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광화문에 가면 전에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바둑대국을 했던 포시즌호텔이 있습니다. 그 호텔 앞을 지나가다 보면 길을 바라보고 지도 하나가 있습니다. 이 지도는 수선전도라는 것인데 지금 전해지는 수선전도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296호 <수선전도(首善全圖)>도 있습니다. 목판 인쇄본으로 크기는 세로 25.4㎝, 가로 22.2㎝이며, 부분 채색한 한 장의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조선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1825년 무렵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지도입니다. 그런데 왜 이름이 ‘수선(首善)’일까요? 수선(首善)은 임금이 사는 서울을 가리키는 일반 이름씨(명사) 가운데 하나여서,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수선전도(首善全圖)’, 또는 ‘수선총도(首善總圖)’는 서울의 지도라는 뜻이 됩니다. 이 지도는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도봉산, 서쪽으로는 마포ㆍ성산동, 동쪽으로는 안암동ㆍ답십리동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실제 측량으로 만들어서 선이 곱고 산세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으며, 다른 지도들보다 필법이 매우 섬세한 것이 특징이라는 평가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아리랑은 저항ㆍ대동ㆍ상생이 담겨 있는 한국의 전통 민요로 남과 북은 물론 전 세계 146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사회 구성원 743만 명 누구나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이렇게 불리는 노래는 우리의 아리랑 말고는 어느 겨레도, 어느 나라도 없다.”라고 말한다. ‘아리랑’은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다. 그 배달겨레의 노래 아리랑을 주제로 한 큰잔치 “2019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서울특별시(시장 박원순)와 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회(위원장 윤영달)가 공동주최하는 국내 최초 민간 재원 중심의 문화예술 큰잔치는 연인원 50여만 명(서울시 추산)이 참여해 사흘 동안 광화문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사흘 동안 “광화문, 아리랑을 잇다”라는 주제로 광화문광장 곳곳에는 광화문축제무대, 중앙연희무대, 세종계단무대, 잔디광장 등이 열려 아리랑 소리꾼들과 관람객들이 어울린 흥분의 도가니가 연출되었다. 특히 마지막 날 4시에 2천여 명이 참가해 벌어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 이 달 균 산청 둔철산 돌고 또 돌아봐도 자취 고사하고 들은 적도 없다하네 제 발로 걸어 나갔나 바람결에 사라졌나 서러운 역사는 비운의 탑을 낳았으니 일제 강점기 때 대구 어디로 옮겨져 이듬해 다시 서울로, 수장고에서 스물세 해 이토록 기구한 운명이 또 있을까 두어 평 세간 얻어 앉은 곳이 국립진주박물관 떠돌고 떠돈 세월이 77년이 되었다 그렇다. 이 탑은 비운의 탑이다. 탑 사진 찍기 위해 산청 범학리 경호강 내려다보는 둔철산 자락 찾았으나 아는 이 하나 없다. 기구한 운명은 일제 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1년 한 일본인이 매입하면서 산청을 떠났고 대구지역 공장 공터로 옮겨진 뒤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유물 실태조사 과정에서 확인돼 이듬해 서울로 옮겨진다. 해방 이후 미군 공병대가 1946년 5월 서울 경복궁 안에 세웠으나 1994년 경복궁 정비사업으로 다시 해체돼 무려 23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지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이 문화재 재건과 전시를 위해 이관을 요청했고, 마침내 2018년 2월 고향인 산청과 인접한 진주로 돌아왔다. 그 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2년 12월 5일,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등재 발표 직후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인 이춘희 명창이 맑고 기품 있는 소리로 <본조 아리랑>을 부르던 광경은 지금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합니다. 그저 민요로만 알고 있던 아리랑이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문화적 자긍심과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위 내용은 지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열렸는데 그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의 윤영달 조직위원장이 한 말입니다. 이 잔치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른 것을 기려 2013년부터 서울특별시와 (사)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회 공동주최로 해마다 10월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여는 도심 속 복합문화예술잔치입니다. 해마다 음악ㆍ무용ㆍ시각예술 등으로 아리랑의 예술적 영역을 확장하며 시대정신에 맞는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서울의 대표 잔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올해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은 조선시대 궁중문화와 서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소탕하리 싸우다 싸우다 나갈 길 막히면 국외로 망명하여 춘추대의 지켜라 대장부 깊은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차라리 자결하여 목숨을 구걸말라 어제(10월 11일) 서울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울려 퍼진 <춘천의병아리랑> 일부다. 구한말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들의 춘천의병아리랑을 (사)춘천의병아리랑보존회(이사장 기연옥) 회원들이 함께 부른 것이다. 이날 공연은 2019 강원도 의병아리랑콘서트 순회공연의 하나로 아리랑학회의 기획과 강원도, 전국아리랑전승자협의회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해설과 함께 사회를 본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구한말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해 있을 때 전라도에서는 기우만과 기삼연, 경상도에서는 이강연, 강원도에서는 유인석 의병장 등이 이끄는 의병들이 떨쳐 일어나 항일 투쟁을 했고, 특히 강원도 춘천의 여성의병장 윤희순은 안사람의병가를 지어 여자와 청년들에게 항일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의병들이 불렀던 아리랑은 공주, 문경과 함께 춘천에 전해지데 오늘의 공연은 전라도 기우만 의병장의 직손인 기연옥 명창이 중심이 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 10월 11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의 ‘영추문 앞 역사책방’에서 서울여대 한재준 교수의 특별한 강의 “한글이 예술이다”가 있었다. 20여 명이 강의를 들은 조촐한 자리였지만 그래도 열기만은 후끈했다. 