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년 ~ 1856)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으뜸 글씨체 추사체를 완성했으며, 세한도로 대표되는 그림과 시 그리고 산문에 이르기까지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도 으뜸 경지에 오른 인물이지요. 하지만 추사는 평생 승승장구하고 산 것이 아니라 제주도에서 9년, 함경도 북청에서 2년의 혹독한 유배살이를 견뎌야 했습니다. 더구나 제주 대정현에서의 귀양은 위리안치(圍離安置)라 하여 가시울타리 안에서 목숨을 연명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다리를 제대로 뻗을 수 조차 없이 좁은 것은 물론 거미와 지네가 기어다니는 방안에서 살아야 했지요. 또 콧속에 난 혹 때문에 숨쉬는 것도 고통스러웠으며, 혀에 난 종기 때문에 침을 삼키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편지를 받은 추사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추사는 그런 고통에 쓰러지지 않고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내려오는 한국의 서법을 연구했으며 한국의 비문과 중국의 비문 속 필체를 연구한 각고의 시간, 그것도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그는 화가 날 때에도, 외로울 때에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올해는 세종 즉위 600돌이 되는 해이다. 그간 세종의 사상은 정치철학의 형태로 논의되어 왔으며, 세종의 정치를 민본ㆍ실용ㆍ자주나 중용ㆍ융합 등으로 설명해 왔다. 이에 수원대 김광옥 명예교수는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세종 사유의 정치를 생각하며 세종의 철학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을 가지고 경인문화사를 통해 《세종 이도의 철학(생생의 길, 생민과 변역)》이란 책을 펴냈다. 김 교수는 책에서 먼저 《세종실록》 속의 세종 용어를 찾고 이를 바탕으로 그 근원으로서의 사상[철학]의 체계를 구성해보려 했다. 김 교수의 말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말 가운데 ‘생생(生生)’(《세종실록》 26건/조선실록 169건, 성종(29건) 다음으로 2번째), ‘생민(生民)’(114건/2,008건, 중종ㆍ영조ㆍ선조ㆍ고종에 이어 5번째), ‘변역(變易)’(15건/198건, 숙종 다음 2번째)이란 말들을 복합적으로 보면 어느 시대 임금보다 세종이 앞서 간다. 여기에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생생지락(生生之樂)’은 모두 16건 가운데 절반인 8건이 세종시대다. 이에 따라 김 교수는 삶 속에서 사람이 새로워지는 ‘생민[生民, 거듭나기]’과 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국보 제280호 “성거산 천흥사 글씨 동종(銅鍾)”이 있습니다. 이 동종은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서 높이 133cm, 지름 입구 96m입니다. 현재 나라 안에 남아있는 신라 때의 종들 곧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 다음으로 크기가 크면서도 제작기법이나 양식이 고려 범종을 대표하는 종이라는 평가입니다. 종 위에는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용뉴 뒤에 붙은 음통은 대나무 모양이며, 편평한 부분인 천판 가장자리에는 연꽃무늬를 돌렸지요. 몸체의 아래와 위에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한 너비 10㎝ 정도의 띠를 두르고, 꽃과 덩굴로 안을 채워 넣었습니다. 또 위에 두른 띠 바로 아래로는 4곳에 사각형의 연곽을 만들고 그 안에 가운데가 도드라진 9개의 연꽃을 새겼지요. 연곽 아래에는 당좌 곧 종을 치는 부분을 2곳에 두었고, 구슬로 테두리하고 연꽃으로 꾸몄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당좌 사이에는 2구의 비천상(飛天像, 하늘을 나는 선녀상)을 두었지요. 비천상은 구름 위에서 합장하고 꿇어앉아 하늘로 오르는 자세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이는 산 모습이 점점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는 기러기가 놀라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하지만 근심이 되는 것은 늙은 농부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맞으며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 위는 조선 중기 문신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에 나오는 상강 기록으로 오늘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이다. “상강(霜降)”은 말 그대로 물기가 땅 위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때인데,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으며,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른데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뀐다. 옛 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상강부터 입동 사이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자연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재청ㆍ경상북도ㆍ안동시는 ‘안동 임청각(보물 제182호)’을 앞으로 7년 동안 280억 원을 들여 일제강점기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ㆍ정비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세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복원 계획을 보면, 임청각 진입부에는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그 뜻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임청각 보수ㆍ복원은 물론 일제가 독립운동의 성지 임청각을 부수고 놓은 집 앞 철로를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도 들어 있습니다.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집으로 항일독립투쟁 과정에서 독립운동자금 마련 등을 위해 온 재산을 내놓기도 하는 등 애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석주 선생의 아들, 손자, 동생까지 9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운동의 성지입니다. 특히 석주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떠나기 전 “나라가 없으면 신주도 의미 없는 것”이라며 ,사당 뒷산에 신주를 모두 묻었으며, 죽기 직전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고 유언했을 정도로 단호한 결의를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번 복원 결정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문화재청(청장 정재숙),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 안동시(시장 권영세)는 ‘안동 임청각(安東 臨淸閣, 보물 제182호)’을 앞으로 7년(2019∼2025년) 동안 280억 원을 들여 일제강점기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ㆍ정비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최근 마무리했다. 