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17년 5월 18일(목) 밤 8시, 삼성동 코우스(KOUS 한국문화의집)에서는 당대 서도소리 최고의 명창으로 알려진 유지숙 명창의 특별한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더 이상 북녘땅에서는 만날 수 없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무가와 민요, 강화도 고사소리가 한 무대에서 공연된다. 민간에 전해지는 무속전통을 담고 있거나 불교 포교목적으로 민간에 전해지며 민요화된 것으로 아픔을 위로하며 나쁜 액운을 막아내는 삶의 축원을 담은 노래들이다.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북녘땅의 전통과 이어져 이제는 어디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렵게 된 소리들이다. 그 노래들이 유지숙 명창에 의해 끊어졌던 숨을 이어가는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다. 이번 <기원과 덕담> 공연은 유지숙 명창이 사비를 들여 만들어낸 국내에서는 네 번째 무대이며, 일본 공연을 2회를 포함하면 여섯 번째 공연이다. 북녘땅에 두고 온 민요의 명맥을 잇는 서도소리 명창 유지숙 2014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아리랑’이라는 제목의 공연이 열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축제인 상상축제의 개막공연이었던 이 공연에서 이춘희 명창의 경기민요, 최경만 명인의 호적풍류와 함께 유지숙 명창의 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 선덕여왕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선덕여왕에게 당나라 태종이 진홍색, 자색, 백색의 모란이 그려진 그림과 그 씨앗 석 되를 보내 왔다. 여왕은 그림에 나비가 없음을 보고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 이는 당 태종이 내가 배우자 없이 홀로 사는 것을 업신여기고 조롱 삼아 보낸 것이다.” 이에 선덕여왕은 자신이 “향기 나는 왕”임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경주에 “향기 나는 임금의 절”이란 뜻의 분황사(芬皇寺)를 세웠습니다. 이처럼 모란은 임금과 부귀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모란은 궁중의 그림이나 무늬의 소재로 즐겨 썼는데 조선시대에는 모란병풍이 일월오봉도나 십장생도 병풍만큼 다수 만들어, 임금이 거처하는 어전이나 침전을 꾸몄습니다. 더불어 왕실의 혼례인 가례(嘉禮)나 왕세자를 책봉하는 예식인 책례(冊禮)와 같은 잔칫날뿐만 아니라, 제례나 상례와 같은 의례 때도 쓰였지요. 모란병풍은 궁중뿐이 아니라 민간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 혼례 때도 마당에 모란이 그려진 큰 병풍을 둘렀습니다. 혼인하는 날만큼은 모란병풍을 두르고 임금처럼 대접을 받기를 꿈꾼 것이지요. 그러나 이 모란병풍은 비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쓴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널리 알리고 그의 저술에 바탕한 전통문화콘텐츠를 현대에 되살리기 위해 설립된 풍석문화재단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후원 속에 발족 2주년을 맞이하였다. 그 첫 번째 성과로 《임원경제지》 16지 중 9번째 지인 〈섬용지(贍用志)〉를 완역하여 펴냈다. 〈섬용지〉는 임원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임원경제지》의 완역을 목표로 번역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이룬 첫 결실로 재단과 연구소가 합심하여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임원경제지》는 서유구 선생이 자신의 일생을 바쳐 완성한 조선시대 실용백과사전의 하나다. 그 내용은 농업ㆍ목축ㆍ어업ㆍ양잠ㆍ상업 따위 생산 전반에 관한 것과 의학ㆍ먹거리ㆍ살림살이ㆍ선비가 알아야 할 일상 실용지식 등 생활 전반의 것을 주제로 하여 16개의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과 분량으로 볼 때 가히 조선의 브리태니커라고 할 만하다. 그 가운데 〈섬용지〉는 《임원경제지》 16지(志) 가운데 9번째 주제로서 건축과 생활용품 및 생활도구에 관한 제반 지식을 담고 있는 생활백과이다. 4권 2책, 모두 99,167자로 이루어진 〈섬용지〉는 우리나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아침저녁은 좀 선선해도 한낮엔 제법 여름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데는 왕골 돗자리도 한 몫 하지요. 우리는 이 돗자리를 만드는 재료인 왕골로 자리, 돗자리, 방석, 송동이, 합 따위를 만들어 씁니다. 