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해부터 형제와 부자 다툼으로 시끄러웠던 롯데그룹, 그와 함께 롯데는 “한국기업이냐 아니냐?”로 몸살을 알아 왔습니다. 물론 롯데 소유자들은 한국인의 혈통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한국인, 한국기업이란 것에 의심이 갑니다. 먼저 롯데는 한국에서 큰돈을 벌어 일본으로 가져간다고 하고, 국가기간산업은 거의 하지 않는 것이 그 의심의 가운데에 있습니다. 또 롯데백화점은 사대주의 근성을 가진 것인지 신문광고를 영어로 광고하는데 신이 났습니다. 우리 신문은 여러 차례 그를 꾸지람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광고에도 여전히 영어가 주인입니다. “BRAND SALE”와 “Lovery Life”로 기선을 제압하더니 그 아래 구체적인 행사 소개에는 “SALE”, “Festival”과 함께 각종 상표들이 영어로 돼있고, 한글로 쓴 것들도 “브랜드”, “썸머 비치웨어”, “트레디셔널 시즌오프”, “에어컨 쿨썸머 페스티벌”, “블랙마탄싯봉 페스티벌”처럼 영어의 한글화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현재 롯데는 위기에 몰려있습니다. 검찰은 롯데의 모든 곳을 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의 생각은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제2롯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도자기나 향로에 동물이나 사물의 모습을 본떠 꾸민 것을 상형청자(象形靑磁)라고 합니다. 그 상형청자들에 등장하는 것들은 주로 오리, 사자, 사람, 용, 어룡 등이 있는데, 연적이나 주전자, 베개, 향로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가운데 오리 모양은 연적으로 많이 만들어졌지만 보물 제1398호 “청자 상감오리모양 주전자”처럼 주전자로 만든 것도 있지요. 이 주전자는 검정색 흑토로 눈을 표현한 오리의 머리와 주둥이가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이며 둥글게 만든 오리 몸체 전면을 날개의 깃털이 덮고 있습니다. 또 날개 밑의 털은 섬세한 오목새김(음각)으로 새겨 입체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꼬리 부분을 등글게 구부려 손잡이로 만든 것은 기막힌 착상이지요. 또 오리의 등 위에는 연잎과 그 위에 연꽃이 올려 있습니다. 또 뚜껑은 연밥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연꽃 모양이어서 사람들의 눈을 끕니다. “청자 상감오리모양 주전자”는 지금 남아서 전해지는 예가 극히 드문 상형청자(像型靑磁)로 고려시대 도자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상형청자는 대체로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를 때 가장 많이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중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근래에 조선에는 전래의 진적서화(珍籍書畵)를 헐값으로 방매하며 조금도 아까워할 줄 모르니 딱한 일이로다. 이런 때 오세창씨 같은 고미술 애호가가 있음은 경하할 일이로다. 10수년 이래로 고래의 유명한 서화가 유출되어 남는 것이 없을 것을 개탄하여 자력을 아끼지 않고 동구서매(東購西買)하여 현재까지 수집한 것이 1,175점에 달하였는데, 그중 150점은 그림이다.” 1915년 1월 13일 치 ‘매일신보’에 ‘별견서화총(瞥見書畵叢)’이라는 제목으로 난 기사 내용입니다. 역관이었던 오세창(1864 ∼ 1953)이 동서로 뛰어다니며 골동 서화를 산 까닭은 조선왕조가 망하면서 전통문화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 헐값으로 일본에 팔려나가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지요. 전형필이 골동서화를 수집하여 1938년 간송미술관을 설립한 된 것도, 오봉빈이 1929년 조선미술관을 개설한 것도 바로 오세창의 권고와 지도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오경석에게 이어받은 골동서화 감식안과 민족정신은 그의 집뿐만 아니라 전형필, 오봉빈을 민족문화유산 지킴이로 만들어냈습니다. 또 그는 아버지와 자신이 수집한 풍부한 문헌과 고서화를 토대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열째 하지(夏至)다. 해는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인 하지점(夏至點)에 자리 잡게 되는데 북반구에서 밤이 가장 짧아졌지만, 낮시간은 14시간 35분으로 1년 중 가장 길다. 정오의 해 높이도 가장 높고, 해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몹시 더워진다. 