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萬木迎秋氣 어느덧 나무마다 가을빛인데 蟬聲亂夕陽 저녁노을 어지러운 매미 소리 沈吟感物性 제 세상 다하는 게 슬퍼서인가 林下獨彷徨 쓸쓸히 숲속을 홀로 헤맸네 위 한시는 조선 후기의 여류문인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년~1832)의 “가을매미 소리[聽秋蟬]”입니다. 시인은 숲속을 홀로 쓸쓸히 헤맵니다. 매미소리는 여름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인데 시인의 맘속에 다르게 비칠 뿐입니다. 강정일당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학문과 교육 모두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경서에 두루 통하였으며, 시문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그녀는 아홉 자녀가 모두 돌이 되기 전에 죽는 불행을 당했고 집이 가난하여 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면서도 남편의 학문 뒷바라지에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강정일당은 바느질하면서도 남편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깊은 뜻을 헤아렸지요. 그녀의 재능은 결국 남편을 뛰어넘었고, 남편과 학문적 토론을 함께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남편은 뒷날 “부인도 내가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것이 있으면 기뻐하였고, 한 가지라도 허물이 있으면 걱정하여 충고하였다. 내가 우둔하여 모두 실천하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낮때와 밤때가 똑 같다 하느니 오면 앗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고 고요히 깊어가는 갈 선비는 졸 닦고 위 노래는 일본 교토의 한밝 김리박 선생이 쓰신 “갈 같 날”입니다. 여기서 ‘갈같날’은 추분(秋分)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며, ‘앗’은 책, ‘갈’은 가을, ‘졸’은 지조(志操)를 뜻합니다. 조금 쉽게 풀어본다면 “추분은 낮과 밤이 똑 같다 하느니 / 추분 오면 책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나는 때라 / 고요히 깊어가는 가을, 선비는 지조를 닦고 있어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추분은 낮과 밤이 같다고 하는데 춘분과 함께 바로 “더함도 덜함도 없는 날”이어서 우리는 이때 중용(中庸)을 생각해봐야만 합니다. 세상일이란 너무 앞서가도 뒤쳐져도 안 되며, 적절한 때와 적절한 자리를 찾을 줄 아는 것이 슬기로운 삶임을 추분은 깨우쳐 줍니다. 더불어 가을 벌판 고개 숙이는 벼가 보여주는 겸손, 그리고 한여름 강렬한 햇빛과 천둥과 비바람을 견디어낸 벼의 향[香]를 생각해볼 때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린 원자가 자라나서 나이가 차면 선왕의 뒤를 이을 왕세자로 책봉됩니다. 왕세자의 책봉은 신하들의 요청으로 시작되는데 보통 8살 무렵에 하게 되지요. 원자의 나이와 학문이 세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을 신하들이 임금에게 아뢰고 임금은 새 봄의 좋은 날을 가려 세자의 책례를 거행하였습니다. 책례는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는 임명서를 수여하는 것이 중심이 되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말들을 보면 책(冊) 자를 써서 책봉(冊封), 책례(冊禮)라 하고 왕세자 책봉을 준비하는 임시 기구도 “책례도감(冊禮都監)”라 했으며, 세자의 임명서는 “죽책문(竹冊文)”이라 하였지요. 이렇게 책봉은 책(冊) 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임명서가 “죽책문(竹冊文)”인 것에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요즈음 임명장은 대개 종이를 쓰지만 당시에는 대나무로 임명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죽책문인 것입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대나무에 글을 써 온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지요. 그러나 옛날 죽책은 대나무에 직접 붓으로 글씨를 쓴 대신 조선시대의 죽책문은 대나무에 글씨를 새겨 넣었습니다. 