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한국의 집시, 풍각쟁이를 아십니까? 서양에는 유랑민족인 집시가 있는데 이들은 보통 대장장이, 거간, 마술사, 점쟁이, 악사 따위로 생활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유랑민인 풍각쟁이가 있었습니다. 이들 풍각쟁이는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해 얻는 수입으로 생활을 하는데 고려 중엽부터 있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악기는 해금, 가야금, 피리, 퉁소, 북 따위를 쓰며, 삼현육각을 치고, 판소리를 부르거나, 검무, 법고춤 등을 추기도 하는데 이들 속에는 장애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많은 패거리를 이루어 풍악을 울리면서 판놀음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퉁소잽이, 해금잽이 등 하나나 둘이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풍각쟁이들은 도둑질이나 구걸을 하지 않고, 음악을 연주한 정당한 대가를 얻으려 했기에 유랑악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종이와 벼루에 깃들인 사연 문방 사보(하)지,연고대 중국인이 서사(書寫)에 가장 먼저 사용한 재료는 암석. 질그릇 그리고 사람의 피부(문신)였다. 그 다음은 뼈 (거북등뼈, 소의 견갑골 등)였고, 상(商)말 ,주(周)초부터 죽간(竹簡) 목간(木簡)을 썼으며, 전국시대에는 견직물(絹織物)이 등장했다.그러나 간(簡)은 무겁고, 견(絹)은 비싸므로 서사 활동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없었다. 사회. 경제. 문화 및 교육의 발전에 따라 더욱 좋고도 값싼 서사용 자재-종이가 생겨났다. 종이는 중국이 인류에 기여한 4대 발명품(종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 중의 하나이다.전통적으로 종이는 동한(東漢) 시대의 채륜(蔡倫)이 서기 105년에 발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1933년 신쟝(新彊) 뤄뿌버(羅布泊)에서 옛 종이가 발굴됐는데, 같이 발굴된 목간에 황룡(黃龍) 원년(기원전 49년)이라는 글자가 씌어져 있었다. 그 외에도 서한 때의 종이가 연이어 발굴됐으므로 중국의 종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2.100년 전에 이미 있었음이 증명됐다.채륜이 제작한 종이는 삼, 나무껍질, 헝겊, 낡은 그물 등을 삶아 만든 것 이였다. 그러나 약 1.500년간 중국 종이의 주축을 이루는 것
붓(筆)과 먹(墨)의 이야기 문방 사보(상)필. 묵 중국 전통문화에서 "붓(筆)","먹(墨)""종이(紙)" 및 "벼루(硯)"를 총괄하여 "문방사보 文房四寶"라고 한다. 두 번에 걸쳐 문방사보를 소개하고자 하며, 여기서는 먼저 붓과 먹에 대해 이야기하겠다.허베이(河北) 츠산(磁山), 간수(甘肅) 따띠완(大地灣)에서 발굴된 신석기 시대 유적(약 7천년전)의 질그릇에 붓으로 그렸다고 추정되는 그림이 있으며, 갑골문(약 3천년전)에도 붓으로 쓴 후 미처 새기지 못한 글들이 있으니, 붓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현존하는 붓의 가장 오래된 실물은 1954년 후난(湖南) 창사(長沙)에서 발굴된 전국시대의 붓과, 1975년 후베이(湖北)윈멍(雲夢)에서 발굴된 진(秦)나라 때의 붓이다. 전자는 털을 붓대의 밖에 감았고, 후자는 붓대 속에 꽂았다, 후자는 또한 붓대의 끝이 뾰족한 것으로 보아 비녀붓 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붓을 비녀처럼 머리나 모자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썼다는 기록이 문헌에 있는데 , 이를 비녀붓이라 한다.한나라 때의 붓은 발굴된 실물이 많다. 이 시기 붓의 전형적인 것으로는 붓대를 네쪽의 나무를 동여매어 만든 붓인데, 이는 붓끝이