북극 지방에서는 온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이면 모두 끝나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하지가 되면 모내기도 끝나가지만 가뭄이 들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예전에는 기우제를 어떻게 지냈으며, 다른 나라는 어떨까? 그리스ㆍ로마 신화에 보면 주신(主神)인 제우스가 비를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우스의 신목(神木)인 떡갈나무 가지에 물을 적시며 비손했다고 하며, 로마에서는 소형 신상(神像)을 티베르강에 흘려보내면서 비 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게르만 민족 사이에서는 처녀를 발가벗겨 물을 뿌리면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인도에서는 개구리에게 체를 통해 물을 뿌리거나 뱀의 모조품을 만들어 물을 뿌리거나 물을 끼얹는 풍습이 있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년 전인 2013년 7월 군산시 산북동 서흥2구 마을 가까운 도로 공사 현장에서 공룡 발자국 수십 개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에 같은 해 12월 군산시에서는 학술 용역으로 ‘군산 산북동 공룡 발자국 화석지 수습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대부분 초식 공룡 발자국이었으며 이밖에 육식 공룡과 익룡 발자국 화석도 확인했지요. 군산 산북동 공룡과 익룡 발자국 화석 산지에서는 초식 공룡 보행렬 11개과 발자국 184점, 대형 육식 공룡 보행렬 1개와 발자국 9점, 소형 육식 공룡 보행렬 8개와 발자국 27점, 익룡 발자국 26점, 보행렬이 확인되지 않는 육식 공룡 발자국 화석 36점 등 모두 280여 점이 발견됐습니다. 군산 산북동 공룡과 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발자국 화석의 다양성과 밀도가 높고 백악기 당시 공룡의 행동 특성과 고생태 환경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지요. 따라서 문화재청은 2014년 6월 11일 천연기념물 제548호로 지정하였고 지정된 면적은 4,109㎡입니다.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천연기념물 제411호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 산지가 가장 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건드리지 말아요 겨우 겨우 불러 모은 노랑나비 포르릉 날아버리면 어떡할래요 깊은 산 속 청정한 물가에 터 잡은 까닭 알고 있나요?“ 김승기 시인의 “노랑물봉선“ 시 일부입니다. 노랑물봉선은 물방울이 조롱조롱 매달린 듯한 키가 40~80cm인 노랑꽃을 지금부터 피기 시작하여 한 여름을 수놓는 토종 들꽃입니다. 소녀들이 손톱 끝을 발갛게 물들이던 울밑에선 붕숭아는 고향이 인도라 하지만, 산골짜기 물가에 수줍은 듯 곱게 피는 꽃 노랑물봉선은 고향이 우리나라라고 하지요. 이 녀석과 닮은 꽃들은 빛깔이 조금 옅은 미색물봉선과 함께 붉은 자주빛의 물봉선, 흰물봉선, 가야물봉선 따위가 있습니다. 이 노랑물봉선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인데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아서 그런가요? 봉선화과 식물의 잘 익은 꼬투리(씨앗주머니)는 살짝 닿기만 해도 터지면서 씨앗이 총알처럼 사방으로 튀어 나갑니다. 그래서 조금만 건드리면 화를 잘 내는 사람과 같다고 하지요. 노랑 바탕에 붉은 점들이 박혀 줄기와 잎의 겨드랑이에 고깔 모양으로 피는 모습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줍은 어린애의 소박한 모습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군자 가운데 대나무가 남성적이라면 난초는 여성적이며 특히 명문가의 귀인을 뜻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왕비의 난전(蘭殿), 미인의 침실을 난방(蘭房)이라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지요. 중국의 《본초경》에 난초를 기르면 집안에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고 잎을 달여 먹으면 해독이 되며 노화현상을 막는다고 쓰여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난초 그림은 귀신을 물리치는 뜻으로 여겨왔지요. 난초그림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는 흥선대원군(이하응, 1820∼1898)이 만 71살 때인 1891년 유 씨의 부탁을 받고 그린 12폭 흥선대원군 이하응필 묵란도가 있습니다. 그림은 2폭씩 대칭구도를 이루도록 배치되어 있는데, 각 폭에는 다양한 괴석과 난초가 어우러져 있지요. 