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 6월 22일 저녁 8시 서울 중구 청구역 근처의 “가례헌“ 공연장에서는 창립 43년을 맞는 <서울성암 와이즈맨(회장 유승호)> 모임이 있었다. 지난 2015년 서울 YMCA 2층 대강당에서 열렸던 ‘제40주년 서울성암 와이즈멘 클럽 촤타 기념식’에서 당시 서한범 회장은 ”70년대는 주로 불우청소년들이 생활하는 시설을 방문하여 봉사를 해왔고 80년대 초부터는 YMCA 청소년 야학을 열어 중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성인들과 청소년들에게 중· 고등학교 과정을 운영해 왔으며 그 이후에 컴퓨터 전산교육도 해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2000년도 이후에는 함께 몽골근로자들의 자녀를 수용하여 가르치는 몽골 외국인학교를 후원해 오고 있으며 YMCA가 주도적으로 펼치고 있는 쉼터의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고 성암을 소개했었다. 어제 열린 모임은 유승호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특별한 기념식 대신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회장 박정욱)“ 중심의 국악공연 마당이 펼쳐졌다. 청중들의 활발한 추임새 속에 민요 한마당과 판소리 공연, 해금 독주, 설장구춤, 대고춤 등이 이어졌다. 그러나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고 이은관 명인의 제자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메밀국수를 말고 여기에 돼지고기 섞은 것을 냉면이라 하고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썬 것과 기름, 간장(진간장)을 메밀국수에다 섞은 것을 골동면(骨董麵 : 비빔국수)이라 한다.” 이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냉면이 11월 시절음식으로 소개된 내용으로 문헌상으로는 처음 나온 것입니다. 냉면 만드는 법은 1800년대 말에 나온 지은이를 모르는 책 《시의전서 (是議全書)》(1800년대 말)에 처음 소개됩니다.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구한말 파란 만장한 풍운을 겪으며 불면증에 시달린 여름밤 야참으로 냉면을 즐겼습니다. 고종의 후궁 ‘삼축당(본명 김옥기-金玉基’)가 전하는 고종이 즐겼던 냉면은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동치미로, 웃기로는 편육, 배, 잣을 위에 가득 덮었다고 합니다. 특히 배의 단물이 동치미 국물과 어우러져 그 맛이 달고 담백하고 시원하였다고 하지요. 냉면은 크게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으로 나눕니다. 평양냉면은 메밀을 많이 넣고 삶은 국수를 차가운 동치미국이나 육수에 만 장국냉면이고, 함흥냉면은 강냉이나 고구마 전분을 많이 넣고 가늘게 뺀 국수를 매운 양념장으로 무치고 홍어회를 얹은 비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보 제11호 전북 익산 미륵사터 석탑은 백제 무왕 40년인 639년 세운 것으로 1,300년이나 되었다. 또 석탑은 2,800개가 넘는 석재를 목탑처럼 짜 맞춘 것으로 남아 있는 6층까지의 높이가 아파트 5층에 가까운 14.5m나 되어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석탑이다. 그러나 이 석탑은 조선 시대 이후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었는데 1915년 일본인들이 붕괴된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워 왜곡되었다. 이 미륵사터 석탑은 1998년 전라북도에서 구조안전진단을 한 결과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ㆍ수리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이후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전라북도와 협약을 맺고 석탑의 본격적인 해체조사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학술ㆍ기술 조사연구, 구조보강, 보존처리 등을 시행하였다. 이제 20년 동안의 긴긴 작업 끝에 최근 수리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과 조사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한편, 2009년 1월 석탑 해체조사 과정 중 1층 내부의 첫 번째 심주석(석탑 안 가운데에 있는 돌기둥)에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어 학계, 불교계 등 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姦宄無常産(간귀무상산) 간사한 도둑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데다 飢荒又一時(기황우일시) 기근과 가뭄이 올해도 이어지는 때라서 近村聞警急(근촌문경급) 이웃 마을의 위급한 소식 들어보니 相識有創夷(상식유창이) 알고 지내는 이들도 약탈을 당했다네 自幸囊中淨(자행낭중정) 다행이려니 주머니 속이 깨끗하니 應無棟上窺(응무동상규) 응당 대들보 위에서 엿보는 사람 없으리라 穿墉何足磔(천용하족책) 좀도둑들이야 어찌 죽일 게 있으리 城社有狐狸(성사유호리) 도성과 종묘에 여우와 살쾡이 있으니 <도(盜, 도둑질)>라는 제목의 이 시는 조선 중기 인조 때의 문신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 ~ 1647)이 1628년 충주목사에서 파직되어 택풍당(澤風堂)으로 물러난 여름에 지은 것입니다. 온 세상에 도둑이 날뛰어 흉흉하지만 자신은 주머니가 깨끗하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지요. 이식은 1618년 폐모론(廢母論, 선조의 왕비이며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비하자는 대북파 이이첨 등의 주장)이 일어나자 낙향하여, 남한 강변에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지요. 1642년에 척화(斥和)를 주장한 탓에 심양(瀋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은 유덕장(柳德章)ㆍ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수묵을 사용하여 그린 대나무 그림)화가로 꼽힙니다. 대나무뿐만이 아니라 난과 매화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시서화(詩書畵)에 능해 이인상, 강세황 김정희 등과 함께 삼절(三絶)로 불렸습니다. 특히 그는 임진왜란 때 적의 칼에 오른팔을 크게 다쳤으나 이를 극복하고, 회복된 뒤에는 더욱 힘찬 그림을 그렸다고 하지요. 