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신라학 국제학술대회 “6세기 신라 석비(石碑)의 세계”(8.31.금)를 연다. 6세기는 불교공인, 율령반포와 함께 동해안과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등 영토 확장을 거듭하던 역동적 시기였다. 노용필 한국사학연구소 소장ㆍ하시모토 시게루 니혼죠시(日本女子) 대학 교수 등 국내외 중진ㆍ신진 전문연구자 6명이 발표에 나서고, 이영호 경북대 교수를 비롯한 이 방면 정상급 학자 8명이 집중 토론에 임한다. 석비 제작은 분업화되어 있었다_노용필(한국사학연구소 소장) 먼저 진흥왕순수비 연구의 일인자인 노용필 한국사학연구소 소장은 석비 제작과 조영 과정에 여러 단계의 분업이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글을 쓰는 전문가, 글씨를 돌에 새기는 전문가, 석비를 건립하는 전문가로 분업화되어 있었으며, 그 공정이 점차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 신라 사람들은 불교경전을 사경(寫經)하면서 관련 서체, 오늘날 영어사전에 비견할 수 있는 옥편(玉篇) 등 자서(字書)류가 널리 유행하게 되었음을 추적하였다. 석비 제작의 과정을 파헤친 최초의 연구로서 신라 석비 문화를 조명한 걸작이다. 신라 사람들도 줄임말을 썼다_하시모토 시게루(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어진은 나라를 세운 시조답게 왕실의 정통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서울의 문소전(태조의 비 신의왕후 사당)을 비롯하여 경주, 개성, 평양, 전주, 영흥 등 여섯 곳에 진전(임금과 왕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을 두고 어진을 봉안하였지요. 따라서 수많은 태조어진이 그려졌는데 현재는 전주의 경기전 어진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317호 <태조어진>만이 전해질 뿐입니다. 세로 218㎝, 가로 150㎝ 크기의 이 어진에는 청색 곤룡포를 입은 태조가 익선관을 쓰고 정면을 바라보면서 용상에 앉아 있습니다. 근엄한 얼굴은 위풍당당하기 까지 하여 군주로서의 위엄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절대군주 임금의 어진을 그리면서 그의 오른쪽 눈썹 위 이마에 지름 0.7cm 가량의 작은 혹을 그려넣었습니다. 임금의 초상화라도 예외 없이 있는 그대로를 그린다는 원칙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어진은 임금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 제일 바람직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보면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은 그려내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이 어진은 이를 훌륭히 소화해낸 작품이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종로구에는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봉안한 사당인 사적 제125호 종묘(宗廟)가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뒤 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우에 종묘와 사직을 세웠을 정도로 종묘는 사직과 함께 조선의 근본이었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편》에서 “조선왕조 500년이 창출한 가장 대표적인 유형문화유산은 종묘이며, 5대 궁궐의 중심을 잡아준다.”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종묘는 100m가 넘는 기다란 맞배지붕의 건물이 20여 개의 기둥에 의지한 채 땅에 낮게 내려앉아 절제미와 근엄함이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어 그 앞에 서면 경건해지는 것은 물론 신비로움에 휩싸일 수밖에 없지요. 56,503평의 종묘 경내에는 종묘정전을 비롯하여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재실, 향대청 그리고 공신당, 칠사당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현재 정전에는 임금 19위와 왕후 30위의 신주를 모셨으며, 영녕전에는 15위의 임금과 17위의 왕후, 그리고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의 신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정전에서 해마다 춘하추동과 섣달에 대제를 지냈고, 영녕전에는 해마다 춘추와 섣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18. 