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번 6월 EBM 조찬 포럼의 강사는 가수 윤형주 씨였습니다. 통기타를 들고 중간 중간 노래를 들려주며 자신의 삶을 얘기해주시는데, 다른 어느 때 강연보다도 회원들이 집중해서 듣더군요. 제 고교 10년 선배이시니 벌써 고희를 넘기신 것인데도, 어쩜 그리 젊으신지요. 복장도 청바지에 양복 윗도리로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젊음이 넘쳐나십니다. 가수 윤형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의학도이던 윤형주는 대학시절 통기타 가수로 떠서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습니다. 그 후 많은 히트곡을 작곡하고 노래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듣자마자 알 수 있는 수많은 인기 시엠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깊은 맛을 남들에게 보일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는 온누리교회의 장로가 되어 선교활동에도 열심이고, 또한 해비타트 이사장으로서 직접 망치를 들고 집 없는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기도 합니다. 70년대에 윤형주, 조영남, 송창식, 이장희, 김세환, 양희은 등 통기타 포크송 가수들의 인기는 참 대단했지요. 저도 그 시대에 중ㆍ고ㆍ대학교를 다녔기에 그들과 그들의 노래를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세월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중부 제3터널을 통과하면 고속도로는 곧바로 경안천에 다리를 적신다. 그러면 바로 오른쪽으로 높이 140m의 야산이 바짝 다가서 있고, 고속도로는 이 야산의 발등을 타고 지나간다. 바로 이 야산 자락에 비운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잠들어 있다. 난설헌의 무덤에서 고속도로까지 직선거리로 불과 100m!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쌔~앵~”하며 난설헌의 옆을 지나가지만, 과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허난설헌 옆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중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무갑산이 난설헌의 묘를 내려다보고 있다. 태양이 뜨겁게 대지를 달구는 8월의 어느 날 무갑산에 올랐다가 난설헌의 묘를 찾았다. 고속도로 밑의 토끼굴을 지나 난설헌에게 다가가니 먼저 송덕비가 눈에 띈다. 중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이 속한 안동김씨 문중에서 흔쾌히 땅을 내놓은 것을 기리는 송덕비로, 2000년 1월에 시행자인 한국도로공사와 건설사인 쌍룡건설이 세운 송덕비이다. 묘역으로 다가가는데, 난설헌 무덤 왼쪽으로 아기 때 죽은 난설헌의 두 아이의 무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기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송상현’ 하면, 대개 임진왜란 때 절대적인 열세 속에도 왜군과 끝까지 싸우다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을 떠올릴 것입니다. 청주 흥덕구 수의동 묵방산 자락에 가면 충렬공 송상현의 무덤이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송상현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었으나, 선조가 순절한 송상현의 공을 높이 사 두사충에게 명하여 명당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두사충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인데, 풍수지리를 잘 봐, 선조가 두사충에게 묘자리를 잡아달라고 명한 것이지요. 그런데 송상현의 무덤 옆에는 평소 송상현에게 시종 들던 여인들의 무덤은 있지만, 정작 그의 아내의 무덤은 옆에 없습니다. 부인의 무덤은 그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황구산 기슭에 있습니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그것도 충신의 무덤 옆에 어떻게 아내의 무덤 대신에 다른 여자들의 무덤이 있는 것일까요?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청주지법 재판이 있을 때 짬을 내어 충렬공의 묘소를 들러보았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먼저 강상촌(綱常村)이라는 마을 표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임금이 일부러 묘토를 하사하니, 충렬공의 후손들이 충렬공의 사당과 무덤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하여 형성된 마을이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제 책상 위에 한 우편물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무얼까? 가위로 봉투 윗부분을 자르고 조심스레 봉투를 거꾸로 드니, 안에서 <오두막집 이야기>라는 하얀 표지의 시집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때마침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정오의 햇살을 받아 시집은 자신의 하얀 살갗을 눈부시게 반짝입니다. <오두막집 이야기>는 부산의 김성수 법무사가 책방에서 사서 저자의 친필 싸인까지 받아 저에게 보내온 시집입니다. 그런데 시집을 낸 성종화 시인도 법무사이네요. 법무사가 시집을 냈다? 그것도 오랜 세월 검찰에서 근무했던 법무사가? 그러나 성종화 법무사는 원래 시인이 되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중3 때 이미 <추석>이라는 시를 『학원』지 발표하였고, 50년대 학원문단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소년 문사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보리고개도 넘기기 힘들 만큼 너나없이 가난하던 1950년대를 보내야했던 소년문사는 고교 졸업 후 계속 문학의 길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성 법무사는 안정적인 밥을 찾아 검찰 일반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범죄와의 전쟁 일선에서 자기 맡은 바 일만 열심히 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다니다보면 조선의 한글 편지들이 전시된 것을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편지의 속성상 편지에는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의 은밀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고, 또 편지에는 그 시대의 문화가 흐릅니다. 그리고 붓으로 쓰는 글씨에는 서예의 멋과 예술의 향기가 서려 있구요. 이런 조선의 편지를 하나하나 찾아내어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구하던 박정숙 박사가 그 동안의 연구물을 모아 《조선의 한글편지》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조선의 편지를 통시적으로 연구한 전문적인 논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는데, 박정숙 박사가 큰일을 하셨네요. 저는 전에 한 모임에서 처음 박 박사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며칠 후 박 박사가 이 책을 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모임에서 《조선의 한글편지》를 쓰셨다는 말을 듣고, 내가 관심을 가지긴 하였는데, 이렇게 책까지 보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관심이 있는 책을 받게 되니 그 기쁨은 더욱 커집니다. 참! 이 모임에 대해서 한 말씀 드려야겠네요. 모두 5명이 만났는데, 모임의 배경은 같이 인문학적 책을 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수필집이 되겠네요. 