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영화 <아리랑>은 한국영화사상 가장 초창기에 제작된 명작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나운규가 각본ㆍ주연ㆍ연출한 <아리랑>의 원작소설은 이태준(李泰俊)의 <오몽녀>입니다. 나운규는 어느 신문에서 한 무명작가의 소설을 읽고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어물어 병석에 누워있던 이태준을 찾아간 나운규는 승낙을 받아 각본을 쓰고 영화를 찍은 것입니다. 소설가 이태준은 1904년 오늘(12월 4일) 태어났습니다. 그는 단편소설 <오몽녀(五夢女)>를 『시대일보』에 발표(1925)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순수문예지 《문장(文章)》을 주간을 맡았던 그는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문단에 크게 이바지하였지요. 그의 작품으로는 <아무 일도 없소>, <불우선생(不遇先生)>, <꽃나무는 심어놓고>, <가마귀>, <복덕방(福德房)>, <농군(農軍)>, <밤길>, <돌다리> 등이 있습니다. 특히 해방 직후인 1946년 8월 《문학(文學)》 지에 발표한 《해방전후(解放前後)》는 일제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은 2019년 12월 5일 국립한글박물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국어 순화의 방향과 방법’이라는 주제로 2019년 국어 정책 학술 대회를 연다. 이번 학술 대회에서는 국어 순화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검토해 보고, 앞으로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보려는 시도도 제안된다. 이를 위해 전문가의 발표와 종합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국어 순화의 방향 설정 필요 국어 순화는 우리말을 다듬는 일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의 비속어 남용, 어려운 외국어나 한자어의 사용,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국민의 국어 능력 등은 안타까운 실상을 보여 준다. 낯선 외국어와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다듬어 바람직한 국어 문화의 확산과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국어 순화 관련 사업이 지속되어 왔다. 이처럼 긴 역사의 국어 순화에 대하여 그 방향을 살펴보고 앞으로 순화가 나아가야 할 목표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어 순화와 관련하여 정부의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1947년에 국어정화위원회를 설치하여 널리 쓰이는 일본어 943개의 우리말 대체어를 제시했고, 1948년에는 우리말 도로 찾기 소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황하(黃河) 상류의 하진(河津)을 일명 용문이라 하는데, 흐름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어 고기들이 오를 수가 없다. 강과 바다의 큰 고기들이 용문 아래로 수없이 모여드나 오르지 못한다. 만일 오르면 용이 된다.(一名龍門, 水險不通, 魚鼈之屬莫能上. 江海大魚, 薄集龍門下數千, 不得上. 上則爲龍.)” 이는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膺傳)〉》에 나오는 ‘용문(龍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말에서 유래하여 ‘용문’은 과거에 급제함을 가리키게 되었고, 현대에도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의 문턱을 오르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화원들은 ‘용문’과 관련하여 잉어가 뛰어오르는 그림 곧 ‘약리도(躍鯉圖)’와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그림 곧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를 그렸고, 그런 그림이 인기를 누렸습니다. 날개 없는 물고기가 그저 무작정 폭포 위로 뛰어오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도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약리도> 한 점이 있지요. 물론 잉어가 뛰어오르는 것을 ’회귀본능‘이라고 해버리면 단순한 과학상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용문(登龍門)‘ 같은 의미를 붙여주고 이야기를 엮으면 예술이 됩니다. 다만 요즘 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보물 제1113호) - 이 달 균 탑은 뒷짐 지고 걷고 절은 짐짓 못 본 척 한다 때 이른 산천재 남명매 진다고 그래도 비로자나불 아는 듯 모르는 듯 부처는 바다를 보고 보살은 안개를 본다 물은 갇혀 있어도 연꽃을 피워내고 흘러서 닿을 수 없는 독경소리 외롭다 산천재에 가니 조식 선생 안 계시고 남명매만 피어 있더라. 아니다. 눈으로만 보면 꽃만 보일 것이고, 심안(心眼)으로 보면 글 읽는 선생도 뵐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난 결국 꽃만 보고 나왔다. 그리고 곧장 내원사 간다. 반갑다. 저만치 석탑이 걸어온다. 낮술 한 잔 했는지, 봄볕에 그을린 탓인지 탑은 약간 불콰해 보인다. 아지랑이 속에 흔들거리며 걸어오는 탑의 몸짓을 절은 짐짓 못 본 체한다. 비를 머금었는지 축축한 안개가 내려왔다. “바다를 보았느냐?” “아니오, 안개를 보았을 뿐이오.” 안경을 닦아 보았지만, 시야는 흐려 있었다. 그래, 맑은 물이 아니어도 연꽃은 핀다. 그렇게 날 위무하고 내원사를 나왔다. (시인 이달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속을 썩히는 / 저 향긋한 향 / 어머니, 아버지 가슴 속에 든 곰팡내 나는 / 퍼런 멍처럼 네모난 / 메주 한 / 덩이” 정순철 시인의 시 <메주>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은 24절기 가운데 ‘대설(大雪)’로 이즈음 우리 겨레는 메주 쓰기가 한창입니다. ‘콩으로 메주를 쒀도 곧이듣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은 아무리 당연한 사실을 말해도 믿을 수 없지요. 이 속담이 전해지던 우리 겨레에게 ‘콩으로 메주 쑤는 일’은 우리 삶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 어느 집이건 논두렁에 심어두었던 콩을 갈무리하여 음력 10월부터 11월 무렵 메주를 쑵니다. ‘메주’라는 말을 문헌에서 찾아보면 12세기에 펴낸 《계림유사(鷄林類事)》에 ‘장왈밀저(醬曰蜜沮)’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메주입니다. 또 조선 후기의 실학자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는 발해(渤海)의 명산물로서 책성(柵城)의 시(豉)를 들고 있는데 ‘시’는 한자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배염유숙(配鹽幽菽)’, 곧 콩을 소금과 함께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킨 ‘메주’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메주 쑬 때 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은 ‘플로깅’을 대체할 우리말로 ‘쓰담달리기’를 뽑았다. 