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겨레의 스승은 ‘좁쌀 한 알’이다(?) “기차 안에서 자식 혼수 비용을 몽땅 잃어버리고, 속을 태우던 한 아낙이 어떻게 알았는지 장일순을 찾아왔다. 아낙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장일순은 원주역 앞에 있는 노점에서 소주를 시켜놓고,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기를 사흘 하고 나니 원주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소매치기를 모두 알 수 있었고, 아낙네의 돈을 훔친 이도 찾을 수 있었다. 장일순은 그 소매치기를 달래 남은 돈을 받아내고, 자신의 돈을 합쳐 아낙에게 돌려주었다.” 위 글은 ‘좋은 생각’ 2004년 9월호에 실린 최성현님의 ‘자신을 이라고 했던 사람’이라는 글입니다. 그런데 장일순은 그 뒤 원주역에 다시 가서 그 소매치기에게 영업을 방해한 데 대한 사과의 뜻으로 술과 밥을 사며, 용서하라고 했답니다. 훈계 대신 용서를 빌었던 장일순은 겨레의 스승으로 불렸지만 그는 자신을 ‘좁쌀 한 알’로 한없이 낮췄다고 합니다.
234. 우수(雨水)와 함께 찾아오는 봄 오늘은 두 번째 절기 우수입니다. 옛사람은 우수 기간 중 초후에는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놓고, 중후에는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말후엔 풀과 나무에 싹이 튼다고 했습니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할 만큼 날씨가 많이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하지만 아직 겨울 동장군은 선뜻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꽤 쌀쌀하게 추운 꽃샘바람을 불어냅니다. "꽃샘 잎샘 추위에 반늙은이(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수는 눈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은 봄비와 함께 꿈을 가지고 오는지도 모릅니다. 그 봄비가 겨우내 얼었던 얼음장을 녹이고, 새봄을 단장하는 첨병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인지 봄비를 기다려 봅니다. 보통 이 때쯤은 봄가뭄이 심하기가 일쑤입니다.
으뜸소리 적기 프랑스 사람들은 ‘으뜸소리’를 굳게 지킨다. 로마자나 한글이나 소리글자이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로마자를 쓰는 프랑스 사람들은 ‘Descartes’라고 적고 ‘데카르트’라고 소리 내어서 읽고 말한다. 소리나는 대로 적고 말하지 아니한다. 세계 인류가 대체로 프랑스 식을 따르고 있다. 이와는 달리 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고 하는 나라는 남배달(남한)뿐이다. 북배달(북한)이 공산주의와 독재적 정치제도를 채택해 나라를 꾸려오다 배가 고파서 굶어나기에 이르렀으나, 1960년대 이후 으뜸소리를 굳게 지키는 방식을 채택했기에 말글살이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별로 없다. 북배달이 말글살이에서는 바르고 깨끗하게 되어서 북배달 말사전에서는 일본말 찌기들이 거의 들어가지 아니했다. 북배달 말사전에는 ‘경술국치’가 들어 있고, ‘국치일’이 8월29일로 바르게 기록되어 있다. 남배달에서는 “무슨 말이든지 뜻이 통하면 된다”고 하고는 “내가 하는 말이 표준이다. 내가 하는 말을 사용하라”고 했던 독단적 학자가 있었다. 그 사람이 ‘소고기’를 ‘쇠고기’라고 했다. ‘쇠고기’라고 하면 ‘철사 고기’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내가 어릴 때 ‘소고기’를 ‘쇠고기’라고 했다.
233. 서양과학이 무조건 진리는 아닙니다. 몇 년 전 오마이뉴스에 한의학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한의학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은 미신이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서양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무조건 미신이고, 서양 과학이 진리인가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 발표되기 이전 서양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거의 1400여 년간 과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동설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최근엔 서양의학에서 위암의 원인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균이 한국인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또 한의학 치료의 바탕이지만 서양의학계가 미신으로 치부했던 경락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고 표한 서양의학자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서양 과학도 무조건 진리일 수는 없으며, 과학으로 증명되지 못했다 해서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고, 서양 과학이 모든 학문을 재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232.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시를 짓던 ‘풍류회’ 요즘 즐거운 잔칫날에는 음주가무가 빠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음식을 먹고 노래합니다. 옛날에도 우리 겨레는 음주가무를 즐겼는데 그 중의 하나는 ‘풍류회(風流會)'입니다. 풍류회는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모임이며, 여기에 한시를 짓고, 붓글씨를 쓰며,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이 풍류회에서는 율객(律客)들이 거문고, 가야금, 젓대(대금), 해금, 장고, 양금, 단소 따위로 줄풍류(현악기로 연주하는 음악)를 연주하며, 남녀 가객(歌客)들이 가곡을 부릅니다. 이 때 남녀 가객이 교대로 20여 곡의 가곡을 부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마지막에는 남녀가 태평가를 같이 부릅니다. 요즘의 음주가무는 질탕하게 노는 것으로 사람들의 눈을 찌푸리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전엔 가곡을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고, 한시, 붓글씨, 그림과 같이하는 것이어서 요즘보다는 수준이 높은 모습입니다.
