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보물 제88호) - 이 달 균 탑 지키던 네 마리 사자는 어디로 갔나 상실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까 버려라 돌아올 기약 없는 기다림이 번뇌다 아프다. 우리 역사여. 많은 국보 보물들이 그렇지만 이 탑 역시 비운의 탑이다. 관덕리 삼층석탑엔 원래 있던 네 마리 사자상이 없다. 그런데 어찌 원형으로 건재 하는가? 이 사진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석탑의 모조품이기 때문이다. 1934년 2월호 《건축잡지》에 실린 사진엔 분명 상층기단 윗면 네 귀퉁이에 암수 두 마리씩 돌사자 네 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훼손되지 않고 잘 생긴 두 마리는 1940년 도둑맞고, 조금 더 훼손된 두 마리는 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자상은 1963년 1월 보물 제202호로 지정되었다.(시인 이달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는 제80돌 ‘순국선열의날’이었습니다. ‘순국선열의날’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 희생하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위대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찬탈당한 날인 11월 17일을 기억하기 위해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이날을 기념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모두 국가지정 독립운동가임은 같습니다. 그러나 국권침탈 앞뒤로부터 1945년 8월 14일 곧 광복절 전까지 일제에 항거하다가 목숨을 바친 분을 선국선열이라고 하는 반면 항일투쟁을 했지만 살아서 광복을 맞이한 분은 애국지사라고 합니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는 순국선열이지만 김구 선생은 애국지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흔히 순국열사를 생각할 때 3.1만세운동 이후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항일투쟁을 3.1만세운동 이후만 한 것은 아닙니다. 더 멀리 1895년 명성황후참살사건(을미사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아니 그 한 해 전인 1984년 동학혁명이 먼저 일본군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였지요. 따라서 동학혁명 이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희망도시 꽃피우는 김포라네 한강줄기 흐르는 깊고 푸른 물가에 풍요롭고 풍요로운 금쌀이라네 정족산 구경가자 상봉산 보문산 강화구읍 돌아드니 옛 궁터만 남았네 구곡간장 애태우며 일구월심 그리던 님 만단정회 채 못하여 어디메로 가려나 아리랑 고개는 열두나고개 님 오는 고개는 한 고개로다“ 위는 서정섭 명창이 작사한 “김포아리랑” 구절이다.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오른 아리랑. 한국의 전통 민요로 남과 북은 물론 전 세계 146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사회 구성원 743만 명 누구나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192종의 아리랑에 6,000여 수가 있다는 아리랑. 그 아리랑은 물론 경기도 김포에도 있다. 어제 11월 15일 저녁 5시 김포아트홀에서는 “서정섭의 전통춤과 소릿길”이라는 제목의 공연이 김포아리랑보존회 주최ㆍ주관, 김포문화재단ㆍ(주)세원호이스트 등의 후원으로 열렸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9호 전수교육조교 방영기 명창의 사회로 열린 공연은 두 시간 동안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 공연은 먼저 서정섭 명창 외 9인의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은 ‘스피드 팩토어’를 대체할 우리말로 ‘잰맞춤 생산 (체계)’를 뽑았다. 국립국어원은 국어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좀 더 세련되고 수용도가 높은 우리말을 찾고,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올 9월부터 ‘새말모임’을 발족하여 시범 운영을 시작하였다. 