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는 높이가 450cm나 되는 국보 제4호 <여주 고달사터 승탑(僧塔)>이 있습니다. 고달사는 통일신라의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절로, 고려 광종 이후에는 임금들의 보호를 받아 큰 절로 자리 잡기도 하였으나 언제 문을 닫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요. 이 승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빼면 대부분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단(基壇)은 상ㆍ중ㆍ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는데, 특히 가운데돌에 새겨진 조각들이 두드러집니다. 가운데돌은 8각이라기보다는 원에 가까운데, 표면에 새겨진 두 마리의 거북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두 마리 거북 사이는 네 마리의 용이 있고, 나머지 공간에는 구름무늬로 가득 채웠지요. 가운데돌을 중심으로 그 아래와 윗돌에는 연꽃무늬로 우아함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붕돌 처마 밑에 새겨진 비천상이 참으로 아름다운데 승탑의 주인은 지금 극락세계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 양식을 차분하게 이어받은 고려 초의 승탑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승탑 가운데 가장 큽니다.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경남 통영시 한산면 비진리에 가면 천연기념물 제63호 “통영 비진도 팔손이나무 자생지”가 있습니다. 팔손이나무는 두릅나뭇과에 속하는 사철 푸른나무로 경상남도 남해와 거제도 등 해변의 산골짜기에서 자랍니다. 팔손이나무라는 이름은 잎이 손바닥 모양과 같이 7∼9갈래로 갈라진데서 생긴 것이며, 팔각금반 또는 팔금반이라고도 부르는데 남부지방에서는 정원수로 많이 심지요. 팔손이나무꽃은 다른 꽃들에 견주면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가지 끝에서 지름 7cm 남짓의 흰 꽃이 공 모양으로 피는데 어떤 이는 마치 시골의 선머슴 같다고 합니다. 실제 이곳 비진도에서는 이 팔손이나무를 총각나무라고 부른다고 하지요. 이곳 통영 비진도의 팔손이나무 자생지는 한때 태풍으로 큰 피해를 받은 일이 있으며, 동백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자금우 등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또 이 자생지는 팔손이나무가 자라고 있는 가장 북쪽에 있으며, 학술연구상 가치가 높고 희귀종으로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ㆍ보호하고 있지요. 팔손이나무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옛날 인도에 바스바라는 공주가 있었는데 공주의 열일곱 생일날 어머니가 예쁜 쌍가락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공주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남번국(南番國) 사람이 만력 계묘년간에 왜인의 배를 따라 우리나라에 표류하여 도착한 일이 있다. 그 사람을 보니 눈썹이 속눈썹과 통하여 하나가 되었고, 수염은 염소의 수염과 같았으며, 그가 거느린 사람은 얼굴이 옻칠한 것처럼 검어서 형상이 더욱 추하고 괴상하였다. (중간줄임) 왜인들은 그곳에 진기한 보물이 많기 때문에 왕래하면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본토를 떠난 지 8년 만에 비로소 그 나라에 도착하곤 하였으니, 아마 멀리 떨어진 외딴 나라인 모양이다.” 이는 지봉 이수광(李晬光)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남번국”이란 중국에서 네덜란드를 한문으로 표기하던 것을 들여온 말입니다. “남번국”말고도 “불랑기국(佛狼機國, 프랑스)”, 영결리국(永結利國, 영국), 방갈자(榜葛刺, 방글라데시) 따위도 보이지요. 《지봉유설》은 조선시대 최초의 문화백과사전으로 평가를 받을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젊은 시절 틈틈이 기록한 내용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이준구ㆍ강호성이 펴낸 《조선의 선비》에 보면 이수광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그에 따르면 이수광이 밤에 공문서를 처리하거나 책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배달민족 한겨레라면 모두가 아리랑을 알고 즐겨 부른다. 아리랑은 단일한 하나의 곡이 아닌 한반도 전역과 세계에서 지역별에 따라 다양한 곡조로 전승되었다. 아리랑은 세계 어디에 살든 한국인과 대한민국, 또 한겨레 사이를 이어주는 문화의 탯줄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감정적인 연결 끈은 20세기 초 조국을 떠나 일본ㆍ중국ㆍ러시아ㆍ중앙아시아서 눈물로 살아온 동포들은 물론 최근 이민을 통해 옮겨 살게 된 독일ㆍ미국ㆍ브라질ㆍ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동포들들 사이에서도 한 겨레임을 확인시켜 준다. 