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활인서와 환곡 조선시대의 관청에 활인서(活人署)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1392년(태조 1년)에 만든 것으로 가난한 병자를 무료로 치료해주던 곳이었지요. 이것은 고려 초에 있던 혜민국 따위의 제도를 이은 것입니다. 돈이 없어 병이 나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겐 정말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환곡(還穀)도 가난한 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흉년 또는 춘궁기(春窮期: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햇곡식은 나지 않아 먹을 것이 없는 봄철의 때)에 가난한 사람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풍년이나 추수 뒤에 되받는 것이지요. 물론 이 기관이나 제도도 일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겐 소중한 것들이 아니었을까요? 정부의 무관심과 부자들의 등쌀에 가난한 사람들이 병의 치료는커녕 따뜻하게 살 곳도, 끼니를 때울 방법도 없는 지금과 비교하면 그래도 박수를 쳐줄만한 것이었습니다.
175. 동지(冬至)는 절기이며, 명절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스물두 번째이며, 명절인 동지입니다.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했고,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합니다. 동지가 동짓달의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이면 중동지, 그믐께면 노동지라고 하며,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습니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나옵니다.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고 합니다. 궁중에서는 동지부터 점점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임금의 도장을 찍은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또 동지부터 섣달그믐까지 며느리가 시어머니 등에게 버선을 지어 드립니다. 이를 동지헌말이라고 하는데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합니다.
174. 동지에 팥죽먹기 동지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라며, 팥죽을 쑤어 먹습니다.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낸 다음 방과 장독, 헛간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립니다. 붉은 팥죽은 양(陽)의 색으로써 귀신을 쫓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 이 풍습도 까치밥처럼 짐승들과 함께 하는 더불어 사는 아름다움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다음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데 마음을 깨끗이 씻고, 새로운 한해를 맞는 뜻이 담겨 있지요. 또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입니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으며, 절에서도 죽을 쑤어 중생들에게 나눠줍니다. 팥죽을 먹으면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귀신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합니다.
173. 한약재 ‘지초’는 불로초로 불렸습니다. 우리 전통술 중에 진도 토산물인 ‘홍주’가 있습니다. 홍옥처럼 붉은 색이어서 ‘홍주(紅酒)’라 했는데 이것은 ‘지초(芝草)’라는 한약재를 사용하여 빚습니다. 이 ‘지초’는 여러해살이 약초로 피를 깨끗하게 하고, 피를 더 만들어지게 하며, 피가 몸속에서 잘 돌게 하는데 씁니다. ‘지초’는 음양의 이치에 따라 자라기 때문에 지초 하나를 보면 반드시 그 옆에 또 하나가 있고, 꽃이나 씨방이 항상 서로 마주보고 수그린다고 합니다. 이래서 예부터 ‘지초’를 신령스러운 식물로 믿었습니다. ‘지초’의 속에는 빨간 물이 고여 있는데 이 물을 먹으면 취하여 몸이 붉어지고, 2~3일 실신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깨어나면 만병이 낫고, 흰머리가 검어지며, 노인도 왕성한 힘이 생겨 장수한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이 ‘지초’를 ‘불로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172. 우리말은 등급이 낮은 유치한 말(?) 얼마 전 “남북 말글의 낯설음 극복을 위하여”라는 토론회에서 최기호 교수(국어정보학회장)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말을 가장 낮추어 본다. 예를 들면 똑같은 ‘알몸, 나체, 누드’를 놓고, 토종말 ‘알몸’은 ‘알몸인 채로 죽었다’ 따위로, 외래말 ‘누드’는 거룩한(?) 누드화를 표현할 때에 쓰며, 나체는 그 중간단계에 놓았다. 우리말을 이렇게 천대해도 좋은 것인가?” 뿐만 아닙니다. 토종말 ‘집’은 허름한 집들을 말할 때, 한자말 ‘주택’은 좀 나은 집을 얘기할 때, 외래어 ‘빌라’는 고급스런 집을 표현할 때 습니다. 또 ‘밥집’은 서민들의 싸구려음식점, ‘식당’은 좀 나은 음식점, ‘가든’은 고급음식점입니다. 이렇게 외래말은 가장 세려된 말, 한자말은 중간 정도, 우리말은 유치한 말로 푸대접받습니다. 이렇게 우리말을 푸대접할 때, 나라의 자존심은 멍들어간다는 것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합니다.
