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민족을 구하라.” 이는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영국언론인이며, <대한매일신보> 사장 어니스트 베델(Ernest Thomas Bethell, 한국 이름 배설-裵說)의 마지막 유언으로 1909년 오늘(5월 1일)은 그 베델이 죽음에 이른 날입니다. 의학적 사인으로는 심장병이었지만, 자신에 대한 재판과 상하이에서 감옥에 갇혔던 일, 독립운동가 양기탁 지사와 관련하여 조사받은 일 따위로 건강을 크게 해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베델이 죽자 그의 뜻을 영원히 기리는 비석을 세우기 위한 모금을 시작했는데 미국 하와이,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 등 세계 곳곳에서 1환, 2환 또는 몇 십전씩을 내놓기 시작하여 죽은 지 1년 뒤인 1910년 6월 비석을 세웠지요. 이 비석에는 장지연이 “아! 여기 대한매일신보 사장 베델 공(公)의 묘가 있도다. 그는 열혈을 뿜고 주먹을 휘둘러서 이천만 민중의 의기를 고무하며 목숨과 운명을 걸어놓고 싸우기를 여섯 해. 마침내 한을 품고 돌아갔으니, 이것이 곧 공(公)의 공다운 점이요 또한 뜻있는 사람들이 공을 위하여 비를 세우는 까닭이로다.”라고 썼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父爲子綱子爲手足 아버지는 아들의 벼리가 되고 아들은 손과 발이 될 것이니 孝親愛子天道之常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사랑함은 하늘이 낸 도리라 * 벼리 : 고기 잡는 그물의 코를 뀌어 그물을 잡아 당길 수 있게 한 동아줄 사람이 꼭 지켜야할 기본적인 도덕과 규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보물 제626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굽다리접시[고배:高杯]”가 있습니다,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는데 이 가운데 북쪽무덤에서 금제 굽다리접시 5점, 은제 굽다리접시 8점, 금동제 굽다리접시 4점 등 모두 17점이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높이 10㎝, 주둥이 지름 10㎝, 무게 169g의 이 금제 굽다리접시는 반구형 몸통 밑에 나팔형 굽다리를 붙인 전형적인 양식이지만, 여러 꾸밈이 있고, 금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실제 썼던 것이라기보다는 껴묻거리(부장품)로 만든 듯합니다. 아가리 부분은 밖으로 말아 붙였고, 나뭇잎 모양 꾸미개 7개를 2개의 구멍을 통하여 금실로 꿰어 달았지요. 천마총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양의 금동제 굽다리접시가 출토되었지만 황남대총 굽다리접시처럼 달개 꾸미개가 달린 예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금제 굽다리접시는 탁월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황남대총 금속공예 기술의 수준과 역량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부가 찌그러져 손상이 있으나 굽다리접시는 출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음식을 먹을 때, 음식 그릇을 올려놓는 작은 상” 곧 소반은, 우리 겨레와 오랜 세월 함께 해왔다. 소반은 평평한 반면(盤面)의 통판 널과 여기에 연결되는 다리로 이루어졌다고 얘기하지만 소반은 각 지방마다 나름의 아름다움과 특성을 지니고 발달되었다. 그 ‘소반’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회 곧 전통공예의 미(美) 탐구 <소반전>이 서울 삼성동 국가무형문화재전수회관 2층 ‘결’ 전시관에서 오는 5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수십 가지 다양한 모양의 소반들이 전시되고 있어 관람객을 압도한다. 전시품을 보면 주로 개인소장인 유물들, 전승공예가들의 작품에 더불어 현대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한다. 먼저 지방의 특성을 지닌 소반들 곧 나주반, 강원반, 충주반, 해주반, 통영반들이 서로 자웅을 겨룬다. 하지만 어느 것이 더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름의 아름다움에 각각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먼저 ‘나주반’은 전남 나주에서 발달했던 소반이다. 나주반에는 4각반, 12각반, 호족반, 단각반이 전해 오는데 보통 말하는 나주반은 보편화된 반상인 4각반이다. 잡다한 장식이나 화려한 조각이 없으며 나뭇결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26일)저녁 6시, 경복궁 앞 서울 불일미술관에서는 한국불교사진협회(회장 최우성) 제23회 회원전 개막식이 열렸다. 이날 개막식은 제12회 청소년불교사진공모전 수상식도 함께 진행되었으며 열린선원 원장 법현스님, 법련사 성경스님, 불교사진협회 안장헌 고문과 작품을 출품한 회원, 수상자 등 100명이 모여 개막식을 가졌다. 이번 전시의 작품 주제는 ‘석불과 마애불’로 불교사진협회 회원들이 지난 1년 동안 전국 절을 찾아다니며 찍은 작품 58점이 선보였다. 한편 청소년불교사진 공모전에 입상한 학생들의 수상식과 함께 작품 12점도 함께 전시되었다. 개막식에서 불교사진협회 회우성 회장은 “전국에 조성된 돌부처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회원들이 지난 1년 동안 공들인 사진들을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 전국 사찰에 모셔져 있는 석불과 깊은 산속 바위 등에 새겨진 마애불 사진을 통해 조상들의 신심 어린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라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성경스님이 대신 읽은 치사(致辭)를 통해 “우리나라 산천 곳곳에 자리한 사찰과 마애불 등은 선대들의 부처님 법을 향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바람은 지동치듯 불고 구진비는 붓듯이 온다 / 눈정에 거룬님을 오늘밤에 서로 만나자 허고 / 판첩처서 맹서 받았더니 / 이 풍우 중에 제어이 오리 / 진실로 오기 곧 오랑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이는 여창가곡 우조 우락 "바람은"의 가사입니다. 