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능생이, 허벅대바지, 시불통개(웃동), 허벅등생이, 애기대바지능생이, 애기등덜기, 펭, 버럭지, 옴팍지, 촐래단지, 방춘이, 허벅등덜기, 등덜펭, 대황... 무척 정겨운 이 이름들은 제주 옹기의 이름입니다. 이름이 다양한 만큼 그 쓰임새도 다양한 제주 옹기 가운데 뭍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물허벅’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뭍사람들이 써오던 정감어린 옛 그릇들이 플라스틱이나 스텐리스 또는 현대식 자기에 밀려 사라지듯 제주 옹기 역시 누천년 써오던 그릇들이 산업화의 물결로 사양길에 접어든 것이 1970년 초입니다. ▲ 촐래단지(반찬그릇)-맨윗줄, 애기등덜기와 펭-가운데, 애기대바지능생이, 애기대바지능생이ㆍ허벅능생이ㆍ시불통개 - 맨아래 그러나 이렇게 사라져버리고 마는 제주 옹기의 맥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하여 젊은이들이 그 뜻을 모아 제주 옹기 지키기에 팔을 걷어붙였지요. 이들은 제주시 옛 구억분교 자리에 제주옹기배움터를 만들고 2009년 3월에는 제주옹기박물관을 만듭니다. 제주 옹기는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릇의 기본이 되는 흙을 찾아 다루는 질대장, 그릇을 만드는 도공장, 가마를 축조하는 굴대장, 불을 때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 공표한 날입니다. 대한제국 말기 개화기를 맞은 우리나라는 한글을 공용문(公用文)으로 채택하고, 또 학교를 세워 각종 교과서를 한글로 펴내야 했지만, 통일된 정서법(正書法, 말을 올바르게 적는 방법)이 없어서 정부는 1907년 학부(學部) 안에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를 설치하여 정서법 통일안을 마련하도록 하였지요. 그래서 나온 것이 어윤적이능화주시경권보상송기용지석영이민응윤돈구 등 8인의 위원이 작성한 국문연구(國文硏究)였습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자 국문연구소도 해체되고 국문연구도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지요. 이후 조선어학회는 1930년 12월 13일 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할 것을 총회의 결의로 정하고, 그 첫 원안(原案)을 1932년 12월에 작성하였습니다. 원안작성에 참여한 위원은 권덕규김윤경박현식신명균이극로이병기이윤재이희승장지영정열모정인섭최현배 등 12인이었지요. 그 뒤 3개년에 걸쳐 125회의 회의를 거듭하였고, 그 결과로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당시의 한글날은 10월 29일)을 기하여 이 새로운 안을 세상에 공표하니 이것이 곧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정부는 3일 오는 2017년부터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했다. 또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부합동브리핑에 나선 황교안 국무총리는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며 교학사 교과서를 뺀 7종 교과서를 모두 좌편향으로 매도하는 등 극우주의를 방불케 하는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교육부가 3일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만 고시를 확정하면서 행정예고 기간 동안 접수된 의견 처리 결과를 보면 정부의 고시가 무리한 것임을 자인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의견을 제출한 47만3880명 중 반대는 32만 1075명으로 전체의 67.75%를 차지했다. 반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의견은 15만2805명으로 32.24%에 그쳤다. ▲ 지난 10월 17일 열린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 범국민대회 모습 ▲ 광화문 네거리에서 한 고등학생이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론도 싸늘하다. 2일 내일신문에 따르면, 1일 이 신문과 여론조사 업체 '디오피니언'이 진행하는 정례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찬성은 응답자의 32.3%, 반대는 59.0%였다. 박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어의로서 내의원에서 일했습니다. 내의원(內醫院)은 조선 시대에 왕실에서 쓰이던 약을 조제하던 관청이지요. 고려시대에는 이 내의원과 같은 일을 하던 곳으로 상약국(尙藥局)이 있었습니다. 