지금 남아 있는 조선 초기의 묵죽화들이 보통 줄기가 가늘고 잎이 큰 모습인데 견주어 이정의 묵죽은 줄기와 잎의 비례가 좀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물론 대나무의 특징인 강인함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정은 특히 굵은 통죽(筒竹)을 잘 그렸는데, 통죽의 굵은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통죽의 마디를 양쪽 끝이 두툼하게 강조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랫마디를 짙은 먹으로 시작해서 점차로 흐려지게 하였지요. 같은 무렵 문인이었던 최립(崔岦)과 허균(許筠)은 그의 묵죽화에 대해 자연스러움과 사실성이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으며, 이정구(李廷龜)는 “소동파(蘇東坡)의 신기(神氣)와 문동(文同, 중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제 우리의 주거환경이 대부분 아파트로 바뀌면서 쓸모없어진 것을 들라하면 “발”을 들 수 있습니다. 발은 여름철에 강한 햇볕을 막아주어 방에 있는 사람을 시원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하는 것으로 예전에 한옥에서는 필수품이었습니다. 발은 가마의 문을 가리는 것에서부터 집의 문을 가리는 것까지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졌지요. 발을 만드는 재료로는 대나무, 갈대, 겨릅(삼 곧 대마의 껍질을 벗겨낸 속대), 달풀(물억새) 따위가 있습니다. 발은 주로 대나무 특히 ‘시누대’를 쓰는데 가장 좋다는 3년생을 음력 11~12월 사이에 거두어 2달 동안 햇볕과 이슬 맞히기를 반복합니다. 그 뒤 이를 가늘게 쪼개어 얻은 대오리를 삼끈이나 실로 엮고 바탕 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놓은 뒤 윤곽을 남색 모단(비단의 하나) 따위로 둘러 마감하기 때문에 만 번 이상의 손이 가야할 만큼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발에 새기는 무늬는 구갑문(龜甲紋, 거북이 등 모양 무늬)과 囍(쌍희)자, 福(복)자, 卍(만)자, 壽福康寧(수복강녕) 같은 길상문자무늬를 즐겨 썼고, 양쪽 귀에 매듭을 드리워 멋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삼국시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장장채승(長長彩繩:오색의 비단실로 꼰 긴 동아줄) 그넷줄 휘늘어진 벽도(碧桃, 선경[仙境]에 있다는 전설상의 복숭아)까지 휘휘 칭칭 감어 매고 섬섬옥수(纖纖玉手) 번듯 들어 양 그넷줄을 갈라 잡고 선뜻 올라 발 굴러 한 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 듯 높았네. 두 번을 구르니 뒤가 점점 멀었다. 머리 위에 푸른 버들은 올을 따라서 흔들 발밑에 나는 티끌은 바람을 쫓아서 일어나고 해당화 그늘 속의 이리 가고 저리 갈제” 이는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춘향이가 그네 타는 장면인데, 그네뛰기는 단옷날의 대표적 민속놀입니다. 오늘은 ‘단오’, 설날ㆍ한식ㆍ한가위와 함께 4대 명절로 즐겼지만 이제 그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습니다. 단오 세시풍속 가운데는 먼저 단오장(端午粧)이 있는데 이는 단옷날 아낙네들이 특별히 하는 화장을 말합니다. 아낙네들은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재액(災厄)을 막고,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냈습니다. 또 단옷날 새벽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생각했지요. 단오에는 또 동지에 달력을 선물하는 것과 함께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박영국)은 2018년 6월 25일(월)부터 7월 8일(일)까지 박물관 별관에서 성인 대상 상반기 교육 <한글 상표 공방>의 결과물을 소개하는 전시 ‘이름다움’을 연다. <한글 상표 공방>은 우리말의 어감을 살린 한글 상표 이름을 만들고 이를 개성 있게 디자인해보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번 교육 결과물 전시는 한글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전시 개막 행사는 6월 25일(월) 저녁 4시에 진행된다. <한글 상표 공방> 교육은 한글 상표 이름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두 가지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상표 이름 전문가인 브랜드메이저 이예현 대표와 이승훈 상무의 상표 개발 전략과 사례 강의, 실습 지도를 통해 한글 상표 이름을 만들고 글꼴 디자이너 산돌커뮤니케이션 권경석 이사와 최성우 프로듀서의 지도를 통해 이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교육이 진행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물품 보관함’, ‘분식집’, ‘막걸리’, ‘교육 공간’의 네 가지 주제로 31개의 한글 상표를 선보인다. 수강생들은 한글을 ‘살아 움직이는 글자’, ‘잠들어 있는 보물’로 비유하면서, 이번 교육을 통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는 보물 제1373호 “금동천문도(金銅天文圖)”가 있습니다. 천문도 앞면에는 천구의 북극을 중심으로 해서 둥글게 북극으로 부터 적도부근에 이르는 영역의 별자리들이 표시되어 있지요. 별자리의 형태나 자리는 조선 초기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견주어서 대체로 일치하는 편이며, 동판 위에 표시된 별자리는 천상열차 분야지도의 모든 별 가운데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109개의 별자리로 별은 모두 481개입니다. 각 별자리는 별과 별 사이가 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별 하나하나마다 구멍을 뚫고 진주를 넣어 아름답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남아 있는 진주는 14개뿐입니다. 별자리 말고 3개의 구멍이 원판의 중심부근과 좌우 바깥부근에 일직선상으로 놓여 있습니다. 이 천문도는 휴대용으로 별을 관측할 때 진주보석에 빛을 비추어 별자리를 찾거나 익히는데 편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뒷면에는 점각(點刻, 점으로 새긴 그림이나 무늬)으로 표현된 송악도(松岳圖)가 있는데 봉우리가 다섯 개인 오악(五嶽)과 두 그루의 소나무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바다가 새겨져 있어 전통공예품으로서의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물론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