왕골은 논 또는 습지에서 자라는 1, 2년생 풀로서 키는 60∼200㎝에 이르며 완초, 용수초, 현완, 석룡초라고도 부르지요.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왕골이 신라시대에 이미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때에는 사직신(社稷神)의 신위에 왕골자리를 깔았으며, 왕실에서 주로 썼고 중국에 보내는 선물로도 사용되었지요. 조선시대에는 매우 귀한 제품으로 궁중이나 상류계층에서 썼음은 물론, 외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도 썼습니다. 완초제품은 그 수요가 엄청났음에도 조선시대 조정 소속의 경공장(京工匠)이나 지방정부의 외공장(外工匠)에는 완초장은 두지 않았으며, 대신 충청도ㆍ경상도ㆍ전라도에 석장(席匠)을 두어 완초석(왕골돗자리)을 비롯한 돗자리의 조달을 담당하게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요가 많았던 왕골제품은 한때 단절위기도 있었지만 1970년 이후 그 제작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장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람들은 봄을 맞아 꽃을 보러 다니느라 바빴다. 이른 봄이면 매화를 찾아 떠나는가 하면 진달래와 철쭉 잔치에 함께 하며, 4월이면 벚꽃잔치에 세상이 들썩였다. 하지만 굳이 먼데로 떠날 필요는 없다. 집에서 가까운 공원에도 온갖 꽃이 흐드러지고, 향기가 진동한다. 한동안 영산홍, 자산홍이 피는가 하면 조팝나무와 이팝나무 꽃도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뿐인가? 겹벚꽃, 밥태기나무 꽃과 매자나무꽃, 산사나무 꽃도 나도 있다고 아우성친다. 잠시 일손을 놓고 가까운 공원에서 꽃구경 하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런데 공원에서 꽃구경을 하는 동안 눈이 찌푸려지기는 일도 있다. 바로 꽃에 사람이 손을 대는 일이다. 이렇게 꽃을 다듬는 풍조가 어디서 왔는지 영산홍을 둥글게 가다듬고 무궁화는 머리를 마치 삭발하듯 잘라 버렸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놔두어야 하지 않을까? 정원 조경수들에 가지치기를 하여 둥글게 만들더니 공원의 꽃들까지 사람의 손자국을 내는 일은 아무래도 인간의 오만이 빚어내는 현상일 것이다. 자연에게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그뿐 사람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는 일은 삼갔으면 좋겠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구시 동구 중대동에 가면 파계사(把溪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 국가민속문화재 제220호 “영조대왕의 도포 (英祖大王의 道袍)”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도포는 1979년 파계사 원통전(圓通殿)의 관세음보살상을 금칠하다가 발견한 것입니다. 이 도포와 함께 발견된 발원문에는 “영조 16년(1740) 9월 파계사 대법당을 수리하고 영조가 탱화 1,000불을 희사하면서 이곳을 왕실을 위해 기도하는 도량으로 삼고 영조의 청사상의(靑紗上衣)를 복장하여 만세유전을 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 발원문은 한지에 적혀 도포에 꿰매져 있습니다. 도포는 조선시대에 임금을 비롯하여 사대부의 외출복으로 입었던 옷인데 이 영조의 도포는 무늬 없는 연한 녹색빛 비단으로 지은 홑옷입니다. 폭이 넓은 두리 소매이며 깃의 모양은 목판깃과 당코깃 모양이 절충된 반당코깃(반목판깃)이지요. 일반인의 도포가 곧은깃(직령깃)인데 견주어 반목판깃의 형태여서 서민과 왕족이 사용한 도포의 양식이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조대왕의 도포는 전해오는 유물 도포 가운데 오래된 것이면서도 무덤 따위에서 출토된 것이 아닌 현존물이어서 형태와 빛깔이 비교적 완전하기에 비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제19대 대통령선거 투표일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도 동성애가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 동성애 문제는 관람객 1,200만 명을 돌파했던 영화 ‘왕의 남자’에도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여자같이 예쁜 광대 공길이 등장하고, 양반과 임금이 그를 동성애 대상으로 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픽션이었지만 실제 역사 기록에도 동성애가 등장한 것들이 있습니다. 《고려사》를 보면 “유행간은 용모가 아름다웠다. 목종(제7대 임금, 재위 997∼1009)이 사랑하여 용양의 총애가 있었으니, 벼슬이 갑자기 합문사인으로 뛰어올랐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 “용양”은 “남색(男色)” 곧 사내끼리 성교의 다른 말입니다. 