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4월 22일 저녁 7시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아트홀‘에서는 한국ㆍ헝가리 수교 30돌 기념으로 문화교류 “한국 양금&헝가리 침발롬의 만남 <배움 소리꽃잔치(렉쳐 콘서트>”가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한국ㆍ헝가리 수교 30돌을 기려 한국양금앙상블(대표 윤은화) 주최, 주관하고, 세계양금협회 회장 빅토리아 헤렌차르(Viktória Herencsár)와 함께 하며, 문화기획사 리버원컴퍼니가 함께 진행했다. 또한 주한헝가리대사관, 헝가리외교통상부, 코스모스악기, 세계양금협회가 후원한 행사였다, 행사는 제1부 공연, 제2부 주제발표로 이어졌다. 제1부 공연은 먼저 정악 천년만세와 윤은화 작곡의 아리연ㆍ검은사막ㆍ양금시나위ㆍ환상의 섬이 화려하게 연주되었다. 특히 ‘환상의 섬’은 드넓은 바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섬의 숲속에서 들리는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를 표현하고 있어 도심 한 복판에서 청중들을 치유의 마당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또한 이날 함께 공연한 세계양금협회 회장 빅토리아 헤렌차르는 우리의 아리랑과 산조 독주를 해 청중들로부터 큰 손뼉을 받았다. 또 이어서 빅토리아 헤렌차르 회장과 윤은화 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6년 전인 1923년 4월 25일 경남 진주에서는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과 실질적인 사회적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형평사(衡平社)’가 설립되었습니다. 백정은 조선시대 소나 개, 돼지 따위를 잡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던 말이었지요. 개항 이후 자유평등사상이 들어오고, 부분적이나마 부를 축적한 백정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백정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신분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1922년 일본의 특수부락민인 에다[穢多: 屠者]가 신분해방단체인 수평사(水平社)를 조직했다는 기별이 들려왔지요. 이에 40만 명이 넘었던 백정들은 자신의 아들이 백정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자 이에 분노하여 신분 해방을 목표로 한 형평사를 창립한 것입니다. 이후 온 나라 곳곳에서 이에 활발하게 호응해 창립 1년 만에 전국적으로 지사 12개, 분사 64개가 조직되었습니다. 이후 분열과 통합이 이어지다가 1925년 4월 서울에서 전조선형평대회를 열어 통합이 이루어졌는데 1927년 4월 서울에서 열린 제5차 형평사대회에서 단체의 이름을 조선형평사총본부로 바꾸었지요. 하지만 형평사는 1931년의 혁명에 대한 논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예전 우리네는 놋그릇에 밥과 국을 담아 상에 올렸었습니다. 또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는 혼담이 이루어질 때 상대 집의 놋그릇이 얼마나 구색을 잘 갖추고 있는지와 얼마나 잘 닦아 놓는지를 확인한 뒤에 혼사를 결정하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요. 놋쇠는 수저와 밥그릇은 물론 제기(祭器), 징ㆍ꽹과리 같은 악기도 만들고 혼수 품목의 하나인 대야와 요강도 만들었습니다. 특히 놋쇠로 만든 요강은 혼수품 1호였다고 합니다. 놋그릇 그 가운데 방짜유기는 구리 78%에 주석 22%를 합금한 것으로 천 번의 두드림으로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금속조직을 늘여서 만드는 것이어서 휘어지거나 깨지지 않고, 다른 유기에 견주어 광택이 뛰어나서 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방짜유기를 사랑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놋쇠가 식중독균을 99.9%나 없앤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놋그릇을 쓰면 미나리 속 거머리도 없애고 놋숟가락은 음식의 독을 확인하는데도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또 스님들이 머리카락을 자를 때 꼭 방짜로 만든 가위를 쓰는데 만일 머리를 베이더라도 상처가 덧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머리 위로 하얀 서리가 덮인, 팔순을 넘긴 할머니가 주인 잃은 할아버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홍예란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것을 말하는데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순천 선암사 무지개다리, 창경궁 옥천교와 같은 다리들이나, 공주 무녕왕릉 같은 고분, 경주의 석빙고, 불에 탄 숭례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낙산사 홍예문 같이 성문 등에 쓰였던 건축물을 말하는데, 구름다리ㆍ무지개 다리ㆍ아치(arch)라고도 부릅니다. 