모임은 최근에 《사임당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작년 10월에 서울법대 문우회 회원이 되면서 여러 문우회 회원들의 시집과 책을 소개했었지요? 이번에도 한 권 소개합니다. 박영희 선배가 펴낸 시집 <그 잠깐 소낙비에>입니다. 지난 연초 모임에 참석하였을 때 이 시집을 받았습니다. 박선배로부터 직접 받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박선배는 그 날 참석하지 못 하시고 시집만 보내셨네요. 박영희 선배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자 선배입니다. 저보다 16년이나 위인 대선배이시지요. 그 시절에 여자가 서울법대 들어간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는데, 경남여고를 졸업한 박선배는 아마 경남여고에서도 수재로서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박선배의 시집은 문우회 다른 회원들의 시집과는 다른 독특함이 있습니다. 시집 가운데서도 시조집이라는 것이지요. 아마 박선배는 처음 시를 쓰시다가, 정형적인 시조의 운율에 맛을 느끼면서 시조로 정착하신 것 아닐까요? 아래에 박선배의 시조 몇 수를 소개합니다. 속삭임 산 그늘 묻은 여울에 잔설이 아직인데 꿈조차 없는 밤을 모로 누워 뒤척인다 이른 봄 매화 멍울에 가만가만 듣는 비 꿈조차 없는 밤이라고 하였는데, 몹시 피곤하여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인생의 밀도>라는 책을 냈습니다. 책에는 30년 넘게 판사 생활을 해오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 온 강부장의 깊이 있는 인생 사유가 펼쳐집니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는데, 강부장의 직접 소개말을 들어보지요. 《인생의 밀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 <살아가는 것은 변한다>에서는 디지털 혁명을 맞아 우리의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조망하고, 그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2부 <살아남은 어떤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에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전해주는 이질적인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지요. 3부 <변화하고, 변화되고, 변화시켜가고>에서는 대한민국 사법정보화의 기틀을 만드는데 동참했던 그 시절의 역사를 반추해 현재의 귀감을 찾고자 했습니다. 판사가 디지털 혁명을 얘기하니까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강부장은 본인 말마따나 대한민국 사법정보화의 기틀을 다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별명이 ‘스티브 강스’입니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얘기지요. 유투브에 들어가면 넓게는 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윤옥 시인이 《서간도에 들꽃 피다》 8권을 냈습니다. 이번에도 곽진근, 공백순 등 2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소개글은 이 시인의 시로 시작하고 있구요. 이시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국내는 물론 만주, 하와이 등 나라밖까지 직접 발품을 팔며 뛰어다닙니다. 처음 1권을 시작할 때만 하여도 이 어렵고 힘든 작업을 언제까지 할까 하였는데, 벌써 8권까지 내셨네요. 이 시인은 10집까지는 내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이 시인이 재정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을 헤치고 꿋꿋하게 이 작업을 계속 해오는 것을 보며 절로 존경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이 시인이 소개한 여성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제가 아는 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제가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저는 제 자신의 무지함으로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8권에서 이 시인이 소개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들 가운데 몇 분만 말씀드리지요. 먼저 평생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그 동안 제가 작년 국제도서전시회 때 사두었던 책을 읽고 나 후의 느낌에 대해 몇 차례 썼었지요? 처음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에 대해 썼고, 최근에는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을 읽은 느낌을 썼습니다. 오늘은 그 때 사두었던 책 가운데 마지막 책인 《한국 한시선》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이 책은 정진권(1935 ~ )이란 분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수많은 한시 가운데 156편을 엄선하여 한시 원문과 한글 번역시 그리고 자신의 독후감을 실은 책입니다. 번역시는 한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 아닌 시의 맛이 나도록 많이 의역한 시입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라는 말은 시 번역에서 더욱 실감나는 말인데, 정진권씨는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여 자유롭게 번역했습니다. 한국체대 교수를 역임한 정진권씨는 수필가로서 많은 수필집을 냈는데, 한시의 맛에 꽂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한시를 섭렵하고 난 후, 이렇게 한시집도 냈습니다. 정진권씨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시를 가려 번역하고 또 주석을 달고 그 독후감을 쓰고 하는 것이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는 한문도 시도 특별히 공부한 게 없는 내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저는 고교 은사님이신 권오길 교수님에 대해 여러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달팽이 박사,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 정년퇴임, 책을 30권 넘게 쓰신 1세대 생물수필가 등등. 전에 월간중앙에 ‘양승국 변호사가 산에서 만난 사람’을 연재했는데, 그 때 권오길 선생님과 봉의산 산행을 하면서 선생님에 대해 취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지난 1월 권오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고 1 때, 그리고 고 3 때 권오길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모셨던 친구들이 같이 매년 1월에 반창회를 하고 있지요. 늘 앞장서서 반창회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부르는 이는 친구 최만식입니다. 만식이는 고등학교 때 약간 껄렁거려 권오길 선생님께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그런 친구가 선생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제일 큽니다. 이 날 선생님께서 최근에 내신 생물 수필집 《눈 내리면 대구요, 비 내리면 청어란다》를 제자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매년 반창회 때면 그 동안 새로 내신 책을 춘천에서부터 들고 와 일일이 친필 사인을 하여 제자들에게 나눠주십니다. 이제 선생님께서 출판하신 책은 40권을 돌파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인생 황혼기에 글을 쓰시는 것을 낙으로 삼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