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성우)은 교보문고(대표 허정도)와 함께 5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나라의 보물 《훈민정음》 해례본을 복간했고 이를 국민과 나누겠다고 선언했다. 교보문고가 만들고 유통하는 이번 복간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의 후원으로 간송미술관에 보관하고 있는 국보 제70호를 정밀한 고증과 작업을 거쳐 현재 상태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 《훈민정음 해례본》 모음 이번 복간사업으로 펴낸 영인본(원본을 복제한 책)은 기존에 만들어진 복제품과는 격이 다르다. 그동안 대중에게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우리 겨레 으뜸 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현 상태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현존하는 원본의 모습에 가깝게 재현하는 현상복제 방식을 채택하였고, 한지를 써서 고서의 촉감을 살리는 것은 물론, 세부 구성요소를 그대로 복원하면서 세월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담았다. 여기에 원본과 동일한 사침안정법과 자루매기라는 전통 제본으로 고서의 아름다움까지 더했다. 훈민정음 연구 권위자 김슬옹 교수 해설서도 함께 나와 특히 이번 복간은 단순한 복제의 의미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누룩은 술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누룩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에는 오진왕(應神天皇:재위 270~312) 때 백제에서 인번(仁番) 수수보리(須須保利)라는 사람이 와서 누룩으로 술 빚는 법을 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누룩은 예전에 사고팔기도 했는데 《중종실록》 1541년(중종 36) 11월 13일 기록에 보면 ‘누룩 매매 금지’ 기록이 보입니다. “금주령(禁酒令)이 엄한 듯 하지만 백성의 집에서는 여전히 술을 빚고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빚지 못하게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도성의 각 시장에는 누룩을 파는 곳이 7∼8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것이 7∼8백 문(門)이 되며 그것으로 술을 빚는 쌀은 천여 석에 이를 것이니, 그 낭비가 참으로 걱정됩니다. (가운데 줄임) 평시서(平市署)에 명하여 명년 가을까지만 누룩의 팔고 사는 것을 일체 금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누룩을 만드는데 쓰였던 "누룩고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술의 주원료인 누룩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룩고리가 필요합니다. 누룩틀이라고도 하는데 밀을 굵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에 올라서 고사리 캐고 / 골짜기에 들어가 난초를 꺾네 옛 친구는 만리 밖에 있는데 / 산 높고 물 막혀서 가기 어렵네 꽃다운 향기 날로 사라지니 / 그릴 적마다 긴 한숨뿐 서로 헤어짐은 원망치 않지만 / 당초 사귄 것이 한스러울 뿐 오직 바다 위엔 달이 있으니 / 길이 두 사람의 마음 비추리 이는 실학자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 서른다섯 나이에 삼촌을 따라 중국 사신 길에 올라 사귄 중국 선비 반정균(潘庭均)을 그리며 지은 시입니다. 홍대용은 연경(북경)에 들어가 성연못ㆍ궁궐ㆍ인물ㆍ재화(財貨)를 자세히 관찰하였으며 사람들을 만나면 신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더불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유명합니다. ▲ 국립중앙도서관 전시 조선과 청조(淸朝) 문인의 만남 을유년(1765) 겨울에 나는 삼촌을 따라 연경에 갔다.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 보이는 것이 새로운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크게 원하는 바는 하나의 아름다운 수재(秀才, 머리가 좋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나 마음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서 그와 더불어 실컷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고 할 만큼 그는 적극적으로 중국의 선비들과 교류를 하였는데 그때 만난 이들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공원인 경북 청송 주왕산에 가면 볼 수 있다는 둥근잎꿩의비름을 보셨나요? 둥근잎꿩의비름은 계곡 그늘진 바위틈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붉은 자주빛 꽃은 7~10월에 피고 키는 15-30cm까지 자라지요. 주왕산 말고도 경북 내연산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밖에 러시아와 일본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녀석은 희귀종인데가 빼곡히 달리는 꽃이 예뻐 사직작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습니다. 