이 가운데 불국사 청운교는 다리 위에서 누르는 힘을 2중 홍예로 분산시켜 무거운 힘에도 잘 견딜 수 있게 쌓은 것으로 기술적 극치를 이룬다고 하지요. 이 무지개다리는 구조적으로 덮고, 지지하고, 버티는 3가지 작용을 해낸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홍예석이라 불리는 쐐기 모양으로 생긴 돌 또는 벽돌을 한 단 한 단 연속적으로 안으로 오므려가면서 쌓아올립니다. 그리고 맨 위 꼭대기에서 마지막 돌 곧 천장덮개돌이라고도 하는 이맛돌[Key Stone]을 단단히 끼워 넣으면 완성되는 것이지요. 다리 위의 구조물이나 성벽이 무너져도 홍예가 그대로인 까닭은 바로 이 이맛돌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홍예들은 모르타르 같은 접착제를 쓰지 않고 오로지 낱장의 돌이나 벽돌을 쌓아서 세웠기에 더욱 기술적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울툭불툭한 암석들이 있는 깊은 골짜기 시내가 옆 바위에서 갓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감아올리거나, 웃통을 벗어젖힌 채 더위를 식히는 두 선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 선비들이 바라다 보이는 건너편의 바위 위에도 한 선비가 갓을 쓰고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지요. 그 앞에는 두루마리 한 권이 여백인 채로 펼쳐져 있고, 선비는 붓을 든 채 건너편을 물끄러미 바라다봅니다. 어쩌면 이 선비는 건너편 광경을 그리려는 화가 강세황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첨재 강세황이 그린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 가운데 “태종대도(太宗臺圖)‘라는 그림입니다. 그림 속의 선비를 강세황의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은 자화상을 그린 화원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서양의 경우 유명한 화가들은 흔히 자화상을 자주 그렸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내내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강렬한 자의식을 가진 두 화원 곧 강세황과 윤두서만 있을 뿐이지요. 강세황은 영조임금이 그의 아들에게 “네 아버지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점잖은 선비가 그림을 너무 좋아하다가 흠이 잡힐 수 있으니, 너무 몰두하지 말라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의 서울은 왕십리래요 아리랑고개를 서로 함께 넘어요 서울의 왕십리 우리 사는 곳 개나리 화창한 꽃동산이래요. 사랑과 희망이 넘쳐 흐르는 서울의 서울은 우리 왕십리래요 우리 서로 벅찬 가슴 마주하면서 손잡아요 어깨동무 함께할래요. 드디어 가리개가 벗겨진 “왕십리아리랑”이다. 어제 저녁 5시에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는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장 이혜솔 명창이 작사하고, 통일앙상블 대표 윤은화가 작곡한 새로운 아리랑 ‘왕십리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생소한 ‘왕십리아리랑’은 이혜솔 명창이 중심이 되어 지난해 6월 창립총회를 열고 11월 법인인가를 받았으며, 12월 출범식을 열고 고고의 성을 울린 '사단법인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역작이다. 출범식에서 임기 4년의 초대 이사장에 뽑힌 이혜솔 이사장은 "서울 동부의 중심지인 왕십리의 역사를 아리랑 가락에 담아 지역공동체 결속에 이바지하려고 한다. 아리랑은 결속력을 속성으로 하는 노래다. '왕십리의 아리랑'은 물론 '아리랑의 왕십리'를 문화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출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무대가 열리자 사회를 맡은 김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제24회 한국불교사진협회 전국회원전과 제13회 청소년불교사진공모전을 연다. 올해의 작품 주제는 석등과 당간지주로 불교사진협회 회원들은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 1년 동안 전국의 절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찍었다. 전국의 절에 자리한 수많은 석등과 당간지주들 숱한 전란의 세월 속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지켜왔다. 그 모습이 회원들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궁금하다. 한국불교사진협회 최우성 회장은 “회원들은 하나의 작품을 위하여 전국의 석등과 당간지주를 부지런히 찾아다녔습니다.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대상이 있으면 그 앞에 서서 시간을 두고 감상하면서 대화하듯 카메라에 담았지요. 