충북 음성 한독의약박물관에 가면 이 상약국에서 쓰던 보물 제646호 청자상감 상약국 글씨 음각운룡무늬 뚜껑그릇이 있지요. ▲ 보물 제646호 청자상감 상약국 글씨 음각운룡무늬 뚜껑그릇 (한독의약박물관 제공) 청자상감 상약국 글씨 음각운룡무늬 뚜껑그릇[靑磁 象嵌尙藥局銘 陰刻雲龍文 盒]은 한 자 이름으로 보통 합(盒)이라 부르며 뚜껑 달린 원통형의 그릇으로, 높이 9.6㎝, 아가리 지름 7.5㎝, 밑지름 6.0㎝의 크기입니다. 고려청자에는 이런 뚜껑그릇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키가 작고 납작한 형태와 키가 크고 원통형을 이루고 있는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뚜껑그릇은 키가 크고 원통형으로 단순한 모양입니다. 그릇 아래쪽과 뚜껑 위쪽 모서리를 비스듬히 깍아내 매우 부드럽고 듬직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요. 뚜껑 위의 둥근 평면에는 정교한 솜씨로 구름과 학 모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 뚜껑그릇에서 주목되는 것은 몸체 윗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악기 가운데 두 줄을 활로 마찰시켜 연주하는 해금(奚琴)은 깡깡이, 앵금 등의 이름으로도 불렀다. 《고려사》 권71(「악지」)에 속악기의 하나로 나오기에 고려시대에 이미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해금은 이후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연주되고 있다. 관현합주에 해금이 편성될 때, 지속음을 내면서 관악기의 선율을 따라 연주하므로 비사비죽(非絲非竹)이라고 하여 연주 특성상 관악기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런 두 줄의 미학, 해금의 중견 연주자 이유라는 오는 11월 7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공연을 한다. 이날 공연은 "해금 다스름 설레임", "즉흥 시나위", "천자뒤풀이", 김세종제 춘향가로 듣는 이유라의 해금산조"다. 반주는 대금에 국립국악원 단원 김상연, 거문고에 경기도립국악단 수석 허익수, 아쟁에 한무전통예술단장 신재현, 장구와 북에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 정준호, 퍼커션에 에스닉 팝 그룹 락 대표 이충우가 맡으며, 판소리는 제25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금상을 받은 최건이 해줄 예정이다. 이유라는 난계예술제 문화부장관상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유라 독집음반 “The Moment of Lee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08년 불에 탄 숭례문 복원에 금강송이 쓰였습니다. 금강송이란 소나무 가운데 껍질이 붉고 곧게 위로 뻗는 것을 말합니다. 금강산에서 설악산을 거쳐 경북 울진, 봉화까지 백두대간을 타고 자라는 것으로 잘 갈라지지도 않고 뒤틀리지도 않으며 잘 썩지도 않아 예부터 궁궐 건축이나 배를 건조하는데 쓰였지요. 육지에서 자란다고 하여 육송(陸松)이라고도 불렀습니다. ▲ 660년 된 천연기념물 제160호 제주 산천단 곰솔 무리 그에 견주어 주로 바닷가에 자라 해송(海松)이라고도 불리는 곰솔도 있지요. 곰솔은 보통의 소나무와 달리 잎이 억세고, 겨울눈은 붉은색이 아닌 회백색인 것이 특징입니다.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黑松)이라고도 하는데 곰솔이라는 말도 검은솔에서 왔다고 합니다. 곰솔 가운데는 제주시 516로(어라일동) 산천단에 있는 8 그루의 곰솔 무리(천연기념물 제160호)도 있습니다. 이 곰솔은 나이가 500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평균높이는 29.7m, 평균둘레는 4.35m로 우람하고 신비스럽지요.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날씨가 나쁠 때에는 백록담에 올라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곡이란 무엇일까? 가곡(歌曲)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따르면 소규모 국악 관현(管絃) 반주에 맞추어 남성과 여성들이 부르던 한국 전통 성악(聲樂)이라고 풀이한다. 가곡은 시조, 가사와 함께 정가에 속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다. 그러나 가곡을 서양가곡쯤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이런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 가곡을 실제 들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이 어제 10월 30일 저녁 7시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렸다. 여류가객 강숙현의 가곡(정가)입문 30주년을 기념하는 풍류단 시가인과 함께하는 강숙현의 정가와 노래 풍류, 시절을 노래하다(제6회 강숙현 독창회)가 그것이다. ▲ 조수미의 나 가거든을 열창하는 강숙현 가객 ▲ 차창호와 천지개벽 남사당놀이패가 특별출연하여 청중이 직접 버나돌리기 체험을 하게 한다. 