홍보‧출판, 경제, 교육, 국어, 문학, 방송, 법,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20~40대 젊은 세대 위주의 위원들로 이루어진 ‘새말모임’은, 새로 유입되는 외래 용어가 자리를 잡기 전에 발 빠르게 새말을 마련하고 널리 퍼뜨리기 위하여 모든 회의를 누리소통망[SNS]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번 새말모임 회의에서 다듬은 말은 ‘스피드 팩토어(speed factore)’*이다. * 생산 공정 자동화 기반 위에 섬유패션산업의 특성을 살려 매장의 소비자 주문을 공장으로 신속하게 전송, ‘수요자 맞춤형 제품’ 생산을 지향하는 공정. ‘팩토어’는 ‘팩토리(factory)’와 ‘스토어(store)’를 합성하여 만든 말.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봉제ㆍ염색ㆍ신발 등 침체된 섬유ㆍ패션 산업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하여 이른바 ‘스피드 팩토어’ 기술 개발에 힘쓰겠다고 밝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계의 양금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중국 허페이시 안휘성대극장에서 18개 나라 2,000명이 넘는 양금인들이 모여 제15회 세계양금협회 대회가 열린 것이다. 이번 대회는 가장 많은 양금인이 참가했는데 중국의 유명한 음악대학들도 모두 함께 했고, 한국ㆍ대만ㆍ홍콩ㆍ일본 등 주변의 아시아 나라들은 물론 멀리 헝가리, 미국, 스위스, 멕시코, 이란 등에서 악단 또는 앙상블로 참여하여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종류의 양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양금인들의 큰 잔치였다. 한 해 걸러 한번 씩 열리는 세계양금협회 대회에 한국양금협회(대표 윤은화)는 윤은화 대표 외 5명의 단원이 참가하여 공연을 했고, 윤은화 대표는 강의도 해 참가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단연 돋보인 한국양금협회는 다른 나라와는 확연하게 다른 우리만의 양금을 선보였기 때문에 각기 다른 나라에서도 큰 관심을 가졌고, 개량양금ㆍ전통양금ㆍ장구가 함께 한 협연으로 한국 고유의 장단과 함께 관객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먼저 한국양금협회는 10월 28일 단독공연으로 문을 열었다. 특히 공연의 시작은 한국의 전통음악 가운데 백미로 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895년(고종 32) 오늘(11월 15일) 김홍집내각은 성년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단발령(斷髮令)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8월 20일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처참하게 시해되어 반일의식이 한층 높아진 상태에서의 단발령은 백성 사이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습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라”라는 말은 공자(孔子)가 제자인 증자(曾子)에게 해 준 말로 “너의 몸과 터럭(털), 그리고 살갗은 모두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시키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니라.”라는 윤리의식이 뿌리 깊었던 유생들에게는 목숨을 내놓으라 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지요. 고종과 태자가 압력에 못 이겨 상투를 자른 뒤 학부대신 이도재(李道宰)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상소하고는 대신직을 사임하였고, 정계에서 은퇴한 원로 특진관 김병시(金炳始)도 단발령의 철회를 주장하는 상소를 하였습니다. 한편, 유길준이 당대 유림의 으뜸 인물 최익현 선생을 잡아와 상투를 자르려 하자, 그는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단발을 단호히 거부하였지요. 또 미처 피하지 못해 강제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 산과 바다, 나무와 바위 그리고 미물(微物, 벌레 따위의 하찮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눈길과 손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신(神)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식구들이 살아가는 공간인 집도 예외는 아니지요. 집의 중추인 상량에 성주신(城主神), 안방에 아이를 점지하여 주는 삼신, 부엌에는 조왕신(竈王神), 마당에는 터주신, 뒷간에는 측신(廁神), 뒤꼍 장독대에는 천룡신(天龍神), 문간에는 문간신, 우물에는 용왕신, 광에는 업신 등 집의 곳곳에 신이 있어서 가족의 안녕을 지켜주고 복을 내려준다고 믿었습니다. 집지킴이 신들 가운데 단연 으뜸은 바로 성주신입니다. 성조(成造) 곧 마룻대에 산다고 해서 상량(上樑)이라고도 하는데, 가신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신이지요. 