어제 11월 25일 저녁 6시 태화빌딩 대강당에서는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차길진)의 제13회 아리랑상 시상식이 있었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인제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인제 고문 등 정치인들과 아리랑을 사랑하는 200여 명의 참석자가 몰렸다. 시상식에서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차길진 이사장은 이현수 이사가 대신 읽은 대회사에서 “아리랑은 공동체 결속에 이바지한다. / 아리랑은 끊임없이 재장조된다. / 아리랑은 한국현대사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불려왔다. / 아리랑은 인간의 창의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미덕의 노래이다.”라며 아리랑의 특징을 강조했다. 이후 이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11월 25일(토) 4시, 서울 종로구 부암동 <무계원> 안채에서 종로문화재단(대표이사 이건왕)이 주최하고, 서울 종로구(구청장 김영종)가 후원하는 “해설이 있는 국악 무계원 풍류산방 3”이 문을 열었다. <해설이 있는 국악, 풍류산방 3> 공연의 첫 무대로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이수자 이기옥 명창과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 황숙경 명창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시각은 물론 공연하는 내내 초겨울을 재촉하는 겨울비가 내렸다. 겨울비 치고는 제법 굵게 내린 것은 물론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하였지만 공연을 보려는 청중들을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출연자의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는 한옥공간의 무대는 서한범 교수의 쉽고, 편안한 그리고 맛깔스러운 해설과 더불어 일품이다. 첫 번째 출연자인 이기옥 명창의 송서율창 소리가 밖의 빗소리를 누르고 청아하게 한옥 안채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원래 유산가(遊山歌)를 부를 예정이었으나 청승맞은 겨울비와 안 어울려 약간 맛보기를 하고 출인가(出引歌)로 이날 공연의 막을 올렸다. 이기옥 명창은 묵계월 선생 문하에서 소리 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우리나라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12, 인류무형유산에 19, 세계기록유산에 16건이 등록된 문화강국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병헌 주 유네스코 대사가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의장으로 뽑혔다는 기쁜 소식도 들렸다. 그러나 그런 사이 우리 문화 행정에 오점이 될 만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유네스코 무형유산 심사위원 후보를 문화재청이 멋대로 바꿨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어제(11월 24일) 낮 11시 30분 “한국 유네스코 인가 MGO협의회 사무국” 주최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들 “한국 유네스코 인가 MGO협의회” 회원들은 문화재청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것은 NGO몫인 유네스코 무형유산 심사위원 후보 자리를 이미 유네스코에 후보로 추천했던 ‘무형문화연구소’ 대신 아무런 협의도 없이 정부산하기관인 ‘한국문화재재단’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평가기구는 세계의 인류무형유산을 뽑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수년 전부터 12명의 구성원 가운데 6명은 전문가 집단에서, 나머지 6명은 유네스코 인가NGO 가운데서 지역별로 뽑아 왔다. 유네스코가 이렇게 NGO단체와 함께 가려고 하는 것은 무형문화유산을 단순한 과거유
[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다. 이처럼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뿌리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따른다고되어 있다. 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환국 뒤에 마지막 청사로 썼던 경교장에서 어제 11월 23일 4시 30분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대표 김인수), (사)우사김규식기념사업회(회장 회장 이기후), 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상임대표 김인수) 공동주최로 “임정 환국 72주년 기념식 및 경교장 정상 복원 촉구대회”가 열렸다. 