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교향악단이 연주한 음반 나왔다 ‘아리랑환상곡’, ‘민요삼천리’ 음반 신나라에서 발매 ▲ 아리랑환상곡 음반 표지 / ⓒ2005 신나라 2002년 9월 22일 동아일보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21일 KBS 황수경 아나운서와 조선중앙TV 백승란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2시간 동안 열린 합동 공연에는 ‘아리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 북한의 대표적인 관현악곡과 스메타나의 ‘몰다우 강’, 가곡 ‘그리워’등이 연주됐으며 공연 실황은 남북한 전역에 동시 생중계됐다.”이 뿐 아니라 남북한은 ‘6·15남북공동성명’ 이후 음악 부분에도 상당한 교류가 있었다. 양쪽의 음악인들이 남북을 오가며 연주를 하고, 이를 텔레비전으로 중계를 했으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하지만 이런 교류 속에서도 북한의 음악을 음반으로 들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쉽지는 않았겠지만 북한의 음악을 음반으로 내려는 시도를 한 음반사가 별로 없었던 것도 그 까닭의 하나는 아닌지 모른다.그런데 3월초에 신나라가 최근 북한의 음악을 담은 음반을 내놓았다. 북한의 대표적 교향악단인 국립교향악단과 윤이상 관현악단이 연주한 '아리랑 환상곡'과 '민요삼천리' 등 두 장의 음반이 그것이다. 이
기라성? 일본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사 삼성당(산세이도우)에서 펴낸 일본어 사전 에는 “きらぼし(綺羅星)”를 올림말로 싣고, ‘綺羅, 星の如し’라는 표현에서 실수로 ‘,’를 빼고 ‘綺羅星の如し’로 잘못 쓴 데서 온 말로, 훌륭한 사람들이 잇달아 늘어선 모습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곧, “기라―綺羅 :①무늬 있는 비단과 얇은 비단 ②아름다운 의복―가 별(星)과 같다”를 “기라보시(기라성)와 같다”고 잘못 표현한 데서 온 말이라는 것이다. 반짝이는 모양을 나타내는 우리의 시늉말 ‘반짝’을 뜻하는 일본말이 기라(きら)여서 그 소리가 ‘綺羅’와 같으니, ‘綺羅星’이라고 써도 일본말로서는 흠이 없다고 하겠지만, 그것을 빌려다가 우리말로는 절대로 쓸 수 없다. 우리가 훌륭한 사람을 말할 때는 쟁쟁한 선비나 학자라 하고, 어느 학문 분야에서 특출한 인물을 비유해 말할 때는 태산이나 북두칠성처럼 높다는 뜻으로, ○○학의 ‘태두’라고 치켜세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이 강의하는 중에 훌륭한 학자를 들어 말할 때 ‘기라성’ 같은 존재라고 힘주어 말하고, 온갖 연예인들이 무대 위에 줄지어 서서,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늘어섰다’고 지껄이면서 서로 치켜세우는
288. 영어마을, 원어민 교사 대신 한글 사랑을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의 920여 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를 배치하겠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많은 예산을 들여 영어마을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지방자치단체가 이렇게 외국어를 배우자고 외칠 때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길거리 팻말엔 “어서 오십시오”가 아닌 “어서 오십시요”처럼 맞춤법이 틀린 것이 보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배우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 나라 글자도 잘 쓰지 못하고 푸대접하면서 실효성 논란이 있는 영어마을 만들기와 무자격자들이 활개를 치는 원어민 보조교사 배치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이 되었으며, 언어학자들이 한결같이 최고의 글자로 치켜세우는 우리의 한글을 푸대접 하면서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을 꾸짖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요? 한글날 국경일 승격을 간절히 바랍니다.