171. 한국의 정취, 다듬이 소리 가만히 눈감고 들어 봅니다. 멀리서 아득히 다듬이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렸을 적 우리는 어머니와 누나가 서로 마주보고 다듬이질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때 어릴 시절로 돌아가고만 싶습니다.다듬이질은 옷감의 구김살을 펴고 부드럽게 하는 일입니다. 다듬이질을 하려면 우선 다듬잇돌을 밑에 받혀놓아야 하는데 다듬잇돌은 결이 단단하고 매끄러운 돌이나 박달나무로 만듭니다. 가운데는 약간 위로 올라와 곡선을 이루고, 양쪽 밑으로는 손을 넣어 들 수 있도록 홈을 팠습니다. 그 위에다 옷감을 놓고, 방방이로 두드리는데 이 매끈한 방망이는 역시 박달나무로 만들며, 보통 지름이 7~8cm가 됩니다. 이렇게 잘 다듬어진 옷감은 다림질한 것 이상으로 윤기가 나고, 구김이 펴지며, 풀기도 골고루 스며들게 됩니다. 이 다듬이 소리는 한국의 정취를 살리는 소리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합니다.
170. ‘죽마고우’는 ‘죽마타기’라는 놀이에서 유래됐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아이들의 놀이 중에 ‘죽마타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국민속대사전]에서 ‘죽마타기’를 찾아보았습니다. 주로 사내아이들이 긴 막대기를 가랑이 사이에 지르고, 두 손으로 막대기 윗부분을 잡은 다음 말타는 시늉을 하면서 왔다갔다 뛰어 돌아다니며 노는 것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마을의 양지바른 곳에서 나무말에 채찍질 하는 모습을 보면 수많은 병마가 밀려오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 아이들에게는 그만큼 활기를 북돋아준다고 합니다.한자 고사성어에 ‘죽마고우(竹馬故友)’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어릴 때부터 대말을 같이 타고 놀던 벗’이라 풀이되어 있지요. 이 ‘죽마고우’가 바로 이 ‘죽마타기’놀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우리는 ‘죽마고우’와 함께 ‘죽마타기’를 하던 기억을 살려봅니다.
169. 조선시대의 사인(sign)은 수결입니다. 우리는 문서에 이름을 쓰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도장을 찍거나 사인(sign)을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이 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수결(手決)’이라는 것인데 책이나 문서의 끝에 자기의 직함이나 성 따위를 쓰고, 그 아래에 흘려 서명한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 서압(書押), 수례(手例), 수압(手押), 화압(花押)이라고도 합니다.수결은 그 형태에 따라 임금의의 수결인 어압(御押), 손바닥으로 찍는 수장(手掌), 노비의 수결인 수촌(手村:왼손 가운뎃손가락의 첫째와 둘째 마디 사이의 길이를 재어 그림으로 그려 놓음), 나무에 새긴 각압(刻押) 등이 있는데 보통은 배모양이나 ·솥모양이었습니다. 조선 선조 때의 영의정 유성룡은 화압으로 점 하나만을 찍었는데, 향리가 이를 위조하였다가 발각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가 위조를 방지하기 위하여 붓 속에 바늘을 넣은 것을 향리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168. 부대찌개, 알고 먹읍시다. 부대찌개를 최고의 퓨전음식으로 극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까요?미군은 지급된 햄, 소시지 등을 유통기한이 지나면 자동 폐기합니다. 전쟁 직후 고기는 물론 먹을 것도 없었던 우리에겐 미군이 버린 햄과 소시지는 그야말로 소중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이 '부대찌개'입니다. 싼값에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의정부, 동두천, 평택 등 기지촌 주변에서부터 시작되어 차츰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여러 가지 피해를 준 미군들이 내다버린 찌꺼기로 만든 음식을 우리는 먹습니다. ‘부대찌개’를 먹는 것이야 나무랄 수 없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밥을 굶던 6.25전쟁 때는 그렇다고 해도 지금 그때보다는 나은 환경을 사는 우리가 ‘부대찌개’를 최고의 퓨전음식으로 극찬하는 것은 자존심 문제입니다. 더구나 미군의 이빨 자국이 선명한 햄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167. 판소리, 알고 들으면 재미있다. "우는 놈은 발가락 빨리고, 똥누는 놈 주저앉히고, 제주병에 오줌싸고, 소주병 비상넣고, 새망건 편자끊고, 새갓 보면은 땀때 띠고, 앉은뱅이는 택견, 곱사동이는 되집어 놓고, 봉사는 똥칠허고..." 이것은 판소리 ‘홍보가’ 중 배꼽잡고 웃는 ‘놀부 심술부리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판소리는 기막힌 해학이 있지만 판소리가 해학뿐인 것은 아니고, 다음의 ‘심청가’ 중 ‘심청이 뱃사람들을 따라 인당수로 가는 대목’처럼 눈물을 삼키는 것도 있지요. "선인(船人)들을 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끌리는 치마자락을, 거듬거듬 걷어 안고, 비같이 흐르는 눈물, 옷깃이 모두가 사무친다. 엎어지며 넘어지며," 이런 것이 있는가 하면 ‘춘향가’ 중 ‘사랑가’처럼 성적 농담이 예사롭게 등장하기도 하며, 적벽가의 대목처럼 호탕한 전쟁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처럼 판소리는 사설을 알고 들으면 참 재미가 있는 음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