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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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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 대접만큼 행복한 일은 없었다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7]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도시의 모든 길거리에는 누구나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그러나 맛있는 식당, 친절한 식당, 부담 없는 값으로 찾을 수 있는 내 맘에 딱 맞는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가 쉬 기억할 수 있는 이름 놀부라는 상호를 앞에 붙이고 놀부보쌈과 놀부부대찌개란 메뉴를 개발하여 또 그들만의 맛과 친절로 전국을 휩쓸었던 창업주 오진권 사장의 지나간 이야기다. 누구보다도 배고픔의 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그가 노약자, 장애인, 노숙자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을 지어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손으로 그릇에 밥을 퍼 담아주는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정말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행복해했던 사람이다. 이제 일흔이 넘어 일손을 놓고 쉬고 싶었지만 심심해서 못 쉬겠다며 신촌 현대백화점 옆에서 다시 맛깔 부대찌개 집을 열었다는 소문을 듣고 혼자 찾아가 봤더니 입구에 “1인 손님 환영”이라는 알림 글이 먼저 보였고 주 고객 젊은 청년 학생들이 배고프지 않게 밥은 무한 리필이라 적어두었다 아직도 틈틈이 후배들의 창업과 성공 길라잡이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며 나눔으로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 진 권 놀부보쌈 부대찌개 이름으로 전국을 휩쓴

시인의 이력서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6]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늘 반갑게 맞이해 준다. 누구는 마음이 넓다 하여 들판 같은 분이라 말한다. 뇌졸중으로 두 번이나 쓰러졌다가도 거뜬하게 일어나 보란 듯이 무슨 문학 행사장으로 쉼 없이 찾아다니며 참여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시인의 이야기다. 내가 있었던 광화문 5층 사무실 승강기가 고장 나도 지팡이를 짚고도 거뜬하게 걸어 오르내렸던 분이다 인물 시(詩) 한 편 적어 내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려 했더니 이미 시집 속에 자신의 이력서를 다 적어 놓았다 피난 시절에는 대구 서문시장, 칠성시장, 교동시장에서 장사하면서 공부를 했으니 학교는 야간부만 다녔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꼬박 12년을 야간부 학생으로 공부를 했다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오뚜기처럼 살아가는 멋쟁이 시인을 소개한다. 김 원 중 서울대학교를 안 나왔고 유학도 못 갔다 왔어요 먹고 살기도 바쁘고 힘든 세상을 살았으니까요 일요일도 내내 일을 했으니 장로도 못 되었고요 김원중 노 교수가 말하는 자신의 지난 이야기다. 시장에서 장사꾼으로 돈 벌며 공부했던 시인! 시골 초등학교만 빼고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과 대학원까지 꼬박 12년을 야간에 공부했다며 그

사랑하고 행복한 모습 보여주자!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5]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세상에 귀하고 귀한 것 중에 그 으뜸은 사람이며 사랑이다. 귀한 인연으로 만났던 사람들, 또 내가 본받고 싶었던 사람들, 이름 없는 꽃처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향기롭고 빛나는 사람들, 또 화제가 되었던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소중히 했던 가치를 내 삶의 길라잡이로 하여 그들을 따르고 닮아 가려고 노력하며 시를 써왔다. 어떤 분은 나에게 ‘할아버지가 산부인과 의사는 어찌 알았노?’ 하고 묻는다 오래전 내가 만들던 잡지에 우리 시대를 이끌어가는 명사들의 말씀이나 읽을 만한 글을 게재함으로 여유로운 삶으로 이끌어 가려는 편집자의 맘으로 필진을 찾고 있을 때 다른 잡지에 실린 글을 읽고 원고 청탁차 산부인과를 찾았다. 부부의 성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치면서 일반인 들은 함부로 할 수도 없고 하기 어려운 말을 거침없이 재미있게 말한다. 꾸밈없이 부끄럽지 않게 전달하는 성지식은 놀랍도록 재미가 있어 내가 만들고 있던 잡지에 필진으로 초대하여 여러 해 동안 글을 쓴 인기 필진이었다. 결혼한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모습을 먼저 자녀들에게 보여주자고 한다. 결혼을 기피 하는 이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꿈꾸게 하자는 박혜성 원

6·10민주항쟁을 기리며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4]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6월이 되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 머리를 숙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을 어찌 우리 그날을 잊으랴! 부모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냥하고 우리 겨레가 서로 싸운 슬픈 전쟁이었다. 또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불의와 맞서 싸우다 활짝 피워보지도 못한 체 아까운 목숨을 민주의 제단에 바치고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젊은이들을 생각한다. 민주열사 박종철과 이한열은 독재와 불의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짙푸르고 꽃잎처럼 붉게 물들었던 내 젊은 날을 생각한다. 불의와 독재 권력에 맨몸으로 항거하며 맞섰던 그때를 생각한다. 눈을 부라린 독재 권력으로도 어찌하지 못하고 막을 수 없었던 거대한 민주화의 물줄기가 도도히 흘렀던 그때를 생각한다. “독재정권 물러가라”, “직선제로 개헌하라”, “독재 타도! 민주 쟁취!”를 외치던 시위학생과 시민들의 목소리는 오늘의 민주화를 이끌었을 것이다 오래전 연세대학교 앞에서 36년째 ‘논지당’이란 카페를 운영하였던 분. 불의와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우던 학생들에게 은신처를 마련해 주고 그들과 함께했던 문선경 씨를 만나 무늬처럼 새

