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차를 타고 가면서 아가씨는 담배를 한 대 꺼내었다. 김 교수는 차에 달린 전기부싯돌을 달구어 불을 붙여 주었다. 잠시 뒤 아가씨가 말했다. “오빠는 왜 자꾸 나를 만나려고 하시죠? 부담되네요.” “저런! 너에게 부담을 주었다면 미안하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오빠는 저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별것을 다 묻는군.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내가 이미 다른 데서 소주를 한잔했기 때문에 맨정신은 아니었고. 그렇지만 처음 본 순간 ‘얘는 보통 아가씨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하나 물어보자. 너는 왜 나에 대해서 여태껏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니? 나라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아?” “오빠, 저는 손님의 신상에 관한 것은 물어보지 않아요.” “그래? 그러면 너는 처음 만난 남자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니?” “아니에요, 오빠. 다른 사람에게는 제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어요. 가게 번호를 적어주지요.” “그런데 왜 나에게는 너의 전화번호를 주어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했어?” “글쎄요. 죄라면 술이 죄지요, 오빠~” 마지막 말을 조금 느리게 하면서 아가씨는 김 교수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려 아가씨 눈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낮 11시에 데크길이 끝나는 지점(종부리)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의견이 있었다. 우리는 평창읍의 북서쪽에 있는 옥고개를 넘어 다수리에 있는 돌탑정원으로 갔다. 주인장인 전희택 회장은 올해 나이가 87살이다. 전 회장은 평창 토박이인데 60살에 농사일을 그만두고 10여 년 동안 평창 지역에서 수석과 정원석을 모았다. 집 마당을 아름다운 돌탑정원으로 만들고 일반인에게 공개하였다. 모두들 감탄사를 쏟아낸 멋진 정원이었다. 자녀들도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부친의 사후에도 돌탑정원을 계속 공개할 것이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전 회장님이야말로 고향인 평창을 사랑하는 훌륭하신 분이다. 우리는 다시 종부리로 돌아와 정오에 점심을 먹고 이날 답사를 마쳤다. 효석문학100리길 소책자 지도에 그려져 있는 제5-2구간은 평창전통시장에서 끝난다. 일행은 종부리에서 식사한 뒤에 모두 귀가하였다. 그러나 나는 답사기를 완성하기 위하여 혼자서 나머지 구간을 걸어서 답사하였다. 평창강을 건너는 큰 다리가 종부교인데, 차량은 못 다니고 사람만 다니는 인도교다. 조금 걷자 평창전통시장이 나타났다. 원래 전통 평창 5일장은 5, 1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어찌 된 일인지 약속 시간이 삼십 분이나 지나도록 아가씨가 나타나지 않는다. 궁금하여 공중전화를 걸어보았다. 아가씨가 받는데,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먹어 못 일어나고 있었단다. 기다릴 테니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라고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삼십 분 이상이 지나서 미스 최가 나타났다.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피곤한 모습이다. 사실 술집아가씨들이 술을 즐겨서 먹지는 않을 것이다. 직업이니까 할 수 없이 마시는 것이리라. 그런데도 짓궂은 손님들은 자꾸 술을 먹여서 젊은 여자가 해롱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일종의 가학성 술 먹이기라고 할까? 어제는 단골이 아닌 웬 뜨내기손님이 왔는데, 폭탄주를 5잔이나 돌려서 고생했단다. 김 교수는 평소에 마시는 커피 대신 미스 최에게는 생강차를 시키고 자신은 구기자차를 시켰다.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을 보니 생강차는 숙취 해소에 좋다고 쓰여 있고, 구기자차는 시력이 좋아진다고 쓰여 있다. 김 교수는 사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은 항상 젊다고 큰소리치지만, 육체가 노화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나이가 들어가자 몇 가지 증상이 나타나기 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소년 이효석이 평화길을 걷지는 않았다. 어린 이효석은 학기 중간에는 평창읍에 있는 하숙집에서 생활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효석은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족대(물고기를 잡는 기구의 하나)를 들고 평창강으로 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았을까? 