안동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년)의 가옥으로 항일독립투쟁 과정에서 독립운동자금 마련 등을 위해 집을 내놓기도 하는 등 애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자, 9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문화재청은 현재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로 개설(1941년)을 이유로 훼손되기 이전의 임청각과 그 주변을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ㆍ정비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1763년 문집 《허주유고》 속 그림인 ‘동호해람’, 1940년을 전후하여 촬영된 사진과 지적도 등 고증이 가능한 자료를 근거로 종합적인 복원ㆍ정비 계획을 마련하였다. * ‘동호해람’: 석주 이상룡 선생의 조상인 고성 이씨 허주 이종악(1726~1773)이 발간한 문집 《허주유고》 속의 임청각과 그 주변 전경을 묘사한 그림 이번에 마련한 복원ㆍ정비계획은 지난해 11월 2일 임청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청은 ‘한복 제대로 입기’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종로구청은 “최근 몇 년 동안 한복을 입고 궁궐과 인근 관광지를 찾는 젊은 층과 관광객이 많아지고 화려한 금박과 레이스, 리본으로 장식된 화려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이들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복의 형태는 우리의 전통의복과는 거리가 멀 뿐더러 왜곡되고 변형된 형태의 잘못된 문화전파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화려한 것으로 골랐다. 놀이 문화에 굳이 전통을 고수할 필요가 있나”라는 반론도 나옵니다. 이것도 하나의 유행인데 굳이 막을 필요가 있느냐고도 하지요. 물론 조선시대 한복에도 유행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의 저고리를 보면 조선 초기인 1580년 청주 한 씨의 덧저고리 길이는 무려 81cm나 되어 엉덩이까지 내려갔는데 1970년대의 누비 삼회장저고리를 보면 42cm로 짧아집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 후기로 오면 극단적으로 짧아지지요. 1780년 청연공주의 삼회장저고리는 19.5cm이며, 조선말 1900년대에는 아주 짧아져 길이가 12cm밖에 안 된 것도 있었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떠나간다 떠나간다 배뱅이 혼신이 떠나간다 에 ~ 헤 에헤 아미 타 ~ 어야 불이로다“ 무대에서는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ㆍ율창> 예능보유자 유창 명창이 <배뱅이굿>을 부른다. 객석에서는 열광하는 추임새가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유창 명창이 송서ㆍ율창과 경기민요에만 명창인줄 알았던 관객들은 그의 입에서 서도소리 <배뱅이굿>을 소리하자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제(10월 20일) 서울한옥마을 남산국악당에서는 “2018 서울무형문화축제” <풍류마당>이 진행됐다. 이 가운데 가장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역시 유창 명창과 그 제자들이 꾸민 <송서ㆍ율창> 공연이었다.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김선우 외 5명의 어린이들이었다. 이 어린이들은 앙증맞은 하지만 제법 힘찬 목소리로 “천자문”을 불러 객석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어 놓았다. 저런 어린 아이들이 언제 저렇게 <송서ㆍ율창>을 배워 노래를 한단 말인가? 물론 <송서ㆍ율창> 공연의 정점은 유창 명창과 30여 명 많은 가객들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절대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가 없다. 그것은 내가 착해서가 아니고 영리해서다. 좋은 물건을 싸게 판매하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 기업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이는 《애터미 그리고 박한길의 “아름다운 마케팅을 찾아서”(유광남, 티브이펀)》 책에 나오는 애터미 박한길 회장이 말이다. 세계적인 다단계 기업 《암웨이(Amway)》를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애터미(atomy)》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6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암웨이와 10년의 애터미를 비교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원리원칙에 의해서만 한다.’ ‘다단계의 역사를 새로 쓴다’는 주식회사 애터미와 박한길 회장의 구호는 다단계의 60년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책에는 “다단계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다단계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위선과 병폐, 거짓 술수와 사기성 불법들을 모조리 정화하여 새롭게 인식시키고자 하는 각오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원리원칙은 오늘날 우리 가정과 사회에서 망각했던 아주 중요한 단어이다. 원리원칙에는 위대한 힘이 존재한다. 원리원칙대로만 하면 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최근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대가인 겸재 정선(1675~1759)이 그린 금강산 그림 7점을 발굴하였다. 영양 주실마을에 있는 월하 조운도(1718~1796)의 후손가에서 기탁한 것이다. 7점 모두 종이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고, 화폭의 크기는 각각 세로 40㎝, 가로 30㎝ 정도이다. 각 폭의 왼쪽 또는 오른쪽 윗부분에 ‘비로봉’, ‘비홍교’, ‘마하연’, ‘정양사’, ‘보덕굴’, ‘구룡폭’, ‘단발령’ 등 그림 제목과 ‘겸재초(謙齋草)’라는 서명이 적혀 있다. 그림 제목과 서명만 있고 창작 동기와 감상 등을 표현한 화제(畫題)나 인장은 없다. 금강산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명산으로 경관이 뛰어나 예로부터 시가나 문장, 그림으로 많이 표현되었다. 이번에 발굴된 겸재의 금강산 그림은 화폭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내금강의 각 명소를 부감법(俯瞰法, 높은 곳에서 비스듬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리는 방법)이나 원형의 구도를 사용하여 요약적으로 표현하였다. 정선 특유의 미점(米點, 나무나 산수 등을 그릴 때 붓을 옆으로 뉘어서 가로로 찍는 작은 점)의 토산과 수직준법으로 처리한 바위산의 대조적인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