또 이와 달리 임금과 왕비에게 올리는 책봉 문서는 옥으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가면 두꺼비 모양의 벼루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바로 보물 제1782호 “청자 퇴화문(붓이나 대쪽으로 유색토를 도자기 몸에 두껍게 쌓아올리고 새기는 무늬) 두꺼비모양 벼루”가 그것인데 이 벼루는 태안 앞바다 밑에서 대접, 접시, 완, 발우, 주자, 향로, 도기, 목간과 함께 출토된 것입니다. 특히 같이 출토된 목간에서 ‘탐진현재경대정인수호부사기일과(耽津縣在京隊正仁守戶付沙器壹裹)’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데, ‘탐진(현재의 강진)에서 개경에 있는 대정 인수 집에 도자기 한 꾸러미를 보낸다.’는 내용임을 알 수 있지요. 이 벼루는 두꺼비의 머리와 몸체, 다리에 이르기까지 비례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고 눈동자와 발톱까지 잘 표현했습니다. 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두꺼비 형태는 물론 철화와 퇴화 기법을 써서 검고 하얀 반점으로 울퉁불퉁 도드라지게 표현한 두꺼비 피부는 압권입니다. 앞ㆍ뒷발과 주둥이는 오목새김선(음각선)으로 세부 모양을 처리하였지요. 이 청자벼루는 함께 출토된 청자와 목간 내용을 분석하여 만든 때가 대체적으로 12세기 전반 무렵으로 짐작합니다. 청자 벼루는 고려시대 보기 드문 것으로 유물이 그리 많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 경주박물관에 진열되어있는 기와 가운데 사람이 웃는 모습의 얼굴무늬수막새가 있습니다. “신라소면와당” 또는 "인면기와"라고도 하는데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름이 14cm 정도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기와입니다. 이 기와는 "신라인의 미소"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요.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에 가볼 수 없으니 이 기와로 신라인의 얼굴이나 미소를 짐작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라의 얼굴무늬수막새 같은 것이 백제와 탐라에도 있습니다. 제주민속박물관에 전시된 “탐라인의 미소”라 불리는 수막새는 여인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수막새는 1960년대 초기에 절터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이 수막새는 척박한 땅, 바람 많은 고장에서 시달리며 살아온 제주여인의 얼굴이 기와 와당으로 들어간 모습입니다. 풍요로운 얼굴에서 원만하고 너그러운 그리고 포근한 제주 여인의 마음을 엿보는 듯하지요. 이 “탐라인의 미소”는 제주도 돌하르방과 함께 탐라인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입니다. 그런가 하면 충남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 중턱의 암벽에 새겨진 “서산마애삼존불”이 있습니다. 서산마애삼존불은 가운데 2.8m의 석가여래입상, 오른쪽에 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올해는 국보 70호이자 세계기록 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낸 지 570돌이 되는 해다. 1446년에 세종이 직접 펴낸 원본은 1940년 일제 강점기에 발견되어 극적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이 소장하게 되어 간송본이라 부르는데 이 간송본은 지난 해 있는 그대로 복간 되어 첫 판이 몇 달 만에 거의 매진되었을 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복간본을 해설한 김슬옹 교수(인하대 교육대학원)가 해례본 강의에 나섰다. 지금은 대학 교양 전공 비전임 교수로 훈민정음 해례본 강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례본은 199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오른 만큼 이제 전 인류가 인정한 보물 중의 보물이며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책이라 하여 무가지보라 부른다. 김 교수는 “이 책은 인류 최고의 문자 해설서답게 당대 최고의 철학, 음률학 현대 언어학보다 수준이 높은 언어학, 문자학을 아우르고 있다. 더욱이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지식과 정보를 나누라는 영원히 빛날 따뜻한 사람다움의 뜻을 담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해례본이 실제 우리나라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학계에서도 교육에서도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쑥부쟁이는 양지가 바르고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우리가 흔히 길가나 들판에서 보는 것은 개쑥부쟁이다. 