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高堂六月盛炎蒸 고대광실 오뉴월 푹푹 찌는 여름날에 美人素手傳淸氷 여인의 섬섬옥수 맑은 얼음 내어오네. 鸞刀擊碎四座편 칼로 그 얼음 깨 자리에 두루 돌리니 空裏白日流素霰 멀건 대낮에 하얀 안개가 피어나네. 滿堂歡樂不知暑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 더위를 모르니 誰言鑿氷此勞苦 얼음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君不見 그대는 못보았나? 道傍갈死民 길가에 더위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多是江中鑿氷人 지난겨울 강위에서 얼음뜨던 자들이란 걸.” ▲ 장빙군(藏氷軍), 한강에서 얼음을 뜨던 백성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위 한시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창협(金昌協, 1651 ~ 1708)의 “얼음 뜨는 자들을 위한 노래(鑿氷行)”입니다. 처서가 지났지만 아직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전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엔 냉장고 대신 얼음으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으려했지요. 그래서 한겨울 장빙군(藏氷軍)들이 한강에서 얼음을 떠 동빙고와 서빙고로 날랐는데 이들은 짧은 옷에 맨발인 자들도 있었다고 한시는 전합니다. 그렇게 저장된 얼음은 한여름 궁궐의 임금과 높은 벼슬아치들 차지였는데 그들은 얼음을 입에 넣고 찌는 듯한 여름에도 더위를 모른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넷째 처서(處暑)다.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으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이치를 잘 보여주는 때다. 또 이즈음은 농사철 가운데 비교적 한가한 때여서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도 한다. 옛 사람들은 처서 때를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중후(中候)에는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따가워야 하고 날씨는 맑아야 만이 벼의 이삭이 패고, 잘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잘 익어 가는지 보여주는 속담이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는 8월 24일(월) 오후 2시부터, 한국교원대학교 교원문화관 대강당에서 2015 개정 교과 교육과정 시안 공청회가 열린다. 이번 공청회의 해당 교과목은 '한자교육'으로 주제는 한자교육 관련(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포함) 공청회다. 교육부가 2018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도덕이나 사회 교과서 등에 한자를 한글과 병기하는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공청회 등을 거쳐 오는 9월 한자 병기 여부를 확정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 지난 8월 13일 열린 초등학교 교과서 창례식 중 한글학회 앞에서 발인하는 모습 지난 8월 1일 한글문화연대, 전국국어교사모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민족문제연구소 등 전국 46개 한글, 교육 학부모,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이대로, 아래 국민운동본부)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출범식을 갖고 교육부의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방침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었다. 출범식에서 전교조 변성호 위원장은 정부는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을 바라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은 너무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미래와 꿈을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별감 : 자네는 어느 장에 무슨 장산가? 생선장사 : 나는 마포장에 생선장수올시다. 뼈 없는 문어, 등 굽은 새우, 흉물흉측한 오징어란 놈은 눈깔을 빼서 꽁무니에 차고, 생선가게 망신은 꼴뚜기라, 키 큰 갈치, 썩어도 준치, 맛 좋은 꽁치, 뼈대 있는 집안 멸치라. 별감 :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엿장수 : 저 화개장터에서 온 엿장수요. 찢어진 시계나 채권 삽니다. 머리카락 빠진 것, 고무신짝 떨어진 것, 놋대야 깨진 것, 신랑신부 뽀뽀하다 금이빨 빠진 것, 자!~ 고물 삽니다. 고물.~~ ▲ "장대장타령" 공연중인 노학순 명창 ▲ "장대장타령" 공연중인 백영춘 서울시문화재 보유자와 노학순 명창(왼쪽) 위는 재담소리 장대장타령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재담(才談)소리”란 재치 있는 문답을 주고받아 흥미를 이끌어내는 이야기를 하면서 소리도 하는 국악의 한 장르를 말합니다. 재담소리 가운데는 장대장타령이 가장 많이 알려졌는데 장지영(張志暎) 장군과 무당 출신 첩(妾) 사이의 이야기를 사설과 창으로 엮어 익살스럽고 재미나게 꾸민 내용의 하나의 소리극입니다. 조선 말기 모흥갑이란 소리꾼이 재담소리를 하면 십리 밖까지 들렸다는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 음력 7월 7일은 칠석입니다. 칠석은 목동 견우(牽牛)와 베 짜는 공주 직녀(織女)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날로 예부터 아낙네들의 길쌈 솜씨나 청년들의 학문 공부를 위해 밤하늘에 별을 그리며 소원을 빌곤 하는 풍속이 있었지요. 은하수 양끝에 사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은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는데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한 해에 한 번 칠석 전날 밤에만 은하수를 건너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까마귀[오(烏)]와 까치[작(鵲)]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주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했지요. ▲ 남원 광한루원에 있는 오작교(烏鵲橋) 칠석 전날에 비가 내리면 견우와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는 '세거우(洗車雨)'라고 하고, 칠석 당일에 내리면 만나서 기뻐 흘리는 눈물의 비라고 하며, 다음 날 새벽에 내리면 헤어짐의 슬픔 때문에 '쇄루우(灑淚雨)'가 내린다고 합니다. 또 까마귀와 까치는 오작교를 만들려고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 무렵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유난히 부슬비가 내린다는 말도 전하지요. 북한의 덕흥리 고분에는 견우와 직녀 벽화가 있습니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는 염소만 한 크기의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리 오너라. 