특히 이 꽃은 주로 계곡 깎아지른 절벽 틈새에서 잘 자랍니다. 이렇게 척박한 곳에서만 그 자태를 보여주기에 더욱 예쁜지도 모릅니다. 돌나물과의 꿩의비름 종류는 둥근잎꿩의비름 말고도 꿩의비름, 세잎꿩의비름, 자주꿩의비름, 큰꿩의비름, 새끼꿩의비름, 섬꿩의비름 따위로 참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400여 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21종이 자라지요. ▲ 척박한 곳에서 예쁜 자태를 보여주는 둥근잎꿩의비름 (사진작가 이명호) 선인장이나 꿩의비름, 기린초, 부처손처럼 몸에 수분이 많은 것을 다육식물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들 다육식물들은 자연 상태에서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면 자신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여 물 손실을 최소화 하지요. 몇 달 동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승정원은 지금 청와대 비서실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하들이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이나 서류는 모두 승정원을 거쳐야 했고, 임금의 명도 승정원을 통해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시도 임금의 주변에 늘 있었지만 그들은 정무에 관여할 수기 없었기 때문에 승정원에 견줄 바가 아니었지요. 그 승정원에는 정3품 당상관 이상의 승지 여섯 명이 각각 업무를 분담하고 있었습니다. 중종 때 조원기라는 사람은 그런 막강한 승정원의 동부승지를 지낸 사람이었지만 그의 밥상에는 늘 소금과 나물과 오이뿐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를 안타깝게 생각한 벗이나 친척들이 먹을 것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그것이 조금이라도 의(義)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면 반드시 사양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원기는 이렇게 청렴하게 살았어도 그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았고 일흔일곱 살까지 천수를 누렸습니다. ▲ 동부승지 조원기, 평생 밥상엔 소금ㆍ나물과 오이뿐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런 조원기는 우리나라 유학의 우두머리인 조광조를 조카로 두었습니다. 태생이 강직했던 조광조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던 조원기는 조카에게 사람이 새처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원도 영월에는 천하의 절경인 동강이 있고 그 동강 상류에는 어라연(魚羅淵)이 있습니다. 물고기가 비단결 같이 떠오르는 연못이라고 해서 어라연이라 한 이곳은 동강의 많은 비경 가운데서도 경치가 아름답기로 으뜸인 곳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사람들이 절경에 홀려 비경에 몸을 던진다.고 했을까요? 흔히 하는 말에 천하절경을 본 사람은 많아도 천하비경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하듯이 비경이란 그야말로 아무나 볼 수 없는 곳이지만 명승 제14호 영월의 어라연은 비경이면서도 누구나 볼 수 있어 찾는 이가 많은 곳입니다. ▲ 천하의 비경을 간직한 어라연 어라연은 다른 말로 삼선암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습니다. 삼선암은 강의 상부, 중부, 하부에 3개의 못이 형성되어 있고 그 목의 가운데에 옥순봉과 기암괴석들이 총총히 서 있어 마치 그 모습이 불상의 형상이나 짐승 같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동강은 남한강 수계에 속하며 정선, 평창 일대 깊은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들이 정선 읍내에 이르면 조양강이라 부르고, 동남천 물줄기가 합해지는 정선읍 가수리부터 영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괭이갈매기는 우리나라 모든 바닷가와 섬 지방에서 사는 텃새로 일본, 연해주남부, 사할린남부, 쿠릴열도남부, 중국연안 같은 곳에서 번식하는 새입니다. 암컷과 수컷이 똑같이 생겼으며, 몸길이는 약 43~47㎝ 정도지요. 먹이는 주로 물고기, 개구리 같은 양서류,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 곤충류 따위입니다. 물고기 떼가 있는 곳에 잘 모이기 때문에 어장을 찾는데 도움을 주어 옛날부터 어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 괭이갈매기의 아름다운 자태(문화재청 제공) 특히 괭이갈매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 살며, 무리를 이루어 번식을 하고 있지요. 