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나라에서 다리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주몽이 부여를 탈출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압록강 북동쪽 엄호수에 주몽일행이 이르렀는데 다리가 없었지요. 주몽이 물을 향해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자다. 오늘 도망하다가 뒤쫓는 자들에게 잡히게 되었으니 어쩌면 좋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이루었는데 주몽 일행이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는 곧 흩어졌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조선시대에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던 한강의 배다리가 있었습니다. 물고기와 자라는 아니지만 대신 배를 임시로 엮어 강을 건널 수 있게 만든 부교(浮橋)인 이 배다리는 고려 때도 임진강에 설치한 적이 있었고, 연산군도 한강 남쪽 청계산에서 사냥을 즐기려고 민간의 배 800척을 동원해 놓은 적도 있었지요. 그러나 가장 유명한 배다리는 정조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는 아버지의 화성에 있던 능에 참배하기 위해 1790년(정조 14)에 주교(舟橋)를 가설했습니다.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주교도(舟橋圖) 이 배다리의 운영과 관리는 주교사(舟橋司)가 맡았는데 배다리의 운영방안을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벽초 홍명희가 만해 한 사람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라고 했으며, 만공선사는 이 나라에 사람이 하나 반밖에 없는데 그 하나가 만해라고 했다고 한다. 최린 등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은 감옥에서 일부 민족대표들이 사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자 목숨이 그토록 아까우냐?라며 똥통을 뒤엎기도 했으며, 그토록 가까웠던 최린, 최남선, 이광수 등에 대해서도 친일파라며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 만해마을 잔디밭에서 글쓰기에 여념이 없는 백일장 참여하생들 그 만해 선생을 기리는 님의 침묵 전국백일장이 올해도 어김없이 8월 14일 오후 1시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주최, 인제신문사 주관으로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만해의 정신을 기리고, 한국문학의 토양을 풍부하게 할 이 백일장은 나이 제한 없이 온 나라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시와 시조 2개 부분에 걸쳐 진행된다. 시제는 8월 14일 오후 1시 현장에서 발표하며, 심사는 문단의 중진 문인들에게 위촉해 심사한 뒤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인제신문 누리집(www.okinjenews.co.kr)에서 참가 신청서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부채는 부치는 채라는 뜻으로 무더위를 식혀주기도 하지만 바람을 일으켜 먼지 같은 오물을 날려 깨끗하게 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그래서 재앙을 몰고 오는 악귀나 병을 쫓는다고 믿어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풍속도 있었지요. 우리나라에는 기원전 1세기쯤으로 추정되는 창원 다호리 고분 유적에서 부채 자루가 출토되어 일찍부터 부채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려 후백제 견훤이 즉위했다는 말을 듣고 왕건이 축하 선물로 공작부채(孔雀扇)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대가 어사로 금강나루 살피던 지난 가을 繡斧前秋度錦津 어쩌다 바르고 너그러운 나무꾼 만났었지 何逢樵公仁 3년의 남쪽지방의 원님으로 어진 정치 베풀고서 三年棠化南州伯 10월에 떠난 사행길에 동지사를 맡았다오 十月程上价人 북경의 숙소는 매화가지에 잔설 쌓인 밤이었건만 燕館梅梢殘雪夜 덕승문 밖은 수양버들 흩날리는 봄이로세 門楊柳澹煙春 초대받은 문객은 회고시를 적잖이 지었어도 應邀詩客多懷古 주옥같은 시 구절 참으로 몇 수나 되었을지 幾獲龍下珍 ▲ 이돈상이 소장하던 연사(燕辭)가 적힌 부채 이는 연경에서 쓴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는 4대 명절인 설날, 단오, 한식, 한가위 말고도 정월대보름, 초파일, 유두, 백중, 동지도 명절로 지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명절 가운데 하나인 음력 6월 15일 유두절이지요. '유두'는 유두날이라고도 하는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입니다. 