이 중간 속옷이 없고, 바로 저고리와 바지 차림입니다. 물론 직접 입는 악사들은 한 번 더 껴입는다는 것이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사를 보는 사람들에겐 훨씬 품격이 살아나 보였습니다. 보통 한복 경우도 안감이 있는 겹옷이 홑옷보다 맵시있게 보인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한복의 경우에선 제대로 갖춰 입는 것이 품격과 아름다움이 더욱 산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427. 친일파가 그린 표준영정 바꿔야 한다. 어제는 ‘경술국치일’로 일제가 한국의 행복을 위한다며 한일합병을 한 날이지요. 그 국치일에 민족문제연구소는 3,090명의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명단 중에는 세종큰임금을 포함한 우리의 위대한 역사인물 특히 왜놈들을 응징했던 이순신, 유관순, 윤봉길, 논개의 영정을 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70~80년대 문화관광부(당시 문화공보부)가 지정한 표준영정 72개 중 16개가 김기창, 장우성, 이유태, 김은호 등 친일 행적을 가진 4명의 화백이 그린 작품”이라며 “즉각 교체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최근 정부는 돈을 위조방지 기능이 있는 새 돈으로 바꾸려 합니다. 그런데 이 돈에 그려있는 세종임금 등의 그림도 그 친일화가가 그린 표준영정입니다. 돈은 한번 바뀌면 쉽게 고칠 수도 없고, 심각한 일입니다. 그래서 친일화가가 그린 표준영정은 하루 빨리 바꾸어야 합니다.
426. 한국의 행복을 위한다며 나라를 빼앗은 일제 “일본국 천황폐하 및 한국 황제폐하는 양국 사이의 특수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서로 행복을 증진하고, 동양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고자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이에 양국 간에 병합조약을 체결하기로...” 오늘은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경술국치일’입니다. 위 글은 1910년 8월 29일 공표, 발효된 ‘한국합병에 관한 조약’의 서문이며, 매국노 이완용 총리대신과 데라우치 통감이 조인한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의 행복을 위해 일본을 병합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한국의 어린 처녀들을 데려다가 종군위안부로 삼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탈을 쓴 채 짐승보다 못한 흉악한 짓을 하는 일본인들이고, 그에 빌붙어 자신들의 배를 채우며 앞잡이 노릇을 한 매국노입니다. 우린 절대 ‘경술국치일’을 잊으면 안 됩니다.
425. 일제의 한국 침략을 위한 도구. 화투 일본에서 고스톱과 비슷한 '고이코이'라는 놀이가 1720년 무렵 생겼다는 문헌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 화투의 대명사인 ‘하나후다(花札)’는 현재 세계적인 컴퓨터게임 제조사 닌텐도가 연간 30만 개 정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일본에서 살다가 들어온 조선 사람들에게 화투 몇 십 목씩 주어서 보냈다고 증언하는 할아버지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이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화투로 조선 사람들의 정신을 흐리게 했다는 의심을 받는 근거입니다. 문화는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합니다. 하지만 타문화가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나쁜 뜻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퍼뜨렸다면 이는 문제입니다. 또 장시간의 고스톱은 허리디스크 따위의 건강 이상을 오게 하거나 좋은 인간관계를 깨뜨리고, 가정파탄, 업무태만을 만들 수 있기에 좋은 놀이가 아닙니다.
아차산에서 고구려 가마터 추정 유물 발견 아차산 홍련봉 2보루 발굴 현장 설명회 ▲ 현장설명하고 있는 최종택 교수 지난 8월 15일은 우리 겨레가 광복을 맞은 지 60돌이 되는 날이었다. 아직도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이 여전한 상황에서 고구려 유물의 발굴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서울시와 경기도 구리시의 지원 아래 아차산과 그 부근의 발굴이 한창 진행돼 왔다.그 과정의 하나로 16일 오전 11시에는 고려대학교 고고환경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중인 '아차산 홍련봉 2보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가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산 10-1번지 발굴 장소에서 열렸다.홍련봉 2보루는 1942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성터로 되어 있으며, 1994년 구리문화원에서 실시한 아차산 일원의 지표조사를 통하여 고구려 토기가 수습되어 고구려 보루로 보고되었다. ▲ 토기 가마터로 짐작되는 유적 이후 아차산 4보루와 시루봉보루, 홍련봉 1보루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어왔다. 특히 아차산 일원 보루들 중에서 유일하게 기와와 연화문와당이 출토되었던 홍련봉 1보루와 인접한 홍련봉 2보루는 구조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규모도 커서 서로 다른 기
424. 궁궐을 짓는데 쓰인 최고의 소나무, 금강송 경복궁 등 조선시대 궁궐은 모두 소나무로만 지었는데 이는 소나무가 결이 곱고, 나이테 사이의 폭이 좁으며, 강도가 높은 것은 물론 잘 뒤틀리지 않으면서 벌레가 먹지 않으며, 송진이 있어 습기에도 잘 견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금강송(金剛松, 다른 이름 춘양목)으로 부르는 이 소나무는 백두대간을 타고 금강산에서 울진, 봉화를 거쳐 영덕, 청송 일부에 걸쳐 자라는 것으로 줄기가 곧고, 마디가 길며, 껍질이 유별나게 붉습니다. 또 금강송은 나이테 폭이 균등하고 좁으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의 나무로 쳤으며, 조선시대에는 속이 누렇다고 '황장목(黃腸木)'이라 하였고, '황장금표' 팻말을 세워 나라에서 보호하고 길렀으며, 정조시대에는 ‘송목금벌(松木禁伐)’이라 해서 소나무 베는 것도 금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