또 어미는 자신의 새끼만을 돌보며, 어미로 부터 떨어져 나온 새끼들은 다른 어미에 의해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새끼는 태어난 지 사흘 뒤면 어미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독도의 지배자라 하여 괭이갈매기는 독도에 매우 많은데 또 괭이갈매기가 무리를 지어 사는 곳으로 충청남도 태안군의 난도도 있지요. 이곳은 무인도로 알섬또는 갈매기섬이라고도 부르는데 섬의 가장자리는 수직암벽으로 되어 있으며, 이 암벽에서 56월에 15,000마리 정도의 괭이갈매기가 알을 낳습니다. 이곳 난도 말고도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태조 이성계(1335~1408)는 조선을 건국한 뒤 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우에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음력 2월과 음력 8월, 동지(冬至) 뒤의 셋째 술일(戌日)에, 땅의 신인 사신(社神)과 곡식의 신인 직신(稷神)에게 큰제사 곧 사직대제(社稷大祭)를 올렸습니다. 이밖에도 정월의 기곡제(祈穀祭, 첫 신일-辛日에 그해의 풍년을 빌던 나라의 제사), 가뭄 때의 기우제 등 때때마다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사신과 직신에게 정성껏 지냈지요. 《주례(周禮)》와 《예기(禮記)》에 보면 우사직 좌종묘(右社稷左宗廟)라 하고, 제의(祭儀)에는 좌묘우사(左廟右社)라 하여, 임금이 도성을 건설할 때 궁궐 왼쪽엔 종묘를, 오른쪽엔 사직단을 세워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성계와 조선의 역대 임금은 이러한 제도를 충실히 따른 것입니다. ▲ 현재의 사직단 모습 그런데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은 아관파천 뒤 다시 궁궐로 돌아와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원구단에서 황제로 등극했습니다. 동시에 나라의 뿌리인 사직(社稷)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바꿔 부릅니다. 태사와 태직이란 황제나라에서만 쓸 수 있는 것으로 대한제국의 당당함을 또 한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시간을 가두고 싶었지만 시간은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고 물처럼 흘러 흘러간다. 바람의 형상은 보이지는 않지만 옷깃을 스치고 몸에 부딪히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떨어지는 것을 눈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바람 역시 느낄 수는 있으나 가둘 수는 없다. 심성을 표현 하고자 해도 그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말고 맑은 최상류층 물을 보여주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전달할 수 없는 무능력자다. 한경혜 작가는 서울 종로구 운현궁 기획전시실에서 여덟 번째 이야기 물이 품은 자연을 열면서 이렇게 애기하고 있다. ▲ 평온한 일상, 4574cm, 한지에 수묵담채, 2015 그는 말한다. 장애는 불편하게 바라보는 이에게만 불편할 뿐이다.라고 말이다. 한 살 때 앓은 뇌성마비로 삶과 죽음을 넘나들다가 일곱 살 때 성철스님을 만나 3천배로 장애를 이겨내고 화가의 길을 득도한 한경혜 작가(40)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보통의 그림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그의 득도가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음인가? 그림은 전통 한지에 수묵담채로 계곡의 물속이나 바다 속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
▲ 엄마와 아이가 윷놀이를 하고 아빠는 말을 놓아준다. ▲신나게 널을뛰는 중년의 남여 ▲ 어른이 제기차는 모습을 본 아이가 흉내내기 어려운 듯 냅다 던져버린다. ▲ 한 아이가 힘차게 굴렁쇠놀이를 하고 있다. ▲ 연인이 다정하게 투호놀이를 한다. ▲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운현궁을 둘러보다가 잠시 기자를 위해자세를 취해준다.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 한가위를 보내고 오늘 찾은운현궁(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사가, 사적 제257호)에는 민속놀이가 한창이었다. 운현궁 뜰에는 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려 나들이 나온 시민들의 즐거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윷놀이, 널뛰기, 투호놀이, 굴렁쇠놀이, 제기차기 따위와 같은 놀이에 여념이 없는 시민들의 표정 또한 밝아 보였다. 엄마와 아이, 할아버지와 손자, 부부 사이는 물론 다정한 연인들이 운현궁 뜰 구석구석에서 민속놀이의 즐거움에 빠져든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엄마와 아이가 윷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이 아빠는 즐거운 마음으로 말을 놓아주고, 서툰 아이가 널을 뛸 수 있도록 엄마는 손을 잡아주는 모습도 정겨웠다. 한편에서는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한복을차려입고 운현궁 뜰에서 연신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