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24세가 되던 해, 황해도 장현 마을의 권번 소리선생을 접고 귀향한 이은관은 앞으로의 소리인생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끝없이 하다가 서울행을 결심하였다. 제일 먼저 인천의 한 가설극장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서울의 유명한 소리꾼 박천복과 한 무대에 서게 되었다. 또한 박천복을 통해 신불출이라는 공연계의 거목을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신불출의 일행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당시 신불출의 단체에 입사한다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방송국의 전속 탈렌트나 연예사에 오디숀을 보고 합격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의 행운이었다. 신불출은 이은관의 배뱅이굿을 새롭게 기획하여 서울 종로 4가의 제일극장에 올렸는데, 폭발적적인 인기리에 4일을 연장공연하기에 이르렀고, 그 이후 전국을 돌며 지방공연을 다니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지난주에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 다음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한다. 지방공연이라고 해서 서울에서 경기지방이나 충청지방에 가는 것이 아니다. 전라도에서 함경도까지 전국을 돌며 그것도 그 지역에서 규모가 큰 극장을 빌려 대규모 출연진으로 순회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신불출 선생 하면 당시에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일본의 최고 관광지 1위는 교토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稻荷大社)로 꼽혔다. 세계최대의 여행 입소문 사이트인 미국의 트립어드바이저에 따르면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일본의 관광지는 교토 소재 후시미이나리대사로 이것은 종래 청수사나 금각사의 인기를 누른 것이다. 이는 일본 산케이신문 7월 5일자 보도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오이나리상(お稻荷さん)이라고 알려진 교토 후시미이나리대사는 전국에 4만 개 이상 있는 이나리신사(稻荷神社)의 총본사다. 일반적으로 상업번창의 신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 이나리신사에서는 오곡의 풍요를 뜻하는 농업의 신을 모신다. 일본에 있는 8만여 개의 신사 중 절반을 차지하는 이나리신사는 일본 땅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나는 신사이며 교토의 후시미이나리대사는 이 신사의 우두머리 격이다. ▲ 우리나라 절의 기와불사처럼 도리이 기둥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후시미이나리대사에 바친 크고 작은 도리이는 일만여 개에 이른다. 교토 후시미이나리대사는 면적이 27만평으로 그 크기만으로도 압도적인데다가 해발 233미터의 이나리산(稻荷山) 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는 1만여 개의 붉은 도리이가 만리장성 모양 끝없이 길게 늘어서서
[그림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청년 이은관이 황해도 황주의 이인수 선생 앞에서 테스트를 받은 후, 선생 댁에 기거하면서 배뱅이굿을 비롯한 서도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당시에는 김종조나 최순경, 이인수 등이 김관준의 배뱅이굿을 잘 불렀다는 이야기, 선생은 제자 이은관을 황해도 장현 마을의 권번 선생으로 추천해 주어서 남을 가르치는 일과 자신의 공부를 열심히 하여 그의 소리가 인근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대동아전쟁 [大東亞戰爭]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1941~1945년까지 일본과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태평양 전쟁은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이름이라는 이야기, 전쟁의 확대로 국내의 사정은 불안해 졌고 권번들이 없어지고 배울 사람이 없어져 고향땅으로 돌아 왔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24세가 되던 해, 청년 이은관은 대동아전쟁으로 인해 황해도 장현 마을의 권번 소리선생을 접고 귀향하였으나 강원도 고향땅에도 그를 기다리거나 그의 소리 실력을 발휘할 뾰족한 방법이나 기회가 있을 리 없었다. 