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 ~ ?)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풍속화가입니다. 신윤복의 그림 가운데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아기 업은 여인〉이 있는데 이 그림은 그다지 알려져 있는 그림이 아닙니다. 이 그림은 1910년 일본인 곤도(近藤佐五郞)로부터 산 화첩 속에 포함되어 있지요. 이 화첩에는 김두량, 김득신, 김후신, 이인문, 변상벽, 그리고 강세황 같은 쟁쟁한 화원들의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 업은 여인〉에 붙어 있는 작은 쪽지에는 “혜원신가권자덕여(蕙園申可權字德如)”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신윤복의 본명이 신가권이며, 자는 ‘덕여’임이 밝혀졌지요. 따라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윤복은 그의 필명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유명한 〈미인도〉 그림에도 ‘신가권’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아기를 업은 여인>은 그림이 화면 왼쪽에 자리 잡았고, 오른쪽에는 그림에 대한 감상을 적은 부설거사(扶辥居士)의 긴 글이 화폭의 3분의 2나 차지하고 있는데 부설거사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림은 배경은 없이 여인과 아이의 모습만 그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제 참외가 제철인 때가 왔습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그 참외 모양을 닮은 국보 제94호 “청자 참외모양 병”이 있습니다. 경기도 장단군에 있는 고려 인종의 능인 장릉(長陵)에서 “황통 육년(皇統 六年, 1146년)”이라는 제작 연대가 적힌 인종의 시책(諡冊, 임금과 왕비가 죽은 뒤 시호-諡號를 올릴 때 쓰는 책)과 함께 발견되어, 이 병이 고려청자 최성기인 1146년(인종 24)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7ㆍ8호 가마터를 중심으로 동일한 청자조각이 발견되는 것은 물론 비슷한 모양의 병이 다른 고려 고분의 출토품에도 보이며 중국의 자주요(磁州窯)와 경덕진(景德鎭) 가마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병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병의 크기는 높이 22.8㎝, 입지름 8.8㎝, 밑지름 8.8㎝로 목이 긴 참외 꽃 모양의 아가리, 치마 주름 모양의 높은 굽이 받치고 있는 꽃병으로, 단정하고 세련된 형태의 작품입니다. 담록색이 감도는 맑은 비색 유약이 얇고 고르게 발라져 있고 군데군데 금(유빌렬)이 가 있습니다. 우아하고 단정한 모습과 은은한 유색이 돋보이는 것은 물론 참외 모양의 몸체에 꽃을 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월이라 한여름이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 온 끝에 볕이나니 날씨도 좋구나.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주 울고 보리 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 한다.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치기 바쁘구나. 남녀노소 일이 바빠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이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월령으로 이즈음 정경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데 4월은 맹하(孟夏) 곧 초여름으로 입하와 소만이 들어 있다고 노래한다. 오늘은 24절기 여덟째 “소만(小滿)”으로 이 무렵에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온 세상에 가득 찬[滿]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 이때는 이른 모내기를 하며, 여러 가지 밭작물을 심는다. 소만에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을 해먹고,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드는데 들판에는 밀과 보리가 익고, 슬슬 모내기 준비를 한다. 또 이 무렵 산에서는 뻐꾸기가 울어대며,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기는 바람을 타고 우리의 코끝을 간지럽힌다. 온 천지가 푸른데 대나무는 누레져 그런데 소만 때는 온 천지가 푸르름으로 뒤덮이는 대신 죽순에 모든 영양분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는 광주5ㆍ18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광주와 호남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라며 기원과 덕담을 했다. 