287. 친일청산과 역사교육 강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줄을 잇습니다.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이런 망언을 부끄러워하는 일본인들이 적다는 것입니다. 무릎꿇고 전쟁범죄를 사죄한 독일의 경우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것은 전쟁 직후 전범들을 처단하고, 역사교육을 올바로 했느냐의 여부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왜곡된 역사 교과서로 교육받을 일본의 새 세대들이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해방 직후 친일파을 청산하지 못하고, 나라를 팔아먹거나 일본에 빌붙었던 자들이 다시 권력의 요소요소에 똬리를 틀었기 때문에 교육, 언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교육의 현장에서 국사를 푸대접하고 있으니 일본의 망언 정치인을 혼내줄 당당한 자부심이 생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제라도 친일청산을 서두르고,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286. 오늘은 제비가 돌아오는 삼짇날 오늘은 음력 3월 3일,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짇날’입니다. 우리 겨레는 양수(홀수)가 겹친 수를 길수로 생각하여 명절로 지냈는데 삼짇날로 그런 명절입니다. 이날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먼저 보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흰나비를 먼저 보면 부모의 상을 당한다고 믿습니다. 또 삼짇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여 머리를 감습니다. 특히 이날 선비들이 정원의 곡수(曲水:굽이굽이 휘돌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자기 앞으로 떠내려 올 때까지 시를 읊던 잔치인 ‘곡수연(曲水宴)’ 풍습도 있습니다. 또 이날의 시절음식엔 진달래꽃을 쌀가루에 반죽하여 참기름을 발라지지는 꽃전(화전)과 진달래 꽃잎에 녹말가루를 씌워 오미자즙에 띄운 마실거리 ‘진달래화채’가 이 있습니다. 또 꿀을 탄 오미자즙에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것을 가늘게 썰어 넣어 잣을 띄운 화면(花麵)도 즐깁니다.
285. 신혼 첫날밤의 ‘신방엿보기’ ‘신방엿보기(신방지키기)’는 첫날밤에 친척이나 이웃들이 신방의 문구멍을 뚫고 엿보는 풍속인데 무엇 때문에 신방을 엿볼까요? [한국민속대사전(민족문화사)]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에 백정이 있었는데 아들이 장가갈 때 무조건 벗겨야 한다고 했고, 신부의 어머니는 시집가서 고통스러워도 잘 참아야 한다고만 일러 주었답니다. 신랑은 옷을 벗기라는 말을 착각해 살을 벗기고, 신부는 ‘참아야 한다’는 말만 생각하고, 참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 뒤부터 신방을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보통은 신부가 연상인데 신랑이 너무 맘에 안 들면 신부가 비관하여 자살하거나 신랑을 죽이고 자살하는 일이 간혹 있었기에 지킨다고도 하고, 서산 지방에서는 사람이 보지 않으면 귀신이 보기 때문에 ‘망을 본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뜻은 신랑 신부 놀리기가 아닐까요?
284. ‘입시’는 ‘입학시험’의 약자가 아닙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입시전쟁이 한창입니다. 이제 11월 수능 때까지 온 집안은 대학입시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에 ‘입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입시’와 같은 말일까요? 사전에서 ‘입시’를 찾아보면 “①하인이나 종이 먹는 밥을 낮잡아 이르는 말. ②변변하지 아니한 것을 조금 먹음. 또는 그렇게 먹는 밥”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박남일님의 ‘우리말 풀이사전’에 “우리말은 신분 구별이 뚜렷한 편이다. 특히 밥에 관련된 말은 더욱 그렇다. 임금의 밥은 ‘수라’, 윗사람의 밥은 ‘진지’, 아랫사람의 밥은 ‘입시’다. ‘밥 먹었는가?’하면 될 것을 굳이 ‘입시는 하였는가?’ 함으로써 자신의 체면을 높이려 했던 듯하다.” 고용주가 일꾼을 일껏 부려먹고, 쓸모없다고 잘라버리는 것은 일꾼에게 ‘입시’도 못하도록 하는 비열한 일이 아닐까요?