난초잎은 뿌리에서 촘촘히 자라나 위로 한껏 기세를 뿜으며 부드럽게 퍼지게 표현되었는데, 흥선대원군의 후기 난초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체는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받았으나 만년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를 선보였는데, 행서(行書)로 쓴 묵란도 병풍의 그림 제목이 바로 그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지요. 이 병풍은 드물게 보는 12폭 병풍으로 각 폭의 아랫부분이 약간씩 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명주는 흔히 비단이라 하는 것으로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명주실로 짠 무늬가 없는 옷감입니다. 그런데 명주는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를 치는 일부터 시작되지요. 누에를 키워 고치를 만드는 일 곧 양잠은 그 기록이 고조선 때부터 나타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정교한 직물을 당나라에 보내기도 하였을 정도로 명주 제작기술은 대단했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했으며 그 빛깔과 품질이 뛰어났습니다. 1915년 요시나가(吉永彦太郎)에 의하여 발표된 우리나라의 옷감이름에 따르면 20세기 초만해도명주・백명주・색명주・생명주가 있었고, 또 분주ㆍ내주(內紬)ㆍ토주ㆍ영변주ㆍ길군주ㆍ희천주ㆍ태천주ㆍ성천주ㆍ포천주ㆍ이천주ㆍ철원주ㆍ춘천주ㆍ상주주처럼 옷감을 짠 지역 이름으로 된 다양한 명주들이 있었지요.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을 정도로 다양했지만 조선 후기이후 개량식 직기를 써서 대량으로 짜는 바람에 재래식 명주짜기는 그뒤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요즘에는 화려한 견직물에 밀려 명주의 수요가 줄어들어 간신히 그 명맥만을 이어오고 있지요. 그 명주의 옷감 짜기 기술에 대한 전통을 잇기 위하여 1988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장식화인 책거리그림[冊架圖]을 잘 그리는 으뜸화가로 알려진 이형록(李亨祿, ? ~ 1808)은 조선 말기의 도화서 화원 소속으로 민화풍의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그의 가계를 보면, 증조부인 이성린으로부터 조부인 이종현 그리고 아버지인 이윤민, 아들인 이재기의 6대에 걸쳐 16명의 화원을 배출한 쟁쟁한 집안입니다. 이형록은 이응록(李應祿) 또는 이택균(李宅均)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는데 이응록 이름으로 그린 책가도 병풍이 샌프란시스코대학에 소장되어있으며 이택균 이름의 책가도 병풍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책가도 외에도 그의 그림 가운데는 효설행려도(曉雪行旅圖)가 있는데 이 그림을 보면 필치나 나무 그리는 법, 인물묘사법 따위에서 김홍도(金弘道) 화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형록의 이름난 책가도 병풍 가운데 4점은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개인소장의 책가도 화첩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침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는 현대화랑과 공동으로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 문자도(文字圖)책거리(冊巨里)를 6월 11일부터 8월 28일까지 열고 있지요. 전시회는 이형록의 책가도 병풍(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239호 “고운묘 출토유물(高雲墓 出土遺物)”이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1986년 9월 문중에서 무덤을 옮기다가 발견되었는데 조선 중기 호남사림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고운(高雲)의 무덤에서 출토된 옷과 유물들입니다. 고운(1479∼1530)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의 할아버지로 조선 중종 기묘사화 때 화를 입어 벼슬을 잃고 고향으로 내려 왔다가 중종 25년(1530)에 죽었습니다. ▲ 고운묘 출토 "명주겹철릭"(문화재청 제공) 유물들 가운데 옷들을 보면 포(袍)의 일종으로 옷깃이 둥근형태의 옷인 단령 1점, 옷깃이 곧은 형태의 옷인 직령 2점, 웃옷에 치마가 연결된 형태의 옷인 철릭 6점, 직령과 비슷하나 소매가 짧은 형태의 옷인 답호 3점과 바지류 5점, 모자 2점, 버선 2점, 이불 2점 등이 있으며, 그밖에 만장(輓章), 기(旗), 널, 자리, 칠성판도 있었지요. 옷들은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 초의 것으로 주검에 입힌 것들과 관의 빈 공간을 채워주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편입니다. 무명, 모시, 명주를 재료로 한 이 옷들은 고운이 생전에 입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