215. 곱씹어 음미할수록 깊은 울림을 남기는 말 고려시대 문신인 이제현(1287~1367)의 보한집(補閑集)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지극히 오묘한 말은 오래되어야 맛을 알고, 낮고 가벼운 작품은 언뜻 보기에는 좋아 보인다.” [미쳐야 미친다]란 책을 써서 유명한 정민 교수가 이 글을 해석하고 덧붙인 내용을 찾아봅니다. “곱씹어 음미할수록 깊은 울림을 남기는 말, 글쓴이의 마음자락이 느껴질 듯 말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처음엔 눈길을 확 끌어당기지만 되읽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글, 한번 더 읽으면 천박한 밑바탕이 훤히 들여다뵈는 글, 그런 글이 아니길 원한다.” 저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를 쓰면서 바로 이런 마음을 갖습니다. 곱씹어서 음미할수록 깊은 울림을 남기고, 우리 문화를 사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참고:죽비소리/정민,마음산책)
배달말의 생기 뿌리를 알 수 없게 된 말이 오래된 배달말이다. 그 오래된 배달말에서 생기가 솟아나게 된다. 생기가 솟아나는 말을 골라 쓰는 사람은 거룩한 일을 남기게 된다. ‘나라’라는 말이 오래된 배달말이라는 곳에서 배달겨레가 오랜 옛날에 ‘네이션’을 이룩했다는 것으로 된다. 아시아 대륙에서 단족(檀族) 배달겨레가 제일 먼저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 말이 [나라]라는 소리에서도 증거가 됨 직하다. 나라[nara]라는 소리를 들으면 배달겨레 초등학생 머리에도 곧장 네이션[nation]이 지니고 있는 뜻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방·국’(邦·國)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이 배웠다는 대학생일지라도 곧장 그 뜻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본디 뿌리가 배달말이 아니어서 어렵게 된 것이다. ‘邦’이라는 말을 공자가 많이 썼고, 맹자는 ‘國’이라는 말만을 사용했다. ‘방’과 ‘국’이라는 말을 우리가 오랜 세월 써 왔지만 배달말로 되지 못했다. 배달말로 되지 아니했기에 거기서 생기가 솟아나지 아니한다. 우리에게 ‘나라’라는 배달말이 없었다고 하면 ‘방·국’이 배달말로 될 수가 있었다. ‘방국’이 배달말로 되지 못했기에 여기에서 나온 ‘국민’이라는 말이 언제나 약탈군이 쓰는
214. 혼례식 때 쓰는 나무새는 기러기입니다. 중국의 청화대학 중문학과 객원교수이신 정인갑교수의 글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탁구선수 쟈우쯔민과 안재형의 혼례에 나무로 깎은 새를 주고받는 장면이 있어서 물어보니 바로 오리라는 것이 아닌가! 후에 필자가 얻은 답안에 따르면 그 새는 오리도, 원앙도 아니라 기러기였다.” 그렇습니다. 혼례에 등장하는 나무새는 기러기입니다. 남자는 양(陽), 여자는 음(陰)에 속하는데, 기러기가 남에서 북으로 날아가는 것은 양, 음에 맞으며, 남녀간 음양의 조화를 뜻합니다. 기러기는 암놈과 수놈이 일부일처제를 이루며, 심지어 상대가 죽어도 다시 배우자를 찾지 않으므로 정조를 지키는 동물이라 하여 혼례식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신랑이 신부집에 들어갈 때 보자기에 싼 목기러기를 가지고 가 상 위에 놓고 절을 하는데 이것을 기러기 ‘안(雁)’자를 써서 ‘전안지례(奠雁之禮)라고 합니다.