283. 봄엔 꽃으로 만든 전통음식을 매화는 눈 속에서 청초한 자태와 향기로 봄을 맨 먼저 엽니다. 그리고 매화가 질 때쯤이면 진달래가 온 산을 불태웁니다. 바닷가에선 알싸한 향기를 흩날리는 노란 동백꽃이 우리를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는 예부터 꽃을 향기와 자태로만 즐긴 것이 아니라 음식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떨어지는 매화꽃잎을 주어 눈 녹인 물에 삶아 흰죽을 넣어 먹는 ‘매죽(매화죽)’, 연꽃잔에 매화를 띄운 산초차, 매화김치, 진달래꽃잎을 따다가 곱게 빻은 찹쌀가루에 버무려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기름에 지진 ‘진달래화전(두견화전)’과 '진달래술(두견화주)’, 동백꽃잎으로 전을 부친 ‘동백화전’, 냉이꽃, 꽃다지, 진달래, 제비꽃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만든 ‘오색화전’, 복숭아꽃으로 담근 ‘도화주(桃花酒)’ 등을 해먹었습니다. 이 찬란한 봄을 그냥 보내지 말고, 꽃으로 만든 음식들과 함께 즐기면 좋겠습니다.
을사늑약 / 려증동 1905년 11월에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 서울에 왔다. 17일에 ‘5조약 문서’를 내어놓으면서 찬성하라고 했다. 내용인즉 “한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본 통감이 다스려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문서 이름은 ‘박문’이 ‘한-일 협상’으로 지었다. 참정대신(국무총리) 한규설이 고함을 지르면서 ‘아니 된다!’고 외쳤다. 외부대신 박제순 등의 도장이 찍혔다. 박문은 일본군을 불러서 ‘경운궁’을 둘러싸게 하고는 한규설을 끌어내라고 했다. 이때 한규설이 박문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자결했더라면 열사로 되어, 그 이름이 영원히 살게 될 뻔했는데, 밥이 그리워선지 그러지 못했다. 박문이 지시하기를 “참정이 불가라고 하니, 외부대신이 도장을 찍으면 된다”고 했다. 왜병이 외부대신 방에 들어가서 박제순 도장을 가지고 나오도록 해서 도장을 그들이 찍었다고 한다. 박제순 역시 ‘불가’를 외치면서 자결했더라면 그 이름이 영원히 살았을 터이다. 당시 선비들은 “참정대신이 ‘불가’라고 한 문서는 무효다”라며 국제 모임인 만국평화회의 등에 호소하려고 ‘늑약’(勒約)을 외치면서 ‘을사늑약’이라고 했다. ‘억지 늑’자다. 황성신문사 사장 장지연이 ‘시일야 방성대곡’이라는
282. 횃대를 아십니까? 우리는 어렸을 때 시골 집 방에 달아맨 횃대와 그 위에 걸쳐있는 옷들을 보았습니다. 횃대는 옷을 걸 수 있도록 두 끝에 끈을 매어 달아놓는 막대기를 말합니다. 옷장이나 의걸이장이 없는 서민들이나 검소한 선비들은 횃대를 방 한 쪽에 달아매고 두루마기나 장옷을 걸어두었습니다. 횃대감은 주로 단단하면서도 겉이 매끄러운 물푸레나무나 대나무를 썼습니다. 또 새장이나 닭장 속에 새나 닭이 앉도록 가로지른 나무 막대도 횃대입니다. 지난해 2월 25일 조선닷컴에는 “벽마다 큰 못을 박거나 서양식 옷걸이를 두지 말고, 우리 옛 조상들이 한복을 걸쳐 놨던 횃대를 활용해 보자. 넉넉한 폭을 두고 두 줄로 길게 늘어진 굵은 매듭 장식이 어우러진 횃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예스런 분위기를 더해준다.”라는 이경은기자의 기사가 있었는데 횃대를 현대적 감각에 맞는 인테리어로 활용할 수도 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