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시사만화’란 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을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그린 만화를 뜻합니다. "신문 읽기는 귀찮지만 시사문제를 알아야 한다면, 가장 좋은 대안은 시사만화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김진수가 쓴 《한국 시사만화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에 나오는 말이지요. 작고 날카로운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으로, 짧은 경구로도 사람을 크게 감동시킬 수 있음을 이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대표적인 장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9년 6월 2일 대한협회(大韓協會)가 창간한 ‘대한민보(大韓民報)’에 시사만화가 처음 등장합니다. 그 첫 시사만화는 이도영이 그린 '삽화1'로 한 신사가 고개를 들고 네 마디 말을 내 뿜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지요. 실크해트(검정색 비단을 써서 만든 원통형의 예장용 모자)와 카이저수염(양끝이 치켜 올라간 콧수염), 연미복(뒤가 길고 제비꼬리처럼 늘어진 정장예복)과 지팡이로 상징되는 개화기 신사가 ‘대한민보’의 한 글자씩을 이용해서 4행시를 짓습니다. “‘대국(大局)의 간형(肝衡)’ 곧 국가 정세를 바르게 이해하고, ‘한혼(韓魂)의 단취(團聚)’ 곧 한민족의 혼을 통합하여, ‘민성(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요즘 사회 관련 뉴스에는 양승태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박근혜 정부와 이른바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법원노조가 고발했는가 하면 KTX승무원노조, 전교조는 물론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관련자의 처벌과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법관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의구심이 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단원 김홍도가 그린 <행려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 가운데 “거리의 판결[醉中訟事]”는 조선시대 송사 풍속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림을 보면 소풍을 다녀오는 한 고을 수령 일행 앞에 무슨 일로 다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형방이 수령의 처분을 기록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문제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갓이 한쪽으로 삐뚤어졌다는 것이지요. 수령 역시 근엄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지만 그도 술에 취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그림은 온통 술냄새로 진동합니다. 재미난 것은 행렬의 맨 뒤에 흑돼지 두 마리가 따르고 있지요. 이 그림 맨 위에는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진 강세황이 쓴 화제(畫題)가 보입니다. “물건을 나르는 이들이 각기 물건을 들고 가마 앞뒤에 있으니, 수령의 행색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맺어진 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통감부를 서울에 설치하고 한국 쪽 고관들을 초청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 자리에는 이완용, 송병준 등 소위 매국노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때 노백린 선생도 초대되었는데 선생은 이들 역신 앞으로 가서 “워리 워리”하고 개를 부르듯 불렀습니다. 이는 나라를 팔아먹은 개 같은 놈이라는 뜻이었는데 그러자 일본군 사령관 요세미치(長谷川好道)가 그것을 알고 칼을 빼들어 덤비려 하자 선생도 칼을 빼어 대결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이토 히로부미가 황급히 말렸지만 이 바람에 연회는 끝을 보고 말았습니다. 노백린 선생은 이렇게 무인으로서의 기백과 대쪽 같은 강직한 성품을 지닌 분이었지요. 1924년 오늘(5월 30일)은 노백린(盧伯麟, 1875.1.10. ~ 1926.1.22.) 선생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참모총장에 임명된 날입니다. 선생은 국권을 침탈한 일제로부터 회유와 협박으로 협력할 것을 수없이 압박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선생은 앞으로 전쟁은 육군보다도 공군력이 좌우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비행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지방 유지들을 설득하고 19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빙하기 유물로 알려져 있는 세바람꽃이 소백산에서 발견됐다. 지금까지 남한에서는 한라산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달 초 충북 소백산국립공원을 대상으로 자연자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세바람꽃 자생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자생지는 해발 1,000m 정도에 위치한 계곡 주변, 10㎡ 정도의 면적에 20여 포기가 자라고 있었다.” 지난해 이맘 때 세바람꽃이 소백산에서 발견됐다며, 언론에서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라 안에 자라는 식물 가운데 세바람꽃은 분포지역이 가장 좁은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 Ⅴ급'(희귀식물)으로 분류될 정도로 까다로운 생태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1~2시간 햇볕이 들면서도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한라산에서도 해발 700m 이상의 차가운 '아한대' 지역으로 자라는 곳이 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보고돼 있기에 소백산에서는 출현은 언론이 호들갑을 떨 만도 하지요. 세바람꽃은 바람꽃의 하나로 꽃이 줄기마다 대개 세 송이씩 피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었습니다. 높이 10-20cm로 산꼭대기 근처에서 자라는데 꽃은 봄이 감을 아쉬워할 때인 5∼6월에 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몇 년 전 1239년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어냈다는 금속활자 ‘증도가자’가 100여점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학계가 한참 흥분에 들뜨기도 했지만 아직 진위를 확인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는 남북한의 개성 만월대 공동조사 때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또 한 점이 발굴돼 남북한 학계가 잔치분위기였지만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으로 빠지는 바람에 찬물을 뒤집어썼지요. 