국립국어원은 국어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좀 더 세련되고 수용도가 높은 우리말을 찾고,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올 9월부터 ‘새말모임’을 발족하여 시범 운영을 시작하였다. 홍보ㆍ출판, 경제, 교육, 국어, 문학, 방송, 법,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20~40대 젊은 세대 위주의 위원들로 이루어진 ‘새말모임’은, 새로 들어오는 외래 용어가 자리를 잡기 전에 발 빠르게 새말을 마련하고 널리 퍼뜨리기 위하여 모든 회의를 누리소통망[SNS]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머그샷 제도’를 ‘피의자 사진 공개 제도’로, ‘스피드 팩토어’를 ‘잰맞춤 생산 체계’로 다듬은 바 있다. 이번 새말모임 회의에서 다듬은 말은 ‘플로깅(Plogging)’*이다. * 이삭 등을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달리기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 정화 운동을 가리키는 말. 달리기 대신 걷기를 할 때는 영어 ‘워킹(Walking)’과 합성하여 ‘플로킹(Ploking)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상에 이름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우리 천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몸에 맞는 음악을 우리의 옷처럼 입고 키워왔으나 어느 날 갑자기 밖에서 들어온 옷이 우리 옷이 되어 원래 부르던 이름이 바뀌었다. 어느새 우리 음악은 국악이니 전통음악이니 하는 특수 분야로 불리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아닌 의붓자식 취급을 받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라고 <우리음악 정명(正名)찾기> 모임은 얘기한다. 어제 11월 28일 저녁 5시 서울 광화문 버텍스코리아 다이아몬드홀에서는 ‘우리음악 정명(정명) 찾기’ 2차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6월 4일 <우리음악 정명(正名)찾기> 모임은 “우리음악 정명(正名)찾기 추진위원회> 창립기념 토론회를 연 바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대체로 우리 음악의 이름이 ‘국악’에 머무르기보다는 새로운 이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로 모아졌다. 이에 따라 ”어떤 이름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라는 관점으로 몇 가지 이름을 뽑고 이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조사 ‘100인에게 묻는다’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전체 응답자 103인 가운데 ‘한국음악’이 42명, ‘한악’이 16명, ‘아리소리’가 7명이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9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심영신(沈永信, 1882~1975) 지사는 이른바 ‘하와이 사진신부’의 한 사람으로 건너간 분이다.” 이 내용은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제7권에 나오는 심영신 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심영신 지사는 이렇게 사진신부로 하와이로 건너가 혼인을 하고 사탕수수밭에서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재정부족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도왔습니다. 그러한 내용은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 그 고마움을 분명히 기록해두어 알 수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사진신부(寫眞新婦, picture bride)’란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이 사진만 보고 혼인한 조선여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진신부에 대한 설에 따르면 조선 평안도 의주의 백예수라는 사람이 중매해서 사라 최라는 신부를 신랑 이내수에게 보냈는데 사라 최는 109년 전인 1910년 11월 28일 도착하여 4일 뒤 혼인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1910년에서 1924년 사이에 하와이로 간 사진신부들은 대략 600명에서 1,000명에 달한다고 하지요. 웨인 패터슨이 쓴 《하와이 한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판소리’는 소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엮어 나가는 사설)로 엮어 발림(소리의 극적인 전개를 돕기 위하여 몸짓으로 하는 동작)을 곁들이며 구연하는 고유의 민속악입니다. ‘판소리’는 1964년 12월 24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고, 2013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판소리에는 소리꾼 한 사람이 한바탕 전체를 소리하는 ‘완창판소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 판소리는 매우 긴 줄거리와 독특한 기교 때문에 짧은 기간에 익힐 수가 없는 고도의 예술장르입니다. 그래서 한 마당을 완창하려면 길게는 여덟 시간이 걸리기에 쉽게 도전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완창판소리’는 판소리 한바탕 모두를 감상하며 그 값어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기에 소리꾼으로서는 평생에 꼭 해봐야 하는 무대이며, 판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청중이라면 꼭 들어봐야 할 공연입니다. 이 완창판소리는 고 박동진 명창이 1968년 9월 30일 서울 남산에 있는 국립국악고등학교 강당에서 다섯 시간 반에 걸쳐 ‘흥보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부른 것이 효시가 되었습니다.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위는 김수영 시인이 죽은 뒤 1돌 되는 날 세워진 시비에 새긴 그의 대표시 <풀>입니다. ‘풀’과 ‘바람’이라는 이름씨(명사)와 ‘눕다’, ‘일어나다’, ‘울다’, ‘웃다’라는 움직씨(동사) 두 쌍만을 써서 이를 교묘하게 반복함으로써 뛰어난 음악성을 얻고 있습니다. ‘풀’은 바람에 눕고 또 우는 나약한 존재지만 바람보다도 먼저 웃고 먼저 일어납니다. 이처럼 풀은 나약하지만, 시련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의 모습은 풀뿌리 민중과 그대로 닮았다고 노래합니다. 평론가 장석주는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3》 책에서 “김수영은 외부의 부조리한 압력인 바람을 견뎌내는 들풀의 약한 듯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단순한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