이것은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인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유두를 신라 때 이두로 '소두'(머리 빗다), '수두'라고도 썼는데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로 '물맞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요즘도 경상도에서는 유두를 '물맞이'라고 부릅니다. 유두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 때부터 명절로 지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13세기 고려 희종(熙宗) 때의 학자인 김극기(金克己)의 ≪김거사집(金居士集)≫에는 "동도(東都, 경주)의 풍속에 6월 15일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액(厄)을 떨어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대에 보면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 편에 여자들의 물맞이 장소로, 서울의 정릉 계곡,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7월 29일 낮 12시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1층 베세토갤러리에서는 (사)제주관광음식연구소 주최, (사)한국조리기능장협회 후원으로 제주 제1호 조리기능장 문동일 셰프 특별전이 열렸다. 이날 특별전은 제주 특산인 말고기 요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주 요리가 선보였다. ▲ 제주 제1호 조리기능장 문동일 셰프 특별전 시작전 테잎을 자르는손님들 ▲ 말한마리, 말안심구이, 말고기냉채, 말고기회(왼쪽부터 시계방향) ▲ 제주도 욜리 / 전복만두, 메밀만두, 모메기떡, 제주 미숫가루 냉국(왼쪽부터 시계방향) 특별전은 먼저 손님들의 테잎 자르기 행사에 이어 말고기회, 말고기육회, 말갈비찜, 말고기안심구이, 말떡갈비, 말고기냉채, 말무국 따위가 다양하게 선보였으며, 말고기 요리 말고도 톳보리밥, 감저밥, 오분자뚝배기, 전복만두, 제주 미숫가루 냉국, 흑돼지청고사리국, 오메기떡, 감귤과즐 등 다양한 제주 특선 요리도 볼 수 있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제주 제1호 조리기능장 문동일 셰프는 말고기안심스테이크나 말고기육화는 그 어떤 고기 종류보다 맛도 좋고 영양도 뛰어나다면서 말고기를 즐겨 드실 것을 권했다. 또 행사장에서는 말고기육회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그림이란 화면에 무엇인가를 채워 넣어 표현하는 것이지요. 서양 유화의 경우 화면을 빈틈없이 채움은 물론 여백까지도 철저하게 계산해서 묘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옛 그림들을 보면 많은 여백이 나타납니다.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던 단원 김홍도의 그림들이 그렇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그렇습니다. 서양 유화와 달리 왜 우리 예 그림들은 빈 공간을 많이 남겨 둘까요? 그림에 있어서 여백이란 화가가 그리지 않고 일부러 남겨둔 부분입니다. 일부러 남겨둔다면 화가가 자신이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은 아닐까요? 화면을 여러 가지 소재 심지어는 구름과 공간까지도 모두 묘사해야 하는 의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것은 또 여백을 둠으로써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그 해방감을 같이 맛보게 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백이란 자유를 얻은 새가 조롱에서 벗어나듯이, 그림 속의 조롱을 없앤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 단원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이런 그림 속의 여백을 뛰어나게 구현한 그림 가운데 단원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가 있지요. 안개가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倡女女良家(창녀여량가) 기생집의 여인과 양갓집 여인에게 其心問幾何(기심문기하) 그 마음 어찌 다른지 물어볼거나 可憐栢舟節(가련백주절) 가련치만, 지켜가는 이내 절개는 自誓死靡他(자서사미타) 하늘에 맹세코 죽는대도 딴 뜻 없다네 위 한시는 고려시대 팽원(彭原, 지금의 평안남도 안주)의 기생 동인홍(動人紅)이 지은 ‘스스로 읊다(自敍)“입니다. 비록 남들이 천하게 보는 기생이지만 절개를 지키려는 마음은 양갓집 여인네와 다름이 없다는 뜻을 “하늘에 맹세코 죽는대도 딴 뜻 없다네”라는 구절이 잘 드러내고 있지요. 정절을 지키려는 마음에는 신분의 차이는 없는데도, 세상은 그렇게 봐 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 절개를 지켰던 고려시대 기생 동인홍(動人紅)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여기서 “동인홍(動人紅)”이란 기생의 이름에는 사람의 얼굴을 벌겋게 만든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허튼 짓을 하는 엉뚱한 사내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만들만큼 동인홍의 절개는 아무도 범접을 못합니다. 