행사는 맨 먼저 식전공연으로 박연숙 통일판소리와 김숨의 “시소리, 국토서시” 대금 연주가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국민의례에 이어 유승남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이사(김구 주석 경호원 애국지사 유평파 선생 장손)의 임정연혁보고와 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 김인수 상임대표의 대회사가 있었다. 김인수 상임대표는 대회사에서 “오늘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정부요인들이 김포비행장을 통해 환국한지 72돌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임시정부를 법통으로 한다는 헌법 전문과 달리 정부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조선시대 왕실의 혼례 모습은 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이지요. 이 반차도에서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임금과 왕비의 가마입니다. 그 까닭은 임금의 가마는 사방이 열린 개방형으로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것이고, 왕비의 가마는 사방의 문이 모두 닫혀 아무도 볼 수 없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더욱 재미난 것은 임금의 가마에 임금이 없습니다. 그저 가마만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은 없는 것이지요. 이 그림 말고도 영조가 청계천의 준천 사업을 둘러보러 간 모습을 그린 <준천시사열무도>, 영조가 신하들과 함께 성균관에서 활쏘기 행사를 한 <대사례도(大射禮圖)>,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맞이하여 화성행차의 과정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반차도>,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입학식 광경을 그린 <왕세자입학도> 등의 그림에서도 임금의 가마나 말만 보일뿐 임금의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애초에 임금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던 것인데 그 까닭은 임금의 얼굴을 조선왕실의 어떤 행사 기록에도 남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옛 사람들은 선비가 사는 집을 '난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의 난형지실(蘭馨之室)이라고 하였고, 예로부터 선비들은 차를 마시며, 그림을 걸고, 꽃을 꽂는 일과 함께 운치 있는 4가지 일 곧 4예(四藝)로 향을 피우고, 즐겼습니다. 몸과 마음을 닦는 방법으로 거처하는 방안에 향불을 피운다 하여, 분향묵좌(焚香默坐)라는 말도 있었지요. 옛 여인들의 몸에선 항상 은은한 향이 풍겨 나왔고, 향수, 향로 제조기술은 어진 부인의 자랑스러운 덕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 같은 귀한 유물들이 전해지는데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또 하나의 향로 국보 제95호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가 있습니다. 이 향로는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높이 15.3㎝, 대좌지름 11.2㎝의 크기이며 뚜껑과 몸통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뚜껑은 향이 피어올라 퍼지도록 뚫어서 장식한 구형(球形) 부분과 그 밑에 받침 부분으로 되어 있지요. 특이한 것은 토끼 세 마리가 향로 받침을 떠받치고 있는데, 비록 작은 상형물이지만 토끼의 눈에 검은 철화 점을 찍어 청자 토끼는 영원한 생명력을 얻고 있습니다. 또 이 향로는 오목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시월은 초겨울 되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소리 높이 난다 /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다했구나 (중간줄임) 방고래 청소하고 바람벽 매흙 바르기 / 창호도 발라 놓고 쥐구멍도 막으리라 / 수숫대로 울타리 치고 외양간에 거적 치고 / 깍짓동 묶어세우고 땔나무 쌓아 두소.” 농가월령가 10월령에 나오는 노래입니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스무째로 첫눈이 내린다고 하는 “소설(小雪)”입니다. 소설 무렵 아직 따뜻한 햇살이 비치므로 “소춘(小春)”이라고도 부르지만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많이 추워집니다. 따라서 곧 한겨울에 들 것이므로 서둘러 문에 문풍지도 바르고, 외양간에 거적 치고, 땔나무도 해놓습니다. 또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며 목화를 따서 이불을 손보기도 하지요. 또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도 모아두면서 미처 해놓지 못한 겨울준비를 마저 합니다. 이때 감이 많이 나는 마을에서는 줄줄이 감을 깎아 매달아 곶감을 만드느라 처마 밑이 온통 붉은빛으로 출렁이기도 하지요. 한편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