올 4월에는 북한의 만월대 단독발굴에서 4점이 더 확인됐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를 남북한이 각 1점씩 보관해왔습니다. 남측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복(覆)’자와 북측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전’자입니다. ‘복(覆)’자는 1913년 10월7일 덕수궁 구 왕궁박물관이 일본인 골동품상 아카보시(赤星佐七)로부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2원을 주고 사들인 것인데 길이 1.2cm, 너비 1.0cm의 크기지요. ‘전’자는 1956년 개성 만월대 회경전 서쪽 300m 지점에서 수집됐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12세기 발명된 것으로 사실 인류 최초입니다. 하지만 정작 더 유명한 것은 15세기 서양에서 발명된 ‘구텐베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 운암(雲庵) 곽영민(郭永敏) 선생은 일본, 미국 ,중국 등에서 수십 차례의 전시회를열 었으며, 대한민국 동양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서예계의 원로 작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 이화문화출판사를 통해서 《갑골문집(甲骨文集)》을 펴낸 바 있는 갑골문(甲骨文)의 대가다.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재)여주세종문화재단은 지난 18일부터 6월 7일까지 2018 문예회관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지원사업 '문화두럭-음악을 만지다 마음을 노래하다' 프로그램의 무료 수강생을 모집한다. '문화두럭'은 '문화예술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여주세종문화재단 신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올해에는 '음악을 만지다 마음을 노래하다'라는 부제로 오카리나와 함께하는 복합문화예술교육 활동으로 꾸려진다. 세종국악당에서 진행되는 이번 교육에서는 오카리나 연주법 배움과 더불어 도자기의 본고장인 여주의 특색을 살려 '흙 피리' 오카리나를 직접 만드는 체험도 가능하다. 또 배운 것을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재능기부 연주회도 이뤄질 예정이다. 교육 기간은 6월 12일부터 10월 16일까지 매주 화요일 약 5달 동안이며 오전(10∼12시) 또는 저녁(7∼9시)반 중 하나를 선택해 수강할 수 있다. '문화두럭-음악을 만지다 마음을 노래하다'는 만 18살 이상의 여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며 여주세종문화재단 블로그(http://blog.naver.com/yjsjcf) 게시물 댓글을 통해 반별 30명 선착순으로 신청을 마감한다. 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이는 1943년에 발표된 한복남이 부른 “빈대떡 신사” 가사의 일부입니다. 우리 겨레가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는 이 노래에 나오는 빈대떡도 있습니다. 조선의 요리서 가운데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과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빈쟈법”, “빙쟈”가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빈대떡입니다. 빈대떡은 녹두를 맷돌에 갈아서 부치는 것인데 여기에 어린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거나 파, 고추를 넣기도 하고 오징어나 굴 등의 해산물 또는 돼지고기를 가늘게 저며 넣고 들기름에 고소하게 지져 만들기에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음식이지요. 빈대떡의 주재료인 녹두는 철분과 카로틴이 많아서 해독 작용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영양도 보충하고 입맛도 돋울 수 있는 것이기에 빈대떡을 즐겨 먹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이 빈대떡의 유래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하면 떠돌며 얻어먹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숭례문 밖으로 수없이 몰려들었지요. 그때 어떤 부잣집에서는 이들을 위해 빈대떡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기는 근심을 잊을까 함이려니 춤곡조가 끝나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밤은 바다가 되고 거문고줄은 무지개가 됩니다. 거문고 소리가 높았다가 가늘고 가늘다가 높을 때에 당신은 거문고줄에서 그네를 뜁니다.“ 한용운의 ‘거문고를 탈 때’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거문고”는 ‘백악지장(白樂之丈)’ 곧 모든 음악의 우두머리라고 일컬어진다. 1610년(광해군 2년) 양덕수(梁德壽)라는 사람이 펴낸 거문고 악보 《양금신보(梁琴新譜)》에는 “거문고는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이므로 군자가 마땅히 거느려서 바른길로 나가게 하는 것(琴者樂之統也故君子所當御也).”이라고 되어 있다. 그 거문고는 오랫동안 정악만으로 연주되다가 1896년(고종 33) 당시 20살이었던 백낙준(白樂俊)이 처음 산조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후 거문고 산조는 신쾌동(申快童, 본명 신복동, 1910-1977) 명인에 의한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한갑득(韓甲得, 1919-1987) 명인에 의한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두 유파로 발전해왔다.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보유자 김영재 명인에 의해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조선 후기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이 있습니다. 그 맨 앞면에는 <연못가의 여인>이라는 그림이 있지요. 그림 속의 여인은 커다란 가체(加髢)에 몸에 꼭 붙는 짧은 저고리, 풍성한 치마를 입고 있습니다. 기녀로 보이는 이 여인은 쓸쓸한 얼굴로 악기 생황을 들고 있습니다. 이 그림말고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단원 김홍도의 <생황부는 소년(송하취생도, 松下吹笙圖)>에는 한 소년이 머리에 쌍상투를 틀고, 거위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맨발로 앉아서 입에 대고 생황을 불고 있지요. 또 생황이 그려진 그림에는 김홍도가 그린 간송미술관의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도 있습니다. 화원인듯한 한 사내가 파초 위에 웅크리고 앉아 생황을 불고 있습니다. 영화 “취화선”에서는 장승업과 기생이 생소병주(단소와 생황을 함께 연주)로 아름다운 음악 “수룡음(水龍吟)”을 연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생황은 오래된 유물에도 보이는데 신라 성덕왕 때에 지은 평창 상원사, 헌강왕 때 지었다는 문경 봉암사의 범종과 경북 문경의 지증대사 적조탑신 등에 생황이 새겨져 있을 정도입니다. 생황(笙簧ㆍ笙篁)은 중국 묘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