일제강점기 최현배 선생은 한 금서집(방명록)에 “한글이 목숨”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여기 훈민정음 곧 한글은 예술임을 강조하는 교수가 있다. 바로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 한재준 교수인데 그는 강의에서 조선시대 ‘이도’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예술가였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프리젠테이션을 화면을 통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훈민정음에서 받은 감동을 낱낱이 소개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ㄱ’은 아음(牙音, 어금니 소리)이며, 군(君) 자 처음 나오는 소리와 같다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임금을 뜻하는 군(君) 자를 예를 들고 있지요.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풀이입니까?”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훈민정음 창제 당시 28자에서 4자를 뺀 24만 쓰고 있습니다. 특히 중성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인 흔히 ‘아래아’라고 말하는 ‘가운데아’자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LH(사장 변창흠)는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과 건설현장의 일본어 투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건설용어를 우리말로' 캠페인 추진 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번 협약은 한글날을 맞아 건설현장 종사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주는 일본어 투 건설용어를 개선하고, 쉽고 바른 우리말 사용을 확산하기 위해 맺게 됐다. 협약에 따라 두 기관은 일본어 투 건설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건설용어를 우리말로' 운동을 함께 추진하고, 건설분야의 계약서와 설명서, 각종 기술 서적 등에 쓰는 어려운 건설용어들을 쉬운 우리말로 개선하는 등 향후 협력 범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협약에 앞서 LH는 약 2주 동안 내부 직원과 전국 20여 개 현장의 건설종사자 160여 명을 대상으로 건설현장에서 자주 쓰는 높은 일본어 투 건설용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20개 말을 뽑았다. 국립국어원은 뽑힌 말의 의미와 쓰임을 고려해 '함바'는 '현장 식당'으로, '나라시'는 '고르기'로 바꾸는 등 쉬운 우리말로 다듬었다. 다듬은 말 20개는 해당 말을 실제로 사용하는 건설현장 근무자들이 보기 쉽게 포스터로 제작돼 전국 LH 현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국어원(원장 소강춘)은 ‘머그샷 제도’를 대체할 말로 ‘피의자 사진 공개 제도’를 골랐다. 국립국어원은 국어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좀 더 세련되고 수용도가 높은 우리말을 찾고,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올 9월부터 ‘새말모임’을 발족하여 시범 운영을 시작하였다. 20~30대 젊은 세대 위주의 홍보ㆍ출판 전문가, 정보ㆍ통신 전문가, 아나운서, 교사, 영어 전문가, 대학생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새말모임’은, 새로 유입되는 외래 용어가 자리를 잡기 전에 발 빠르게 새말을 마련하고 널리 퍼뜨리기 위하여 모든 회의를 누리소통망[SNS]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새말모임에서 처음으로 다듬은 말은 ‘머그샷(mug shot) 제도’*다. * ‘머그샷’은 구속된 피의자를 식별하기 위해 경찰이 촬영하는 사진을 가리키는 ‘폴리스 포토그래프(Police Photograph)’의 은어이며, ‘머그’는 ‘페이스(face)’의 속어임 최근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에 대해 신원 공개가 결정되었는데, 피의자가 긴 머리로 얼굴을 가려 피의자 신원 공개 제도를 무력화한 사례가 있었다. 피의자 신원 공개 제도가 실효성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 복도 끝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이 우리의 눈을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이 ‘개성 경천사터십층석탑’은 높이 13.5m로 고려말에 쌓은 석탑인데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탑은 전체적으로 독특한 형태에 균형과 안정미를 갖추었고, 세부 조각들도 매우 섬세하여 나무랄 데 없는 명작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는 사람들은 이 탑앞에서 기념사진을 꼭 찍고 옵니다. 그런데 이 탑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한제국 때인 1907년 3월 당시 일본 궁내대신인 다나카 마스아키가 결사적으로 막는 조선 백성과 군수를 고종황제가 허락했다는 거짓말과 총칼로 제압하고 이 10층석탑을 강탈해간 것입니다. 다나카는 이 석탑을 해체하여 포장하고 10여 대의 달구지에 싣고 개성역에서 기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기어코 도쿄 자신의 집 정원으로 옮겨 차마 포장도 풀지 않는 채 놔두었습니다. 이에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 어네스트 베셀이 자신의 신문에 연일 이를 꾸짖는 기사를 냈으며, 미국 선교사 호머 헐머트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제언론에 이를 고발했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삼한(三韓)의 원수를 갚았노라. 아무 할 말은 없다.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 이는 대만을 방문한 일본 왕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며 육군대장 구니노미야 구니히코(久邇宮邦彦王)를 처단한 조명하 의사가 순국 직전인 1928년 오늘(10월 10일) 남긴 말입니다. 조명하 의사는 일하던 오사카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상해 임시정부로 가던 중 대만을 거쳐 가게 됩니다. 이때 조 의사는 대만 주둔 일본군을 특별검열하기 위해 검열사 구니노미야 구니히코가 온다는 정보를 듣습니다. 1927년 5월 14일 마침내 구니노미야를 처단하기 위해 단도에 극약을 바른 다음 구니노미야를 태운 지붕 없는 차가 지나가자 의사는 단도를 빼내 들고 날쌔게 자동차 뒤쪽에 뛰어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단도를 구니노미야 목에 힘껏 던집니다. 구니노미야는 이때 단도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지만 단도에 발라진 독이 온몸에 퍼져 1929년 1월 27일 죽었습니다. 구니노미야 처단은 중국 침략을 앞두고 있던 일본에 대한 단호한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