기껏해야 동네 유지들 앞에서 간혹 소리하는 기회가 있었지만 명창의 꿈을 안고 있는 이은관이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아베정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30일, 도쿄 시부야역 주변에서 칠석 장식물을 세우고 행인들에게 평화의 소원을 적은 메시지를 단사쿠(短冊, 소원종이)에 써달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손뼉을 치면서 집단적 자위권 인정은 미국의 전쟁에 참가하는 것, 그 누구도 전쟁으로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다 와 같은 말을 확성기를 통해 행인들에게 호소했다. 소원종이에 마음으로부터 미소를 이라고 쓴 시부야쿠에 사는 회사원 요나코 씨(古林沙子, 33살)는 미소는 평화에 이르는 길이다. 전쟁이 아닌 대화로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6월 30일치 마이니찌신문(每日新聞)이 보도한 기사다. 곧 다가올 칠석행사로 일본거리는 지금 형형색색 장식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백화점이나 상점가는 물론이고 역전이나 동네 골목길까지 사사(笹)라고 부르는 가는 대나무 가지를 세우고 거기에 알록달록한 소원종이를 적어 매단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로 숨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노란 리본에 위로의 말을 적어 주렁주렁 내걸듯 일본은 해마다 칠석날이면 소원종이를 쓰고 칠석행사를 다채롭게
[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소리의 지존(至尊), 97세의 이은관(李殷官)명창이 살아생전 만나지 못하고 소리로만 대하던 배뱅 아씨를 만나러 떠났다는 이야기를 시작하며, 황해도와 평안도의 접경지대인 강원도 이천에서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나 소리를 좋아했고 10대에 가요 콩쿨대회에서 사설난봉가로 일등을 했다는 이야기, 민요를 좋아하던 자식을 위해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비싼 유성기를 사 줄 정도로 남다른 교육열을 지니고 있었던 이은관의 부모이야기, 유성기 음반을 통해 박춘재의 소리를 많이 들었고, 친구를 따라 황해도 황주 권번을 찾아갔다는 이야기, 그곳에서 이인수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청년 이은관은 이인수 선생 앞에서 테스트를 받게 되었는데, 이때 부른 민요가 서울지방의 창부타령이었다. 그쪽 지방은 황해도의 전통적인 소리, 즉 지금의 서도소리가 그 지역의 일반적인 소리였지 서울의 명창들이 즐겨 부르던 창부타령과 같은 노래는 잘 부르지도 않았을 뿐더러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창부타령을 흐드러지게 부른 이은관에게 이인수 선생은 목소리도 좋고 재주도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수업료를 받지 않고 가르쳐 줄 것을
[그린경제/ 얼레빗 = 이윤옥 기자] 여름은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그러한 꽃이 피는 모습을 국어사전에서는 말로 풀이 하고 있는데 이 풀이란 것이도통 일본한자말 투성이라그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미나리아재비 꽃은 취산(聚繖) 화서, 콩꽃은 총상(總狀) 화서 담배는 원추(圓錐) 화서, 토란꽃은 육수(肉穗) 화서로 핀다고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설명해놓고 있다.어떤 아이는 육수화서라고 하니까 육수를 부어키우는 꽃인가요?라고 묻기까지 한다. 딱한 노릇이다. ▲ 토란꽃으로 이러한 모습을 일본말에서는 '육수화서'라고 한다. ▲ 콩꽃으로 일본말에서는 '총상화서'라고 한다. ▲ 익모초꽃으로 이러한 모습을 일본말로는 '윤산화서'라고 한다 윤산화서, 육수화서, 수상화서, 총상화서, 취산화서, 원추화서. 우리 국어사전은 왜 이렇게 어려운 일본식 한자로 식물을 설명하는 것일까? 그것도 일본말이라고 밝히지도 않고 말이다. 이는 식물을 포함한 사물의 인식을 알기쉬운 우리 말로 표현하려는 의식이없어 생긴웃지 못할 딱한 노릇이다.이러한 식물 설명을 해놓은 예를 아래에 몇가지 소개하겠다. 누가 이러한 일본사전 베끼기를 새롭게 할 것인가?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문화심의회는 6월 20일 <군함도(軍艦島)>로 알려진 나가사키의 하시마(端島)를 포함한 다카지마탄광유적지 (高島炭跡) 등 9건을 사적으로 지적하도록 문부과학상에게 건의했다. 이 밖에 명승 5건, 등록기념물 6건, 중요문화적경관 1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유적은 내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정부가 추천한 ”명치일본의 산업혁명유산 큐슈· 야마구치 관련지역으로 올 여름과 가을에 걸쳐서 실시 예정인 유네스코 자문기관에 의한 현지조사 전에 사적지정으로 국가에 의한 보호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다.” ▲ 과거 하시마탄광이었던 <군함도(軍艦島)> 위는 일본 아사히신문 6월 20일치 기사로 여기서 말하는 <군함도>란 해저탄광지로 일제강점기 때 인구밀도가 수도 도쿄의 9배가 넘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곳이다. 