자기 한 말을 밥 먹듯 뒤집는 사람도 많고, 아무 변병도 없이 자신의 가던 길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변절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삼복더위 값을 하느라고 날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습기 차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더위에는 녹음 우거진 숲 속 약수터에서 샘솟는 시원한 약수 한 대접이 생각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약수는 대부분이 탄산약수로 전국에 약 90 곳의 탄산약수터가 이름난 곳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탄산약수는 편마암류와 화강암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의 단층과 같은 지질구조선을 따라 치솟는 지하수가 지하의 암석이나 탄산염광물과 반응하여 탄산이온의 농도가 높은 탄산수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탄산약수입니다. 탄산약수는 남한지역 50 곳, 북한지역 37 곳이 특히 유명하며 남한의 경우 강원도 12곳, 경상북도 16곳, 충청도 3곳에 몰려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11곳의 약수터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바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2011년 1월 13일에서야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의 오색약수, 홍천군 내면 광원리의 삼봉약수,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의 개인약수 등 3건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에 이릅니다. 이들 약수는 미네랄 함유량이 많고 수질, 역사, 설화, 경관 따위가 우수하여 보존가치가 큰 곳입니다. ▲ 천연기념물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의 오랜 먹거리인 떡 가운데 인절미는 유교의 경전인 《주례(周禮)》에 인절미를 “떡 가운데 가장 오래인 것.”이라 하였고, “떡 가운데 별미는 단연 인절미라, 찰지면서 쫀득한 맛을 으뜸으로 여긴다.”고 나옵니다. 이 인절미에 관해 조선 인조 때 전해지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이 반란군에게 점령당하자, 인조는 공주 공산성으로 피란을 갔는데 어느 날, 임씨라는 농부가 찰떡을 해 임금께 바쳤는데 그 떡 맛이 좋고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지요. 신하들에게 그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임금이 친히 떡 이름을 지어 내렸는데 임 서방이 절미한 떡이라 하며 <임절미>라 한 것이 “인절미”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인절미는 혼례 때 상에 올리거나 사돈댁에 이바지로 보냅니다. 찰기가 강한 찹쌀떡으로, 끈적거리고 잘 들러붙는 성질을 생각하여 시집간 딸이 친정에 왔다 돌아갈 때마다 “입마개떡”이라 하여 인절미를 들려 보냈습니다. 이는 시집에서 입을 봉하고 살라는 교훈을 담은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시집 식구에게 비록 내 딸이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이 떡을 먹고 너그럽게 봐 달라는 뜻도 들어있지요. 그뿐만 아
[한국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열째인 하지(夏至)입니다. 이 때 해는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는데, 그 자리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하지요. 한 해 가운데 해가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기 때문에 북반구의 땅 위는 해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쌓인 열기 때문에 하지 이후로는 기온이 올라가 몹시 더워집니다. 또 이때는 가뭄이 심하게 들기도 하고, 곧 장마가 닥쳐오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일손이 매우 바쁩니다. 누에치기, 메밀 씨앗 뿌리기, 감자 거두기, 고추밭 매기, 마늘 거두고 말리기, 보리 수확과 타작, 모내기, 늦콩 심기, 병충해 방재 따위는 물론 부쩍부쩍 크는 풀 뽑기도 해주어야 합니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무렵이면 모두 끝나는데, 예전엔 이모작을 하는 남부 지역에서는 하지 ‘전삼일, 후삼일’이라 하여 모심기의 알맞은 때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라는 속담도 있지요. ▲ 하지에는 모내기를 마치고, 감자전을 부치며, 감자떡 해먹는 감자 환갑날 감자가 많이 나는 강원도 평창에서는 하지 무렵 감자를 캐어 밥에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