안에 아무도 없느냐?” “몇 분이시온지요?” “벗과 둘이 왔소이다.” “네 술과 안주를 준비하겠습니다.” 술 한 순배 마신 뒤 “술 한 주전자 더 청하오이다.” “알겠사옵니다. 혹여 매운탕도 준비할까요? “거 좋지요.” ▲ 주인은 코빼기도 안 비치는 이상한 <내외술집>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조선 말기의 문인 유재건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이런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분명히 술집인데 손님만 보이고, 주인은 코빼기도 안 비칩니다. 이름하여 <내외(內外)술집>이라 하는 곳이지요. 그야말로 이상한 술집입니다. 주인이 나와서 아양을 떨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굳게 닫혀있던 중문이 살짝 열리고 개다리소반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손님이 술상을 가져다 먹습니다. 그러면 이런 <내외술집>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조선시대엔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평생 수절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 음란하다는 사유를 붙여 자녀안(恣女案)에 오르고 그러면 그 자식들은 관직에 임용될 수 없는 불이익을 받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수절하면서 재산이나 있으면 괜찮지만 끼니를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한민국은 국가통치체제와 기본권 보장의 뿌리를 헌법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조선시대는 어떤 것이 기본 법전이었을까요? 고려시대에는 문서로 만든 법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법을 집행하는 사람 마음대로 곤장을 5대 때리기도 하고 100대를 때리기도 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조선 왕조는 건국 이후 통치 규범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문서로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했습니다. 조선 건국 직후에 정도전이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등을 펴냈고, 조준이 여러 조례를 모아 《경제육전》을 지은 것이 그것이었지요. 그런 작업의 결정판은 바로 보물 제1521호《경국대전》입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세조 때 최항, 노사신, 강희맹 등이 집필을 시작하여 성종 7년(1476년)에 완성하고, 16년(1485년)에 펴낸 것으로 조선건국 전후부터 성종 때까지 약 100년 동안에 나왔던 《조선경국전》 등과 왕명ㆍ조례(條例)ㆍ교지(敎旨) 따위를 수집하여 엮은 법전이지요. 물론 조선의 법전이 경국대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경국대전은 영조 때 《속대전(續大典)》, 정조 때 《대전통편(大典通編)》, 고종 때 《대전회통(大典會通)》으로 이어졌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여름에 피는 들꽃 해란초는 우리나라 동해안 모래밭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분포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북반구의 다른 나라 비슷한 조건에서 두루 볼 수 있는 꽃이기도 하지요. 다른 이름으로 해빈유천어(海濱柳穿魚), 일본유천어(日本柳穿魚), 유천어(柳穿魚), 운난초라고도 부르고 북한에서는 “바람난초”라고 합니다. 해란초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가 15~40cm인데 꽃은 연한 노란빛을 띄며 또한 꽃 일부분은 진노랑 빛이 돕니다. 해란초는 관상용, 약용으로 쓰이고 맛이 달고 약간 쓰며 성질은 찹니다. 민간에서 줄기와 잎을 황달, 수종(몸이 붓는 병), 이뇨 따위에 약으로 쓰지요. 또 해란초는 해열작용ㆍ해독 작용을 하며 유행성 감기를 비롯하여 열을 동반하는 황달에 효과가 있으며, 치질이나 각종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고, 화상치료제로도 씁니다. 그밖에도 두통, 어지럼증, 헛배부름, 변비, 장 무력증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지요. ▲ 꽃말이 "영원한 사랑"인 해란초, 사진작가 이명호 제공 햇빛, 추위, 건조 등에 강한 편이며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 되는 모래땅에서 잘 자라고 습기가 있는 곳은 싫어합니다. 해란초라는 이름이 들어간 다른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일제의 침탈로 주권을 잃고 35년 동안의 식민지 생활에서 벗어나 조국의 해방을 맞은 날이다. 특히 올 2015년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해로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데, 국악계도 나라에서 주도하는 행사, 지방 정부가 주축이 된 행사, 사회단체가 중심이 되는 공연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그 가운데 노학순 명창이 이끄는 경토리 민요단의 경기소리 공연이 8월 15일 늦은 3시에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렸다. 경토리 민요단이란 말에서 경(京)은 서울 경기지방을 의미하는 말이고, 토리란 그 지역의 특징적인 창법이나 음계, 분위기 등을 가리키는 말로 경토리란 경기지방의 특징적인 음악적 요소로 만들어진 민요를 말한다. 이 민요단을 이끌고 있는 지도사범이 노학순 명창이고, 그의 지도를 받는 회원들과 성동구 문화원 중심의 회원들이 친교와 봉사를 목적으로 만든 단체가 곧 경토리민요단이다. ▲ 노학순 명창 외 20명의 회심곡 ▲ 공연 해설을 하는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은 경토리민요단에 대해 이 민요단은 순수하게 민요를 좋아하는 애호가 수준을 벌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래 전 신나라레코드에서 나온 녹음테이프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여러 종소리가 녹음돼 있었는데 맨 먼저 성덕대왕 신종 소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지요. 이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은 봉덕사(奉德寺)종으로 불리는데 에밀레종으로 더욱 유명한 종입니다. 저 깊이에서 응축된 이 종소리는 길게 여울지며 제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로 큰 감동이었습니다. 그 안에 녹음된 다른 종소리가 감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사선으로 투시해서 본 결과 보통의 종들과 달리 종신 안에는 기포 하나 없이 매끄럽게 주조되었으며, 종신을 돌아가며 어느 것이든 균일한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cm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될 만큼 엄청난 크기의 종입니다. 종신에 쓰인 글씨에 따르면 경덕왕(景德王)이 부왕 성덕왕(聖德王)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다음 대인 혜공왕(惠恭王) 7년(771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