또 친구들과 노산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았을까? 어쨌든 효석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6년 동안 평창읍에서 살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평화길 중간에 평화샘터를 만들어 놓았다. 산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서 먹기도 하고 손도 씻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샘터 앞에는 긴 의자를 여러 개 만들어 놓아서 여러 명이 앉아서 쉬기에 좋았다. 우리는 50분을 걸었기 때문에 평화쉼터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샘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큰 수조에 담아서 발을 담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몇 사람이 양말을 벗고 샘물로 족욕을 하였다. 발이 시원해지며 피로가 싹 풀린다고 좋아한다. 쉼터에서 평창강을 내려다보면서 오이와 블루베리를 간식으로 먹고 커피까지 마셨다. 세상에 부러운 것 없는 시간이었다. 평화길은 나무그늘이 져서 걷기에 매우 좋은 길이다. 평창읍 주민들은 평화길을 자주 찾는가 보다. 우리는 평화길을 걸으면서 사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덟 번째 만남 김 교수는 그때까지 계속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는데 어떻게 거부한다는 말인가? 입시가 끝날 때까지는 참고 다닐 수밖에. 전에는 입시가 전기와 후기로 2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제도가 바뀌어 가나다라 군으로 4번의 기회가 있게 되었다. 수험생의 처지에서는 기회가 많아져서 좋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아들의 수능 점수로는 아무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어렵다는데, 아들은 원서를 한번 넣어 보잔다. 김 교수는 조건을 붙였다. 가군과 나군은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되 다군은 김 교수가 근무하는 수도권의 S대로 원서를 넣자. 수도권의 S대에 합격하면 교직원 자녀로서 등록금이 면제되니까 조건이 좋았다. 이제는 합격자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 이번에는 김 교수가 미스 최에게 전화했다. 만난 지 1주일도 안 되었는데 웬일일까 미스 최는 의아해한다. “웬일이에요 오빠?” “갑자기 네가 만나고 싶어서 전화했다” “오빠, 나 《아리랑》 아직 다 못 읽었어요.” “《아리랑》이 그렇게 중요하냐? 오늘은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 꼭 만나자.” “알았어요, 오빠. 그런데 오빠 바람났나 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4년 7월 1일(월) 답사 참가자: 김수용, 김혜정, 송향섭, 윤석윤, 이상훈, 최동철, 황병무 (7명) 답사기 쓴 날짜: 2024년 7월 7일 효석문학100리길 제5-2구간은 평창 바위공원에서 평창 전통장에 이르는 거리 약 4.5km 구간이다. 평창군 발행 소책자에서 제5-2구간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수석바위 테마공원인 평창바위공원을 둘러보고 장암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평창강을 따라 걸으며 강변의 정취를 즐기고 숲길을 따라 삼림욕을 즐기면서 평창 전통장과 공연장에 이르는 길이다. 평창바위공원에서 아침 9시 10분에 7명이 출발하였다.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전날까지 평창에도 비가 쏟아져서 걱정했었다. 다행히 장마전선이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평창 지역에 비는 오지 않았다. 구름이 조금 끼면서 날씨가 흐렸다. 여름이 시작되었지만, 기온은 23도 정도로 그리 높지 않고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전날 쏟아진 비로 평창강물이 불어나 물소리가 요란했다. 강폭이 많이 넓어져서 풍성한 평창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효석 이야기를 마저 하자. 효석은 나이 33살이던 1940년에 부인 이경원과 사별하였다. 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 주일쯤 지난 뒤 미스 최가 전화를 걸어왔다. 여느 때처럼 금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김 교수는 은근히 금요일이 기다려지면서 한편으로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언제까지 미스 최를 만나야 하나? 이번에 만나면 무슨 결단을 내려야 할까 보다. 금요일은 마침 대학 입시의 면접일이었다. 김 교수가 속한 면접 팀은 음악 대학 지원자를 면접하게 되었다. 면접은 간단한 질문을 두세 가지 던지고 응시자의 답변 태도와 행동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점수 차가 크게 나지 않게 채점하지만 1, 2점의 점수는 가감할 수 있다. 