8. 28.(화) 국무회의에서 2019년 보훈 예산 정부안으로 5조 5,006억 원이 편성되어 의결되었다고 밝혔다. 2019년 보훈예산안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국가유공자 보상금 등은 3.5% 인상하고, 저소득 국가유공자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고령화에 따른 보훈의료ㆍ복지시설 확충과 국가유공자 한분 한분도 소외되지 않도록 예우 강화에 중점을 두고 편성하였다. 2019년 주요사업 별 보훈예산안 편성 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가유공자 등 보훈보상 사업 국가유공자 등 보상금과 수당은 물가상승률 등 경제지표보다 높은 수준인 3.5% 인상(6ㆍ25자녀수당, 고엽제수당 포함)한다.(‘17년 물가상승률 1.9%, 경제성장률 3.2%) 다친 정도가 심하여 다른 사람의 보호 없이는 활동이 어려운 1∼2급 중상이 유공자에게 지급하는 간호수당도 3.5% 인상한다.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 국가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한다. 생계곤란 국가유공자 등에게 지급되는 생활조정수당은 월 16∼27만 원에서 월 21∼32만 원으로 단가를 5만 원 인상하고 미성년 자녀를 둔 상이군경 등에 대한 부양가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1.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2.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에 기재된 양여를 수락하고,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함.” 이는 1910년 오늘(8월 29일) 발효된 “한일강제병합조약” 곧 “경술국치조약”의 일부입니다. 이 조약은 일본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8월 22일 밀약한 조약으로 1주일 동안 비밀에 붙였다가 8월 29일 이완용이 윤덕영을 시켜 황제의 어새(御璽)를 대신 찍어 병합조약을 반포한 것입니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하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남산에 가면 이 국치협약을 맺었던 “조선통감부” 옛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거꾸로 세워진 비석이 하나 있지요. 바로 일제가 조선의 국권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초장, 된장, 간장, 뗏장, 아이고 아니로고나 초장화, 초장화, 초장화, 장화초, 장화초 아이고 이것도 아니로구나. 이것이 무엇일까? 방장, 천장, 송장, 접장 아이고 이것도 아니로구나. 이것이 무엇일까? 갑갑하여 못살겠네.” 위 노래는 판소리 “흥부가” 가운데 “화초장 타령” 일부입니다. 부자가 된 흥보를 찾아간 놀부는 방 안에 있는 화려한 화초장을 보고 그걸 빼앗아서 돌아오지요. 신이 난 나머지 “화초장, 화초장….” 하고 노래를 부르던 놀부는 도랑 하나를 건너뛰다 깜빡 그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고초장, 된장, 간장, 뗏장” 하면서 “장” 자가 들어간 온갖 이름을 다 불러보지만,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여기 나오는 화초장(花草欌)은 장 문판에 세밀한 화각공예 기법으로 꽃 그림 장식을 했으며, 부귀(富貴), 공명(功名), 만수무강(萬壽無疆) 같은 글자를 새겨 넣기도 합니다. 장 안에는 해충의 침입을 막으려고 한지나 비단을 발라 둔 옷장이나 의걸이장(위는 옷을 걸게 되고 아래는 반닫이로 된 장)을 쓰는 장이지요. 같은 기법으로 만드는 화초문갑도 있는데 이 화초장은 쇠뿔로 만드는 예술로써 국가무형문화재 109호 화각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보물 제1204호 “의겸등필수월관음도(義謙等筆水月觀音圖)”가 있습니다. 관음(觀音)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이라고 하는데 보살 그림 가운데 수월관음도는 그가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비단 바탕에 채색한 가로 105.5cm, 세로 143.7cm의 크기지요. 머리에 크고 높은 보관을 쓰고 얼굴과 이목구비가 둥글고 예쁘게 묘사되어 있으며, 건장한 신체로 떡 벌어진 어깨와 넓고 큰 아랫도리(하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관음의 오른쪽 바위 위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淨甁)이 놓여 있고 왼쪽에는 쌍죽(雙竹)이 솟아 있어서 이것들은 고려시대 그림들과 비슷한 구도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의겸은 이 수월관음도 말고도 운흥사, 흥국사에도 수월관음도를 남겨놓고 있는데 담채법(엷은 채색)의 화풍과 안정감과 짜임새의 구도, 섬세한 인물 묘사로 유명했다고 하지요. 