권영초·왜쑥부쟁이·가새쑥부쟁이라고도 한다. 꽃은 7∼10월에 피고 열매는 달걀 모양이고 털이 나며 10∼11월에 익는다.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로 먹거나 기름에 볶아먹기도 한다. < 사진 = 이명호 작가 제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저 걸개에 핀 말꽃을 보아라 하늘벽에 걸린 걸개 한 그루 말꽃“ “‘말꽃’은 말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 또는 말로써 피워 낸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으로, ‘말의 예술’이라는 본디 뜻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안성맞춤인 낱말이다.” 우리말대학원장과 국어심의위원장을 지낸 국어학계의 원로 김수업 선생은 이렇게 문학을 “말꽃”이라 표현한다. 그 말꽃이 최인호 시집 《바람의 길목에서(교음사)》에서 활짝 피어난다. 얼마 전 일본 교토의 김리박 시인이 《울 핏줄은 진달래(도서출판 얼레빗)》란 순 토박이말 시조집을 낸 바 있는데 최인호 시인 역시 순 토박이말로 시집을 내 화답한다. 토박이말만으로도 얼마든지 맛깔스러운 시, 말꽃을 피울 수 있음을 중명한다. “눈으로 맞는 새해 펄펄 아우성 달빛 별빛 머금은 천둥번개 가루들 네 집은 큰산 큰그늘 별빛 따라 어둠 따라 바람 따라 놀더니 오늘은 누항 저잣거리에서 몸을 푸는구나.“ 시집의 시작을 그는 “눈”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하동 두메에서 자연과 함께 살더니 자연과 하나 되었거니 “앙칼진 아침 / 너그러운 햇살 비칠 때 / 떠나지 못하던 임이 / 떠남을 보누나 / 떠나지 못함으로 떠나감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린 세시맞이 오(五)대감 한가위 잔치 행사에 가봤다.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남산골 한옥마을을 가득 채웠다. 우선 가장 많이 사람들이 몰린 곳은 “봉산탈춤” 공연이었다. 봉산탈춤은 오래전부터 황해도 여러 고장에서 추어오던 탈춤의 하나다. 중부지방의 양주별산대놀이에 견주면 뛰는 춤이 많아 활발하다. 사상좌춤, 팔목중춤, 노장춤, 사자춤, 양반 말뚝이춤 따위 과장들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또 파계승, 몰락한 양반과 하인, 무당들을 등장시켜 무속과 불교 신앙 그리고 권선징악의 테두리 안에서 호색과 현실 폭로의 익살과 웃음을 자아낸다. 봉산탈춤은 사상좌춤으로 시작하여 굿으로 끝나고 있지만, 다른 가면극에 견주면 종교적 냄새는 약하고 민중의 오락적 요소가 훨씬 강한 놀이라는 평가다. 봉산탈춤 말고도 민씨 가옥 안채에서 열린 선조들의 차례 예절과 문화를 바로 알기 위한 “차례상 해설” 프로그램도 사람들이 몰렸다. 또 활 만들기 체험, 팽이 만들기 체험, 그네뛰기 따위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9월 15일부터 16일까지 이틀 동안,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열리는 세시맞이 오(五)대감 한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이 한가위에는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전해 오는데 그 세시풍속 가운데 민속놀이는 강강술래, 줄다리기, 가마싸움, 소놀이, 거북놀이, 밭고랑기기, 원놀이, 올게심니, 소싸움, 닭싸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밭고랑기기”는 전남 진도에서 전해지는 것인데 한가위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깁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고 믿었습니다. 더 재미난 것은 “거북놀이”입니다. 거북놀이는 수수 잎을 따 거북이 등판 마냥 엮어 이것을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어 거북이 흉내를 내는 놀이지요. 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동해 용왕의 아드님 거북이 행차시오!”라고 소리치며, 풍물패와 함께 집집이 방문하는데, 대문에서 문굿으로 시작하여 마당, 조왕(부엌), 장독대, 곳간, 마굿간, 뒷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들보 밑에서 성주풀이를 합니다. 이때 조왕에 가면 “빈 솥에다 맹물 붓고 불만 때도 밥이 가득, 밥이 가득!” 마구간에 가면 “새끼를 낳으면 열에 열 마리가 쑥쑥 빠지네!” 하면서 비나리(걸립패가 마당굿에서 잘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