질문은 아무 것이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그날 음악대학 입시생이라는 점을 살펴 평소에 궁금하던 질문을 던졌다. “국악과 서양음악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응시자는 여학생이 대부분이었는데, 학생들의 답변은 대개 비슷하였다. 이들의 답변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얻어진다. 서양음악은 7음계인데, 국악은 5음계이다. 서양음악은 화성을 중요시하여 벽돌 같은 몇 개의 음이 합쳐져야 아름다운데, 국악은 음 하나하나가 수석(壽石)처럼 중요하게 여겨진다. 서양음악은 쉼표의 길이가 정해져 있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조금 더 오르자, 삼거리가 나오는데 평창바위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왼편 길로 가면 임진노성전적비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나는 혼자서 왼편으로 10여 미터 내려가 보았다. 커다란 임진노성전적비와 노성산성지 비석이 보인다. 노성산성지의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조선조(朝鮮朝) 중기 흉폭한 왜적(倭賊)의 침입이 있었을 때 이 고장을 지키려는 조상들이 피 흘려 싸운 곳이다. 이곳에 처음 성을 쌓은 것은 조선 중기라 하나 성을 쌓은 모양으로 보아 그보다 더 오래인 고려시대 이전에 이 고장을 지키려는 선민들이 쌓은 산성이라고 보는 편이 옳은 것 같다. 특히 이곳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평창군수 권두문(權斗文) 공이 이 산성을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한 바 있으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많은 관민이 함께 피란했던 응암굴이 있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400여 미터의 작은 산성이나 천험(天險)을 이용하여 수축한 산성이다. 이 고장을 지켜온 호국의 유적지를 길이 보존하고자 표석을 세워 옛일을 후세에 전한다. - 1984. 10. 7 평창군수 노성산성지 비석은 이곳이 “왜적의 침입이 있었을 때 이 고장을 지키려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한해가 바뀌고 나서 며칠 후 김 교수는 미스 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울리더니, ‘기다리세요. 녹음을 남기려면 1번, 무얼 하려면 2번 어쩌고...’ 젊은 여자 목소리의 안내음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온다. 편리하다기보다는 번거로운 생각이 들어서 수화기를 내려놓아 버렸다. 며칠 후, 미스 최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라고 인사를 나누고, 그러더니 “오빠, 나 《아리랑》 제6권도 다 읽었어요. 한 번 만나 주셔야지요”라고 애교를 부리며 협박한다. 처음에 3권짜리 장편소설을 시작했더라면 벌써 끝났을 텐데, 12권짜리 《아리랑》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내가 만든 인과응보이니 어쩔 수가 없지. 토요일에 한번 만나자고 하니, 주말에는 용평스키장에 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것 참... 술집 아가씨가 대학교수 기죽이네. 나는 스키의 ‘스’ 자도 모르는데. 그러면 잘 갔다 오고 다음 주에 다시 연락하자고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이 아가씨는 김 교수와 격이 안 맞는 것 같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속담이 있는데... 겨울 방학이지만 김 교수는 날마다 학교에 나갔다. 방학이 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효석문학관에서 해설사로 근무하는 황병무 선생에게 다리외 사진과 관련하여 질문을 해보니 <향수>라는 글에 단서가 있다고 한다. <향수>는 효석이 1939년 9월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은 평양의 도시 생활에 지친 아내가 모처럼 경성의 시골집으로 쉬러 떠나는 이야기이다. 효석과 아내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소설에서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혼자 내빼구 집안은 어떻게 하려구.” 그러나 마침 일가 아이가 와 있던 중이었고 아내의 시골행 결심도 사실은 거기에서 생겼던 까닭에 이것은 하기는 헛걱정이기는 했다. “나 혼자 남겨 두구 맘이 달지 않을까.” “에이구 어서 없는 새 실컷 군것질 해두 좋아요. 얼마든지 하라지. 지금에 시작된 일인가 머. 이제 다 꿈만 하니.” “큰소리 한다. 언제 맘이 저렇게 열렸던고. 진작.....” 소설에서 아내는 남자의 바람기를 흥미롭게도 ‘군것질’이라고 비유하였다. 아내인 이경원은 미술학도로서 여고 졸업 작품 전시회에서 효석을 처음 만났다. 집안이 부자였던 그녀는 미술 공부하러 동경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효석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혼인하고 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