작품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석등 앞에서 이리 저리 살펴보고, 앞뒤로 오가며 구도를 잡아 보는 등 자신만의 작품을 위해 숱한 셔터를 눌러보지만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같은 석등도 수없이 찾아가 다시 찍길 반복하는 것이지요. 이번 출품작들은 모두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들입니다.” 라고 했다. 아울러 이번 전시회에서는 제13회 청소년불교사진공모전에 응모한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청소년 사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24절기의 여섯째 절기 곡우(穀雨)입니다. 곡우는 말 그대로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지요.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그는데 볍씨를 담근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둡니다. 그리고는 밖에 나가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잡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볼 수 없게 하였습니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또 이날은 부부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데 땅의 신이 질투하여 쭉정이 농사를 짓게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곡우 무렵에는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북상하는데 충남의 격열비열도(格列飛列島)까지 올라오므로 황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히지요. 이때 잡힌 조기를 곡우사리라고 하는데 이 조기는 아직 살은 적지만 연하고 맛이 있어 서해는 물론 남해의 어선들도 모여듭니다. 한식사리, 입하사리 때보다 곡우사리 때에 잡히는 조기가 알이 많이 들어 있고 맛이 좋다고 하여 곡우사리 조기를 가장 으뜸으로 치지요. 경기도 김포에서는 곡우 때 나물을 장만해서 먹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봄기운 가득한 5월,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과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외국인 관람객을 위해 두 개 박물관의 문화유산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해설을 마련한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두 개의 국립박물관 산책>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며, ‘한국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란 주제로 한글박물관을 출발하여 중앙박물관까지 이어진다. 한글박물관에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빛나는 최고의 문화유산인 《훈민정음》(해례본)과 한글 관련 주요 유물을 관람하고, 야외정원의 남계원 칠층석탑(국보 제100호)을 거쳐 중앙박물관의 대표 문화재인 황남대총 금관(국보 제191호)과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등을 전문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또한, 높이 11m의 공주 마곡사 괘불(보물 제1260호, 석가모니 대형불화)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두개의 국립박물관을 한 번에 관람하는 이와 같은 전시해설은 드문 기회일 것이라며, 이번 특별해설은 ‘한국이 처음인 외국인’, ’한국이 궁금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통해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충청북도 충주의 충주박물관에 가면 국가민속문화재 제246호 “이응해장군 무덤 출토복식(出土服飾)이 있습니다. 이응해(李應獬, 1547~1627) 장군은 1582년(선조 16)에 무과에 등과하였으며 수군절도사ㆍ제주목사ㆍ병마절도사 등을 지낸 인물로 출토된 복식류는 17세기 무관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들입니다. 출토된 복식은 단령(團領, 깃을 둥글게 만든 관복) 4점, 철릭[帖裡, 웃옷(저고리)과 치마를 따로 만들어 허리에서 붙인 겉옷] 6점, 도포(道袍, 선비들이 통상의 예복으로 입던 겉옷) 3점, 중치막[中赤莫] 7점, 창의(氅衣, 벼슬아치가 평소에 입는 웃옷) 2점, 따위로 모두 34점이지요. 이 옷들에 쓰인 바느질법은 홈질(옷감 두 장을 포개어 바늘땀을 위아래로 드문드문 뜨는 바느질), 감침질(옷감의 양끝이나 옷의 단이 꺾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법으로 바늘땀은 될 수 있는 한 가늘고 작게 뜬다.), 시침질(본 바느질을 하기 전에 옷감을 고정시키도록 하는 바느질 방법으로 홈질을 성기게 해서 큰 땀으로 바느질한다.), 박음질 등으로 다양하며, 특히 정교한 옛쌈솔 바느질법을 볼 수 있습니다. 옛쌈솔은 조선전기 철릭이나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