213. 남자한복에서 두루마기는 예의입니다. 두루마기는 조선시대부터 남녀가 모두 입은 포의 하나로 곧은깃인데 사방이 두루 막혔다는 뜻으로 ‘두루마기’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후리매’라고도 하는데 휘둘러 맨다는 뜻이지요. 고종 21년(1884년) 갑신의복개혁 때 귀천을 막론하여 넓은 소매인 도포 따위를 폐지하고 두루마기를 입게 했으며, 1895년엔 임금 관, 민이 똑같이 검정 두루마기를 입게 하였는데 이는 옷으로라도 구별이 없이 같게 함이요, 편의를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요즘 방송에서도 남자 출연자들이 저고리와 바지 위에 조끼, 마고자, 배자 차림인 것을 많이 봅니다. 하지만 여자와 달리 남자가 한복을 입고 외출할 때 두루마기가 단순한 방한복만이 아닌 예절을 갖추는 옷이기 때문에 꼭 입어야만 합니다. 큰 맘 먹고 한복을 입는데 품위가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12. 짚신을 신어도 부끄럽지 않았던 조선시대 조선시대 사람들은 물론 태사혜(신코와 뒤축 부분에 흰줄무늬를 넣은 신), 당혜(당초무늬가 있는 부녀자들의 신) 등 고급 가죽신도 신었지만 보통은 짚신과 미투리를 신었습니다. 미투리는 생삼으로 삼은 신인데 짚신보다 조밀하게 삼았고, 결이 매우 고와 양반과 상인들 사이에서 즐겨 신은 신입니다. 짚신은 마한시대의 문헌에 나타날 만큼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신입니다. 짚신은 짚 외에 삼, 칡, 닥껍질로 만들기도 하는데 비오는 날에는 신기가 불편하고, 쉽게 헤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성호 이익의 백과사전식 책인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보면 “망갹(짚신의 한자말)은 가난한 사람들이 늘 신는 신이지만 옛사람들은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란 말이 나옵니다. 조선시대엔 사치스런 양반들이 판치는 세상인 듯하지만 그래도 검소한 생활이 보편적인 풍속이었던가 봅니다.
211. 개에게 갓, 탕건, 관자를 만들어 씌운 이야기 예부터 서민들은 관의 횡포에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최근처럼 신용불량자가 급증할 때는 관보다 금융기관이 서민들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신용카드사들은 미성년자나 노숙자들에게도 신용카드를 발급한 다음 며칠만 연체를 하면 협박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 꼴이 조선말기의 “구동지 설화(狗同知說話)”를 생각하게 합니다. 어느 시골의 과부가 개를 길렀는데 이름을 ‘석지(錫之)’라 했습니다. 그런데 협잡꾼이 석지를 과부의 아들인 줄 알고, 공명첩(空名帖:나라의 재정이 모자랄 때 돈이나 곡식을 바치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이름을 써 넣어 명목상의 관직을 준 책)을 발급한 뒤 돈을 내라고 강요했답니다. 그러자 과부가 “비록 개지만 벼슬을 했으니 소홀히 할 수가 없다.”고 탄식하며, 개에게 갓, 탕건, 관자를 씌워 사람들이 그 개를 구동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은 신용카드가 현대판 공명첩일지도 모릅니다.
210.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보양식입니다. 어떤 사람은 보양식을 먹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또 나라 구석구석을 찾아 헤맵니다.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일까요? “몸이 허약하면 식이요법을 한다. 오곡은 몸에 영양을 주기 위해 먹고, 다섯 가지 과일은 곡식을 보충하여 몸을 강하게 하고, 힘을 내기 위해 먹는다. 또 다섯 가지 동물의 고기를 먹고, 나머지 부족한 기운을 다섯 가지 채소로 채워준다. 따라서 사람이 밥을 먹을 때 이러한 음식들을 골고루 섞어먹으면 건강해진다.” 중국 의서의 고전 [황제내경]의 “장기법시론(臟氣法時論)”에나오는 말입니다. 오장육부의 질병은 오행의 원리에 따른 계절의 변화에 조화를 이뤄 식이요법을 하면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별한 보양식이 아니라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 맛의 각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우리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