성주신은 집안의 모든 운수를 관장하며, 그 집안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 곧 대주(大主)를 상징하고 그 수명과 운수까지를 맡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도 기둥 위에 보를 얹고 지붕틀을 꾸민 다음 마룻대(상량)를 놓을 때는 상량고사를 성대하게 올려야만 합니다. 이때 제물로는 흔히 돼지머리와 쌀 한 바가지쯤 떠놓으며, 무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무로 된 가구를 오랫동안 쓸 수 있도록 고정시켜주고, 문판을 몸체에 잇대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려면 각 모서리와 여닫이문 손잡이에 쇠붙이로 덧대야 했습니다. 그래서 경첩, 들쇠(서랍이나 문짝에 다는 반달 모양의 손잡이), 고리, 귀장식(가구의 모서리에 대는 쇠붙이 장식), 자물쇠 같은 것들을 만들어 붙였지요. 이런 것들을 통틀어 장식(裝飾)이라고 부르는데 보기 흉한 못자국을 가려주고 옷장의 품위를 지켜주지요. 이 가운데 경첩은 여닫이문을 달 때 한쪽은 문틀에, 다른 한쪽은 문짝에 고정하여 문짝이나 창문을 다는 데 쓰는 철물을 이릅니다. 잘 깨지지 않도록 대개 구리에 주석과 아연을 섞어 만들었는데 쓰임새와 가구 종류에 따라 모양이 매우 다채롭습니다. 좌우대칭의 금속판이 전면에 드러나며 장식성을 더한 것을 ‘노출경첩’이라 하고, 금속판을 안쪽에 붙여서 전면에서는 一자형의 단순한 기둥만 보이도록 하여 실용성을 살린 것은 ‘숨은경첩’이라고 합니다. 경첩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드러날 때는 섬세한 무늬가 바라다보기만 해도 신기하고 아름답습니다. 경첩 이름은 모양새에 따라 동그레경첩, 이중병풍경첩, 제비추리경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정척(鄭陟)ㆍ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양성지(梁誠之) 등이 《동국지도(東國地圖)》를 바쳤다. 이보다 앞서 정척과 양성지 등에게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에 모여서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상고하여 확정하게 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완성되었던 것이다.”이는 《세조실록》 31권, 세조 9년(1463년) 11월 12일 기록으로 세조 9년 오늘 동국지도가 완성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동국지도는 단종 1년(1453) 수양대군이 조선전도, 팔도도, 각 주현도(州縣圖)를 만들라는 명령을 하자 하삼도, 곧 충청ㆍ전라ㆍ경상도의 산과 강 등의 지세를 조사하였고, 1463년에 다시 각 도(道) 수령(守令)에게 그 지방의 위치, 산맥의 방향, 도로의 이수(里數), 인접된 군(郡)과의 접경(接境) 따위를 자세히 그리게 하여 만든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지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국지도는 '기리고거'라는 거리 측량기구를 썼고 천문 고도관측으로 한반도의 남북길이, 동서길이를 알아냈으며 삼각측량법을 썼죠. 따라서 동국지도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과학적 지도이며, 실측지도인 셈입니다. 다만 이 지도 원본은 일본 도쿄 내각문고에 있어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주불국사 다보탑 (국보 제20호) - 이 달 균 처용 탄식하며 울고 간 밤에도 탑은 이 자태로 무념무상에 들었다 역사는 바람 잘 날 없이 그렇게 흘러왔다 서라벌 여행 온 아이들의 왁자지껄 두어라 제어 마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처님 시방 오셨다고 다보여래 설법 중 불국사는 언제쯤 고요할까? 관광객들과 수학여행 온 아이들은 왁자지껄 소란하다. 산사의 고요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다보여래는 늘 빙그레 웃고 있다. 신라 때부터 고려, 조선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람 잘 날 없었지만, “그게 바로 사람 사는 일이라네.” 하며 옷깃 여민다. 불국사는 한때 폐사되었지만 다보탑은 온전하여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밀히 살펴보면 상륜부(相輪部)에 보주(寶珠)가 없는 등 유실된 곳이 더러 있다. 원래는 네 마리 사자상이 있었는데 현재는 하나뿐이다. 없어진 사자상 가운데 1개는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나머지 두 사자상은 행적을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다보여래는 웃으며 기다린다. 수행자에게만 부처님이 오시지 않는다. 저자거리에서 웃음을 파는 이에게도, 돌을 깎는 석수장이에게도 부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