뭉클한 이야기 구수한 농담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3] 염매시장 아지매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세상 사람들이 노년이 되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뭔지 혹 아시나요? 무슨 통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세월은 참 빠르다>라는 말 아닐까요? 자식 키 크는 줄은 알아도 자신이 늙어가는 줄 모르고 살아온 것이 사람입니다 지나가 버린 젊음 뒤에 따라오는 것은 어쩜 편안하기도 하겠지만 힘없어지고 몸은 병들고 외로운 마음에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제 고향 대구에 가면 염매시장이라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재래시장이 있습니다. 염매(廉賣)라는 말은 물건을 싼값에 판다는 뜻이겠지요. 이 시장 골목에는 여러 식당이 있고 얼굴이 살짝곰보인 친한 아지매가 밥도 팔고 술도 파는 식당의 주인이며 특별히 안주를 주문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단골집 아지매입니다. 그런데도 짓궂은 선배는 곧잘 은근슬쩍 농담을 던집니다 누가 농담을 함부로 합니까? 아무나 할 수 없는 농담!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농담! 그럴만한 사이라야 하는 흥겹고, 눈물 나고, 안타깝고, 가슴 뭉클한 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농담이지요. 추억 속에 염매시장 아지매는 빠른 세월을 탓하며 속마음을 구수한 농담으로 일깨워 주던 절절한 노래 같은 이야기를 말 하려 합니다

먼저 거름이 되라!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2] 송일호 소설가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생각해 보니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난날의 내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본다. 1960년대까지도 우리는 보릿고개를 이야기하던 가난한 살림살이었다. 당시 대구상고 정문 앞에는 소설가 송일호 씨가 운영하던 희망서점이 있었고 그 건물 2층에는 <재구농촌출신학우회>라는 기다란 나무 간판이 붙어 있었다 대구로 유학 나온 학생들이 하숙이나 자취를 하면서 이 모임에 참여하였고 함께 모여 토론하고 또는 저마다의 생각을 웅변으로 발표하고 연습하면서 청운의 꿈을 품고 함께 힘을 기르자는 그때는 매우 뜻깊은 모임이었다. 그 모임 2층 사무실 큰 거울에는 <먼저 거름이 되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때의 그 글은 소설가 송일호 씨의 삶을 이끈 마음의 깨우침이었으리라! 농부가 알찬 열매를 거두려면 농작물에 충분한 거름을 주어야 한다. 또 거름은 먼저 썩어야 하며 썩는다는 것은 자기의 희생을 말한다. 실한 열매만 가지려 했지 먼저 거름이 될 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모두가 높은 자리 권력과 돈을 가지려 이렇게 혼탁한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앞으로 뭐가 되겠다는 사람들은 <먼저 거름이 되라!>는 이 말 새겨듣기 바란다. 오늘은

스승님 말씀을 맘에 새기는 전각의 명장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1] 황보근 명장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전통은 살려 이어가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사는 우리가 기억하고 살려 이어지게 해야 할 전통문화예술을 푸대접하기도 한다. 전자계산기가 나오면서 주판이 사라지고 머리로 하는 셈법은 무뎌졌다. 또 온라인거래의 활성화되고 사인(서명) 제도가 도입되면서 도장(인장)의 예술적 값어치와 기능의 전승은 위기를 맞이했다 전각(篆刻)을 알아듣기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나무나 돌, 금, 옥 따위에 글이나 무늬 등을 새기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는 (사)한국전각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황보근 명장의 이야기다. 서예가이기도 한 황보근 씨는 예술성 높은 인장으로 일찍부터 명성을 쌓았고 인각과 전각에 모두 능해 대한민국 국새 제작에도 참여한 으뜸 명장이다. 대한민국 명장에 뽑힌 뒤 인사동길 그의 공방 인예랑(印藝廊)은 붓글씨와 전각의 공방이며 시인 묵객들의 사랑방이자 자신을 다듬는 수행의 도장(道場)이 되었다. 그가 스승으로 모신 무위당 장일순으로부터 인향만리(人香萬里)의 품격을 배웠고 한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을 되새기며 자신을 뒤로 물리면서 칼처럼 붓처럼 견고하나 부드러운 삶으로 자신을 더 아름답게 다듬어가고 있다. 황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를 쓰는 시인

[허홍구 시인의 사람이야기 40] 배우리 시인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산에 들에 꽃 피고 새가 노래하는 좋은 계절입니다 목련, 매화,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 살구꽃! 듣기만 해도 정겹고 아름다운 이름! 곱고 향기로운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납니다. 이 고운 이름과 우리의 이름은 누가 무슨 뜻으로 지어주었을까요? 우리말 연구가이며 우리땅 이름학회(회장), 국가지명위원 등으로 활동하시는 배우리 시인은 오래전 텔레비전 프로에 고정 출연자로 우리말과 땅이름을 강의하신 분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치욕의 식민지 시대는 우리의 혼과 정신을 말살하려는 저들에게 이름마저 빼앗겼던 슬픔이 있었지만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는 나라의 땅만 되찾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빼앗기고 짓밟힌 우리의 정신과 우리말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며 일평생 우리말 사랑에 앞장서서 일하신 시인입니다. 일찍이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에게 뽑혀 학원, 새벗, 소년세계 등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의 문우들을 만날 때마다 왜 지금은 시를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시인은 사람들의 고운 이름을 지어주고 있다면서 사람의 이름에는 우리의 정신과 가족의 사랑, 소망이 담겨 있으니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를 쓰지 않느냐라며 웃으십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