공연 전 풍물패가 등장한다. 차창호와 천지개벽 남사당놀이패가 특별출연하여 한바탕 신명을 풀어놓는다. 특히 이들은 풍물 가락에 더하여 무동놀이와 버나돌리기로 청중들의 넋을 빼놓는다. 더하여 버나돌리기는 청중 한 명을 무대에 올려 직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제주의 잠녀는 일본의 해녀보다 추위에 강하다. 또 임신이나 월경 중이라도 꺼리지 않고 사철 작업을 한다. 잠수를 할 때는 ‘소중기’하고 부르는 남색 무명의 수영복을 입는다. 앞쪽은 젖가슴까지 덮지만, 뒤쪽은 등이 다 드러나고 가느다란 옷감이 열십자로 아래쪽에 붙어 있다.” 이는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제주에 머물며 제주문화를 연구했던 일본인 이즈미 세이이치 씨가 쓴 《제주도(濟州島)》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에 따르면 해녀들은 ‘소중기’를 입고 물질을 했습니다. 소중기는 소중이, 수견, 도곰수견, 물옷이란 말로도 부르지요. ‘소중기’는 제주말로 속옷을 뜻하는 것으로 원래 집에서 짠 무명으로 만들었는데 차츰 직물공장에서 만든 광목을 썼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소중기’ 하면 흰옷을 떠올리지만 제주 특산물인 감으로 물들인 갈옷을 선호하는 제주답게 갈옷 소중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는 미역을 짊어져도 때가 덜 타고 생리중이어도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소중기는 넉자 가량(가로 25cm, 세로 200cm)의 무명옷감으로 짓는데 조각보 방식으로 한 번에 접어 만든다고 하지요. 다만 가슴 부분은 다른 옷감으로 덧대기 때문에 두 겹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활 지어 송지(松枝)에 걸고 / 옷은 벗어 남게 걸고 석침(石枕) 베고 누었으니 / 송풍은 거문고요 /두견성은 노래로다 아마도 이 산중에 / 사무한신(事無閑身)은 나뿐인가” 위 노래는 황해도지방의 대표적인 민요 <산염불(山念佛)> 일부입니다. 산속에서 활과 옷을 벗어던지고 돌베개에 누웠으니 솔바람 소리가 거문고 소리로 들립니다. 이렇게 자연과 하나 되어 아무 일 없이 한가함을 누리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을 듯 하지요. ▲ 옷을 벗어던지고 돌베개에 누웠으니 솔바람 소리가 거문고 소리로 들리누나, <산염불>,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산염불>은 <잦은염불>과 짝을 이룰 때는 <긴염불>이라 부르는데 곡이름 속에 ‘염불’이라는 말이 있고, ‘∼아미타불이로다’로 끝나는 후렴구 때문에 얼핏 불가(佛家)의 음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설이나 음악적 특징은 불교음악과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이에 견주어 <잦은염불>의 사설에서는 불교적인 느낌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산염불>은 이렇게 점잖고 문학적인 느낌을 주지만, 또 다른 황해도 지방의 대표적인 민요 <사설난봉가>는 “앞집 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려말, 조선초에 향나무를 바닷가 개펄에 묻어두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침탈에 고통을 받던 백성이나 스님이 침향을 정성으로 준비하여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이 오시기를 비는 뜻이었지요. 묻은 향나무가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침향이 된 뒤에는 서해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르듯이 스스로 물위로 떠오른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매향의식을 한 뒤엔 그곳에 매향비(埋香碑)를 세웠습니다. ▲ 고려 우왕 13년(1387)에 세운 경남 사천의 보물 제614호 매향비 그때 세웠던 매향비는 곳곳에 남아 있는데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의 보물 제614호 매향비도 있지요. 비는 거의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써서 비문을 새겨 놓았는데, 표면의 굴곡이 심합니다. 글자 크기가 같지 않고 가로세로도 잘 맞지 않으며, 글자 수 또한 각 행마다 같지 않지요. 다만 글자체에 예스러움이 담겨 있어 당시 지방의 글씨체를 엿볼 수 있습니다. 판독된 내용에 따르면, 고려 후기 사회가 혼란하던 때에 불교 스님들을 중심으로 4,100여 명이 계(契)를 조직하여, 임금의 만수무강, 나라의 부강, 백성의 평안 등을 기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