영조 6년(1730)에 18세기 최고의 승려화가인 의겸이 그린 이 수월관음도는 당대 으뜸 작품으로 평가되는데, 수월관음도가 많이 그려진 고려 때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예전 명절로 지냈던 백중(百中)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백종(百種), 머슴날(칠석), 망혼일(亡魂日), 머슴의생일, 중원(中元), 호미씻는날, 축수한날, 머슴명일(전라북도전주), 상놈명절(경상남도함안)도 있습니다. 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세벌김매기가 끝난 뒤 여름철 농한기에 휴식을 취하는 날로 농민들이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백중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냈지요. 백중은 한마디로 먹고 마시고 놀면서 하루를 보내는 날인데 이 날의 놀이는 두레먹기가 두드러집니다. 두레먹기는 두레일꾼들이 모처럼 일의 피로를 풀어내는 잔치로 백중놀이는 지역에 따라 호미걸이, 호미씻이, 술멕이, 풋굿, 질먹기, 진서턱(진세턱)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백중의 중요한 놀이에는 우물고사가 있으며, 머슴들에게는 백중빔이라고 하여 새 옷을 장만해 주고, 모처럼 휴가를 주어 백중장에서 즐기도록 하였습니다. 또 머슴들은 장터에 가서 씨름대회에 참가하였고, 씨름에 이기면 송아지를 끌고서 기세를 올리면서 자기 마을로 돌아왔지요. 특히 경기도 지방에서는 호미걸이를 했는데 호미나 악기를 농기구의 버레줄(물건이 버틸 수 있도록 이리저리 얽어매는 줄)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일본에 갔다 오면 돈도 벌고 꿈에 그리던 여학교도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돌아올 때는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들 ‘나도 가요, 나도 가요’ 하면서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때 제 나이 열 셋이었습니다.” 2010년 8월 11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나주 출신 양금덕(82) 할머니가 일제강점기 어떻게 정신대에 끌려갔는지 증언을 했습니다. 1944년 오늘(8월 23일)은 일제가 '여자정신근로령'을 공포ㆍ시행한 날입니다. 이는 만 12부터 40살까지의 배우자 없는 여성을 정신대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정신근로령서를 발급하여 여성 노동력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불응하는 자는 취직령서(就職令書)에 의해 강제로 취업하게 하고, 그래도 불응하면 국가총동원법 제32조에 따라 처벌했지요. 다시 말하면 일제는 전쟁 중 노동력이 부족하자 12살 이상의 여성들을 취업 하게하고 학교도 갈 수 있게 해준다고 속여 조선과 대만 여성 5만 7천여 명을 끌고 가 실제 임금은 주지 않고 강제노역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가운데 일부는 일본군위안부로 끌고 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선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9월 1일(토) 낮 2시부터 박물관 강당에서 열아홉 번째 ‘책사람’ 강연을 진행한다. ‘책사람’은 책을 대출하고 열람하듯이 사람의 지식과 지혜를 강연 형식으로 열람하는 국립한글박물관의 정기 프로그램이다. 한글이 쓰인 최초의 그림 <안락국태자경변상도> 이번 책사람은 중앙승가대학 문화재학과 강소연 교수이다. 강소연 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동국대 연구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BK연구원, 홍익대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30여년간 불교문화재를 조사·연구한 학자이다. 또한 일본 최고 명예학술상 ‘국화상’ 장려상과 ‘불교소장학자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강연에서는 한글이 적힌 한글이 쓰인 최초의 그림인 조선 전기 불화 <안락국태자경변상도>를 다룬다. 불교문화재 전문가를 통해 이 작품 속 한글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안락국태자경*변상도>는 1576년(선조 9)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월인석보 권8》(1459년)에도 실린 <안락국태자경>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