탄광이나 금광지역이 활황기 때에는 언제나 광부와 그 가족들 그리고 돈벌이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군함도>가 단순한 일본인들의 돈벌이 장소였다면 오늘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곳이지만 그러나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징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지난 5월 2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젊은 가야금 연주자 조아라 양의 취태평(醉太平)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조 양은 어린 시절부터 가야금을 시작하여 수차례 개인 발표회, 해외 연주 경험, 특히 전국가야금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의 실력파 연주자라는 이야기, 젊은 연주자들은 정악보다는 산조, 산조보다는 창작곡이나 퓨젼을 즐겨 발표하는 추세이나 느리고 여유 있는 정악을 무대에 올리는 연주자들은 흔치 않다는 이야기, 영산회상은 원래 성악곡이었던 것이 조선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기악화 되었고, 악곡을 삽입하여 연주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하는데, 이러할 경우에는 별곡이나 또는 가진회상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곤해 있을 때, 관악영산회상을 들으면 생기가 돋고, 주체하기 힘든 욕망이 끓어오를 때, 현악영산회상을 대하면 곧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 정악은 기교보다는 성정에 바탕하여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조절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음악이라는 이야기, 오늘의 발표회를 통하여 영산회상이 곧 개인의 수양, 그리고 사회를 교화시켜 온 음악이었음을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일본 종이기술은 610년 고구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공식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일본서기》의 고구려 승려 담징이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했으며 이 보다 앞서 513년에는 5경 박사가 백제에서 건너와 한자와 불교를 보급하면서 사경작업이 이뤄졌기에 이 무렵에 이미 종이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이는 일본 위키 사전에 나오는 일본 종이의 유래이다. 일본 종이를 와시(화지, 和紙)라고 하는데 기록상으로만 봐도 1400여년이 지났으니 상당한 기술이 축적 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대장경을 찍는 종이가 말해준다. 대장경에 관한 이야기는 세종 6년(1424)에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건너온 사신들의 단식투쟁 기사가 보이는데 우리들이 조선에 온 것은 대장경을 얻기 위해서이며 만일 경판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돌아갈 수 없다. 차라리 여기서 식음을 전폐하고 죽어 버리겠다. 는 기록이 그것이다. 당시 일본은 대장경을 만들 능력이 없었기에 조선의 대장경을 숱하게 얻어 갔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 일본 종이(和紙)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장경을 요구하기 시작한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부여지방에서 6월에 열리고 있는 시조 강습회와 내포제시조의 김연소 예능보유자의 시조창 발표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시조시는 그 형식이 간결 소박하기 때문에 그 형태상의 특성이 유학자들의 취향과 딱 들어맞기에 조선의 유학자들에 의해 크게 발전된 분야가 곧 시조창이라는 이야기, 오늘날의 시조창은 조선조 영조 무렵부터 부르기 시작한 노래로 당시에는 시절가요라고도 했다는 이야기, 세련 정제된 형식미와 선율선의 유장미, 표현의 절제미, 창법상의 장중미를 느끼게 되는 노래이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밀려나 현대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포제시조의 김연소 예능보유자와 충남통합시우회의 이규환, 김영숙 등 제씨들은 정성을 다해 시조 관련 행사를 추진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 부여에서 울려 퍼지는 시조창의 기운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원과 함께 지역의 큰 축제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 5월 2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젊은 가야금 연주자 조아라 양의 취태평(醉太平)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