이렇게 고려 때의 문헌에 동성애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오지만 《세종실록》에도 왕족이었던 이선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지요. “평상시 집에 있을 때는 방 한 칸을 따로 두고서 얼굴 반주그레한 사내종 하나를 데리고 가면서 거처하기를 처첩(妻妾)같이 하니 동네에서 그 종을 가리켜 이 정승의 첩이라고 이르고, 그 종놈은 안방에도 거침없이 출입하며, 그의 처와 동침하게까지 되어 추잡한 소리가 자못 밖에까지 들리되“ -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국보 230호 “혼천의(渾天儀) 및 혼천시계(渾天時計)”는 조선 현종 10년(1669)에 천문학자이던 송이영이 만든 천문 시계로, 서양식 자명종(自鳴鐘)의 원리와 동양에서 오랫동안 써오던 혼천의(渾天儀)를 결합해 만든 것입니다. 이 혼천시계는 홍문관에 설치하여 시간 측정과 천문학 교습용으로 쓰였습니다. 이 “혼천의 및 혼천시계”는 길이 120cm, 높이 98cm, 두께 52.3cm 크기의 나무상자인 궤(시계 장치)와 혼천의(해와 달, 5행성인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 기기)로 구성되어 있지요. 혼천의에는 해 운행 장치와 달 운행 장치가 있어 천구상의 천체 운동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으며, 그 안에 있는 지름 8.9cm의 지구의(地球儀)는 당시로서는 정밀한 세계 지도인 곤여만국전도를 적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구의가 둥글다는 점입니다. 당시 유학자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고 하는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을 믿고 있었던 때였음을 생각하면 대단히 놀랍습니다. 특히 혼천의의 북극 쪽 축은 시계 장치와 톱니바퀴(동력 기어)로 연결되어 있는데, 중심에 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글을 새겨서 문 위에 다는 널조각 곧 현판(懸板)은 성문이나 궁궐의 문, 그 밖의 건축물의 문이나 대청 위 또는 처마 밑에 글씨를 판에 새겨서 걸어 놓는 것을 말한다. 흔히 당호(堂號)라 하여, 그 건물의 성격을 알려준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 특별전을 오는 5월 14일까지 열고 있다. 경운궁(현 덕수궁)의 문과 전각에 걸었던 현판 13점을 통해 대한제국 첫 황궁 경운궁의 변천사를 살피는 전시회다. 지금은 대한문(大漢門)이지만 원래 이름인 대안문(大安門) 현판, 본래 경운궁의 정문 역할을 했지만 증축 과정에서 사라진 인화문(仁化門) 현판 실물을 처음 공개했다. 피나무로 만든 두 현판은 대안문이 가로 347㎝, 세로 124㎝, 인화문이 가로 351.5㎝, 세로 122㎝나 되는 엄청난 크기다. 이 전시회를 통해서 우리가 “대한문”으로 알고 있는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1906년 수리하면서 바뀌기 이전엔 “크게 편안하다는 뜻”인 “대안문(大安門)”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경운궁 정문인 대안문을 지나는 어가행렬” 자료사진에는 대안문 현판이 보이지만 고종이 죽은 뒤 백성들이 통곡한 곳은 대한문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요즈음 산과 들은 물론 집 주변에도 많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핍니다. 이때 피는 꽃 가운데는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희고 탐스러운 꽃이 피는 조팝나무라는 것도 있지요. 조팝나무는 꽃이 핀 모습이 튀긴 좁쌀을 붙인 것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조팝나무 종류는 인가목조팝나무, 산조팝나무, 긴잎산조팝나무, 꼬리조팝나무, 둥근잎조팝나무, 떡조팝나무, 참조팝나무, 갈기조팝나무, 덤불조팝나무, 긴잎조팝나무, 가는잎조팝나무 등 무려 20여 종이나 되지요. 조팝나무 뿌리는 상산(常山) 또는 촉칠근이라 하여 한약재로도 다양하게 쓰입니다. 《동의보감》에 맛은 쓰며 맵고 독이 있으나 학질을 낫게 하고 가래를 토하게 할 뿐 아니라 열이 심하게 오르내릴 때 빠르게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대마도 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이 상산을 궁중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궁중에서도 썼던 한약재임을 짐작할 수 있지요. 최근에는 버드나무와 함께 조팝나무에서 해열제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아스피린 원료를 추출했다고 합니다. 조팝나무는 높이가 1~2m까지 자라며, 잎은 어긋나고 길이 2~3㎝의 달걀 모양입니다. 꽃은 4~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