이 기원과 덕담은 어제 밤 8시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향두계놀이보존회와서도소리연희극보존회가 공동주최한 “2017 유지숙의 기원과 덕담” 공연이 그것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은 지난 2014년 5월 "이 어려운 시절, 잠시나마 이 음반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모두에게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라면서 신나라레코드를 통해 <유지숙의 기원과 덕담소리> 음반을 냈다. 이후로 유지숙 명창은 해마다 우리 국민에게 기원과 덕담을 들려주는 특별한 공연을 펼쳐오고 있다. 그 공연의 하나로 열린 어제 공연에서 유지숙 명창은 또 한 번 청중들에게 기원과 덕담을 통해 감동을 안겨줬다. 공연은 세한대학교 전통연희학과 이상균 교수의 사회로 열렸는데 음악감독에 최경만 명인, 안무에 진유림 명무, 연출에 전기광 감독이 함께 했다. 무대가 열리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기도박물관에서는 오는 7월 2일까지 “아름다운 기증, 두 번째 이야기”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기증전은 수많은 종가의 후손들이 집안에 내려오는 보물들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한 것들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이번 두 번째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서울 사당동 정재후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동래정씨 흥곡공파 종중에서 기증한 소창의입니다. “소창의(小氅衣)”는 창옷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초부터 개화기까지 사대부와 서민층에서 입던 웃옷의 하나지요. 소창의는 저고리보다도 길이가 길며 소매가 좁고, 양 옆에 긴 트임이 있습니다. 여기 전시된 소창의는 가늘게 짠 옷감에 솜을 얇게 두고 아주 곱게 누빈 것으로 옷을 지은 이의 정성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 깃은 칼깃이며, 동정은 없고, 오른쪽 고름이 길어 허리에 둘러매도록 했습니다. 혜원 신윤복(申潤福)의 “신윤복필 풍속도화첩 계변가화”나 단원 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에 보이는 양반들은 소창의에 세조대(도포나 창의에 매는 가느다란 띠)를 매고, 넓은 테의 갓이나 유건(儒巾)을 썼으며, 짚신을 신었고, 놀이 갈 때는 앞자락을 뒤로 매고 띠를 매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소창의가 밑받침 옷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5월 16일 길원옥 할머니는 이화기독여성평화상을 받았다. 평양 출신으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인 할머니는 다시는 자신과 같은 희생자가 없는 평화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며 문제해결을 위한 증언활동, 수요시위 참가, 국내‧해외 캠페인 참가 등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활동을 했다. 이러한 평화운동가로의 삶을 인정받아 이화기독여성평화상을 받은 할머니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후배 활동가를 발굴하고 격려하기 위해 이화기독여성평화상으로 받은 상금을 씨앗기금으로 하여 “길원옥여성평화상”을 만들기로 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희망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길원옥여성평화상”은 곳곳에서 활동하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여성 활동가, 언론인을 찾아 격려하고 통일과 평화의 중요성을 함께 함께하는 마당을 만들 예정이다. 또 길원옥 할머니의 이러한 뜻에 함께하기 위해 휴매니지먼트(대표: 장상욱) 기획사는 매년 수상자 두 명의 상금을 후원하기로 선뜩 약속하기도 하였다. “길원옥여성평화상”은 평화와 통일의 주춧돌이 되어 한반도 평화를 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 데 있나 봄은 왔다가 갈려거든 가거라“ 이는 단가의 하나인 “사철가”의 부분입니다. 단가는 판소리를 부르기에 앞서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입니다. 단가는 “사철가” 말고도 <진국명산>을 비롯하여 <장부한(丈夫恨)>ㆍ<만고강산(萬古江山)>ㆍ<호남가(湖南歌)>ㆍ<죽장망혜(竹杖芒鞋)>ㆍ<고고천변(皐皐天邊)> 따위 50여 종이 넘지만, 오늘날 10여 종이 불릴 뿐입니다. 그 가운데 “사철가”는 영화 〈서편제〉(1993)에서 유봉이 눈먼 송화를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나왔던 것으로 단가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고 자주 불리는 것이지요. 