231. 정월 초이렛날의 ‘이레놀음’ 정월 초이렛날은 ‘이레놀음’이란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풍습은 친한 이웃끼리 쌀을 성의껏 거두어 모듬밥을 해먹고, 윷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모듬밥이란 여자들이 아침부터 쌀자루를 메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생활 정도에 따라 쌀을 거두어들입니다. 거둔 쌀 중에 밥할 것만 남기고, 모두 팔아 김, 조기 등 반찬거리를 사고 약간의 술을 마련합니다. 그렇게 하여 동네 어른들에게 바치고, 동무들끼리 오순도순 한 자리에서 밥을 먹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에 살기가 어려운 서민들은 명절이나 제삿날이 아니면 쌀밥은 물론 별다른 반찬 한 가지 제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날 하루라도 어른을 즐겁게 해드리려는 배려에서 생긴 풍속입니다. 우리 겨레는 까치밥, 고수레 따위와 함께 ‘더불어 사는’ 철학이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230. 길남열 할아버지가 들려준 옛날이야기 ‘효부’ “옛날에 한 내외가 홀애비 노부와 사는디 이놈이 어찌나 불효가 막심한지 모르지요. 그러나 그 마누래는 효심이 지극한데 남편은 이것이 못마땅해서 늘 내외간에 싸웠십니다. 노부가 이 꼴을 보고 내가 없어지면 되겄다 허고, 집을 나와서 경상도 거창 땅 어떤 집에서 넘으집살이를 했십니다. 그 뒤 마누래는 아들을 났십니다. 남편은 좋아하는디 마누래는 젖도 주지 않앴십니다. 남편이 어째서 안 주냐고 물응께 마누래는 ‘이 아이는 당신 닮어서 크면 우리를 내쫓을 데니 이 까진 자식은 안 키우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했십니다. 남편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아서 아버지를 모서다가는 그 뒤부터 효도를 했십니다. 마누래는 그제사 애기한티 젖도 멕이고, 잘 키우고 내외가 화락하게 잘 지냈답니다.” 부모를 버리는 사람들이 있는 요즘에 깨달음을 주는 얘기입니다.
229. “싼값에 팝니다”는 유치하고, “Sale”은 고상한 말(?) 이번 설에 백화점이든, 할인점이든, 재래시장이든, 인터넷쇼핑몰이든 대목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디나 “싼값에 팝니다”라는 문구는 유치하게 느껴지는지 한결같이 “Sale”이었습니다. 거기에 보태 “파격세일”, “폭탄세일”, “깜짝세일” 등으로 모두 “세일”이란 말을 넣어 만든 말을 씁니다. 물론 “잔치”라고 쓴 곳도 드물고, 거의 “이벤트” 천지가 됩니다. 상인들로서는 무조건 손님들의 환심을 살 만한 낱말을 골라 써야 장사가 되니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언론들도 모두 따라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지요. 외래 문물이 들어오면 그에 따라 이름과 개념이 함께 묻어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토박이말이 있는데도 한자말을 우대하고, 외래말을 쓰면 품격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토박이말에 자부심을 가질 때만이 남에게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228. 우리 궁궐에서 ‘구들’을 빼앗은 일제 우리는 이미 고구려 때부터 구들문화가 발달되어 불을 다스려 난방과 밥짓기를 동시에 해결하는 대단한 과학을 가졌습니다. 또 구들은 방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오게 하여 배꼽 아래를 따뜻하게, 가슴 위로는 차게 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하는 한의학의 논리에 잘 맞습니다. 물론 조선시대에 지은 우리의 궁궐들도 구들문화가 살아 있었습니다. 난방하기 위해 눈물을 흘렸던 서양, 다다미를 깔아 생활했던 일본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창경궁의 전각들을 보면 구들이 아닌 마루가 놓인 것들이 있습니다. 환경전(歡慶殿)을 비롯한 많은 전각들은 구들이 놓여 있었던 것인데 일제가 훼손하여 마루로 변질되었습니다. 다행히 통명전(通明殿), 양화당(養和堂) 등은 최근 구들을 복원하였습니다. 일제는 분명 우리의 궁궐인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동물원을 만든 것은 물론 구들까지 훼손했음을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227. 배꼽티,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것은 자해행위(?) 아주 추운 날, 배꼽티를 입은 여성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멋쟁이라도 몸은 괜찮을까? 기림산방 김종수원장의 책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에 보면 ‘피부노출’을 경고합니다. “날씨가 추운 날 노출된 피부로 차가운 기운이 들어오는데 차가운 기운이 오래 남으면 마비가 생기고, 통증, 염증, 신경통, 동상 등이 생긴다. 반면에 더운 날씨에 피부가 오래 노출되면 피부손상, 배탈, 이질, 설사, 일사병 등이 생기기 쉽다.” 그런 까닭으로 김종수원장은 날씨가 덥던, 춥던 배꼽티나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말합니다. 배꼽티를 입으면 배가 차가워지고 그러면 생리통, 생리불순, 냉대하, 불임, 자연유산, 기형아 출산이 생길 수도 있으며,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으면 무릎에 증, 염증이 생기고, 이것이 신경통, 류머티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옷은 단순한 멋내기용으로만 입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