우린 학창시절 바우고개, 선구자, 청산에 살리라 등 흔히 한국가곡이라 부르는 노래를 배우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전통성악의 하나인 ”가곡“이 있습니다. 가곡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시에 곡을 붙여서 국악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으로, 국가 중요 무형 문화재 제30호로 지정하여 보존되고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무형 유산으로 지정되었지요. 전통가곡은 ‘삭대엽(數大葉)’ 또는 ‘노래’라고도 하며, ‘느리고 유장하게 부른다’라고 하여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 부릅니다. 시조, 가사와 함께 정가(正歌)에 속하는데 남성이 부르는 노래인 남창(男唱) 26곡과 여성이 부르는 노래인 여창(女唱) 15곡이 있으며, 남녀가 함께 부르는 남녀창 1곡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노래이며,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되돌아보는 그런 음악입니다. 위 ‘바람은’ 노래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정의 달을 맞아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과 석주선기념박물관(관장 박경식)은 2018년 5월 4일(금)부터 7월 13일(금)(일요일 휴관)까지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석주선기념박물관(용인)에서 ‘어린이 전통옷’ 공동기획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덕온공주 돌 실타래, 해평 윤씨 소년 미라 복식 유물 등 110점의 어린이 복식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아이의 옷 과거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이 태어나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복(福)을 비손하는 마음을 담아 자녀의 옷을 정성껏 손수 지어 입혔다. 이 때문에 우리 전통의 ‘아이옷’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과거의 ‘아이옷’을 통해 현재의 관람객들에게 변치 않는 부모의 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될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이 전시를 기획했다. 1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 배꼽주머니와 배냇저고리’에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돌이 되기까지 입는 옷들을 전시한다. 긴 고름을 단 ‘배냇저고리’부터 장수한 어른의 옷을 잘라 만든 ‘누비포대기’를 비롯해,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한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임금의 초상화 곧 어진(御眞)은 진용(眞容)ㆍ진(眞)ㆍ진영(眞影)ㆍ수용(晬容)ㆍ성용(聖容)ㆍ영자(影子)ㆍ영정(影幀)ㆍ어용(御容)ㆍ왕상(王像)ㆍ어영(御影) 따위로도 부릅니다. 그런데 1713년(숙종 39년) 숙종어진을 그릴 당시 어용도사도감도제조(御容圖寫都監都提調)였던 이이명(李頤命)의 건의에 따라 ‘어진’이라는 이름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린 뒤로는 어진이 임금의 초상화를 뜻하는 말로 대표되었지요. 어진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었습니다. 당대 으뜸 화원들이 어진을 그리는데 동원되었고, 모든 신하들이 어진 제작의 처음부터 끝까지 논의하고 공을 들였는데 어진이 왕의 얼굴을 넘어 왕실 자체를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현재 남아있는 어진은 안타깝게도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어진, 서울 창덕궁의 영조어진ㆍ철종어진ㆍ익종(효명세자)어진 그리고 영조의 연잉군(延礽君) 때의 도사본(임금이 살아 있을 때 직접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린 것) 뿐이지요. 조선시대 초상화는 전신사조(傳神寫照)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곧 겉모습을 똑같이 그리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 등의 내면적인 특징까지도 그대로 전해줄 수 있어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이상화(李相和, 1901 ~ 1943)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 일부입니다. 이상화는 민족의 비애와 일제에 항거하는 저항의식을 바탕으로 겨레의 정서를 잘 다듬어 그야말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인 시를 썼는데 1943년 오늘(4월 25일)은 그가 숨을 거둔 날이지요. 특히 그는 1926년 잡지 《개벽》 6월호에 저항시로 유명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여 민족적 비애를 노래했습니다. 그의 시는 당시 1920년대로서는 거의 유일한 민족적 저항시이고 애국시였다고 평가됐으며, 잡지 《개벽》은 이 시를 실었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폐간하기에 이릅니다. 이 시에서 ‘빼앗긴 들’이란 일제 강점 하의 비극적인 시대 상황을 표현한 것이고, 당시 상황에 대한 망국의 한과 절규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