이 사철가는 전설의 명창 이동백ㆍ정정렬ㆍ김창룡ㆍ임방울 등이 불렀지만 특히 요즈음은 조상현 명창의 사철가가 더욱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조 명창의 걸쭉하면서도 시원한 목소리의 사철가를 듣노라면 후련해지기도 하고, 왈칵 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는 평입니다. 내 청춘이 날 버리고 가버렸으니 봄이 찾아 왔어도 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북 경주시 남산에 가면 국보 제312호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慶州 南山 七佛庵 磨崖佛像群)”이 있습니다. 바위 면에 돋을새김(부조)된 삼존불상과 그 앞의 돌기둥에 돋을새김된 4구의 불상 등 모두 7구의 불상이 있어 칠불암으로 부릅니다. 삼존불은 가운데에 여래좌상(앉아 있는 부처상)을 두고 좌우에는 협시보살입상(본존불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서있는 보살)을 배치하였습니다. 화려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미소가 가득 담긴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지요. 또 4구불의 서면상(西面像)은 동면상과, 북면상(北面像)은 남면상과 서로 비슷하나, 북면상은 다른 세 불상과 달리 특히 얼굴이 작고 갸름하여 수척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네 불상의 이름을 확실히 알기는 어렵지만, 방위(方位)와 수인(手印, 깨달음을 나타내는 부처 손 모양)ㆍ인계(印契, 열 손가락으로 만든 갖가지 표상(表象) 따위로 볼 때 일단 동면상은 약사여래(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 서면상은 아미타여래(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가파른 산비탈인데 이를 평지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원 영양군 현남면 포매리에 가면 천연기념물 제229호 “양양 포매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70∼150년 정도 된 20∼25m높이의 소나무가 약 500그루 가까이 있는 숲이 있어서 백로와 왜가리가 둥지를 틀어 살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1970년 당시에는 전체 숫자가 2,000마리 이상 되었으나, 현재는 농약의 살포와 각종 생활환경이 나빠져 그 수가 줄어들고 있지요. 백로는 열대에서 온대에 이르는 전세계에 널리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 지역을 뺀 전지역에서 삽니다. 하천ㆍ호수ㆍ개펄 같은 곳에서 볼 수 있으며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데, 주로 소나무ㆍ은행나무에서 무리지어 살지요. 백로는 긴 부리, 긴 목, 긴 다리를 가진 새로 온몸이 순백색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청렴한 선비를 상징하였으며 고고하고 아름답게 여겼습니다. 또 왜가리는 우리나라의 백로과 조류 중에서 가장 큰 새로서, 우리나라 전지역에 걸쳐 번식하는 여름새입니다. 우리나라의 백로와 왜가리의 대표적 번식지로는 이곳 말고도 충청북도 진천 왜가리 번식지[천연기념물 제13호], 경기도 여주 백로와 왜가리 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큰 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첫째부인 김해 허 씨를 잃은 뒤 31살에 지적장애를 가진 둘째부인 안동 권 씨와 재혼 했습니다. 그러나 퇴계는 17년 동안 권 씨와 함께 살면서 권 씨를 나무라거나 홀대한 적이 결코 없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그의 나이 46살 때 권 씨가 세상을 뜨자, 퇴계는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렀을 뿐 아니라 전처소생의 두 아들에게도 친어머니와 같이 시묘살이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권 씨의 묘소 가까이에 암자를 짓고 1년 넘게 머무르며 아내의 넋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유배를 가거나 사행단으로 다른 나라에 가거나 관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부부가 서로 떨어져 지낼 일이 많았기에 부부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실은 부부 사이에 끈끈한 사랑의 흔적이 꽤 남아 있습니다. 그런 끈끈한 부부사랑으로 퇴계 부부 말고도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미암일기(眉巖日記)》의 지은이 유희춘과 그 아내 송덕봉, 서유본과 《규합총서(閨閤叢書)》를 쓴 그의 아내 이빙허각, 윤광원과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인 강정일당 부부가 있지요. 그 가운데 유희춘은 숙직을 서느라 며칠 집에 오지 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